정토행자의 하루

안양지회
무거우면 내려놓고 뜨거우면 내려놓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안양법당을 지키시는 박명자 님의 "앗 뜨거" 수행담을 들어볼까요?

6학년이었던 아들은 키가 컸습니다. 육상을 시키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운동은 절대로 안 시키고 싶었습니다.
친정 동생도 시동생도 운동을 했는데 운동을 하다 그만두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되어 버린 모습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몰래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방과 후에만 하더니 6학년 후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들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축구 안 시켜주면 중학교에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서울로 중학교를 보냈고 늦게 시작한 축구의 기본기가 없어서 브라질로 유학도 가게 되었습니다. 그 뒤 서울체고에 입학했고 한양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홍보
▲ 불교대학 홍보

대학에 들어가서 부상을 당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고통스러운 통증으로 힘들어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통증이어서 꾀병을 부린다는 말도 듣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지켜보자는 말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들은 코칭 스텝들과 관계도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여자친구와도 갈등이 생겨서 훈련장을 일탈해 버렸습니다. 3박 4일 동안 여자친구랑 돌아다니다 집에 와서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황당한 남편은 아들의 뺨을 때렸습니다. 축구선수로 키우려고 돈도 많이 들였고 서울에 있는 대학도 들어갔으니 그냥 축구 하나만 잘하면 될 텐데, 그걸 못하고 그만두겠다는 아들이 야속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군대를 도피처 삼아 가버렸습니다. 제대 후 아들은 여자친구를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여자친구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고 부모도 이혼을 했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게다가 아들은 결혼할 준비가 전혀 되어 보이지 않아서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반대를 하자 집을 나가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결혼은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아이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받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10개월이 되었을 때 아들은 이혼을 하게 되었고 저는 손자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식 날
▲ 불교대학 졸업식 날

아들은 계속 자기 자신을 실패자라며 학대를 하고 음주운전과 폭행으로 사고를 치며 지냈습니다. 아들이 속을 썩이면 손자가 너무너무 미웠습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아이를 안 키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넉넉한 살림이었는데 돈이 점점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지는 건 나았습니다. 어느 날 술을 먹고 들어온 아들은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했고 간신히 살려놓았더니 왜 자기를 살렸냐고 따지는 아들을 보는 것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자신을 학대하는 아들이 혹여 잘못되지는 않을까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은 없겠지? 더 바닥은 없겠지?’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부부관계도 안 좋아졌습니다. 남편은 술 한 방울도 안 마시고 아들을 때릴 수 있는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 아들을 때리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아들도 아빠를 원망하고 저도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 때문에 저와 아들이 이렇게 불행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점점 대화가 없어지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 너덜너덜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불교대학 중간 갈무리(맨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쩨)
▲ 불교대학 중간 갈무리(맨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쩨)

긴 시간 동안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 날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라는 유튜브 강연을 보다가 우연히 스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을 보니까 부처님 얘기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들어가보니 엄청 색달랐습니다.
종교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고 스님들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던 저 였습니다.
하지만 영상을 보니 평소에 생각하던 불교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들에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너무 속을 썩여서 자식에 관한 영상만 찾아서 봤습니다. 어떤 때는 밤을 새워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 비슷한 질문인 것 같은데 대답은 다 달랐습니다. 제가 질문하면 뭐라고 답하실까 너무 궁금했습니다. 무작정 법당에 전화를

했고 답답한 마음을 해결해보고 싶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 인도 성지순례

불교대학에서 수행과제를 하면서 제일 먼저 나를 바꾸려는 훈련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퇴근해서 오는 남편에게 “잘 다녀왔어요!” 웃으면서 말했고 남편은 놀라서 말이 없었습니다. 둘째 날도 ‘하기로 했으니까 해야지’ 하면서 그냥 했습니다. 남편이 식탁에서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욕을 사용해가며 말을 하면 “왜 애 앞에서 그렇게 말하냐, 애가 뭘 배우겠냐!” 했을 텐데 “우리 이쁜이가 듣잖아. 좀 더 순한 말로 하자.”라고 말을 바꿔서 했습니다. 한 번도 남편한테 그렇게 말해보지 않았는데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그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담배도 많이 피우고 욕도 하지만 큰 장점 한가지는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함은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애들한테도 아빠의 나쁜 면만 말했는데 이제는 아빠가 너무 대단하고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외로움과 힘듦을 마음으로 받아주니 제가 더 편안해지고 남편도 다시 웃음 찾고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도 성지순례
▲ 인도 성지순례

저의 괴로움의 가장 큰 부분이 아들이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바라는 마음과 틀 안에 가두려는 집착이 저를 괴롭게 했음을 깨달음의 장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전부였던 축구도 포기하고 방황하는 아들의 아픔을 알아주지 못하고 부모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들의 서러움도 모른 채 같이 자폭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경전반 학생으로서 공부도 하면서 온라인 가을 불교대학 스텝을 하게 되었습니다. 컴맹이었던 저는 딸에게 물어서 적어두고 무조건 외워서 했습니다. 지금도 불교대학 돕는이를 하고 있고 통일의병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너무 힘들게 배우면서 소임을 했기 때문에 올해는 안하고 싶었는데 스님이 일본에서 니와노평화상을 받으시며 “제가 뭐 한게 있나요.”라고 말씀 하시는걸 듣자마자 바로 신청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도 복 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행복을 전하는 일에 쓰일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온라인 가을불교대 스탭 졸업 갈무리 도반님들의 롤링페이퍼
▲ 온라인 가을불교대 스탭 졸업 갈무리 도반님들의 롤링페이퍼

상황은 똑같고 달라진 건 없지만 들고 있던 짐들을 내려놓으니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술 먹는 것도 아들 인생이고, 그냥 지켜보는 입장에 서 있게 되니 시비할 것이 없습니다. 작년에 딸이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남편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들하고도 관계가 엄청 달라지고 편해졌습니다. 내 욕심과 집착 때문에 힘들게 살았는데, 제가 변화하려고 노력하니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작은 문제들은 남아있지만 큰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습니다.
다시는 들었던 무거운 짐 들지 않고 불법의 끈을 놓지 않으며 가볍게 정진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무거우면 내려놓고 뜨거우면 내려놓고.
간단한데 우리는 왜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게만 살아갈까요.
어려워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싶은게 아닌지 스스로 질문을 해봅니다.
지금 잡은 이 불법이라는 끈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박명자님의 정진을 힘차게 응원합니다.

글_박세영 희망리포터(안양법당/안양지부)
편집_조미경(경남지회/김해법당)

전체댓글 2

0/200

느릿느릿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2023-08-18 11:47:46

현이

감동적인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나누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23-06-16 03: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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