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생방송 여름 명상

7월 26일(금) ~ 7월 30일(화) 4박 5일
7월 26일(금) ~ 8월 1일(목) 6박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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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여름 명상 바라지

7월 19일(금) ~ 8월 2일(금) 14박15일
정토연수원(선유동) /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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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떠나는

제 34차 인도성지순례

순례기간 : 2025년 1월 9일(목) ~ 25일(토) / 16박 17일
접수기간 : 2024년 6월 19일(수) ~ 선착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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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4 행복한 대화

법륜스님의 오프강연 행복한 대화 시즌2!
오프강연이 전국 15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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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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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평생을 함께하는 도반, 떼려야 뗄 수 없는 곳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정토행자의 하루’ 주인공을 만나러 상주에 갑니다. 따가운 햇살 때문에 커튼을 치고 건너편으로 눈을 돌리니, 빠르게 지나가던 기차가 느려지고 초록빛 풍경이 넓게 펼쳐집니다. 우뚝 솟은 건물보다 푸른 들판이 더 눈에 들어오는 상주에 내리니 환하게 웃으며 맞는 도반이 있습니다. 불교대학 대구 경북지부 담당 이정미 님입니다. 구수한 팥빵, 커피와 함께 이정미 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6.13 대법회 퍼포먼스 리허설 후 아도모례원 보리수나무 아래서 세상이 왜 나한테는 친절하지 않지? 아버지가 사업하다 잘못되어 집이 어려워졌습니다. 엄마는 돈을 빌리러 다니다, 끝내 부모님은 서울로 도피했습니다. 고등학생 오빠, 중학생 저, 초등학생 여동생 둘은 친척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가족을 힘들게 하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제가 본 아버지는 게으르고, 진실성이 부족해 보였으며 약속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스물두 살 때입니다. 간호사로 밤 근무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집에는 아무도 없고 싸했습니다. 엄마는 집 근처 포교당에 새벽 기도를 다녔는데, 겨울이라 법당이 너무 추워서 심장마비가 온 것 같습니다. 그날 새벽에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은 저한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한테 생활비로 제 월급을 몽땅 주었는데 그 돈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우리 몰래 전세금을 빼서 딴 데 썼습니다.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 앉는 신세가 되어 월세로 돌려서 살았습니다. 월급을 모두 아버지한테 주면, 집안이 좀 더 빨리 일어날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제가 결혼하는 날, 동생들은 제가 멀리 간다고 엄청나게 울었지만, 저는 집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2024년 부처님 오신 날 아도모례원에서 꿈이 이루어져도 괴로움은 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 보니 도시는 답이 아니었습니다. 귀농하고 싶었지만, 땅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 혼자 촌에서 살기는 어려웠습니다. 농사짓는 남자를 만나면 제일 빠를 것 같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아는 동생이 상주에 사는 농민회 회원과 소개팅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잘 되면 나한테 새끼 쳐.”라고 했는데, 마침 농민회에 한 명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을 소개받아 6개월 사귀고 결혼했는데, 그때 서른아홉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결혼 못 할 줄 알았는데 장가를 가니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몸이 약하고 일도 잘 못 하니까 별로 이뻐하지는 않았습니다. 임신해서는 같은 상주 지역이지만 교통이 좋지 않아 시집에 일하러 가기 힘들었습니다. “애는 못 키워주니까 네가 키워라.”라는 시어머니 말에 농사는 거의 안 하고, 살림하며 아이만 키웠습니다. 제 삶 중 가장 편안한 때였습니다. 일이 없으면 집에만 있는 저와 달리, 남편은 농사지으며 농민회 활동이나 사회단체 활동을 활발하게 했습니다. 제가 사회성이 떨어진다며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라고 했고, 제가 뭔가를 해서 즐거워하면 남편도 좋아했습니다. 지인 소개로 상주 가정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가정집에서 잘 모르는 스님이 영상으로 법문하는데 공간도, 스님도 낯설어서 한 번 참석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에 상주 법당이 개원한다는 전단을 보았습니다. 그쯤, 첫째 동생이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았습니다. 막냇동생 아이는 사고로 목뼈를 다쳐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나 두 동생을 엄마 같은 마음으로 살폈는데, 마음이 심란하고 힘들었습니다. 2024년 대구경북지부 지원팀 바깥 모임 뭘 잘못 살았나? 우연히 상주 법당을 지나다가 ‘저기 들어가 볼까?’ 생각했습니다. 2013년 상주 법당 정초 순회 법회 때였습니다. 법당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내가 말끔하고, 사람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준비된 질문을 다 받고 계속해서 질문할 사람이 더 없냐고 물었습니다. 한두 번만 말했으면 질문을 안 했을 텐데 마치 제 질문을 기다리는 듯이 세 번 네 번 질문하라고 했습니다. 상주는 좁아서 질문한 내용으로 누군지 알고,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어서 질문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저한테 여동생이 둘 있는데 한 동생은 장애인을 낳고, 다른 동생은 아이가 다쳐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이 불행의 원인이 가장의 역할을 다하지 않고 가정을 돌보지 않은 아빠 잘못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가 스님에게 무지 혼났습니다. 스님은 호통치면서 여기 회원이냐고 물어봤고 아니라고 했더니 불교대학부터 입학하라고 했습니다. 스님 답을 듣고 나오는데 사람들이 따라 나왔습니다. 스님이 너무 혼내서 제가 상처받았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은 스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동생들이 불행한 원인이 아버지한테 있는 것 같은데 스님은 제가 잘못 살았다고 하니까 ‘뭘 잘못 살았나?’ 알고 싶었습니다. 네 살짜리 둘째를 데리고 수행 법회를 다녔습니다. 다음 해 상주 법당에 불교대학이 개설되었습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둘째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저는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오늘도 제때 일어났네 첫째가 딸인데, 어릴 때부터 올바른 아이, 인사 잘하는 아이 등 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며 키웠습니다. 네 살인 둘째가 법당에서 칭얼대거나 울면 밖으로 나가서 울지 말라고 입을 틀어막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더 크게 울었습니다. 저는 법당이 조용하고 엄숙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도덕심을 강조하는 작고 네모난 틀에 아이들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서 공부하니 고정되었던 작은 틀이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한 걸음 물러나서 지켜봅니다. 원망했던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아버지도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되어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건 아닐까? 장애가 있는 조카들도 그대로 예쁘고, 동생들이 불행하다는 건 제 생각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된 것은 돌이키고, 참회하고, 살피는 기도 덕분입니다. 처음 기도할 때는 빼먹기도 하고, 삼배만 하기도 하고, 밤늦게 대충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책임이 큰 봉사를 맡으면서 5시에 일어납니다. ‘기도 시간을 놓쳤네’라고 괴롭게 시작하지 않고 ‘오늘도 제때 일어났네.’라며 산뜻하게 아침을 시작합니다. 2023년 가을 불교대학 으뜸절 실천 활동 원칙을 지키려는 마음 10 불교대학 대구경북지부 담당을 맡으면서 반 담당자들과 공유하는 소통방이 있습니다. 소통방에서 담당자들의 역할을 살피면 제가 원하는 대로 하는 사람, 갸우뚱하게 하는 사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잘하면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라고 배웁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면 ‘그래 맞아, 저렇게 해야 해.’하며 흡족해합니다. 그런데 제가 원하는 만큼 못하면 ‘왜 저렇게 할까? 전화해서 서둘러 하라고 할까 아니면 소통방에서 물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예전의 저라면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 행동에 대해선 물어보지도 않고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야.’라며 결론 내려서 제쳐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먼저 기다리고 그래도 안 되면 물어봅니다. 옳다, 그르다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보려고 합니다. 불교대학 지부 담당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기다림과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소통방에는 학사 진행자의 질문이나 제안이 많이 올라옵니다. ‘이런 질문까지 올라오네. 이 정도는 내가 답을 해도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문을 받으면 무조건 교육국에 문의해서 답변하는 게 원칙입니다. 왜냐하면, 전국에 똑같은 기준이 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그렇게 하세요.”라고 안내하고 싶은 마음이 90지만 원칙대로 해야 하는 10의 마음으로 교육국에 문의합니다. 처음에는 제 업식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하라고 하니까 그냥 합니다. 개인 ‘이정미’가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22년 구미지회 경전 대학 반별 활동 지역사회에 이로운 사람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토요일마다 3시간씩 3개월 넘게 서원 행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 몰랐던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이로운 역할을 하기 위해, 사는 지역을 공부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서원 행자 교육을 받으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했습니다. 지역 사회단체에서 어떤 제의가 들어오면 예전에는 ‘저게 잘 될까?’ 하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꺼이 하겠다.’ 마음먹습니다. 서원 행자 교육 나누기에서 “오늘은 잘 못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라는 마음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이 “그렇지 않다. 정말 잘하고, 굉장히 잘 듣고 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저를 예쁘게 봐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지금 이대로도 충분한데, 이상적인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거기에 다다르려고 애쓰고 있구나.’를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에 저를 내려놓습니다. ‘나에게 정토회란?’ 질문을 받고 생각하는데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차피 평생을 정토회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니 ‘평생을 함께하는 도반,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가볍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가볍다는 것을 알기에 저에게 정토회는 평생 필요합니다. 포도 순 치기 하는 이정미 님 ‘내가 많이 변했구나, 잘 사는 것이구나.’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는 이정미 님 나누기를 들으니 뿌듯합니다. 봉사하면서 도반을 기다리고, 묻고, 듣고, 안내하는 이정미 님이 든든합니다. 인생 법문 잘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곶감을 먹을 때는 상주에 사는 이정미 님이 떠오를 듯합니다. 글김정림 희망리포터 편집도경화

구미지회 2024.06.19. 1,150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우리의 재능을 찾는 시간

무대방송팀 리허설 취재하러 왔는데, 색종이를 접으라구요? 색종이 좀 접어 주세요. 6월 2일, 무대팀 리허설 취재를 위해 1시간 정도 앞서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에 들어선 리포터들에게 대뜸 색종이가 쥐어졌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색종이를 접고 잘라붙여 사슬을 만들었습니다. 알고보니 무대 프로그램 중 ‘사슬끊기’ 퍼포먼스 시연에 필요한 소품이었습니다. 10명이 가로줄로 길게 서보고 그에 맞는 길이만큼 사슬을 연결했습니다. 사슬이 준비되었을 즈음, 무대팀 봉사자들이 모두 도착하여 여는 나누기를 했습니다. 이럴 때 여는 나누기가 빛을 발합니다. 나누기를 통해 오늘 리허설을 왜 하는지, 봉사자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봉사자의 마음이 어떤지를 파악할 수 있으니 함께 호흡을 맞추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무대팀은 미리 만든 큐시트를 보며 음원을 틀어보고, 출연자가 무대에 오르고 내려가고, 무대 소품을 세팅해보며 큐시트 수정을 되풀이했습니다. 저희 리포터들도 무대 위로 올라가 촛불점화하는 내빈이 되었다가 합창단원이 되기도 하며 쏠쏠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무대는 촌각을 다투는 현장이었습니다. 촛불점화대를 어디에 준비해두어야 빠르게 무대에 올리고 내릴지를 고민해야 했고, 출연자의 걸음 속도도 고려해야했습니다. 연로하신 도문스님의 걸음걸이가 늦어지고 법상을 옮기는 시간이 지연된다면 다음 순서인 합창단 공연을 1절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리포터들이 대강당에 들어서자마자 만들었던 사슬도 리허설 현장에서 바뀌었습니다. 종이로 만든 사슬을 찢는 모습이 상상과는 달랐습니다. 무대에 주요 내빈 40명이 올라갔을 때 사슬을 잡고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않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어떻게 수정할건지 의견을 모으거나 다음 회의 때 논의하기로 결정하며 빠르게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역할을 무대총괄이 맡았습니다. 오후 5시에 끝나기로 예정된 리허설은 6시 가까이 끝났습니다. 쉬는 시간 없이 모두 주어진 소임에 맞게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무대팀원들은 마치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다들 눈망울이 초롱초롱했습니다. 예민해지기 쉬운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집중하면서도 편안해 보였습니다. 이런 리허설을 지난 달부터 매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대의 결과물만 보던 저에게 한 편의 무대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워크숍 첫째 날 나도 잘 쓰이고 남도 잘 쓰는 일 6월 8일, 5시간을 달려 죽림정사에 도착했습니다. 장수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저녁 공양 전까지는 전날 법륜 스님과 함께 한 리허설에서 바뀐 부분을 살피는 팀별 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 좋은 안으로 변경했다지만 그에 따라 새롭게 예상되는 문제는 늘 있으므로 회의는 같은 지점을 돌고 돌며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저녁 공양을 마친 봉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림정사에 있는 모든 봉사자들이 교육관에 모였습니다. 이미 교육관 마루에는 방석이 줄지어 깔려 있었습니다. 이 또한 다른 봉사자의 노고라 생각하니 방석 위에 감사한 마음이 같이 앉습니다. 예불 후 유수스님의 격려말씀이 이어졌습니다. “큰 행사일수록 소통이 중요합니다. 소통은 내가 스스로 해나가는 것입니다. 궁금한 건 내가 묻고 챙겨야 합니다. 옆 도반과 소통해야하고 같은 부서원끼리 소통해야하고 또 연관된 부서와도 소통해야 합니다. 이러다보면 똑같은 말을 열 번도 더 해야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일이 잘 되려면 이런 수고로움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각자 다르다는 것입니다. 생각도 다르고 재능도 다릅니다. 상황을 크게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세하게 보는 사람이 있고, 촘촘하게 가는 사람이 있으면 듬성듬성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에는 이 모두가 필요합니다. 그 누구도 모든 걸 잘할 수 없습니다. 못하는 점을 부각하기보다 일을 해결하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의 재능과 장점을 발견하고 잘 쓰일 수 있도록 업무를 배정해 주세요. 그리고 필요한 것은 지원해 주면서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 내가 못한다면 도움이나 인력을 요청해서 모두가 같이 잘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재능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괜찮게 쓰이는 길이 됩니다. 소통과 재능의 적재적소 배치. 이 두 가지를 당부드립니다. 이 과정이 즐거우면 조금 힘들긴해도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납니다. 그러면 일도 잘 됩니다.” 아침부터 내내 팀별 회의와 리허설에서 나온 고민거리를 잔뜩 안고 교육관에 들어섰던 봉사자들의 표정이 실마리를 찾은 듯 한결 밝아졌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죽림정사의 밤 리포터들은 무대팀 행사기록파트 소속입니다. 때문에 행랑채 2층으로 자리를 옮겨 무대팀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큐시트와 사회자 멘트를 보며 각자 머릿속에 무대를 만들고 사회자를 세웁니다. 프로그램 사이사이 멘트가 매끄러운지, 무대소품을 옮기고 무대출연자가 오르내리는 시간이 적정한지 점검하고 또 점검합니다. 옆방 상황본부도 주고받는 말소리가 분주합니다. 어느덧 밤 9시, 슬쩍 밖으로 나와 다른 팀들을 염탐해 보기로 합니다. 불빛이 환한 교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작은 개구리 한마리가 문창호지에 붙어 리포터들보다 먼저 엿보고 있네요. 열 너덧 명의 봉사자가 4인용 좌상을 이리저리 옮겨보고 이어 붙여보고 있습니다. 내빈공양팀 중 교육관 내부 공양을 맡은 대경지부 봉사자들이 배식과 공양을 위한 식탁 위치를 잡아보고 있었습니다. 교육관에서만 200명이 넘는 내빈들이 식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배식과 퇴식 동선까지 생각해 한정된 공간을 잘 쓰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마침 리포터들이 들어선 쪽에 서 있던 공양팀 부총괄을 맡은 대경지부장 백은정 님께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공양 메뉴 선정부터 600개가 넘는 공양그릇과 물컵을 마련하기까지 엎치락 뒤치락의 준비과정을 들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행랑채로 돌아오니 여전히 상황본부와 무대팀은 회의중입니다. 리포터들도 탈의실로 만든 쪽방에 모여 앉아 회의를 했습니다. 봉사자들의 이 열정과 노고를 생생하게 전하기 위한 이야기와 문체를 고민합니다. 다른 봉사팀들과 비슷하게 우리 리포터팀도 취재와 기사 작성 계획이 계속 변경됩니다. 잠들지 못하는 죽림정사의 밤입니다. 6월 20일에 613 만인대법회 특집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글과 사진613대법회 행사기록파트

[특집]613만인대법회 2024.06.18. 916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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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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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