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씨앗이 움터 나무가 되는 길

백일출가

원서마감 : 23년 3월 09일(월)
면접 : 3월 12일(일)

출가기간 : 23년 3월 30일(목) ~ 7월 7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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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다시읽기] 모든 것을 내 문제로 볼 수 있습니까?

하늘을 날기 위해 뼛속을 비우는 새처럼, 일상의 삶에서 하나씩 비워가며 수행자의 길을 가고 있는 손정현 님. 2013년 순천 법당 개원부터 2019년까지의 총무 소임과 통일 특별위원 소임을 맡으며 어떤 마음이 일어났었는지 들어 보겠습니다. 가장이 되다 2019년 모둠장의 날 행사 손정현 님.right 결혼하자마자 남편은 만성 골수염 수술을 받았습니다. 회복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회복 후 출근했으나 곧바로 교통사고가 크게 났습니다. 무보험차량으로 음주 운전했던 남편은 중상을 입었고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제가 감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4살, 11개월인 두 아들을 어린이집과 지인에게 맡기고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는데 수업준비와 육아 그리고 가사까지 도맡아 했습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는 남편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고 갈등과 다툼의 나날이었습니다. 남편은 폐기물재활용 개발업체에서 일했습니다. 불철주야 일하면서 월급은커녕 사비를 들여가며 일했습니다. 그러다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개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 수완이 없는 남편은 하는 사업마다 실패했습니다. 다시 시작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번에는 되겠지’ 하는 기대로 한 푼 두 푼 모아 밀어주었지만 빈털터리가 되곤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부부의 갈등은 이혼 직전까지 갔습니다. 기도라도 해 보자 아내와 엄마, 그리고 직장인으로 살면서 경제까지 책임져야 하는 무게감은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과 갈등은 이겨내기 힘든 괴로움이었습니다. 그 때 문득 기도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 시절 영남불교학생회 여름수련회에서 만난 법륜스님과 인연으로 순천에 가정법회가 있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가정법회에서 천일결사 기도 책을 구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이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절에 가서 혼자 시작한 기도는 다음 날부터 집에서 꾸준히 이어 갔습니다. 기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음이 열리고 환희심이 일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경험이 힘이 되어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천일결사 기도는 그해 바로 불교대학 입학으로 이어지면서 가정법회와 강연봉사 지역책임 소임을 맡았습니다. 2014년 가을 불교대학 입학식 도반을 이해하는 유연함 순천 법당 불사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참여하는 사람들조차 비협조적이라는 생각에 분별심이 났습니다. 어느 정도 법당이 모양새를 갖추어 가면서 도반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서로 의논하면서 준비했습니다. 개원식을 기다리는 마음은 신나고 마냥 좋았습니다. 법당을 개원하고 보니, 봉사자는 부족했고 할 만한 사람들도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홍보와 출가 열반 재일 정진을 저 혼자 했습니다. 여건이 되지 않아 봉사를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위한 정진에 소극적인 도반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알았습니다. 총무로 눈 앞의 일이 무거웠던 저는 도반의 마음을 헤아리는 유연함이 부족했습니다. 일이 수행임을 경험하며 도반을 이해하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마음을 내니 도반들과 관계도 편해졌습니다. 특히 서로 경험하고 알아차린 것을 진솔하게 꺼내어 나누기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2019년 부처님 오신 날 총무 6년을 회향하며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맘껏 했으니 여한이 없다. 법당을 채운 도반들을 보며 뿌듯했고 잘했다는 자만심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볍게 소임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수행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통일 특별위원 소임을 맡고 나서도 마음은 법당과 정토회에 머물러있었습니다. 한직으로 밀려난 것 같은 서운함이 있었고 불러주면 언제라도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법당소사와 전세계 수행자랑 수행담을 쓰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행복 시민 jts 노인복지사업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를 괴롭힐 때 ‘ 원을 가지고 활동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했구나’ 알아차렸지만 괴로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법사님의 “ 모든 것을 내 문제로 볼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그 의미가 새겨지며 제가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그 말씀이 나침반이 되어 내 문제로 돌이 킬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방황하고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긴 시간이 지나 마음을 들여다보니,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변하고 있었고 정해진 운명은 없다는 부처님 가르침이 진리임을 경험했습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 같았던 통일 특별위원 활동도 어느새 내 몸에 딱 맞는 옷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게 온 인연은 올 만하니 왔음을 알았습니다. 또한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지지해준 남편은 원래부터 내 편이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수많은 인연에 감사하며 겸손한 수행자로 회향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손정현 님은 제 경전대학 담당이었습니다. 주간반이라 수업 전에 법당을 가면 언제나 사시 예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어떤 힘이 저리도 간절하게 이끄는 것일까 생각하며 나도 저처럼 간절해질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스스로 입재를 했다는 말에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6년 총무라면 6년 고행하신 부처님과 햇수는 같은데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물었더니 ‘내가 일으킨 먼지가 날아가 상대방에게 혹 가시가 되지 않았는지 마음이 살펴집니다.’ 하고 말하는데 가시라니요? 꽃 중에 꽃입니다. 하며 서로 웃었습니다. 무엇을 해도 편안하고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삶, 나는 길가에 핀 한 포기 풀과 같다는 명심문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글최서연 희망리포터 편집임명자

동광주지회 2023.02.03. 1,890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아사달이 석가탑을 짓듯이_온라인 청년 역사학교 2

오래된 새길을 가는 청년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두 달여 간의 여정 끝에 막을 내린 2022년 정토회 청년 특별 지부 온라인 역사 학교. 그 뒷면에는 묵묵히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 역사팀이 있습니다. 청년 특별 지부 역사담당 정해준 님의 이야기 들어봅니다. 24기 백일출가, 정해준 님 아사달이 석가탑을 짓듯이 역사팀은 세 명의 봉사자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저는 전 시간으로 역사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을 맡았습니다. 현재 서울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저는 버스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광고를 보고 정토회와 인연 맺었습니다. KBS 홀에서 스님의 법문을 직접 들으며 당시 괴롭던 마음이 해소된 경험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스님의 유튜브 즉문즉설 영상을 더 찾아서 보고 정토회 활동가로 참여했습니다. 이후, 더 깊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에 군대 가기 전 백일출가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전역 이후, 저는 배우고 싶은 마음에 평화재단에서 꾸려지던 청년팀으로 합류했습니다. 당시 평화재단에서는 청년 주력 사업으로 법륜스님과 유명 인사들이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청춘콘서트와 청년역사학교, 그리고 역사 기행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그 중에 역사 관련 소임을 맡았습니다. 2017년 가을부터 시작한 저의 역사 소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청년 역사학교 봉사자 만남의 날, 맨 뒤 왼쪽 첫 번째 정해준 님 저에게 역사 학교는 매우 보람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고되고 힘든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사달이 불국사의 석가탑을 지을 때 3년 동안 부인도 만나지 못하면서 지었다고 들었는데, 저도 그런 지향점을 가지고 했습니다. 역사 학교 영상에 자막도 넣고, 나누기 주제와 방향성에 대해서 토론도 하느라 바쁜 가운데 공동체 구성원들과 단체 울력도 자주 생겼습니다. 하지만 역사 학교 관련 업무에만 매몰되는 것보다 그렇게 여러 일에 적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더 힘이 났습니다. 덕분에 더 넓게 보는 시야가 길러져 역사학교 업무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수 인원으로 역사팀을 꾸려 가고 역사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2022년 역사 학교를 준비하며 3주 정도 되었을 때 ‘앞으로 6주를 더 어떻게 하지?’ 하는 막막함이 들기도 했습니다. 생생한 역사 속에 나 지금의 저는 광활했던 우리 역사를 아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또 역사 공부를 함으로써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도 처음부터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역사를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방황해도 괜찮아, 정해준 님.right 학창 시절 저는 국가대표선수가 꿈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역사, 사회, 정치에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정토회를 만나고 경주 역사 기행에 참여했는데, 법륜스님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역사 공부에 흥미가 붙었습니다. 도반들의 애정으로 성장하는 공동체 생활 제가 처음 공동체 생활은 2015년 백일출가였습니다. 그 이후 군대 문제로 절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았으니 문경에서 지내다 가라는 행자 반장님의 권유가 있었지만 이를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왔다가 군대를 갔습니다. 전역 후 다시 문경의 문을 두드렸으나 절을 의지처로 삼는 것을 꿰뚫어 보신 법사님은 절 밖에서 독립해 살아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절 밖의 삶에 적응하며 ‘아 이렇게 밖에서 지내도 괜찮겠구나’ 하던 시점에 유수스님에게 ‘절에 들어와서 한번 살아볼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약간의 저항감이 있었지만 애초에 절에 들어와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서울 서초 정토회관에서 생활하며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절에 들어가 살려 할 때는 의지하려는 마음이, 밖에 나가 살 때는 그곳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공동체 재입재 한 후, 서울 상근자 수련 중, 오른쪽 맨 끝 공동체에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저는 추운데 다른 사람은 문을 열어둔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로 부딪히게 되는데 그럴 땐 가볍게 이야기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말을 꺼내려고 하다가도 가슴이 탁 막혀서 말이 잘 안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 가볍게 이야기해야 가슴도 답답하지 않고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가볍게 이야기를 못하는 건 그걸 꼭 해야한다고 붙잡고 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가볍게 이야기 하는 게 수행과제라서 일상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합니다. 제가 가벼워지니 상대방의 이야기도 잘 들렸습니다. 도반이 준 선물 서울회관은 도심 속에 있어서 언제든지 중독적인 음식이 유혹합니다. 공동체 계율 중에 비닐에 든 빵을 먹는 것은 환경오염을 시키는 것이고, 계속 맛있는걸 사먹어도 맛에 탐닉하는 것이라 보통은 혼자서 참회하곤 합니다. 한번은 도반이 선물이라고 알려준 것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발우공양 시간에 숟가락 소리가 나게 밥을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당황스러웠지만 이후 다시 살펴보니 진짜 그랬습니다. 그 이후로 내가 모르는 나를 알게 해준 그 도반을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람이 도반들을 애정으로 살펴주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또 생활속에서 법사님들이 알려주는 부분, 도반들과 맞추어 가는 노력들을 통해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청년 역사 학교 역사팀 평가회의 수행 정진하여 어느 정도 개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역사를 공부하게 되니 사회문제에도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는데 사실 국민들의 대다수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재 우리의 시대 과제가 평화와 통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청년들이 역사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면 일제강점기 때와는 달리 현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 깨어있게 되고 자부심도 생길 거라 믿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데도 보탬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기도문대로 다 되진 않지만 안되니까 꾸준히 할 뿐, 세세생생 수행 정진하며 살고 싶습니다. 글청년특별지부 기획 서포터즈 이하윤, 한상훈 편집권영숙

통일 2022.11.04. 6,216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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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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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