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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이라는 바다
변정수 님은 불교대학 수업을 들으며, 그동안 쌓여 있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녹아내리고, 그 자리에 고마움이 싹트는 경험을 했습니다. 온라인 정토회로 전환되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반복해 들을 수 있게 되자 법문 듣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경전대학 수업도 들었습니다. 전법 회원 교육을 받으면서는 정진을 통해 이전보다 인간 관계가 많이 단단해졌습니다. 그 덕분인지 작년 가을, 어머니는 깨달음의 장에 참여하고, 변정수님은 바라지장에 가서 어머니를 응원했습니다. 글 말미에 수록된,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어렴풋이나마 그때의 감동을 전해주는 듯합니다. 사랑받으려 애쓰며 살았던 시간 변정수 님.right 정토회를 알기 전에 저는 겉으로는 늘 밝게 웃으며 지냈으나 마음이 여렸고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부모님과의 관계였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었고, 술에 취한 아빠로 인해 집에 경찰이 온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9살 무렵 엄마가 가출하였고, 그 일이 큰 상처로 남았습니다. 당시 엄마는 저에게 전부였기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저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현실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친할머니 손에 맡겨진 후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내는 동안 저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후 엄마가 돌아왔을 때, 저는 엄마 말을 무조건 따르는 ‘착한 딸’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아빠와의 갈등으로 힘들다 보니 제게 하소연이나 화풀이로 폭언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몇 시간이고 가만히 듣고 있다가, 방에 들어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곤 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집은 감옥이었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을 억누르며 살았으므로 속에 쌓인 것이 많았습니다. 엄마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표현에는 서툴렀습니다. 제가 밖에서 당한 일을 울면서 털어놓으면 왜 우냐며 혼을 냈습니다. 지금은 엄마의 속상했던 마음을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엄마조차도 날 받아주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았습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무던히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런 제게 이별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학년이 바뀌거나 친했던 친구가 전학 가면 눈물이 났습니다. 사람에게 정을 주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언제든 내 곁을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고, 그래서 먼저 도망칠 준비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이별이 찾아오면 ‘역시 그렇지’하고 실망했고, 친구든 동료든 애인이든 관계가 깊어질수록 두려움도 커졌습니다. 원망이 녹아내려 고마움이 되는 연금술 정토불교대학을 다닌 것은 2014년입니다. 원래 법륜 스님을 알고 있던 엄마가 불교대학 입학 신청을 부탁해서 알아보던 차에 청년반이 있길래 저도 등록하였습니다. 그전 해에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는데, 그때 제가 부모에게 독립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이 저를 청년 정토불교대학으로 이끌었습니다. 즉문즉설을 듣기 전에는 부모 말을 거스르는 것이 하늘이 무너질 만큼의 큰 두려움이었는데, 법문을 들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았고 마음속에 눌려 있던 무언가가 화산처럼 터지면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런 어른이 있구나, 이런 가르침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녹아내렸습니다.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늘 부모님을 원망했는데, 돌아보니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엄마는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도망쳤다가도 우리 남매를 위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며 엄마의 숨겨진 아픔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아내에게는 좋은 남편이 못 되었으나 자식에게는 나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던 아빠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내 상처가 제일 크고 피해만 본 것 같아 ‘우리 집은 왜 이럴까?’하며 부모와 환경을 탓했으나 사실은 충분하게 사랑받고 자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깨달음의 장 10주년 모임에서 불교대학 졸업 후 1년간 성북법당에서 청년불교대학 반 담당을 맡았다가 바빠진 직장 생활로 모든 소임을 내려놓았습니다. 다시 정토회를 찾은 것은, 온라인으로 전환해서 경전대학 과정이 6개월로 줄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습니다. 오프라인 시절에는 퇴근 후 법당에 가서 법문을 듣다 졸기 일쑤였지만, 온라인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어서 법문 듣는 재미에 흠뻑 빠졌습니다. 집중해서 듣고 수행 연습도 성실히 하다 보니 법문의 이치가 내 안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경전대학에 다니면서 정진도 다시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마음이 해이해져 정진이 느슨해질까 두려워 전법회원 교육도 받았습니다. 전법회원 교육을 받는 동안 4년간 사귄 애인과 헤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과 한순간 헤어진 허망함, 그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심리 상담까지 받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새벽 정진에서 헤어진 사실이 믿기지 않고 배신감에 화가 나서 눈물을 흘리며 겨우 몸만 숙였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나가니 마음 또한 숙이게 되었습니다. 출퇴근 때도, 잘 때도 매일 스님 법문을 들으며 지냈습니다. ‘그동안 나와 함께해줘서 고마웠다. 내가 배신당한 게 아니라 그냥 관계가 변했을 뿐이구나’하고 돌아보게 됐습니다. 4년간 애착이 깊어져 집착한 것도 알아차렸습니다. 결국, 분노의 눈물이 아닌 감사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베푼 사랑과 배려로 이만큼 성장했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단지 이 만남이 끝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죽을 듯이 힘들었던 아픔도 결국에는 사라지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정진이 나를 살리는 것을 겪고 나니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며 개운해졌습니다. 정진을 통해 아픔을 이겨내며 전법 교육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후 활동을 꾸준히 해서 현재는 불교대학 반 담당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 울력 중에 도반들의 모습에서 발견하는 내 모습 처음 소임을 맡았을 때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반 학사회의 시간에 힘들거나 부정적인 표현을 하는 진행자와 돕는이들을 대할 때 눈치를 보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힘들다’, ‘피곤하다’ 같은 부정적인 감정 표현이 꼭 저를 향한 비난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상대 탓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 상황 자체를 외면하고 싶어졌습니다. 정토회 활동에서 늘 즐거운 일만 경험했었는데, 같은 활동가로부터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어느 날 지부 학사회의에 들어갔는데, 제 나누기가 반 학사회의에서 진행자님들이 하는 나누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표현한다고 ‘피곤하다’, ‘들어오기 싫었다’ 등의 말을 서슴없이 하면서도, 같은 표현을 하는 다른 활동가들을 어렵고 불편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 표현이 나를 향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진행자와 돕는이들의 그런 표현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의 나누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제 마음도 가벼워졌고,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참석자들의 상태를 살피며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청년 붓다 100일 기간 중 산책 요즘 저는 청년 직장인을 위한 출가 프로그램인 ‘청년 붓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직장으로 출퇴근하면서 출가 생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방 거주자는 주말 출가자로도 참여가 가능합니다. 다른 도반들과 함께 생활하고 수련하며 그들을 통해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떤 모습은 밉다가도 또, 이해가 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느꼈던 그 모습을 저에게서 발견하기도 합니다. 여러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저는 청년 붓다 생활을 하며 많이 바뀌었습니다. 도반들을 통해 제 품이 더 넓어졌고 이제야 비로소 ‘도반이 수행의 전부다’라는 말을 체감합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수행이란 바다에 나를 흠뻑 던지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꼭 권유하고 싶습니다. 단풍처럼 따뜻하게 물든 모녀의 마음 작년 추석 연휴에 엄마와 단둘이 차를 타고 시골 삼촌 댁에 갔습니다. 늘 차에 타면 즉문즉설을 듣는 엄마가 ‘깨달음의 장’에 관한 내용이 나오자, 거기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하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어린 나에게 상처가 될 때도 있었지만, 그런 부모에게 감사할 점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고, 엄마에게 처음으로 마음에 있던 말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엄마는 본인이 한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시골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저에게 눈물로 사과했습니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자식들에게 그런 상처를 주는지도 몰랐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그리고 몇 년 동안 불교대학과 ‘깨달음의 장’을 권유해도 가지 않던 엄마가 하루 만에 마음을 바꾸어 ‘깨달음의 장’에 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깨달음의 장’으로, 저는 ‘바라지장’으로 가을 문경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아직도 엄마가 수련장으로 향하는 뒷모습이 사진처럼 선명합니다. 색색깔로 물든 낙엽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뭉클했던 마음… 문경새재에서 ‘바라지장’에서 공양을 준비하며 예쁜 낙엽과 꽃을 골라 음식 위에 정갈하게 놓으면서 엄마를 응원했습니다. 제가 수련하며 경험한 것처럼 엄마도 삶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나온 엄마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따뜻함과 여유,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각자의 수련을 마친 우리는 하루 더 문경 여행을 하며 진한 여운을 느꼈습니다. 이 시간은 제 인생 전체에서 손에 꼽을 만큼 강렬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족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렇지만 도반들과 함께 지내고 소임을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제가 가진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참 많이 바뀌었고, 잘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한 것처럼 꾸준히 활동하며 저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언제까지나 정토회에서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을 제 삶의 방향으로 정해 봅니다. 이 글은 2026년 2월 호에 수록된 청년수행톡톡입니다. 글변정수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통일의 씨앗을 심고 가꾸는 사람들_장수 죽림정사 평화 정진의 날
전북 장수 죽림정사에서는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며 통일을 위한 특별 정진이 있었습니다. 정토회는 이날 임진각과 죽림정사, 미륵사, 아도모례원, 사천왕사지, 봉림사지 등 여섯 곳에서 동시에 평화통일 기도를 진행했습니다. 죽림정사에는 대전, 충청지부를 중심으로 회원 75명이 모여 통일 발원문을 봉독하고 천배 정진을 이어갔습니다. 이날 최고기온은 29도, 체감온도는 31도였습니다. 죽림정사 입구 호국 정신은 산문에서부터 죽림정사의 호국 정신은 절 입구에서부터 드러납니다. 산문에는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가운데는 장안산 죽림정사, 왼쪽 범종 법고루는 범종, 목어, 법고, 운판 등 불교의 사물을 모신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쪽 충의원통문은 용성 스님의 호국·호법 정신을 상징하는 현판으로, 산문 가운데 첫 번째 문입니다. 죽림정사 산문, 3개의 현판 경내로 들어서면 석조 연당이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통일된 대한민국의 모양입니다. 연못을 건너는 피안교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 즉 피안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하는 다리입니다. 그 아래 교각 아치에는 정통 삼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광복을, 오늘날에는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호국 도량의 뜻을 담은 것입니다. 죽림정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백용성 조사의 생가터가 있는 곳이자, 광복을 발원하는 대전, 충청지부의 실천 활동 장소입니다. 연당 위에 피안교 멀고 먼 길이지만, 오고픈 마음 행사 시작 한 시간 전, 오전 7시가 되었습니다. 경내에는 하루 먼저 도착한 봉사자들이 아침 공양을 마치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날 제천에서 여섯 시간 운전해서 온 청주지회 황보미 님이 보였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왜 이렇게 일찍 하루 전날 죽림정사에 오셨어요?” “제천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새벽 4시에 길을 나서야 해요. 5시까지 청주로 가서 지회에서 준비한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또 두 시간 넘게 와야 하거든요. 너무 긴 시간이라 그렇게까지 해서 여기에 올 자신은 없어서 하루 전날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인데도 발심한 이유는요?” “절에서 느끼는 고즈넉함이 좋고 새벽 예불도 좋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아침 예불을 듣는데, 오늘따라 광복을 못 보고 가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뭉클하더라고요. 그분들이 맺힌 게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풀어드려야겠다 싶습니다.” 이미 세월 저 너머에 가 닿은 듯 말하는 도중 울먹거립니다. 용성 교육관에서 준비하는 아침 풍경 가지런히 줄 맞춰 방석을 놓은 교육관에서는 오늘 행사 총연습 중입니다. 입구에서는 첫 번째 봉사자가 출석을 확인하고, 맨 앞자리에서는 대전, 충청지부 집전 봉사자 다섯 명이 순서와 교대 요령을 점검했습니다. 이들은 30분씩 돌아가며 2시간 30분 동안 천배 정진을 집전할 예정입니다. 천안지회 정선영 님이 집전을 맡게 된 계기를 전합니다. 법사님이 문경 목탁 교육을 권했는데, 저는 장거리 운전을 못 하고 홍성에서 너무 멀어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더 권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그 일이 처음엔 책임 봉사자 회향 수련 때 같은 지회였던 김종호 님에게 넘어갔는데, 자신은 맡고 있는 소임과 겹쳐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그러면 ‘내가 목탁 교육을 받아야겠다’라는 마음을 냈습니다. 오늘의 목탁 집전은 다섯 명이 돌아가며 150분을 꽉 채울 것이라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절하는 도반들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교육관에서 집전 담당 봉사자들 오늘의 행사 진행 사회자, 김정성 님 같은 곳 그 옆에서는 사회자가 행사 전체 총연습을 진행하고, 음향 담당자가 마이크를 조정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회를 맡은 천안지회 김정성 님도 역시 전날 저녁에 도착했습니다. 그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아침 봉사도 있지만, 미리 와서 차분한 마음으로 순서를 숙지하고 사회 진행문을 제 언어와 속도에 맞게 조금 수정할 게 있어서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그대로 읽으면 건조해지고 실수가 나오는데, 그러면 더 떨리거든요. 제가 흐름을 가져야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내면의 평화 오전 8시가 지나자, 대웅전에서 삼배를 마친 회원들이 삼삼오오 교육관으로 모였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으로 정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죽림정사 원장 법정 법사님이 여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이 되었으면 하고 모두가 바라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같이 우리가 기도하며 그 힘을 보태어가는 것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안에 평화는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작게는 남편이나 아이, 주변 지인들과 갈등을 겪는 일도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렇게 마음의 평화까지 함께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밖에서 바라본 교육관 천 배가 될 때까지 일어나고 또 일어납니다. 이어 통일 발원문을 함께 읽고 천배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져 겪어야 했던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기를, 미워했던 마음을 녹여 동포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발원하며 한 배 한 배 절을 이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반들의 등과 얼굴은 땀에 젖었습니다. 법정 법사님께 해마다 통일 기도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기도한다고 우리나라의 통일이 되는 건 아니죠. 하지만 평화통일이 되는 일에 마음을 보태는 건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자신을 위해서도 뭔가를 하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사회가 평화로워지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남북의 평화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도 함께 발원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열무 냉면을 만들고, 법의 법사님 공양간 일은 또 하나의 정진 교육관에서 절이 이어지는 동안 공양간에서는 함께 정진하던 법사님들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지난해와 같은 모습에 그분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오늘 점심 메뉴가 뭔가요?” “오늘 점심은 열무 냉면입니다. 대전지회 공주 모둠 이은숙 님이 열무김치를 보시하셨어요. 거기에 다른 육수를 넣어서 열무 냉육수를 만들 겁니다. 이은숙 님의 공덕이죠.” “정진하다 멈추고 나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요?” “천 배하고 나오면 다들 배가 고프잖아요. 그 얼굴들 생각하면 힘든 줄 모릅니다. 이것도 정진의 한 부분이지요.” 냉장고 한 칸에는 정진을 마친 회원들이 나눠 먹을 수박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공양을 준비하던 그 시각, 백용성 조사 기념관에서도 봉사자들이 다른 행사를 위해 법당을 새 단장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용성 조사의 정신을 잇는 또 하나의 손길이었습니다. 천배의 기도 정진 소감, 웅성웅성, “수고 많으셨습니다.” 천 배에 도달하기까지, 소감 나누기 어느덧 사홍 서원을 끝으로 천배 정진이 끝났습니다. 각각의 소감 나누기가 이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요즘 백중 기간이기도 해서 어머니와 함께 왔습니다. 정진하면서 ‘마음의 평화가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천 배를 하려면 너무 힘든데, 도반이 있어서 할 수 있었습니다.” “칠백 배까지는 엄청 힘들었는데, 그 뒤로는 마음이 탁 놓이면서 그냥 절이 되더라고요.”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여기에 왔는데, ‘소임이 복이다’라고 되새기다 보니 절을 할수록 오히려 평온해졌습니다.” 천안 지회장 박은숙 님은 정진의 의미를 ‘상구보리 하화중생’으로 정리했습니다. “법륜 스님과 법사님이 늘 개인의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것처럼 절을 하면서 개인이 평화를 얻으면 그 평화가 통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통일은 옳고 그름의 문제도, 하고 말고의 문제도 아닙니다. 상생과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필요합니다.” 평화를 위한 천 번의 날갯짓처럼, 오늘은 우리가 해냈어요. 기도하는 어떤 한 사람을 기다리며 81년 전, 그 시대 우리 민족의 해방은 어쩌면 이루지 못할 꿈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기도했고, 누군가는 또 독립운동했습니다. 35년의 식민 통치 끝에 맞은 광복은 그 씨앗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든 결과였습니다. 그처럼 통일의 씨앗은 이미 우리 마음에 심겨 있습니다. 남은 건 거름입니다. 그것은 매년 이어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일 것입니다. 하루 전날 여섯 시간을 운전해 온 봉사자, 30분씩 목탁을 나눠 잡은 다섯 명의 집전 봉사자, 열무김치를 가져온 사람, 그리고 체감온도 31도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죽림정사 용성 교육관을 채운 75명, 이날 올린 절이 모두 7만 5천 배였습니다. 이것이 올해의 거름입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방석, 백용성 조사 기념관 내부 내년 8월 15일에도 죽림정사에는 오늘에 버금가는 방석이 깔릴 것입니다. 올해 깔린 75장의 방석이 내년엔 몇 장이 될지 아직 모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방석 한 장이 늘어날 때마다 평화통일의 씨앗은 천 배의 정성만큼 쑥쑥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 장의 빈 방석은 늘, 언제나 어떤 이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과 사진김종호 편집황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