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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보리수
에서 읽은 글을 주변인에게 전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만 알기에는 글의 여운이 너무 짙게 남아 그 감동을 누군가와 꼭 나누고 싶을 때 주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이동우 님의 보리수 소감문도 그런 글 중의 하나였습니다. 매우 엄격하고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것이 힘들었지만, 그것이 결국 인생의 밑바탕이 되어 회사 생활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부분은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깨닫는 바가 많았습니다. 또한 1명이 할 일을 10명이 나누어서 하는 보리수 봉사에 대해 처음에는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분별심이 일었지만, 사람을 기다리며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을 할수록 새로운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는 부분이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고 감화되어 앞으로 더 많은 분이 보리수 봉사에 참여하게 되실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나 저는 2018년에 아내가 등 떠밀어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친구들에게 “주위에 힘들게 하는 사람 있으면 정토회로 보내라”고 말하는데, 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많이 힘들었나봅니다. 아마도 제가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닮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집에서도 군 생활이 배어 있었고 자식들에게 규율이나 예절을 매우 엄격하게 가르쳤습니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우리 4남매를 엎드려뻗쳐 시키고 체벌하셨는데, 그때도 아버지께 대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나 아파 죽겠어요” 누나가 소리 지르고 도망가거나, 어머니가 매를 든 아버지 손을 잡고 말리면 더 세게 맞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저는 ‘차라리 가만히들 있지’ 생각하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곤 했습니다. 이동우 님 그런 아버지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을 예편하고 자영업을 시작하셨는데, 그때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졌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에 신문을 두고 가는 형을 쫓아가서 “나도 신문 배달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신문을 배달하다가 나중에는 신문을 떼어와 팔았습니다. 다방에 들어가서 신문을 팔던 중 구두 닦는 형들이 “나하고 같이 해볼래?” 제안해서, 구두를 모아 구두닦이에게 가져다주는 어린 찍새 일도 했습니다. 또 갑자기 내린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있는데 어른들이 “꼬마야, 저 가게 가서 우산 좀 사 와라”고 하여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떼어와 팔았습니다. 가난했지만 성실하셨던 부모님을 보면서 우리도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밥을 하루에 두 끼만 먹을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부모님은 우리 4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게 업이 되어서인지 꼭 아버지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지나친 부분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고지식할 정도로 지적을 많이 하셨는데, 상대가 싫어서가 아니라 안타까워서 알려주려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 하시니 좋아하며 따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걸 항상 봐왔기에 아버지처럼은 하지 않으려 했으나 똑같이 제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언젠가 회사 교육에서 혈액형 A 유형 사람들의 고민을 들었는데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섬세함이 배려라고 생각해서 꼼꼼하게 설명해 주려하는데 상대방은 부담스럽고 지나치다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젊어서 아내와 부부싸움 할 때도 나쁜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그걸 오해해서 화낼 때는 저의 진심을 몰라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제는 수행하니까 ‘저 사람한테는 내가 그렇게 보이는구나’ 합니다. 상대가 느끼는 저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제 속마음까지 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욕심임을 알았습니다. 보리수 백일 정진 회향일에 유수스님과 함께 사회생활과 보리수 백일 정진의 차이 저는 전자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회사에서는 구매 업무만 35년을 했습니다.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익을 내야 하지만 가격 인상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원가를 줄여야 하는 중요한 과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원가 절감의 중심이 되는 부서가 구매팀입니다. 구매팀은 원가 개념과 데이터를 이해하는 효율성, 정직함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로서 다양한 협력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알게 된 정보들에 대해 보안 규정도 지켜야 합니다. 더불어 자신이 담당하는 제품은 그 설계도와 상세 요건을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는 지식도 가지고 있어야 협상을 할 수 있습니다. 구매팀은 접대를 받는 갑의 위치이기에 뇌물 받는 사고가 종종 있어 보통은 3년 만에 보직을 이동하는데, 저는 이 분야에서 35년을 일해 온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물론 힘들었던 순간도 있습니다. 구매 업체 선정에서 제외된 협력사들이 저에게 불만을 품고 음해하여 회사를 옮긴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파란만장한 사회생활과 보리수 봉사는 큰 차이가 납니다. 사회생활 할 때는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비즈니스라 허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보리수는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줄 수 있어 편안합니다. 다만 회사 생활하면서 평생 일의 효율성 높이는 방법을 고민했기에, 보리수 업무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10명이 할 일을 1명이 하는데 보리수에서는 1명이 할 일을 10명이 하고, 10명이 할 일을 100명이 합니다. 제 경험을 들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저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제안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물론 그럴 때 분별심이 일어나지만, 보리수는 일이 우선이 아니라 수행이 우선이기에 받아들입니다. 사회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우리 수행자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토회는 제일 앞서가는 사람에게 맞추는 것도 아니고, 중간의 사람에게 맞추는 것도 아니고, 제일 뒤처지는 사람에게 맞춘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쉽게 할 수 있지만 “해보실래요?” 하고 봉사자인 노보살님께 공구를 쥐여드리면 그분들도 뿌듯해합니다. 그렇게 직접 일해보면 일머리가 생기게 되고 봉사자들이 뿌듯해하는 걸 보는 것이 제가 보리수에서 느끼는 새로운 재미이자 보람입니다. 보리수 씨앗 5기 교육 중 수행자의 관점으로 사회생활을 했더라면 저는 정토회를 알기 전에도 모태 불자인 아내를 따라 산중의 절에 가곤 했지만, 기본적인 에티켓도 모르는 터라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 작은 죄를 지으면 그만큼의 업이 쌓이고, 큰 죄를 지으면 그만큼 큰 선업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 다가왔습니다. 교회든 절이든 구복 기도를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는데 정토회는 복을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게 저와 코드가 맞았습니다. 생활에 맞닿은 불교 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 일주일에 한 번은 회사 퇴근 후 서초법당에 가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진행자로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는 회사 직원들이 저에게 “정말로 많이 달라지셨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이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늘어난 일정에 진행자를 그만두었고 정토회를 찾는 일도 뜸해지면서 예전처럼 화를 자주 내는 저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작년 3월에 퇴직하고 다시 정토회를 찾았고 지회에서 만난 거사님들의 추천으로 보리수 백일 정진에 입재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정토회를 일찍 만나 수행자의 관점으로 회사 생활을 했다면 더 승진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임원까지는 업무 능력으로 승진하지만, 그 이상은 호감도가 중요해서 덕망으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늘 효율과 성과를 중심으로 직원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보리수에서 사람을 기다리며 함께 만들어가는 경험을 하면서 제가 직원들을 매우 힘들게 했음을 반성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도 잘 굴러가는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직원들을 끌고 가려 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전기 포설 작업 중 나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2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아버지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직원들도 저랑 이야기하면 “다 맞습니다. 맞는 말씀인데 너무 힘듭니다라고 할 때가 있었는데, 아버지도 꼭 그랬습니다. 틀린 말씀 하나 안 하시는데 저는 힘들었습니다. 그랬던 아버지가 늙어 손주들에게 세배받으며 “느그는 자식들을 나보다 잘 키워서 좋겠다”라고 하셨을 때 인정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돌아보면 아버지의 엄격한 기준을 맞추며 살아온 부분이 회사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모든 직원이 힘들어하는 상사를 만났을 때도 저는 그분을 잘 맞추며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지나치다고 생각했던 부분들까지 이젠 다 제 삶의 거름이자 추억이고 지금은 최선을 다해 살아오신 부모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고생한 티가 나지 않는다며 어릴 때 부유한 가정에서 편하게 살아온 것 같다는 얘기를 들으면 가장 흐뭇합니다. 가난이란 상황을 힘들어했다면 얼굴에 다 드러났을 텐데, 솔선수범하며 긍정적으로 살아온 저 자신이 대견합니다. 보리수 백일 정진에서 유수스님께 ‘나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아왔습니다’라는 기도문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저는 제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에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연등 철거 중 이 글은 2024년 3월호에 수록된 이동우 님의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이동우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나를 위한 쉼의 시간 _광명지회 반나절 템플스테이
사무처 기획홍보팀에서 정성껏 준비한 불교대학 홍보 프로그램 팝업스토어〈반나절 템플스테이〉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따끈따끈한 템플스테이를 진행한 광명지회의 3인 3색 이야기,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반나절 템플스테이 진행 만능 재주꾼, 이정옥 님 이야기 〈반나절 템플스테이〉가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처음으로 진행될 당시 진행자 요청을 받았습니다. 일반인들 대상으로 진행을 한 후 반응이 좋아서 광명지회에서도 해보자고 함께 의견을 모았습니다. 제 본업은 유치원 원장입니다. 학부모나 선생님들을 상대로 마음공부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진행해 본 경험이 있어서, 내용은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이라 진행하기 수월했습니다. 유치원이라는 장소 제공도 가능했고, 구비된 학용품도 많아서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기에 좋은 입장이었습니다. 이정옥 님의 재능과 정성이 담긴 안내문 지회 첫 체험이 있던 금요일은 유치원에 늦게까지 아이들이 있어서 봉사자가 일찍부터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혼자서 시간 내에 첫 번째 진행을 준비하려니 마음이 바빴습니다. 최대한 필요한 것만 갖춰서 간단하게 진행하자고 했지만, ‘이것도, 저것도, 조금만 더 신경 쓰면 좋은데’라는 생각에 하나하나 챙기다 보니 일이 늘었습니다. 유치원 일이 아니라 선생님들에게 부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혼자 조급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토요일에는 유치원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졌습니다. 별일 없었으면 바로 병원에 갔을 텐데,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멀쩡하게 프로그램에 임하는 제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다른 봉사자들도 그렇겠지만, 소임을 맡았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의 무게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골반이 좀 안좋기도 해서 지금은 침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만하여 참 다행입니다. 개별 맞춤으로 준비된 체험 키트 봉사자가 모이고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신기하게도 합이 잘 맞았습니다. 익숙한 분도 있고 처음 만난 분도 있었지만 이내 눈빛만 교환해도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센스 있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봤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한 팀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늘 깨어있는 수행자들이구나, 역시 정토회 분들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 후 활동가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 번째 이정옥 님 참석자 중에는 서울, 인천, 화성, 수원 등 의외로 멀리서 오신 분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생각과 마음을 분리하는 활동을 하던 중에 어떤 분이 ‘동상이몽’에 빗대어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꾸준히 생각을 바꾸다 보면 마음도 달라지지 않을까요?라고 답변하였는데, 진행자가 순간순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와 수용도가 많이 달라지겠다 싶었습니다. 어떤 분은 너무 환영해 주고 대접받는 느낌이라 행복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명상 프로그램을 기대하고 2시간이 걸려 왔는데 늦게 도착하여 아쉬움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좋은 시간이 되었고, 일반인들이 한 시간 반 사이에 잠깐이라도 마음 변화를 체험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계속하다 보면 더 잘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준비하며 힘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체험하며 참 뿌듯한 시간이었고, 잘 쓰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바쁜 중에도 여법하게, 김혜윤 님 이야기 하트 접기 연습 중인 김혜윤 님과 박희준 님 저는 인경지부 홍보담당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많은 지부에서 〈반나절 템플스테이〉 진행에 적극적인데, 우리 지부에서는 1개 지회만 관심을 보여, 제가 홍보를 제대로 못 하고 독려도 안 해서 관심이 없나 자책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광명지회에서 〈반나절 템플스테이〉를 할 때는 사회와 진행 역할을 맡았습니다. 준비하면서 다른 봉사와 겹쳐 행사를 지원하는데 미흡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진행하면서는 일반 대중의 반응에 놀랐고 감동하였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익숙한 내용들이었기에 대중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짧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에 반응하는 분들의 모습 속에서 저를 보았습니다. 법을 만나고 ‘아 이런 말씀이구나, 이런 원리구나’하고 무릎을 쳤던 그때의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진행 중인 김혜윤 님과 보조하고 있는 박희준 님 진행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일반인이 대상이고, 이 짧은 프로그램을 통해 뭔가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복잡한 생각에 따른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이 되고 있을까?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느리게 말하고 있을까? 상대방이 이해하고 있을까? 어느 타이밍에 자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까? 너무 한 사람만 응시하고 있을까?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계속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프로그램이 끝난 후 불대접수 안내해 주세요라는 한마디에,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너무 기뻤습니다.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는 물품들을 보면서 도반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내가 지원해야 하는데, 내가 저런 거 아이디어 낼 수 있는데’ 이런 일 욕심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 나 아니어도 잘 돌아가는구나하면서요.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지 않고 역할을 맡아서 진행한 저를 칭찬합니다. 이렇게 역할을 한 덕분에, 추가로 결정된 부천지회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도 편안하게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잘 쓰일 수 있게 해준 많은 분들께 감사합니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마음이 담긴 종이 하트가 오아시스에 꽂혀있다 ‘프로그램이 감동입니다’ 지회장 박희준 님 이야기 〈반나절 템플스테이〉기획안을 봤을 때도 그랬고,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체험을 해보며 프로그램에 대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진행할 때부터 이정옥 님이 함께했고, 함께 체험했던 지회홍보꼭지 안명숙 님도 해보자고 마음을 모아주었습니다. 덕분에 광명지회 진행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광명지회 실천장소인 JTS안산다문화센터에서 진행할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정옥 님이 본인 사업장을 제안해 준 덕분에, 일반인들에게 접근성이 더 좋은 유치원에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지회 정토회원들 대상으로 1회를 진행했고, 유치원에서 3회를 진행했는데 모두 반응이 좋았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체험할 수 있는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이 뭐 하는 곳인지 말로 설명하고 안내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데, 그 한계를 잘 보완해 준 프로그램이구나 느꼈습니다. 안산에서 참가자가 많을 줄 알았는데, 서울 수원 화성 등 멀리서 오신 분들을 보며, 많은 분이 가까운 곳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곳곳에서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그램을 마치며 봉사자들과 함께. 제일 오른쪽 박희준 님 프로그램 참석자들 대상으로 평가 설문 결과를 보면 대부분 50대 60대고, 청년들도 몇 분 있습니다. 명상이 좋았다는 의견도 있고, 정토불교대학의 수행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관심은 있으나 지금은 별로 참여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전체 만족도는 4.5점입니다. 처음에는 템플스테이 참석 공지를 행복톡톡 밴드와 즉문즉설 밴드에만 올렸습니다. 후에 모둠에도 공지를 공유했더니, 평소 법회나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던 모둠원의 지인이 참석했습니다. 소통방과 안내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다들 보고 있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감동이었습니다. 내 눈에 닿지 않는 곳에서도 참 많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내 함께 한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광명지회에서 3회가 진행되는 동안 총 19명의 일반인이 참가하고 12명의 봉사자가 맞이하며 안내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2분이 불교대학 입학원서를 썼습니다. 조용히 돌아간 참가자 중에 누군가는 원서를 썼을 것 같고, 또 언젠가는 쓸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에 동의하며 봉사자들의 마음은 뿌듯함으로 차올랐습니다. 불교대학 입학 인원을 팍팍 늘려 줄 것 같은 희망 찬 프로그램 〈반나절 템플스테이〉 전국의 모든 활동가가 마음을 담아 진행하는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글이정원 희망리포터, 김혜윤 사진이정원 희망리포터, 박희준 편집윤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