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안양지회
부모님 유산으로 부자된 이야기

안양지회 박정화 님은 부모님에게 돈으로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럼, 퀴즈입니다. 과연 무슨 유산을 받았을까요? 다 함께 맞춰 보겠습니다.

‘내가 왜 부모님의 불행을 뒤집어써야 해?’

대입 시험을 나름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IMF 경제 위기 상황이 벌어지면서 아버지 사업은 부도가 났습니다. 집과 땅은 모두 경매로 넘어가고 부모님은 빚만 수억 원을 얻었습니다. 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지방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가난했습니다. 영어사전을 살 돈이 없어 아는 언니가 대신 사 주었고, 시험 기간에는 차비가 없어 공부하러 가는 것도 부담이 됐습니다.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어 학교 졸업은 간신히 했습니다. 과외와 학원강사를 해서 번 돈으로 부모님 장사자금을 대 주고, 2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었습니다.

‘왜 착한 우리 부모님은 괴롭게 살고 있는가?’, ‘내가 왜 부모님의 불행을 뒤집어써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꿈이 멀어졌다는 생각에 절망했습니다. 아무리 뭔가를 열심히 해도 돌아오는 보상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같은 건 죽어야 해’ 하는 반복되는 제 안의 소리에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사 모으고, 날마다 죽음을 떠올렸습니다.

절망이 바닥을 치자 조금 정신이 들었는데, 그 순간 부모님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살자’는 마음을 냈습니다. 돈 없고, 기댈 곳도 없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 생각하며, 이 악물고 할 수 있는 모든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고, 학비와 용돈을 벌면서 공부도 다시 했습니다. 그런 과정 중에 탈모 증상도 생겼는데, 결국 원하던 교육대학에 다시 입학했습니다.

2023년 스승의 날,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적은 칠판을 배경으로
▲ 2023년 스승의 날,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적은 칠판을 배경으로

아버지의 유산 ‘그럴 수 있겠다’

중고등학교 시절 돈이 없어 교육비를 납입하지 못해 행정실에 불려 간 적이 있습니다. 자식은 그런 상황인데 아버지는 술과 도박을 했고, 친구들에게 밥을 사 주고 골프를 치러 다녔습니다. 이기적인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고, 미웠습니다.

2008년, 친구의 추천으로 <깨달음의 장1>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화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버지도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중년의 방황하는 한 남자였구나. 그럴 수 있겠다. 내 아버지가 아닌 그는 그런 한 사람이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후 인연이 닿아 <일상에서 깨어있기> 프로그램에 매달 봉사자로 참여했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부모님에게 감사기도를 하라는 기도문을 주었습니다. '내가 왜?' 하는 의문 속에 기도하면서, 마음속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실체를 좀 더 확연히 알아차렸습니다. 그 순간 한 인간으로서 힘든 삶을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이 일어나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켰으니, 그것만 해도 아버지는 내 인생에 소중한 존재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아버지를 깊이 이해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 아버지와 화해했습니다.

2023년 봄, 아이들과 함께한 환경실천운동 사전답사
▲ 2023년 봄, 아이들과 함께한 환경실천운동 사전답사

어머니의 유산 ‘너 때문에 도망을 못 갔어’

제가 어린 시절, 아버지는 장사하면서 큰아버지 빚을 갚아주고 생활비도 대줬습니다. 아버지는 십이지장 궤양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술을 먹고, 도박 하고, 바람을 피우고, 사기꾼의 작전에 휘말려 사기를 여러 번 당했습니다. 어머니가 가끔 힘든 점을 얘기하시면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임신했을 때, 외할아버지는 빨치산 토벌대에 차출되어 나갔다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혼인신고도 안 하던 시절이라 외할머니는 몇 년 뒤 다른 분과 다시 결혼했습니다. 친척 집으로 보내진 어머니는 구박덩이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어린 시절 부모 없이 살았으니, 자식은 그렇게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힘들었지만 도망가지 않고 꿋꿋이 가정을 지켰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어머니는 폐결핵에 걸려 매우 아팠는데, 염불 기도를 하며 삶을 버텨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 큰 딸인 저에게 본인의 괴로운 사정을 하소연했습니다. 저는 ‘내가 태어나 어머니가 이 지옥 같은 결혼생활에서 도망가지 못했구나’ ‘내가 어머니를 불행하게 만들었구나’ ‘내 존재가 누군가의 불행이 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많이 괴롭고 슬펐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를 만나 매일 아침 기도하면서, ‘우리 엄마가 가정을 지켜줘서 내가 이렇게 인간답게, 가정을 지키며, 편하게 살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과 저의 인연이 연결되어 있음을, 그들의 공덕으로 제 삶이 온전히 서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와 더 친밀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감사기도를 꾸준히 하면서 지금은 감사한 마음만 남았고, 어머니는 제가 효도하는 딸이라며 좋아합니다.

남편은 남입니다

사귀던 남자친구는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두 번이나 하는데도 그때마다 저는 헤어지자고 말했습니다. 결혼하면 저도 과거의 부모님처럼 불행해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결혼에 대한 연상퀴즈 게임을 하면 저도 모르게 ‘무섭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법륜스님에게 질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알게 된 점은, 부모님과 저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은 해도 괜찮고, 안 해도 괜찮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일 년 후, <깨달음의 장> 돕는이 활동 중 소감문을 쓰면서 제 마음을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이전에는 제 인생이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제가 참 별거 아니고, 제 인생도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뭐라고 저 남자를 울게 했을까. 저 남자는 왠지 나랑 결혼 못 하면 평생 혼자 살 것 같다. 내가 저 남자의 엄마가 되어줘야지. 봉사한다면 평생 이 사람한테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결혼할 마음을 냈습니다.

결혼 후에 첫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회사 일이 점점 바빠지면서 매일 야근했고, 주말에도 일을 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아이 돌보느라 저도 힘들고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일하느라 바쁘고 조금의 시간이 있으면 동료들과 기억이 사라질 정도로 술을 마시고 들어왔습니다. 아이에게만큼은 내 업식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이었지만, 아이와의 관계에서 힘들 때는 우울, 불안, 내 옳다는 생각, 욕심, 부정적인 감정들을 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 화도 못 냈습니다. 아이에게 "엄마가 지금 너랑 있으면 안 될 것 같아"라고 말한 뒤, 밖으로 뛰쳐나가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아이를 업고 수행법회에 쫒아다니며 기도하고 참회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은 남입니다’라며 기도하였습니다. 며칠 기도하면서 ‘그래 내가 이혼했다고 치면 돈 버는 것까지 이 모든 걸 내가 다 해야 하는데 그래도 돈이라도 벌어주는 게 어디야. 이 남자 덕분에 아이도 낳았는데 그것만 해도 남편은 내게 해줄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그제야 힘들게 일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돈 많이 안 벌어도 괜찮으니까, 연봉을 낮춰서라도 이직하자고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이직했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았습니다.

2022년 가을, 가족들과 함께 집 앞 공원에서 줍깅하기
▲ 2022년 가을, 가족들과 함께 집 앞 공원에서 줍깅하기

또 하나의 유산 '사람을 대하는 방법'

저는 부모님으로부터 사람들에게 베푸는 법을 배웠습니다. 큰아버지가 진 빚을 대신 갚아줘야 했고, 할머니가 사시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다시 사들인 것만 두 번 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부모님은 “형제는 당연히 돕고 살아야 된다.”라고 말씀하시며 원망 없이 그 모든 일들을 해결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저희 집에 사람들이 항상 많이 왔습니다. 부모님이 집에 사람들이 많이 와 머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집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도 싫었고, 없는 살림에 먹을 것이며 이것저것 자꾸 내어주는 것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사람들이 부모님이 정말 힘드실 때 많이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어릴 때는 항상 손해 보고 사는 부모님이 좋지만은 않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제가 부모님에게 받은 소중한 유산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나의 삶 '일과 수행, 봉사'

교사라는 직업은 소양이 많이 필요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맡으며 제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저 자신에 대해 살피는 기도가 더욱 필요했습니다. 놓치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생각하며 1차 만일결사2 9차 천일결사3부터는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지금은 매일 300배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 생각하니 포용하는 역량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 이전에는 화가 올라왔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며 이해합니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숙이는 마음을 내니 아이들이 더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옵니다. 담임으로 일 년씩 잠깐 보는 아이들이지만,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학창 시절을 떠올릴 때, ‘나에게 관심 가졌던 그런 어른 한 사람이 있었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저는 이 직업에 만족합니다.

동시에, 전법회원으로 불교대학 진행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얼마 전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하기’ 수행과제가 있었습니다. 실천해 보니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아이들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족들한테 삼배하기’ 과제는 지금도 매일아침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후로 가족들과의 관계가 더욱 좋아졌습니다.

2023년 청년불교대학수업 사전 리허설(윗줄 왼쪽이 박정화 님)
▲ 2023년 청년불교대학수업 사전 리허설(윗줄 왼쪽이 박정화 님)

이렇게 교사 직업, 불교대학 진행 소임, 수행정진을 함께 하니 시간에 쫒길 때가 있어 가끔 힘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 저에게 도움 된다는 것을 알아 가볍게 그냥 합니다.

지금도 기도하다 보면 간혹 마음속에 의지심, 불안감과 우울감이 보입니다. 이전에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올라올 때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담담하게 지켜보며 제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 꼬락서니가 이렇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하며, 매일 새로운 저의 면모를 발견하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오히려 밉고 부족해 보였던 저 자신이 참 좋아졌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도,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때도, 순간순간 다 제 모습입니다. 제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니 보잘것없는 제 모습도 그저 사랑스럽습니다. 새벽기도는 그렇게 조금씩 저 자신과 화해하는 시간입니다. 어떤 것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생겼습니다

저 자신과 조건 없이 사랑하고 화해하게 되니 세상에 저만큼 복 많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즘에는 ‘세상에 은혜 갚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이웃과 세상에 잘 쓰이겠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상대가 필요로 하는 일에 제가 잘 쓰이고 있는지 항상 점검합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상대와 내가 다르지 않구나. 상대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 곧 내 행복과 맞닿아 있구나’입니다.

수행, 보시, 봉사도 ‘모두 나를 위한 일이었구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2023년 청년 불교대학 문경수련원 으뜸절 실천 활동중
▲ 2023년 청년 불교대학 문경수련원 으뜸절 실천 활동중


박정화 님은 쑥스럽다고 하면서도 인터뷰 내내 행복한 모습으로 진솔하게 이야기를 풀어 주었습니다. 퀴즈의 정답을 생각해 보셨나요? 과거 고생했던 경험들, 현재 행복한 모습,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행복, 사람을 대하는 방법 등등 모든 것을 다 받은 박정화 님은 마음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직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저도 박정화 님처럼 감사기도 열심히 해서 언젠가는 그런 유산을 꼭 받고 싶습니다.

글_김민정 희망리포터(청년지부 경기동부모둠 수원그룹)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만일결사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3.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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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덕

진솔하고 깊은 대화 를 들었습니다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09-07 08:38:12

정세은

멋진보살님입니다.자랑스런정토행자님!!!

2023-09-04 21:12:35

현이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08-27 13: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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