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안양지회
소 치던 아이의 평범한 수행 이야기

어둠이 내려앉은 오후, 안양의 한 카페에서 안양지회 관양모둠 그룹장님과 인터뷰했습니다. 약속 시간을 늦게 알리고 허둥지둥 안양으로 향하는 길, 걱정과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주인공은 밝은 미소로 첫 만남을 열어주어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씩씩한 에너지로 꽉 여물어진, 단단한 열매 같은 김재향 님입니다.
정토회에는 큰 역경을 겪는 사람만 모이는 곳일까요? 아닙니다. 여기 잔잔하게 흐르는 일상에서, 담담히 수행하는 분이 계십니다.

펄렁이는 전단지에 마음이 움직여

어릴 때부터 불교를 접한 저는 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고, 직장에서는 금강경을 외우며 수행하는 단체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다니던 불교단체의 스님은 법문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을 내려놓아라.”라고 알려주었는데, 저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거지?’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7년 인덕원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펄렁이는 빛바랜 불교대학 전단지를 봤습니다. 그때 제 마음도 전단지와 함께 움직였습니다. 바로 행복학교를 시작하고, 2017년 가을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경전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졸업 후, 불교대학 담당을 맡았습니다. 이후 여러번 돕는이 봉사하면서 경전을 다시 들을 수 있고, 도반들의 나누기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2019년 7월 경전대학 졸업식
▲ 2019년 7월 경전대학 졸업식

책을 보는 소 치는 아이

저는 경북 문경에서 10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10남매나 되는 많은 자식을 다 신경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스스로 살아야 한다.'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 일찍 터득했습니다. 방과 후에는 자주 소를 끌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한가로이 풀 뜯는 소를 두고, 저는 독서 삼매경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소가 없어져 당황했습니다. 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지쳐 집에 돌아오니, 소가 혼자 집에 와 있었습니다. 저의 흔들렸던 마음도 본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2019년 11월 법륜스님 즉문즉설 봉사
▲ 2019년 11월 법륜스님 즉문즉설 봉사

당시 언니의 추천으로 여러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통해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하나의 세상을 이룬다.’는 의미를 알았습니다. 또한 '내 인생은 나의 선택이다’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음이 뾰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 꾸중을 들으면, 그 말을 견디지 못해 장독대에 앉아 ‘어떻게 죽을까?’하며 궁리도 했습니다. 마음이 뾰족하다며 언니에게 타박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부처님 법을 만나 둥글둥글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 구절도 제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대를 사랑하노라, 하고 싶어 하는 사랑이매
그대에게 구하는 바 없노라.
나는 내 모두를 그대에게 주노라, 주고 싶어 주는 것이매
그대에게 바라는 바 없노라.

어린 시절 저는 바라는 마음이 올라오면 이 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책과 시를 통해 바라는 바 없이 주는 마음을 조금씩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불교를 가슴으로 느꼈습니다.

수행을 꾸준히 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은 ‘소임과 법회'

지금까지 저는 권유받은 소임은 다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기 싫어 고민도 했지만 "하고 싶은 것은 하면 되고, 하기 싫은 것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수행자"라는 스님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2017년부터 계속 여러 소임을 맡다가, 현재 안양지회 관양모둠 3그룹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임이 즐겁습니다. 하다 보니 재밌고 신이 납니다. 왜냐하면 정토회의 환경과 수행의 방향이 제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같아 의미와 보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임 덕에 법문을 많이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고 도반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부처님의 가르침이 저에게 스며들었습니다. 매주 수행법회는 절대 빠지지 않고 참석합니다. 일주일을 잘 지낼 수 있는 행복 주사를 맞는 날입니다.

2023년 4월 초파일 연등만들기 봉사(오른쪽 두번째 김재향 님)
▲ 2023년 4월 초파일 연등만들기 봉사(오른쪽 두번째 김재향 님)

가시 많은 예쁜 장미, 메아리 없는 산

딸은 가시가 많은 예쁜 장미 같습니다. 딸과의 관계는 서로의 가시로 찔러대는 것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들, 딸 차별 없이 길렀다고 생각했는데 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한번은 그 가시를 뽑고 싶어 대학 등록금을 준다는 조건으로 깨달음의 장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법사님과 열심히 싸우고 왔습니다. 남들은 "딸이 있으니 여행도 같이 다닐 수 있어 얼마나 좋으냐."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미쳤어? 딸이랑 여행을 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딸과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가기 전 남편과 아들이 "괜찮겠어?"라며 염려했지만, '무조건 딸이 하자는 대로 하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갔습니다. 뚜벅이 여행임에도 순조로웠고, 서로 맞춰가는 여행을 하였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여행은 저만의 노력이 아니라, 딸의 배려도 큰 몫을 했습니다.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고 고집하지 않겠다는 두 사람의 결실이었습니다. 딸은 철이 들고, 저는 수행 덕에 사이가 원만해졌습니다.

남편은 메아리 없는 산과 같습니다.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토회에서 산을 산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법을 배웠습니다. 남편은 표현이 서툴러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말속에 숨겨진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과의 관계도 점점 원만해집니다.

2023년 1월 인도성지순례
▲ 2023년 1월 인도성지순례

법사님과의 대화로 돌이킨 '법식'

소임 덕분에 법사님과 자주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법사님께 여러 조언을 받았습니다. 한번은 딸과 크게 싸운 후, 정토회에서 하는 것처럼 집에서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발언자가 말하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라며 진행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법사님은 “가족에게 더 엎드려라.”라고 조언했습니다. 가족회의에서 소통하자고 한 저의 제안이, 사실은 독선이고 고집임을 알았습니다. 마음으로 '엎드리기'를 수행 삼아 연습하니, 가족들 말에 상처받는 빈도가 줄었습니다. 오히려 가족을 이해하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남의 말에 덜 끌려다니는 점’이 정말 좋습니다.

2023년 3월 정토사회문화회관 도량청정 봉사
▲ 2023년 3월 정토사회문화회관 도량청정 봉사

'자식들이 20살이 넘으면 덜 챙겨도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만 잘 챙기면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법사님의 “가족에게 더 정성껏 대하라.”라는 조언을 듣고 생각을 돌이켰습니다. 이제껏 '자식들이 성인이라고 그냥 내버려두었구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성을 다하는 것과 성인으로 대접하는 것은 별개인데, 성인이 되었다고 정성을 다하지 않은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요즘은 가족들에게 더 신경 쓰고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툴툴거리는 말도 부드럽게 받아들입니다. 저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컸는데, 이 욕구를 알아차린 것도 수행 덕분입니다.

나를 자주 들여다보는 삶

저는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라는 말이 좋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연쇄 살인범에게 잡혀 죽음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지금도 혼자 있을 때 어두운 그림자를 보면 움찔합니다. 하지만 트라우마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지난 과거에 얽매이고, 오지 않은 미래에 신경 쓰는 삶보다 현재에 충실히 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제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생각을 빨리 정리합니다. 정토회를 다니며, 정말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참 좋습니다. 저는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세상 보는 눈을 키우고, 사회적 이슈에 관점을 바로잡습니다.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정토회와 선지식 법륜스님께 감사합니다.

지금은 전법회원을 내려놓고 일반회원 활동가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 카페 봉사, 도량청정봉사와 문경수련원에서 봉사하며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큰 역경을 겪은 사람의 수행담이 많은데, 제 이야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큰 역경이 없어도 잔잔한 일상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의 수행담도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2023년 11월 문경연수원. 다문화나들이 200인분 공양봉사(오른쪽이 김재향 님)
▲ 2023년 11월 문경연수원. 다문화나들이 200인분 공양봉사(오른쪽이 김재향 님)


인터뷰하며 기억에 남는 단어는 ‘즐겁다.’ 입니다. 연신 방긋하며 즐겁게 사는 삶의 태도가 빛납니다. 하기 싫은 마음, 비교하는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얼룩진 제 마음을 돌이켜 봅니다. 가족들이 툴툴거려도 "네~"하며 웃을 수 있는 수행을 존경합니다. 일상을 수행으로 즐겁게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문학소녀답게 인터뷰 내내 양서 추천이 이어졌습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책을 읽으며 불교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글_희망리포터 허수정(강원경기동부지부 경기광주지회)
편집_윤정환(인천경기서부지부 안양지회)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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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춘

아름다운 마음이 나에게 전달 되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
봉사하고 현실에 충실하며 나를 즐겁게 하는 마음이 부럽고 , 나도 무엇을 위해 행복과 즐거움을 느끼나 생각 해봅니다.
주말에는 사찰을 다녀와야 겠다고 느끼며 감사합니다.

2024-02-26 16:36:10

오늘도행복

감사합니다.

2024-01-03 16:47:05

세명화

연쇄살인마에게 잡혀 죽음직전까지 갔던 일도 그저 별일 아니게 여기시는걸 보고 너무 놀랬습니다. 허걱

2023-12-18 10: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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