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하남법당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당당한 수행자

하남 법당이 코로나로 문을 닫기 전까지 매일 새벽 법당에서 예불을 드렸던 법당 지킴이 권순미님.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집처럼 편안하고, 절하는 것이 행복했다던 순미님. 오늘은 순미님의 운명을 바꾼 수행담을 소개합니다.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힘겨운 시절, 마음의 안식처가 된 절과의 인연

전형적인 시골마을에서 2남 2녀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있었지만 부모님은 사이가 좋으셨고 두 살 터울인 언니와 잘 지냈습니다. 언니가 중3, 내가 중1 때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언니를 기다리면서 저도 공부를 했습니다. 교실 전등을 켜면 경비실 아저씨가 쫓아내니 창가 문을 열고 달빛을 전등 삼아 공부를 했는데, 공부가 어찌나 재밌던지 연구원으로 평생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언니는 장학생으로 동네에 플래카드가 붙을 정도였지만, 고3 때 2박 3일을 ‘대학 보내 줘’ 이 말만 하며 엉엉 울었는데도 부모님은 한숨만 쉬셨습니다. 중학교 때도 등록금을 못 내서 교무실로 자주 불려 다녔고 남동생 두 명에 아빠 몸도 편찮으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언니는 대학 얘기를 꺼내지 않고 학교 추천으로 읍내 대기업에 들어가서 방송통신대를 다녔습니다. 그때 언니를 보고 우리 집은 대학은 못 가는구나 하고 포기를 했습니다.

언니 따라 읍내에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자취방 근처 사찰에서 운영하는 포교당이 있어 친구 따라갔다가 학생 법회를 다녔습니다. 철야정진도 하고, 사찰 순례도 다니고, 초파일 때 밤새워 연등도 만들고, 한복 입고 시내 연등행렬도 참석했습니다. 새벽예불이 좋았고, 절에서 스님 따라 영가 카드 쓰는 일, 우편 주소 쓰는 일도 도와드렸습니다. 집처럼 절이 편안했습니다. 이때 학생담당 스님이 오셨는데, 마음이 갈팡질팡할 때 스님께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그때 절을 떠나시며 지금의 순수한 마음 잊지 말고 자기 감정에 빠지지 말라고 두 마디 당부를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목탁교육 후 강동법당 도반들과, 뒷줄 맨 왼쪽 순미님
▲ 목탁교육 후 강동법당 도반들과, 뒷줄 맨 왼쪽 순미님

진정한 안식처, 정토불교대학을 만나다

지금의 남편과 7년 교제하는 동안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부모님께서 극심하게 반대하셨습니다. 반대한 결혼이었기에 부모님께는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남편은 사업을 하면서 거래처 핑계로 술 먹는 날이 많았고 외박도 자주 했습니다, 세 아이와 일 사이에 지쳐서 내 말투와 성격은 거칠고 급해지고 불안해졌습니다. 시아버지께서 술 드시고 시어머니께 욕하고 큰소리칠 때 남편의 모습 속에서 시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면 불안은 더 했습니다. 못 먹는 술도 먹어보고 아이 친구 엄마들이랑 놀아도 보았지만, 반짝 재미였습니다. 막내가 사춘기가 되면서 학원도 안 다니고 학교도 안 가겠다고 제 속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저를 지적했고 그때마다 자책했습니다. 허무했습니다. 잊고 있던 불교 공부를 하고 싶을 때 친구가 ‘법륜스님의 하루에 보니 불교대학 모집을 하더라’는 한마디에 전화를 끊고 바로 하남법당으로 전화했습니다. 아직 하남에는 개설이 안 됐다고 가까운 광주나 강동으로 가라고 안내해주셨고, 강동법당으로 전화하니 바로 다음 날이 입학식이었습니다. 법륜스님께서 화상으로 법문을 해 주셨고 둥그렇게 모여 나누기를 하는데 도반들이 진지하게 들어 주고 저도 남의 얘기로 위로 받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분당정토회 도반들과 공연연습을 하며
▲ 분당정토회 도반들과 공연연습을 하며

운명은 바뀔 수 있다?!

불교대학을 다닌 지 3개월 즈음 무릎이 아파 수술을 했습니다. 일하면서 몸을 돌보지 않은 과보였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서 어르신들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데도 일상은 사소한 일로 싸우고 삐지고, 옛날이야기 한 보따리 풀고, 자식 오면 아기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이 먹어도 마음을 닦지 않으면 같은 수레바퀴겠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파마도 염색도 화장도 하지 않았습니다. ‘움직일 수 있을 때 무엇이든 하자’ 하고 막연히 느낄 때 두 도반님이 새벽 기도하는 연습을 한다고 하시면서 염주와 기도 책을 갖다 주셨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휠체어를 타고 창가로 가서 음원 파일을 듣고 기도하고 나누기도 올렸습니다. 지루했던 병원에서 도반들의 기도 나누기로 위로를 받았고 도반들의 도움으로 목발을 짚고 불교대학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형성된 것은 바뀔 수 있다, 운명은 바뀔 수 있다.’ 불교 대학에서 십이연기(十二緣起)를 배우며 이 말을 계속 되뇌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은 1주일에 한 번이었지만 예습도 하고 복습도 하면서 내 머리로 이해될 때까지 읽고 또 읽고, 그래도 어려우면 검색도 해보고 책도 찾아보았습니다. 그렇게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하남법당이 개원을 해서 하남법당으로 경전반을 다녔습니다. 저녁 불교대학 담당을 맡아달라는 총무님의 제안을 받고 봉사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나누기를 할 때 내가 좋아하는 소재는 잘 들리고 관심 없는 것은 안 들렸습니다. 그래서 담당하면서 ‘잘 듣겠습니다’를 원(遠)으로 세우고 시작했습니다.

JTS 물품꾸러미 전달 봉사를 하면서, 왼쪽이 순미님
▲ JTS 물품꾸러미 전달 봉사를 하면서, 왼쪽이 순미님

마음속 미움을 눈물로 지우고

경전반 담당을 하면서, 봉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법사님과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법사님께서 제가 "남편을 미워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니에요."라는 말이 바로 튀어 나왔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제가 남편에게 맞추며 잘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사님의 말씀을 새기며 기도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사실은 마음 속으로 남편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 가져와라! 커피 타와라! 할때에도 "예"하며 가져다주긴 했지만 속으로 궁시렁대면서 괴로워하고 미워했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잘 해준 것도 많은데, 마음에 안 드는 것들만 가지고 속으로 원망했다는 것을 알게되자, 그 원망의 마음이 녹아내리며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자상했던 남편만 남편이고 술 마시는 남편은 남편이 아닌가, 어제 봤던 산이나 오늘 본 산이나 허울만 바뀌고 그대로인데 나는 산이 바뀐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남편은 그대로입니다. 제가 더 많이 짜증내고 미워했습니다. 가족에게 이 모습으로 산 것이 미안했습니다. 힘든 건 남편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엄마 잔소리 듣느라 아이들도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견뎌준 세 아이도 고맙습니다. 이제는 아이 셋 각자 만족하면서 살고 있고, 남편이나 아이들이 저에게 관심이 없는 게 전에는 서운했는데 지금은 편합니다. 몇 년 뒤 다시 간담회 때 법사님께 남편이 변했다고 하자 법사님께서 "순미님이 변했겠지요."하셔서 의아했는데 돌이켜보니 달라진 건 편안한 제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도 원하는 경우에만 도움을 주니 전보다 일이 수월한데도 인사는 더 받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당당한 수행자

1년으로도 부족해서 1년을 더 불교대학 담당을 하고 1년 경전반 담당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전팀장도 맡게 되었습니다. 도반들과 1주일에 한 번 회의하면서 내 의견을 스스럼없이 내어놓다가도 다른 의견이 나올 때 이해가 안 가도 따라가다 보니 제 의견이 옳다는 생각이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알면서도 지켜봐 준 도반이 스승님입니다. 담당자 졸업수련에 참여하면서 선배 도반님들의 옆에 그냥 있기만 해도 배울 게 많았습니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행복학교1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트북 전원도 못 켰던 컴맹인 내가 노트북도 사고 엑셀로 가계부와 거래처 장부도 쓰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니 못 할 것이 뭐 있나, 모르면 도반들께 물어보며 하면 되지!’ 생각하면서 부딪혀보니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행복학교 진행자로 노트북 앞에 앉아있으면 가족들은 ‘똑똑’ 안 하던 노크도 하고 몰래 간식도 옆에 놓아줍니다. 행복학교 행복실천 연습을 하면서 둘째 아이와 사소하게 부딪치는 것도 수행 과제로 삼아 연구하다 보니 아이에 대한 내 생각은 오해와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고 싫어하는 행동은 조심하고 존중해줍니다. 외국에 살고 계신 분들과 행복학교 교실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진 분과도 함께 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보람 있었고 감사함이 배가 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로 남편 사업이 어려워져 요양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20년 전에 학원 다니며 자격증 따둔 것을 다시 50세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 봉사하며 함께 다닌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직장에서 부딪칠 때도 행복실천을 따라가며 연구해 보면 다 해결이 됩니다. 2교대라서 행복학교를 진행할 여건이 되어서 감사하고, 직장에서 친정엄마 병수발로 힘들어하던 분이 온라인 행복학교 신청해서 다니게 되어 행복합니다. 휴무날 온라인으로 스님 법문 들을 수 있으면 그날은 최고로 행복한 날입니다. 마스크 없으면 못 나가는 세상이지만 덕분으로 살아가니 감사합니다. 내가 받은 감사함이 빚이니 다른 분들께 갚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입니다. 나는 당당하고 행복한 수행자입니다.

하남법당 성탄절 모금행사, 가운데 산타복장이 순미님
▲ 하남법당 성탄절 모금행사, 가운데 산타복장이 순미님


언제나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수행하시는 권순미 님. 권순미 님은 요령을 피우거나 물러섬 없이 우직하고 꿋꿋하게 수행하면서 운명을 개척하고 몸소 수행의 맛과 행복을 체득한 분이시기에, 다른 사람에게 전법을 하실 때도 망설임이 없습니다. 수십 번 머리로 이해하고 계산하는 것보다 한 번의 도전과 실천, 그리고 꾸준함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신 권순미 님의 수행담을 들으며 저의 수행에서 부족했던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행복학교 진행자와 간호조무사로 그 누구보다 젊고 활기찬 수행자로 살아가시는 권순미 님이 나아가실 또 다른 도전과 행보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글_권순미(분당정토회 하남법당)
정리_신정아(희망리포터)
편집_이정선(진주정토회 진주법당)


  1. 행복학교 행복해지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적 의식이나 프로그램을 배제하고, 법륜스님의 행복 메시지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연습을 함께 하는 곳.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12강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음.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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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차근차근 부지런히 수행하시는 순미님을 응원합니다 저역시 순미님처럼 자기운명을 바꿔나가는 수행을 하고자합니다 나이들어도 지금 이 때를 행복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수행이 필요한 것인가봅니다~ 감사합니다

2021-02-21 06:03:54

광효

내 의지가 아닌 타인과 환경의 영향으로 업식이 형성 되었지만,
‘모든 형성된 것은 바뀔 수 있다, 운명은 바뀔 수 있다.’
내 의지와 불법으로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수행정진 하여 새로운 업식으로 매일 다시 태어납니다.
진솔한 수행담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02-21 03:43:08

자재왕

보석처럼 빛나는 수행자 권순미님, 존경합니다. 언니의 삶을 보면서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하고 꿈을 접은 사람들이 참 많거든요. 성실하고 진실된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나름대로 잘 쓰이면서 이웃과 세상의 귀감이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1-02-20 06: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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