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도봉법당
내 나이가 어때서 수행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45년생 가을불교대생 양길동 님

 

[노원정토회 도봉법당]

내 나이가 어때서 수행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45년생 새내기 가을불교대생 양길동 님 이야기

 

작은 연등

길을 묻는 그대에게 103

 

여일

 

연등 하나 켜 놓은다

바람 부는 내 마음 뒷 뜰에

 

수평선에 피어 오르는

신기루 마냥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들숨 따라

날숨 따라

 

나무아미 타불 관세음보살

나는 나를 켜 놓는다

 
2015년 도봉법당 가을불교대 입학식(주간반) 도반들과 함께 (앞줄 왼쪽 첫 번째)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하고 유행가 가사처럼 ~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수행하기 딱 좋은 나인데~” 노래가 주제가가 되어버린 도봉법당의 패셔니스트 45년생 새내기 가을불교대생 양길동 님의 수행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정토회와의 인연은?

저는 중학교를 원불교에서 설립한 고등공민학교를 다녔습니다. 2 때 헤르만 헷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큰 감동을 하여 출가를 시도하다 홀어머니께서 온몸으로 아랫도리를 감는 바람에 붙들렸습니다. 그 이후 제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싯다르타를 읽었답니다. 아마 20번도 넘게 읽은 것 같아요.

 

먹고 살기 힘들어 중간중간 중단되었지만, 책을 읽으며 원불교를 믿어 온 지 55년이 되었지요. 아내와 결혼할 때도 50세에 출가하는 데 동의하는 조건으로 결혼했답니다. 그런데 정작 50세가 되었을 때는 세상 맛에 취해 출가 안 할 궁리로 시인이 되었답니다. 그러나 시도쓰다 보니 부질 없는 짓거리 같아서 어느 날 <내 인생 이대로 잘 살고 있는가?>하는 화두로 명상하다가 알아차렸습니다. 즐겁고 멋있는 데만 찾아다니면서 나만 잘 먹고 잘 산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골 출신이라 낫이나 칼을 잘 갈아요그래서 칼 가는 기구를 장만해서 우선 아는 사람과 이웃집의 칼을 갈아주면서 제가 후원회원인 유니세프에 후원금으로 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점점 넓혀가는 도중에 힐링캠프에서 법륜스님을 만났습니다. 무릎을 쳤습니다. 제가 살고 싶은 삶을 살고 계시구나! 그저 따라서 하면 되겠구나! 알아차린 것이지요. 한마디로 물 만난 것이지요.

 

55년 동안 사모님과 한평생 원불교를 믿어왔는데 길동 님이 정토회를 다니게 되면서 갈등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대단했습니다. “언제는 '부부는 한곳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데 당신이 원불교 안 나오면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달라 서로 살기가 힘들다'고 해서 억지로 나가서 같은 종교 믿으며 이제 우리 자리 잡고 잘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아 이 나이에 성불은 혼자서만 하려고 비겁하게 도망가요.”라며 야단이 일곱 섬 닷 말이나 됐지요

 

때마침 김장 고추를 30근이나 샀는데 고추 꼬투리를 가위로 잘라 내는 작업을 6시간 동안 하느라 손가락에서 물집이 생기고 피가 나고 했지요. 그런데 늦게 귀가한 집사람은 칭찬은 고사하고 "가위로 자르면 어찌합니까?" 손으로 쥐어뜯어 꼬투리집까지 제거해야 하는데 더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고 노발대발! 안방으로 휭~ 들어가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밤새 시킨 대로 해 놓았지요. 그리고도 마늘 두 접이나 혼자 다 까놓고 설거지, 화장실 청소, 음식물 쓰레기 청소, 걸레질까지 다하고. 완전히 정토회 나가면서 다른 남자가 되어 버렸지요. 그러니 아내도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요. 요즈음에는 작은 녀석네가 사네 못사네 하길래 스님한테 배운 즉문즉설로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작은애가 술도 끊고 아빠처럼 살겠다고 정토회도 나오겠다고 해서 집안에 경사가 났지요. 그래서인지 아내도 지금은 유튜브에서 스님의 즉문즉설도 보는 눈치고, 절도 한번 해 보겠다고 한답니다.

 

나이제한으로 깨달음의장, 나눔의 장, 명상수련 신청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고 어땠는지요?

처음에는 정말 황당했어요. 왜 그러냐면 아직도 나는 내가 나이 먹었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철부지죠. 설마 나 정도의 청년을 이럴 수야~ 생각하며 문경 수련장 사무실에 항의 전화를 했어요. “내가 지금 100m16초에 달릴 수 있고 윗몸일으키기도 100개 정도는 하는데 숫자가 많다는 이유로 깨달음의장을 못 들오게 한다면 이건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제 나를 한번 만나서 신체나이를 측정해 본 다음에 거절해도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랬더니 담당자가 박장대소를 하며 우리 안에서 규칙이 그렇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이래서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깨달음이란 것이 꼭 어떤 프로그램이나 깨달음의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삼라만상 자연 속에서 전부 다 부처님의 법문이고 진리니까 그 속에서 우리가 알아차리면 그곳이 깨달음의장이지 않겠어요? 우리 사는 세계가 바로 수련장이고 깨달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저는 이제 마음으로 가도 좋고, 안가도 좋다, 더구나 30만 원이나 아껴서 얼마나 좋으냐.’ 하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내가 어떻게 하면 정토회를 가까이해서 스님을 뵐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역시 지역 법당을 찾아가야겠다 해서 문경 담당자에게 법당을 문의해 의정부, 노원, 도봉 지역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했는데 마침 도봉법당 부총무님과 통화가 되어 도봉법당에 인연을 맺게 되었고, 바로 수요법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법회에 참석해서 알게 된 명상수련이니, 동북아 역사기행, 심지어는 문경의 이불빨래 하는데도 신청을 했는데 거기서 다 거절당했습니다. 이불빨래 하는데도 깨달음의장을 나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깨닫고 해탈한 사람만 빨 자격이 있나 싶기도 했고, 한편 규칙이 너무 엄하지 않은가, 규칙이 너무 엄하면 정신을 구연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능하면 정토회 규칙을 조금 유연하게 해주셨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그때 해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도성지순례도 나이 제한으로 신청불가이신데 특별한 사연으로 가시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사연이신가요?

인도순례는 정말로 꼭 내가 지금 가야 할 나이입니다. 지금 못 가면 다음 생에서나 가야 할 텐데. 스님과 함께 가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냄새도 맡고, 거기에 나무도 보고, 집도 보고, 밟으신 모래도 걸어보고, 공기도 먹고, 바라본 강도 보고, 손도 씻고 이렇게 해서 부처님의 체취를 듬뿍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해서 나의 부처님을 믿는 신심을 돈독히 하고 또 이것이 내가 정토행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밑거름이 되는 그런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못 간다면 큰 손해다, 이거 큰일 났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도봉법당 부총무님께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지금 다른 것은 몰라도 실제 나를 본 바와 같이 내 신체나이가 적어도 40대는 되니까 보증을 서주세요. 혼자 힘드시면 다른 도반님들 동원해서라도 나를 꼭 인도에 보내주시라고 간곡히 부탁했죠. 그랬더니 아마 부총무님이 십 방으로 뛴 것 같아요. 될 것 같다고 하면서도 조금 더 지내보자고 하고, 어쩌면 될 것 같다고 하면서도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하고 그러다가 한 열 번쯤 됐을 때 아이고~ 거사님 됐습니다.” 하며 나보다 기뻐하며 더 좋아하더라고요. 마음이 간절하면 진리의 세계에서는 통하는지 이렇게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확정되고도 전화를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웬만하면 포기하시죠?”, “아니 저는 포기 할 수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또 일주일 뒤에 웬만하면 안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힘들어요.” 이런 전화를 세 번이나 받았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지난번 남산순례에 갔을 때 유수스님과 10여 분간 동행하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제 팔뚝과 근육을 만져보시고 어깨동무를 하시며 아이고 청년이라고 나보다 더 튼튼하시다고 아이고 정말 감탄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담당자에게 하며 유수스님에게 물어보시면 합격시켜 주실 겁니다.” 했습니다.

 

 

▲ 2015년 10월 24일 남산순례에서 유수스님과 도반들과 함께 (오른쪽 첫 번째)

 

 

정토회 모든 행사와 정진에 적극 참여하시는데 그 열정은 어디에서 나오시나요?

글쎄요. 열정이라기보다 저는 수행보시봉사, 깨달음, 일 이런 관념어를 하나로 융합해 버렸습니다. 이것들이 결코 각각이 아닌 것 같아요. 각각이 되면 힘들고 혼란스러워서 하기 힘들어요. 그저 그냥 그렇게 사는 삶이지, 알아 차려보면 삼매선정정진이나 계혜 삼학도 하나가 아닌가요? 계 속에 정, 혜가 포함되어 있고 정이 되면 혜도 나오고 계도 이루어지고 혜가 열리면 정도 계도 된다고 봐요. 사실 제가 그렇게 사는 것은 정토회에 오기 전 저의 삶이 이기주의였다는 참회 때문에 법륜스님을 만나 새로운 세상과 더불어 잘 살겠다고 발원했기 때문이지요. 자신만을 위한 이기주의는 궁극적 해탈과 열반이 아니고 잠시 잠깐 좋았다가 고로 윤회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지요. 우리 70살 낙엽 줄은 이제 미루고 재고 할 시간도 없잖아요?

 

 

▲ JTS 거리모금 중 도봉법당 도반들 함께 (왼쪽에서 두 번째)

 

제가 법우님들께 올리는 시 <작은 연등>이라는 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나름대로 삼매정진선정 세 가지 훈련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로 융합해서 합니다. 그러니까 생활하면서 일할 때는 일과 하나가 되어 버리고 수행할 때는 수행 속에서 살고 혼자 있을 때는 숨을 들이마시면서 나무아미타불, 내쉬면서 관세음보살! 이렇게 내 마음 무명 속에 연등을 켜놓습니다. 여기서 연등이란 두말 할 것 없이 제행무상 제법무아지요. 이렇게 바른 견해로 깨어 있어야 이 물거품(나라고 할 것이 없다고 본인을 일컫는 표현)인 저란 놈이 허튼짓거리를 못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 즉문즉설에서 스님께서 죽을 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열 번만 염불하면 극락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하시기에 제가 알아차리고 이 시를 쓰고 저는 혼자 있을 때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염불을 합니다. 어떤 때는 잠이 살짝 깨어날 때도 염불하고 있는 나를 가끔 만난답니다. 물론 놓칠 때도 있지만 놓치면 또 하고 또 놓치면 또다시 하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하며 스님께서 깨우쳐 주신대로 하고 있습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주인이 되어 최선을 다해 살아야 정토행자의 삶이다. "오리를 걷자고 하면 십 리를 가주어라" 제가 만일결사를 하려면 30년이 걸리는데 108배로는 아무래도 다 못하고 열반할 것 같아 216배를 하다가 두 번째 입재식에 다녀오고부터는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어 300배를 하고 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40시간 봉사하는데 통일의병 707, 새터민 봉사, 명상수련정진, 모자이크 붓다 정진, JTS 거리모금, 열린법회, 법당지킴이 등을 하면서 봉사하는데, 도반들은 잘 먹고 설거지하는 것을 칭찬합니다. 정토회에서 안 해도 어차피 그렇게 살 걸 아는 삶이라 저로서는 힘든 일이 아니죠. 그러다 보니 봉사시간이 아마 100시간은 넘쳤을 것입니다. 이러면 제가 정토회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토회를 이끌고 가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해도 살고 안 해도 살 것이라면 기왕지사이면 그저 그냥 해 보는 것이 좋겠지요.

 

수행하기 적당한 나이는 몇 살이라고 보는지요? 또 나이 때문에 수행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해주신다면?

제 나이가 딱 맞죠~ 왜 딱 맞느냐 하면은 직장에도 안 나가죠. 그래서 직장에서 쫓겨날 염려도 없고. 삼남 일녀 자식들 다 시집, 장가 보내서 손자들이 여덟이나 됩니다. 그러니 애들 교육할 일도 없죠. 또 하는 일이 백수라 노느니 공친다고 딱 수행기에 딱 알맞은 나이입니다. 노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새로운 새벽을 열기 위해서 먼저 나서는 것뿐이죠. 그리고 왜 나이가 먹으면 수행하기가 딱 좋으냐면 수행이란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이른 시간에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우리 나이는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젊은이들처럼 한가로이 농땡이 칠 시간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허송세월하고 이제 부처님 인연을 만났는데 이생에서 놓치면 다음 생에 이런 좋은 수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될는지 안 될는지도 모르니 이 생에 달성하려면 간절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제 마음속에 연등을 하나 켜놓습니다. 초파일날만 켜는 것이 아니라 늘 제 마음에 켜놓습니다. 그러니 저처럼 나이 드신 분들은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처님 법을 공부하며 부처님 행을 따라가는 것은 생각만 가지고는 힘들어요. 물론 이해는 해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율 지키고 순간순간을 부처님 사는 발자국 따라 부처님 살아온 삶은 흉내라도 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쉼 없이 염불하며 내가 나무아미타불이다, 내가 관세음보살처럼 보살행을 행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놓치지 않고 한다면 우리 생이 석 달 후에 간다 해도 다음 세상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 같이 수행해 봅시다.

 


13차 통일체육축전에서 도반들과 함께 파이팅!!! (앞줄 가운데 빨간 바지)

 

이번 양길동 법우님 인터뷰를 하며 수행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참으로 소중한 것들을 느끼고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음만은 본인은 법당의 막내이니 꼭 법우라 불러 달라며 활짝 웃는 모습에서 정토회를 만나 정말 행복하시구나!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행사든, 봉사든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이끌어 주시는 양 법우님~ 항상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양 법우님의 시 한 편 띄우며 리포터 글 마무리합니다.

 

_신수희 희망리포터

 

아빠의 기도

길을 묻는 그대에게

 

아침 4시 일어나 예불하면서 작은 아들 녀석의 말이 떠오릅니다. "아빠, 우리 호민이, 보민이, 채은들이 나는 아빠 싫어!’ 이렇게 말한다.”라며 우리 작은 놈이 죽을상입니다.

부처님! 제가 잘 못 했습니다. 그것들이 고물고물할 때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돈 번다고 아비 노릇 잘못 한 죄이옵니다. 먹고살고가 조금 되자 아홉 살에 아빠 잃고 천대받고 학대받고 굶주리고 기죽은 것이 되살아나서 남한테 인정받고 싶어 향우회다 동창회다 대학을 다닌다, 싸돌아다니면서 산수, 주산학원으로, 음악은 피아노학원, 웅변학원 돈 주어 쫓아내고 정치 헌답시고 낮이 밤이나 술타령에다가, 얹짢아 하는 너의 엄마한테 돈 벌어다 주면 호강하는 줄 알지 무슨 쇠고깃국에 초 치는 소리냐고 윽박지른 죄가 고스란히 너희한테 윤회 되었구나! 죄 없는 우리 작은 며느리니 시어미처럼 너를 이 시아비가 만들고 있으니 시아비가 잘못 했다. 용서해라. 철모르는 손자새끼들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다는 말이냐. 할아버지가 다 받으려 한다. 병아리 같은 너희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내밀어 네 아비를 찔렀구나!

300배 내내 눈물 콧물 범벅되어 부처님께 빌고 빌었습니다.

(부처님! 원하옵나니 이 물거품이 철없이 지은 죄 이놈이 다 받겠사오니 저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소서. 저들은 죄가 없으옵니다. 이놈이 세세생생 보살 도로 죄 닦음을 행하려 하옵니다)

 

부처님! 그래도 늦게나마 이놈을 철들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여일 합장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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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광

이미 해탈하신거 같아요~~ 여일 법우님 수행 보시 봉사 염불하시는 길 따라 부지런히 수행하겠습니다. 눈물 핑돌게 글 잘 읽었습니다.

2015-12-15 22:26:09

여일

감사합니다 70 몇몇년 허송세월한 늦동이의 부끄러운
배설물을 이렇게 법우님들께서 격려해 주시니 꼭 성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불대생 양길동합장

2015-12-13 08:10:14

허수정

노원 통일강연때 질문하시는 모습을 보고 인상에 남았었는데 청년이상의 열정으로 열심히 수행하시는 모습에 감동입니다. 항상 화이팅~하십시오!! ^^

2015-12-11 21: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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