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도봉법당
화 많던 괴로운 중생이 '법당 해결사'가 된 사연

법당에 필요한 일이면 언제나 짠하고 나타나는 도반이 있습니다. 농사도 잘 짓고, 왠만한 수리는 거뜬히 해냅니다. 법륜 스님이 하는 일을 흉내만 내도 되지 않겠냐며 환하게 웃는 최승순 님. 그 수행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아내와 함께 동북아역사기행 중
▲ 아내와 함께 동북아역사기행 중

법당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법당 해결사

도봉법당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어김없이 나타나는 도반이 있습니다. 전등 교체, 선풍기 수리, 빔프로젝트 수리, 고장 난 현관문 수리, 매년 초파일 연등 달기, 방충망 달기 등 법당의 시설물 수리와 크고 작은 법당 행사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습니다. 처음 하거나 요령을 잘 모를 때는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해결합니다. 일손이 필요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주저하지도, 거절하지도 않고 기꺼이, 흔쾌히, 가볍게 합니다. 한 마디로 도봉법당의 해결사입니다.

봉사뿐 아니라,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모습도 한결같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 수업을 통한 교리 공부를 비롯하여 모둠장 교육, 목탁 교육 등 교육에 참여합니다. <깨달음의 장>, 정일사 같은 수련을 하고, 통일기도, 거리모금 등 쉼 없이 정진하고 봉사하는 수행자입니다.

법당 선풍기 수리 중
▲ 법당 선풍기 수리 중

모진 가난에 학업을 중단하고 택시기사로 서울을 누비다

한국전쟁을 겪느라 나라가 초토화되고, 모진 가난에 시달리던 시기에 태어나 집에 먹을 것이 없어 사흘을 내리 굶기도 했습니다. 논농사와 밭농사 같은 바깥일부터 소죽 끓이기와 어린 동생에게 암죽을 끓여 먹이기도 하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십 리를 걸어서 학교에 다녔으나, 형편이 어려워 열일곱 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운전 일을 하는 형을 믿고 상경했습니다. 주물공장, 공사판, 섬유 공장, 운수회사 등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형의 조수로 일하면서 운전을 배워 3년 만인 스무 살 되던 해 면허를 따 택시 운전사가 되어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지금까지 40년간 택시 운전사로 서울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도시의 변화를 지켜보았습니다.

스스로 공부할 곳을 찾다

택시 운전을 하면 온갖 손님을 만나니 화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한 번은 30년 무사고를 이어오던 중에 교통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잘잘못을 가리는 과정에서 보험회사와 경찰서에서 상대방과 합의를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잘못한 일이 없기에 합의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피해를 보고도 가해자가 되었고, 무사고 기록은 깨졌습니다. 너무나 억울했지만 견뎌야 했습니다. 또 한 번은 일행을 승차시키고 배웅하느라 서 있던 사람이 차에 발을 치었다고 억지 주장을 하여, 정황을 밝히느라 힘과 시간을 소모하는 등 온갖 골치 아픈 일을 겪었습니다. 그 외에도 만취한 승객이 택시 안에 소변을 보고, 토해서 치웠으나 차 안에 밴 악취가 여러 날 동안 없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다 보니 혈압이 치솟고 건강이 매우 나빠졌습니다.

살다가 여러 일을 겪었습니다. 지하 방에서 전세를 살던 때입니다. 집주인의 관리 부주의로 보일러에서 불이 나 아내와 딸이 심한 화상을 입어 6개월을 중환자실에서 보냈습니다. 집주인의 무책임한 태도가 참으로 분했고, 두 사람의 화상 치료 과정이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JTS 거리모금 중
▲ JTS 거리모금 중

아내는 저처럼 형편이 어려워 어린 나이에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는 서로 이해하며 어떤 고난도 함께 헤쳐나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혼 초 아내와 상의도 없이 형제간의 우애를 이유로 번 돈을 형님댁에 갖다주곤 했습니다. 그 바람에 궁핍한 살림살이를 겨우 버티던 아내는 계속해서 불평과 불만을 토로했고, 그런 아내와 반복되는 언쟁으로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불교방송을 보다, 화를 참지 못하면 결국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법문을 들었습니다. 당시 자꾸 화가 나고 괴로웠기 때문에 그 내용이 귀에 꽂혔습니다. 그러던 차에 불교 신행 생활 안내 기사를 읽고 스님을 찾아가 상담을 청하니, 스스로 공부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며 그 불교대학에서 공부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부족한 제가 과연 불법을 공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길이 있으리라는 믿음과, 화를 극복해야겠다는 절실함으로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 법문을 들으면서, 제가 화를 내는 것은 상대가 잘못이라는 생각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6년간 새벽기도를 하면서 어린 시절에 죽였던 참새, 개구리들이 떠오르고 잘못한 일들을 반성했습니다. 참회 기도를 하면서 차츰 마음이 차분해지고 화가 줄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 불평, 화난 말을 들어도 더는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깨닫고 들려준 이야기와 차분하게 변한 모습에 아내도 불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 (가운데 최승순 님)
▲ 인도성지순례 중 (가운데 최승순 님)

정토회에서 공부를 이어가다

아내는 여러 선원을 다니면서 불법을 공부했고 번번이 제게도 선원을 소개하니 그때마다 함께 부처님 법을 공부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내가 노원 정토회에 입학했고 저도 뒤따라 입학했습니다. 강북 법당을 마련하기 위해, 매일 새벽마다 법당에서 기도하던 몇몇 도반들의 모습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정토 불교대학에 입학해 경전 공부와 수행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공부했습니다. 정토회 프로그램은 할 수 있는 한 모두 참여했고, 소임을 주면 그냥 했습니다. 거리모금에도 참여하고, 법당의 시설물을 고치고 관리했습니다. 모둠장 소임을 맡았으나 스마트폰과 컴퓨터 사용이 익숙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물어가며 하고, 반복하면 뭐든지 잘 할 수 있다는 스님 말씀처럼 했습니다. 도반들에게 묻고 따라하다 보니, 이제는 모르면 직접 인터넷을 찾아 해결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서툴러도 계속하면서 배우고 깨달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봉사 중
▲ 아내와 함께 봉사 중

어려웠던 시간을 기도로 견뎌냈고, 그 힘으로 공부를 이어왔습니다. 어리석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그 순간 알아차리고 놓아버리면 평화가 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만든 생각의 누에고치에 갇히지 않는다면, 걱정할 일이나 화낼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바보 같은 남편, 퍼주기만 하는 남편이라며 퍼붓는 잔소리가 죽을 것처럼 듣기 힘들어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듣고 듣습니다. 그동안 아내가 겪었을 힘겨움과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했음을 알아 이제는 아내가 마음을 풀 때까지 말을 들어주려 합니다.

부처님 법 공부는 할수록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사람이 변하고, 화낼 일이 없어져 마음이 평화로우니 몸도 건강해졌습니다. 먹고 있던 갖가지 약들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이 모두가 아내 덕분입니다. 남은 날들은 아내를 보살피며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도봉법당 불교대학 동기로, 옆에서 지켜보았고, 긴 수행공부 나누기를 들으니 인생 드라마를 한 편 보는 듯했습니다. 올곧고 우직하게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 아내를 사랑하여 책임을 다하며, 무엇이든 나누면서, 쉼 없이 정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글_이경희(노원정토회 도봉법당)
편집_도경화(달서정토회 구미법당)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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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희

'행자의 하루' 에서 만나 뵙게 되니 더 반갑고 함께 수행하는 도반으로서 존경의 마음과 응원의 마음 보내 드립니다.^^ 예전 함께 법당 활동 하며 많은 도움을 주시고 의지가 되어 주신 거사님께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지금도 변함 없이 꾸준히 봉사와 정진해 나가시는 거사님~ 고맙습니다.화이팅!!!

2020-11-07 07:31:05

혜공덕

밝은 웃음만큼 밝은 일만 있으시길 바래요 부처님의 지혜로 성불하세요~♡

2020-11-05 09:14:16

감사합니다

화낼일이 없다는 거사님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어찌수행하면 이놈의 화가 좀 없어질까요...

2020-11-05 06:5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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