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비로소 제 마음이 보입니다

<월간정토>에 수록하기 위해 작년 가을 인터뷰 때부터 참여한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 글을 소개하는 감회가 남다릅니다. 당시 신입회원이었던 저는 윤정예 님이 겪는 부부 갈등 부분만 어렴풋이 이해되었을 뿐, 정토회 활동을 하며 도반과의 갈등을 겪는 부분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런 내용을 솔직히 드러내 놓는 것이 왠지 불편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이 글을 소개하면서는 도반과의 갈등을 솔직하게 내어놓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행공동체인 정토회의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갈등을 겪을 때는 상대의 마음만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내 마음을 더욱 자세하고, 세밀히 들여다봐야 함을 배웁니다.

정토회와의 재회, 그리고 시작된 갈등

서른 살 무렵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청년활동가로 2년간 활동했으나 결혼을 준비하며 저는 한동안 정토회 법당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년 만에 다시 법당에 나가게 되었고 도반들과의 나누기를 통해 그간 제가 얼마나 정토회를 그리워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남편 눈치를 보며 최대한 몰래 정토회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출근길에 컴퓨터 앞에 앉아 행복학교를 진행하는 제 모습을 한번 휙 보고 나가더니 그날부터 한 달간 입을 닫았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불을 끄고 거실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습니다. 저는 매일 벼랑 끝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고 한 달 내내 울면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왠지 입을 닫고 있는 남편이 저보다 더 힘들어 보여 집을 나가지도 못하고, 집이라는 감옥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5년 청년가을 불교대학 부담당 시절 학생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윤정예 님)
▲ 2015년 청년가을 불교대학 부담당 시절 학생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윤정예 님)

가장 밑바닥 모습까지 보여준 우리 부부

법사님이 부부 상담을 권유해주셨고, 저도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을 설득해 딱 세 번만 부부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상담을 통해 우리 부부는 성장기 동안 쌓인 과제가 있었고 이것이 따로 살 때는 두드러지지 않다가, 함께 살면서 문제로 나타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담을 통해 서로 이해가 되고 사이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는 원래 이렇고, 너는 원래 이렇다’ 하고 주장하면서 관계가 더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저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제 삶에 희망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생각이 든 바로 다음 날 정신의학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제가 먼저 병원에 다니니 남편도 자발적으로 따라서 치료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부부 상담과 정신의학과 치료를 병행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저는 남편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제 평생 한 인간을 이렇게 깊이 알고 이해하게 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세상이 회색빛으로만 보인다던 남편이 “정예야, 나 이제 하늘이 파란색으로 보이고,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보여”라고 말했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힘든 시간을 잘 지나온 남편이 그저 고마워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차츰 전에 없던 신뢰가 서로 형성되는 것을 느꼈고, 저도 더 이상 정토회 활동을 숨어서 하지 않고 남편에게 속마음을 편안히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은 불법 만나 마음공부 하는 것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 의미인지 이해하게 되었고,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 레이싱
▲ 남편과 함께 자전거 레이싱

내 마음을 본다는 것

남편과의 갈등을 겪으며 매일 눈물 바람으로 보낼 때, 친한 도반이 계속 “정예님, 지금 마음을 봐요”라고 수없이 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 지금은 힘든 마음 말고는 없는데 또 무슨 마음을 자꾸 보라는지 모르겠네’ 싶었습니다. 도대체 마음을 보라는 게 무슨 말인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과의 갈등을 극복하며 마음의 큰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되돌아보니 그곳에는 상대에게 의지하고 싶어하는 유약한 제가 있었고, 그와 동시에 남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유약한 저 자신을 볼 때면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고, 남편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단단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또한 상대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제가 있었고, 마침내 상대를 이해하게 됐을 때 숙연해지는 마음과 잔잔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깊이 마음을 살피고 나니 ‘이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내 마음은 이렇구나, 마음을 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자연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순간순간 만나는 제 마음이 참 반가웠습니다. 저는 도반에게 전화해 “이제 제 마음이 보여요”라고 말하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진짜 제 마음공부가 시작된 순간은.

동북아 역사 대장정에서(윤정예 님)
▲ 동북아 역사 대장정에서(윤정예 님)

도반과의 갈등 1 - 지회장님

마음공부는 참 재미있습니다. ‘이 정도면 됐겠지’ 하면 또 새로운 과제를 만나게 됩니다. 작년 모둠장 소임을 할 때 당시 지회장님께 자꾸 분별이 일어났습니다. 제 기준에서 지회장님은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고, 모둠장들에게 불필요한 요청을 많이 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때부터 지회장님을 무시하는 마음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회의할 때면 지회장님 얼굴이 보기 싫어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싫어하는 이유를 대라면 리스트를 적어서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때의 제게는 미워할 수밖에 없는 합당한 이유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다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시하던 지회장님께 사실은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존경심도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마음을 인정하자 그제야 제가 모둠장 소임을 하면서 제 뜻대로 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지회장의 권한을 욕심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미워하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지회장님과의 갈등을 통해 제 마음을 알아차려 분별하던 대상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경험을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상대 탓만 하던 과거의 저와 비교하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게 미워하던 지회장님이 저에게 더없이 소중한 도반이고, 이 경험이 참으로 귀합니다.

도반과의 갈등 2 - 팀장님

갈등이 없으면 사는 재미가 없는 걸까요? 2차 만일을 시작하며 사무처에서 새로운 소임을 맡았고 이번에는 팀장님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해보지 않은 생소한 소임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었는데, 팀장님은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추가로 가져왔습니다. 새 업무도 충분히 파악되지 않았고, 팀 내에서 제 역할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새로운 일이 쌓여가니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보다 더 어려운 건 관계였는데, 순간순간 일어나는 미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점점 커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법사님께 상담했더니 “개운해지려고 애쓰지 마라. 불편할거야”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상대를 탓하며 힘들어하는 저를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법사님은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깨닫고,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삼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며칠간 저는 미친 사람처럼 ‘지금 제 마음의 상태’에 집중했습니다. 밤에 자다가 잠깐 깬 순간에도 제 마음이 어떤지를 계속 살피고 또 살폈습니다. 법사님과의 대화를 통해 제 마음을 위로받고, 현재에 깨어있기에 집중하면서 그렇게 아무 일이 없는 듯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는 나날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또 알게 되었습니다. ‘아, 팀장이기에 앞서 도반인데 나는 팀장으로만 보고 있구나!’ 저는 제가 기대하는 팀장의 역할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나니, 그동안 팀장의 역할로 정해놓았던 저의 고집과 기준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팀장으로 보기에 앞서 도반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직책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2022년 10-9차 입재식 영통법당 도반들과 함께(왼쪽 첫 번째가 윤정예 님)
▲ 2022년 10-9차 입재식 영통법당 도반들과 함께(왼쪽 첫 번째가 윤정예 님)

마음의 정원을 가꾸며, 인생을 가꾸며

저는 집 앞 작은 정원을 가꾸는 일을 좋아합니다. 활동가로서 정토회 소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그만큼 개인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 깨어있는 사람인지 점검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여름에는 잡초들이 정말 무성하게 올라옵니다. 잡초 뽑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복잡했던 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다 유심히 관찰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제일 크게 자란 풀은 제가 가장 아끼는 식물 사이에 난 풀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끼는 식물 가까이에 난 잡초는 자칫 잘못 뽑으면 아끼는 식물의 뿌리까지 통째로 뽑힐 수도 있고, 때론 뿌리 일부가 다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잡초가 조금 더 자라길 기다렸다가 뽑아야 하고, 어떤 때는 잡초가 작을 때 빨리 뽑는 게 나은 경우가 있습니다. 매 순간이 다릅니다.

제 마음도 이처럼 힘들게 버려야 하는 것이 아끼는 것에 붙어있어 좀 더 기다려줘야 하는 순간도 있고, 빨리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순간도 있구나 싶습니다. ‘마음이 이렇고, 인생도 이렇구나’를 배우는 순간입니다.

저는 분별심이 많아 여러 갈등을 겪었지만 그래도 그 갈등을 넘으며 저를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갈등은 보물찾기처럼 제게 깨달음이라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갈등과 마주하겠지만 부족한 이대로의 저를 아끼고 사랑하며 꾸준히 정진해나가려 합니다.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11월호에 수록된 윤정예 님의 수행담입니다.

글_윤정예(강원경기동부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전체댓글 24

0/200

평화

잡초에서 깨달음을 본 도반님 이야기 큰 공부됩니다.
제 자리가 아닌 곳에 있으면 잡초가 되는 스님 말씀도 다시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2024-06-06 09:31:16

최선영

좋아요 ❤️
진솔한 수행담 읽으며 나를 점검합니다

2024-06-01 06:17:45

장세민

좋아요가 있으면 누르려고 했는데, 없어서 댓글 답니다.
좋아요

2024-05-28 23:13:40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