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제주지회
아무 문제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강승연 님은 사무처 회원국 교육 연수팀에서 일반 회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당일 함께 참가한 희망리포터들이 예기치 않은 프로그램 오류를 해결하지 못해 허둥댔습니다. 그 어수선한 와중 강승연 님은 "오늘 가장 긴장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닌가요?”라며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봄날 벚꽃잎이 흩날리듯 희망리포터들은 웃음꽃을 피웠고, 편안하게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좋은 엄마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살 만했습니다. 마흔 넘어 아이를 키우며 처음으로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첫째가 심하게 손가락을 빨고 떼를 썼습니다. 저는 강제로 아이 손가락을 빼고 혼내고 다그쳤습니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 나빠졌습니다. 아이에게 소리치고 화내는 내가 싫었습니다.

좋은 엄마를 꿈꾸었지만, '엄마로서 실패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못마땅한 아이의 행동을 보면 아이를 잘못 키우는 것 같아 조급하고 불안했습니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육아 기술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해 이 책, 저 책을 뒤지고 방송을 들었습니다. '가치관을 재정립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여 인터넷 철학 강의, 백화점 문화 강좌를 기웃거렸습니다.

한라산에서 아이들과 함께(2022년)
▲ 한라산에서 아이들과 함께(2022년)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번민만 커질 무렵, 우연히 팟캐스트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었습니다.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짬짬이 들었습니다. 후에 즉문즉설 내용에 심취하여 혼자 차 안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고 웃었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어떤 육아 책이나 방송보다 큰 지침이었습니다. 육아 기술보다 나의 마음 상태, 불안한 나를 보았습니다. 아이한테 쏠려 있던 시선을 내게 돌리니, 아이와 거리를 둘 수 있었고, 버겁던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어린이집 원장님에게 육아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니, 원장님은 정토 불교대학을 권유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강의 시간에 맞추기 힘들었지만,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라는 간절한 원으로 불교대학에 다녔습니다.

비정상 가족

부모님 이혼 후, 태어난 지 2주 된 동생과 저는 할머니 손에 맡겨졌습니다. 할머니는 저보다 일곱 살 많은 삼촌까지 아이 셋을 키워야 했습니다. 불교 신자인 할머니는 절에 갈 때면 자주 저를 데려갔고, 불경을 듣고 사경했습니다. "엄마 없이 컸다"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할머니는 저희를 엄하게 키웠습니다. 스스로를 챙기고, 집안일도 돕고, 행동을 바르게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동생과 싸울 때면 할머니한테 몽둥이로 맞고 울기도 했지만, 할머니 뜻에 따르려 했고, 모범생으로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정성으로 길러준 할머니에게 살가움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할머니 손에 크고 있다'라는 사실은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다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데, 나만 할머니와 사는 것은 비정상이고 대단한 불행이다'라고 여겼습니다. 한번은 중학교 때 이 문제로 학교에서 상처를 받고, 집에 와 할머니 품에 안겨 운 적이 있습니다. 감추고 싶은 나의 가정사를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다른 친구를 통해 그 말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도 나의 가정사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2018년 용인법당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앞줄 오른쪽 강승연 님)
▲ 2018년 용인법당 도반들과 불교대학 홍보(앞줄 오른쪽 강승연 님)

한편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라는 의무감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 눈치를 봤습니다. 겉으로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성격 좋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제 안에는 억누르고 참았던 응어리가 있었습니다.

여섯 살쯤 아버지는 재혼했고, 중학교 때 이혼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따금 술에 취해 전화로 "사랑한다"라고 울먹일 때는, 아빠와 같이 살 수 없는 상황에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슬프고 외로운 날이면 일기장에 마음을 털어놓으며 펑펑 울었습니다. 일기를 쓰면 마음이 풀리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픔을 겪었기에 '나는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흔들림 없는 결혼생활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에 여유가 없고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웃을 때, 같이 웃고 노는 것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잘 키워야 한다'라는 의무감이 앞서 자연스럽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울면 '내가 뭘 잘못해서 우나?'라고 자책했습니다. 동화책을 읽어주다 내 생각에 빠져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엄마로서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1-9차 회향식 축하공연(앞줄 왼쪽 강승연 님)
▲ 1-9차 회향식 축하공연(앞줄 왼쪽 강승연 님)

남편과는 7년 반 연애했고,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잘 지내리라' 믿고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작은아이가 태어나고, 큰아이의 퇴행 행동으로 육아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찼을 때, 남편과의 갈등도 고조되었습니다. '회사 생활이 바쁘다'라는 핑계로 육아에 협조하지 않는 남편에게 잔소리했습니다. 퇴근 후 집에 와 서재에 들어가는 남편이 못마땅하고 얄미웠습니다. 남편과 갈등을 겪으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열망이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남편과도 흔들림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앞날의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펑펑 쏟은 눈물

〈깨달음의 장1〉에 다녀오고, 닷새 후 만난 아이들은 낯설었습니다. 목욕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아이들이 평소보다 20퍼센트 정도 작아 보였습니다. 그동안 다 큰 아이처럼 대했던 큰아이가 세 살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펑펑 울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서재 책상 위에 어지럽게 놓인 술잔과 노트북, 혼자 잠든 남편을 보고 그의 고단함을 느꼈습니다. '회사에서 귀가하는 남편을 반겨주기는커녕 투덜대고 잔소리하는 나 때문에 힘들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을 이해하니 원망이 녹고 미안함이 밀려와 그날도 펑펑 울었습니다.

2019년 경전대학 졸업식, 동기 도반들과 (맨 왼쪽 강승연 님)
▲ 2019년 경전대학 졸업식, 동기 도반들과 (맨 왼쪽 강승연 님)

어느 날 아침 기도 중 '한 달 만에 집에 온 아버지가 나를 딱하게 바라보던 어릴 적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새어머니 눈치 보느라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반갑다는 말도 못 하고, 자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지 못한 부모 마음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절하다 방석에 엎드려 펑펑 울었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보낸 시간이 죄송했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났습니다.

돌고 돌아 제자리

남을 의식하고 '잘해야 한다'라는 마음이 가족은 물론 인간관계에서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엄마들 모임에서 말실수라도 하면 나를 싫어할 것 같았고, '시부모에게는 더 잘해야 한다'라고 전전긍긍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수행은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돌고 돌아 갈등의 원인을 내 안에서 발견하고 괴로운 마음이 풀리니, 그동안 풀리지 않은 관계들이 저절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2019년 청춘톡톡 거리홍보
▲ 2019년 청춘톡톡 거리홍보

온라인 명상 때, 내가 아이들에게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보살피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있어 삶에 에너지가 생기고, 생활 리듬을 지킬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한때 아이들과 긴 방학을 보내는 것이 두려웠는데, 요즘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큰아이는 나의 부처님

결혼 후 큰아이가 세 살,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 회사에 다녔습니다. 큰아이는 베이비시터와 번갈아 양육했습니다. 이때 내가 양육자로서 안정감을 주지 못했는지, 환경이 바뀔 때마다 큰아이는 적응을 어려워했습니다.

불교대학 전단지 작업 중인 아이들
▲ 불교대학 전단지 작업 중인 아이들

지난해 큰아이가 "새로 옮긴 학교에 다니기 싫다"라고 했습니다. 아이 걱정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문제 있다’라고 동네 엄마들에게 소문날까? 걱정하는 나를 보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학교에 보내려고 발버둥을 쳤을 텐데, 내 마음을 알아차리니 아이의 마음도, 주어진 현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은 3개월 동안 아이와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자전거도 실컷 탔습니다.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고, 지나고 나니 별일 아니고 아무 문제도 없었습니다.

3개월을 쉬고 아이는 전에 다니던 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큰아이는 TV 시청과 게임을 못 하게 하는 저에게 거세게 반항합니다. 큰아이는 저에게 끊임없이 과제를 주는 부처님입니다. '내가 수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아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2017년부터 매일 꾸준히 수행하니, 힘들었던 시기를 긍정적이고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나지만, 불행이라 생각한 가정 환경이 꼭 "나쁘다"라고만 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 없이 자랐기에 시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엄격했던 할머니 덕분에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며 독립심을 키웠던 경험은, 세상 살아가는 데 좋은 자산이었습니다.

제주법당  도반님들과 (앞줄 왼쪽 강승연 님)
▲ 제주법당 도반님들과 (앞줄 왼쪽 강승연 님)

작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행하지 않았다면 암에 걸린 것이 큰 장애였을 텐데,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괴로워하는 대신 '일찍 발견해서 다행이다'라고 여기고 치료에 집중했습니다. 3개월의 회복 기간에도 수행을 놓치지 않았고, 다시 수행과 봉사하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소임 또한 수행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저에게 소임은 수행과 둘이 아닙니다. 매일 정진하면서 나를 돌이키는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소임 하면서 제 한계와 마주할 때면 자책하는 업식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눈치를 덜 보니 사람 만나는 일도 편안해졌습니다.

2023년 교육연수팀 도반님들과 함께(첫 줄 오른쪽 강승연 님)
▲ 2023년 교육연수팀 도반님들과 함께(첫 줄 오른쪽 강승연 님)

소임을 하며 만났던 도반들은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지지하고 격려했습니다. 소임과 수행이 맞물려 정토회 활동과 제 일을 구분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했습니다. 한때 "소임을 그만두라"라고 압박했던 남편도 이제는 저를 도와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 돌봅니다. 남편은 정토회 일을 하는 저를 여전히 못마땅해하지만, 필요한 순간이면 기꺼이 도와줍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며 편안해진 제 모습에 여동생과 친구, 지인 네 명이 정토회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육아로 마음고생하는 부모들이 이 법을 만나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주어진 소임을 기꺼이 하고자 합니다. 또한 저의 전공인 건축을 살려 법륜스님이 부탄에서 추진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서도 일하고 싶습니다.


강승연 님의 괴롭던 마음이 풀리며 펑펑 쏟는 눈물은 마치 꼬여 있던 호스가 풀리며 세차게 물줄기를 뽑아내듯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5월 신록들이 반짝반짝 빛나듯 강승연 님의 행복한 웃음이, 이 땅의 부모와 아이들에게도 퍼지기를 희망합니다.

글_길현숙(서울제주지부 송파지회)
편집_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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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자

강승연님 수행자로써 살아가는 진정성있는 이야기 감동입니다 이젠 아프지말고 병이 완치되기를 기원합니다.

2024-06-07 07:56:14

자재왕

제가 키우는 손주들을 생각하며 긴장하고 읽었습니다. 정토회가 희망입니다. 수행담 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4-06-02 17:51:39

희자재

온라인아카데미 봉사를 통해 뵈었던 반가운 강승연님 이야기가 찡한 감동을 주네요.
감사하고 응원합니다.

2024-05-31 08: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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