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진주지회
가벼운 삶을 선물로

차분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분위기의 진주지회 서정숙 님. 처음 만났으나 정토행자라는 공통분모에서 시작하니 친구처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불안한 성향과 극단적 사고방식으로 삶이 무겁고 힘들었지만, 정토회 활동을 통해 마음이 편안해진 정토행자의 수행담을 들어봅니다.

2023년 가을 지리산 수련원에서
▲ 2023년 가을 지리산 수련원에서

정토회 진주 법당 문 안으로

2024년 봄 지금, 저는 어떤 일이든 ‘별일 아니다’라고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8년 전 처음 정토회 진주 법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를 생각하면, 먼 옛일처럼 까마득합니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아 간호를 시작한 지 한 달여 후, 이번에는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회복되었으나, 아버지는 1년 후 돌아가셨습니다. 그 무렵,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중학생 아들은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반항하였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자 그 경향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제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어지럽고 불안하였습니다. 어디가 되었든 위로와 의지처가 필요했습니다. 세 살 위의 언니가 “그 스님 억수로 웃기고, 재밌고, 그런데 다 맞는 말씀만 하신데이.”라며 카카오톡 친구를 맺어준 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다급해지니 집 근처에 있는 정토 법당을 발견했고, 스스로 찾아갔습니다. 당시에는 정토 법당의 그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 감히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죽음이라는 화두

저는 대학병원에서 20여 년 간 간호사로 일하면서 죽는 사람을 종종 보아 왔습니다. 그런 장면은 뇌리에 오래 남아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특히 신생아 중 미숙아가 죽는 경우, 꽤 심각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고 죄도 짓지 않은 아기가 왜 죽어야 하는가? 죽는 것에 대한 의문과 함께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제게는 죽음이 화두였습니다.

2024 지리산 수련원 평상에서(맨 오른쪽 서정숙 님)
▲ 2024 지리산 수련원 평상에서(맨 오른쪽 서정숙 님)

지금 돌아보니 스님의 즉문즉설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도 죽음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죽어 괴롭다는 아내의 사연에 "남편이 죽었는데 왜 괴롭냐?"라는 스님의 대답에 깜짝 놀랐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로서 당연히 괴롭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스님의 답변을 귀 기울여 들어보면서,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괴로운 게 원래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이해했습니다. 그것도 마음이 일으키는 것임을 터득하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매사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제 습성과 연관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평소 사소한 것에 걱정이 많고, 어떤 사건이 있으면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렸을 적 술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어머니가 힘들었던 불안한 가정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형제보다 더 예민한 저의 기질에 기인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령, 기후변화로 평소와 달리 장대비가 퍼부으면, 저는 곧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이런 저에 대해 어떤 친구는 "기후 위기로 지구가 망하는 건 나중에 일어날 일이니 걱정하지 마라."고 합니다. 또 다른 친구는 "어차피 내일 일은 내일이 되어봐야 알 수 있으니 오늘에 충실하자."고 태연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느긋하게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일도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면서 극단적인 상상으로 치달았습니다.

천재적 구상

이런 제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 불교대학의 진행자나 반 담당 등의 봉사를 하면서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가야 할 의미를 모르겠다던 아들을 이제는 ‘독립적인 면이 강한 아이’로 바라봅니다. 또 최근 의료계 파업으로 국립대 병원이 비상 경영 체제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직원의 무급 휴가나 월급 감액의 사안이 나와도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국립대 병원은 망하지 않는다는 계산이 속으로 없지 않지만, 수행을 통해 '없어도 잘 살 수 있음'을, 또 '껄떡거리지 않는 삶이 좋은 삶'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서 저의 이전과 이후를 본 남편은 제 변화가 여름과 겨울의 차이처럼 뚜렷하다고 말해줍니다.

불교대학 진행자 소임을 하면서, 처음엔 불만 많고 남 탓만 하던 학생이 졸업할 때 가벼워지고 밝아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 모습에 정토회 불교대학 시스템이 대단함을 느낍니다. 또 <깨달음의 장>에서 체험한 저의 변화와 다른 사람들의 변화를 보면서, 안내자와 참가자 그리고 바라지장 봉사자의 세 축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힘에 감탄합니다. 이런 독창적인 구상을 한 스님은 '천재'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2023 용기내서 용기내 사전모임(윗 줄 가운데 서정숙 님)
▲ 2023 용기내서 용기내 사전모임(윗 줄 가운데 서정숙 님)

가벼운 삶

경전대학 다닐 무렵 초기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수행연습을 하면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니 회복이 빨랐던 경험이 있습니다. 또 직장 동료에게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속으론 ‘내가 옳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다가 이제는 ‘그럴 수 있지’하는 마음으로 바뀌니, 직장 생활도 편안합니다. 물론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있습니다.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을 회피하는 성향으로 3주간의 인도 성지 순례를 아직 엄두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라고 정하니 그것도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2024년 5월 경북 한국숲체원에서
▲ 2024년 5월 경북 한국숲체원에서

현재는 진주지회의 실천활동 담당으로 지리산 수련원에서 ‘생태 텃밭 놀이터’를 시작했습니다. 육아나 직장, 집안일에서 해방된 도반들과 함께 수련원 봉사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보람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정토회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도반들과 이런저런 생각과 마음을 나눕니다. 그러다 '의미 있고 재미도 있으면서 나와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일은 결국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봉사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러면 모두 가벼운 마음으로 박수치며 즐거워합니다. 정토회 활동은 저에게 삶이 가벼워지는 고마운 선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서정숙 님과의 인터뷰는 2-1-5차 천일결사 입재식이 있던 날 오후에 진행되었습니다.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인터뷰에 임하는 서정숙 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구와 대화하듯 제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불안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수행을 통해 가벼워지는 삶, 뾰족한 생각이 너그럽게 변하니 모두 별일 아닌 것이 되는 이치를 생생하게 보여준 서정숙 님에게 감사합니다.

글_이경분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관악지회)
편집_이혜수(서울제주지부 성동지회)

전체댓글 26

0/200

광원

수행담 잘 들었습니다.
"어떻게 살까? 봉사다" 말씀이 남습니다.

2024-06-09 08:26:21

김영하

어머~ 아시는분이~~~
항상 밝은미소로 편안해보이시던분인데^^
항상 불안해서 이것저것 상담하고 어리광도 부려보고. .......
그럴때 넌지시 명상을 해보라 하시던말씀이~~~
불대 초년생이라서 아직은 낯설고 어리둥절한데
아는분이 보여서 넘 반갑네요
개인적인소통, 유대관계는 안된다했는데
그래도 반갑네요^^
항상 편하게 들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24-05-31 07:48:24

최명란

서정숙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내기인 저는 서정숙님을 평소 부러위합니다 앞으로 수행이 얼마나 깊어지실지 옆에서 응원하고 저도 가볍게 그러나 부지런히 해 볼랍니다 용기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24-05-25 02:30:42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진주지회’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