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내 고집을 내려놓고
모두가 행복한 방식으로

최천호 님은 퇴사를 하며 삶에서 반복되는 괴로움을 해결해 보고자 백일출가에 도전하였습니다. 백일출가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업식을 많이 마주하게 되었는데요. 주어진 일을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실수해서 싫은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내 행동에 확신이 들지 않아 머뭇거리면 상대가 답답해하는 게 보이고, 어쩔 때는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한 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워지면서 마치 퇴사했던 회사에 다시 돌아간듯한 착각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과연 최천호 님은 백일출가를 하면서 자신의 괴로움을 어떤 방법으로 떨쳐버릴 수 있었을까요?

반복되는 괴로움

내 삶의 괴로움들이 반복되는 걸 자각하고 극복해보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았으나 종국엔 꺾이지 않는 내 밑마음만 보게 되었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방식, 새로운 길인 백일출가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1년 넘게 이해할 수도 없고, 도무지 이해되지도 않는 회사의 사장님과 사모님을 그저 참고 견뎌왔다. 이 문제의 원인은 머리로는 자신을 문제 삼았지만, 실상 마음으로는 상대를 탓하는 데 있었다.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로 10kg이 넘는 체중 감량과 탈모를 겪었고, 상대의 목소리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괴로움으로 몸과 마음은 이미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입사 후 몇 년간은 별문제가 없었다. 회사를 확장하려고 빚을 지다 보니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사장님과 사모님은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일거수일투족 나의 일하는 방식을 문제 삼았고, 불평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화내고 짜증 낼 때마다 소통과는 멀어져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참고 견디는 것이었다. 상대를 이해하려 기도도 해보고, 그 사람을 연구해보고 얼마나 괴로우면 이렇게까지 할까? 얼마나 답답하면 그럴까? 상대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겠다고 머리로는 이해하려 했지만 내 마음은 미움으로 변해갔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상대를 원망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초라해지는 자신을 또한 미워하게 되었다. 상대를 미워했다 나를 미워했다 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날들이었다.

상대에게 받은 화의 씨앗이 내게도 심어져, 어린 아들에게 똑같이 화내고 짜증을 내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내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상대를 탓하면서 상대를 인정하지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내게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다. 그런데도 꺾이지 않는 내 밑마음을 보니 다시 이런 괴로움이 반복될 것이 분명했고, 괴로움이 어느 순간 나타난 게 아니라 쭉 이어져왔으며,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퇴사를 고민할 즈음 회사에서 먼저 권고사직을 권유했다. 며칠 뒤 권고사직을 번복하고 다시 같이 일해보자는 사장님을 뒤로하고 퇴사했을 때 괴로움은 모두 끝난 줄로만 알았다.

부처님오신날( 맨 앞이 최천호 님)
▲ 부처님오신날( 맨 앞이 최천호 님)

백일출가에서 마주한 트라우마

만 배를 하고 백일출가 생활을 하면서 내 업식을 많이 보게 되었다. 잘하려는 마음, 가르치려는 마음, 잘 보이려는 마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며 조금씩 나에 대해 알아갔다. 공양 당번을 할 때 실수해서 싫은 소리를 듣게 될까 봐 걱정하다보니 내 행동에 확신이 들지 않아 머뭇거려지고 의기소침해졌다. 머뭇거리면 답답해하는 듯 보였고, 잘 몰라 물어보면 귀찮고 싫어하는 듯 보였고, 알려줄 때는 이래라저래라 함부로 대한다고 느껴졌다. 상대의 방식으로 물어본다지만 잘잘못을 따지며 취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다 보니 도반들이 자꾸 싫은 소리로 말하던 사장님과 사모님으로 보였다. 마치 꿈을 꾸듯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그때로 돌아간 착각이 들었다. 다시 만나지 않을 줄 알았던 그분들이 이곳에 있었고, 나는 퇴사한 회사에 가 있었다.

내 방식대로, 내 고집대로

점심 공양 시간에 밥과 양념을 비비는 보조역할을 할 때였다. 도반은 비비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라고 하였고 나는 좀 더 위생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에 고무장갑을 물에 씻었다. 고무장갑에 묻은 물은 소량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도반은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물 묻은 고무장갑으로 비비려고 하느냐고 버럭 화를 냈다. 화내는 상대를 보자 긴장되어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져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으니, 답답했는지 대답할 때까지 계속 화를 내며 물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벌써 씻어버린 걸 어떡하느냐고 응수했다. 말하고 나니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고, 내 식대로 듣고 행동하는 나의 업식이 보였다. 내게는 별일이 아닌데 상대에게는 별일처럼 보이는 일들이 그동안 많이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사장님과 사모님이 화내고 짜증을 낼 때도 내 감정에 가려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는 의도는 살펴보지 않고 내 식대로 해석했고, 매번 일들이 그렇게 반복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늘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우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닌 내가 원하는 일들로 채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구나!’ 꺾이지 않는 내 밑마음에는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내 원하는 대로 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을 잘하려고 하면서도, 내 방식대로 하고 있으니 돌아오는 것은 질책뿐이었다.

그렇게 나를 조금씩 알아가던 중 법사님께서 “놓치는 그 순간에도 분명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러자 상대의 성냄이나 짜증에 잠깐 머뭇거렸어도, 놓친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자책하느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당연한 방법을 알지 못했다.

연등행사 사전 준비(맨 앞 오른쪽이 최천호 님)
▲ 연등행사 사전 준비(맨 앞 오른쪽이 최천호 님)

상대방 마음 보기, 남이 잘 봐줘야 한다는 집착 놓기

일체의 장에서 도반들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의 말에 공감해주지 못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일으킨다. 자기 마음을 보라’고 얘기하면서 그 순간, 아내의 괴로운 마음에 공감해주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위로해달라는 아내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내의 말속에 담긴 의미를 조금 알 수 있었다. 그랬구나, 힘들었구나. 알아주지도 않고 공감해주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내 생각을 강요해서 비수에 꽂힌 듯 아팠을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법사님을 향한 도반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면서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고 해서 잘 봐주는 게 아님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았다. 나를 좋게 봐주는 분들도 혹은 안 좋게 봐주는 분들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그리고 남이 잘 봐준다고 내가 달라지는 게 아님을 자각하면서 그동안 쓸데없이 집착했음을 알게 되었다.

괴로움이 있어서 알게 된 것들

백일출가를 하면서 알게 된 건 괴로움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괴로움은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괴로울 때마다 자책하고 자신을 괴롭혔다. 괴로움은 늘 대상만 바뀌었을 뿐 반복되었다. 백일출가를 하고 나서 괴로움이 클수록 평소에 보이지 않던 내 문제와 집착이 두드러짐을 알았고, 그때가 바로 잘 살펴보아야 하는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문제 삼고,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실체가 또렷해졌다. 괴로움이 없었다면 정토회를 알 길이 없었고, 백일출가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괴로움 없이 돈을 잘 벌고 회사에서 인정받고 내가 잘난 줄 알고 있었다면, 항상 내가 옳은 줄 알고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보다 더 큰 괴로움에 빠졌을 것이다. 그래서 괴로움이 나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백일출가 회향식(오른쪽이 최천호 님)
▲ 백일출가 회향식(오른쪽이 최천호 님)

백일출가 생활의 좋은 점

첫째, 도반들과 함께 먹는 밥이 참 맛있고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찐다는 것이다. 하루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함께 하면 된다는 것에 놀랐다. 또 가벼워지는 공부를 하고 있어서 주말이 필요 없다. 그날그날 인연 따라 주어지는 일들을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둘째, 거울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24시간 붙어 생활하는 도반들이 있어 상대방의 모습이 거울이 되어 나의 모습을 비추어준다. 내가 놓치는 내 모습을 보게끔 한다. 그래서 정진 후 하루 나누기가 기다려진다.

셋째, 샛길이 없다는 것이다. 매일 법사님과의 대화시간을 통해 생활하면서 궁금한 점이나 헷갈리는 것들을 점검받고 수행적 관점을 잡을 수 있다. 법사님이 살펴봐주시고 수행자의 곧은 길로 안내해주시기에 샛길로 벗어날 수 없다.

넷째, 일 잘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요리 잘하려, 농사 잘하려, 청소 잘하려, 무엇이든 잘하려고 오는 일꾼들은 없다. 일을 통해 나를 내려놓는 공부를 하는 수행자들뿐이다. 하지만 모두 다 무슨 일이든 잘한다.

내려놓는 연습, 여전히 진행 중

인생에서 100일은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내 괴로움의 근원을 알게 되어 반복되던 괴로움을 멈출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내가 원하는 대로 열심히만 살아왔는데, 그 결과가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롭고, 가장 소중한 가족들이 괴로워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산다고 행복하지 않음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걸 선택해야 나도 주위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싫어하거나 불편한 일들도 가볍게 해보면서 내가 어떤 집착을 하고 있는지, 살피고 내려놓는 연습을 통해 다시 반복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수행자가 되고 싶다.

처음에는 하기 싫었는데 하고 나니 참 좋더라,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니 괴로움을 피할 수 있어서 참 좋더라, 넘어져도 즐거움으로 연습할 수 있어 참 좋더라. 이렇게 좋은 삶을 살다 보면 삶이 곧 행복임을 아는 수행자가 될 것이라 믿는다.

문경 수련원 대웅전 앞(뒷줄 오른쪽 첫 번째가 최천호 님)
▲ 문경 수련원 대웅전 앞(뒷줄 오른쪽 첫 번째가 최천호 님)


이 글은 <월간정토> 2023년 11월호에 수록된 최천호 님의 백일출가 수행담입니다.

글_최철호(백일출가 45기)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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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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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진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2024-06-19 13:19:36

자재왕

많은 이들, 특히 갈등 있어 괴로운 직업인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는, 수행담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06-08 16:19:07

평화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싫은소리 듣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시한번 나를 되돌아보고 참회하는 시간 주신 소감문 감사드립니다.
도반님, 행복하십시요.

2024-06-06 09: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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