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노원지회
마법 주문 "멈춰"

'정토행자의 하루' 수행담으로 내어놓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허은경 님. 다른 사람보다 수행이 잘 되어서가 아니라 정토회를 만나고 삶의 변화가 컸기에 주인공으로 선정된 것 같다는 겸손한 도반입니다. 이 도반의 수행 이야기, 지금 들어봅니다.

2019년 불교대학 남산순례 때(선글라스 낀 사람)
▲ 2019년 불교대학 남산순례 때(선글라스 낀 사람)

내가 만든 괴로움

저는 2019년 노원법당의 불교대학 가을학기에 다녔고, 올해 2월에 경전반까지 졸업하였습니다. 지금은 노원지회 일반 그룹에 속해 있습니다. 독서광이었던 저는 도서관 자원봉사와 4-5개의 독서 모임을 하며 수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모임에서 법륜스님의 《행복》을 추천했습니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술 마시는 남편 탓,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 아이 탓을 하면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3월, 현수막을 보고 행복학교1에 입학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저는 5남매의 둘째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여덟 살 때 연탄가스 사고로 오빠가 열네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이후로 언니와 저, 여동생 세 자매는 오빠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부모님의 불화로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막걸리 양조장 큰아들이었던 아버지는 평소에는 점잖고 유머가 있었으나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무서웠습니다. 감정 기복이 심한 어머니도 미웠습니다. 그리고 시골 출신의 어머니와 좋은 집안 출신의 할머니와의 갈등은 집안을 더욱더 시끄럽게 만들었습니다.

21년 가족휴가 중
▲ 21년 가족휴가 중

불안한 나날들

대학을 졸업하고 저에게 잘 맞추어 주는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건강한 두 딸을 낳았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아이 키우는 일이 힘들었고,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습니다. 저는 남 탓, 세상 탓을 하며 집에서는 남편과 싸우고, 밖에서는 조그마한 시비에도 싸우는 쌈닭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세상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욕망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아 물질적 욕구를 채우다 보니 신발이 넘쳐나고 옷, 가방, 스카프 등이 그득그득했습니다. 그 잠깐은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다시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불행의 쓰나미

어느덧 큰 아이에게 사춘기가 왔습니다. 이때 제 자신에게서 미워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면을 아이들에게까지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여기저기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10년 동안, 평생 읽어도 모자랄 만큼의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그때 만난 책이 《행복》이었고 행복학교에 입학한 것이 큰아이가 고3이 되던 해였습니다. 좋은 안내자 덕분으로 행복학교에서 두 달쯤 공부하던 때였습니다. 법정관리 중이던 아버지 회사가 파산선고를 받았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저는 한쪽 갑상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큰아이까지 대학 입시에 실패해 재수를 시작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 가족과 함께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

그런 상황에서도 생각보다 힘들거나 괴롭지 않았습니다. 욕심이 생겼습니다. 법륜스님의 책과 행복학교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여기에 불교대학과 경전반까지 공부하면 바로 부처님처럼 해탈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담당자들의 안내로 재미있게 공부했습니다. 학기 초반 법당에 온 묘수법사님에게 질문했다가 따끔한 답변을 들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천일결사2에 입재했습니다. 지금까지 온라인으로 일곱 번 정도 입재를 했는데, 거의 빠지지 않고 기도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몰래 했습니다. 아직 변화하지 못한 제 모습을 들켜서 비난받기 싫어서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기도했습니다. 점차 제가 화가 많고 욕심도 많고 집착도 심하고 주장도 강한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특히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이라는 껍데기를 씌워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이 컸습니다. 제 뜻대로 안 되면 화내고, 상대를 탓하며 자신과 가족들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기도할 때마다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화를 낼 때마다 저금통에 만 원, 이만 원씩 넣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바라는 것 없이 행하는 것이 무주상보시라는 것을 배우기 전이라, 몰래 보시하면 업식이 소멸되리라는 기대로 쌀을 법당에 무기명으로 보냈습니다.

21년 수요 수행법회(윗 줄 맨 오른쪽 은경님)
▲ 21년 수요 수행법회(윗 줄 맨 오른쪽 은경님)

바라는 것이 많아 괴로웠구나!

불교대학이 전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했고, 경전반도 온라인으로 입학하였습니다. 불교대학에서는 법당에서 공양하는 것이 좋았고, 법당에서 법회를 듣는 것도 경건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경전반이 온라인 수업이라는 것은 오히려 저에게 큰 장점이었습니다. 스님 법문 듣기를 좋아해서 수업 시간 외에도 강의를 반복적으로 들었습니다. 답답할 때 듣고 운동할 때 들으니 점점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금강경》 공부가 재미있어서 집중적으로 했는데, 드디어 무주상보시의 참뜻을 깨칠 수 있었습니다. ‘바라는 것이 많아 괴로웠구나’ 그리고 금강경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알아나갔습니다. ‘내 기준에서 보았구나. 나쁜 것도 없고, 잘못된 것도 없구나’

2019년 불교대학 남산순례 중 은경님
▲ 2019년 불교대학 남산순례 중 은경님

내 마음이 변하지 않게

제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쉬는 날에는 소파와 한 몸이 됩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제가 이제 그런 남편을 전과는 다른 눈으로 봅니다. ‘남편이 쉬고 싶구나’ 술을 먹지 말라고 전처럼 화내고 잔소리하는 대신, 김치 냉장고에 맥주를 채워놓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남편이, 술을 너무 많이 먹게 되니 술을 채워놓지 말라고 하지만, 제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계속 술을 채우고 있습니다.

“멈춰”

우리 가족에게는 마법 주문이 있습니다. 바로, 큰아이가 학교에서 배워온 “멈춰!”입니다. 큰딸과 옥신각신하다가 심하다 싶으면 작은딸이 “멈춰!”라고 외칩니다. 운동이 부족한 남편에게 분별심이 올라와 잔소리하다가도 아차 싶어 “멈춰!”라고 스스로 제동을 겁니다. 멈추라고 서로에게 외치는 순간, 웃음이 터져서 자동으로 분란이 멈춥니다. 유머까지 곁들여 함께 제 수행에 동참해준 가족, 그동안 잘 견디고 옆에 있어 준 착한 남편과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데도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웠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봉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은경님)
▲ 부처님 오신날 봉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은경님)

바라기만 하던 내가

하지만 저와 어머니와의 관계야말로 놀랍게 달라졌습니다.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안 챙겨도 된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어머니가 미웠습니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면 저도 모르게 화가 올라왔습니다. 혼자 있는 어머니를 만나면 화내고 싸우다가 안 만나면 신경 쓰이고 늘 불편했습니다. 지금은 두 가지가 다 편안합니다. 만나면 반갑고 안 만나도 '잘 계시겠지' 하는 편안한 마음입니다. 이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오면 걸림 없이, '저도 궁금했는데 먼저 전화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깜짝 놀랍니다. 원망하고 미워하던 부모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제가 여기 있을 수 있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바라기만 하고 욕심만 내고 살던 제가 감사한 마음으로 베풀려 하고 욕심을 내려놓으려 하니,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행복으로 가는 변화

저는 아직 먹고 입고 자는 것에 자유롭지 못하고 넘치게 소비하는 범부중생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 덜 끄달립니다. 타고난 본성이 부족하고 물질에 대한 욕심에 물들어 살던 사람도 수행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법문을 칼날로 삼아 제가 아닌 남편과 아이들에게 들이대기도 하고, 아버지 회사정리 문제를 제 기준으로 살피다가 형제들과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오래된 친구와 사회문제로 의견이 달라 불편할 때도 있지만 '나와 다름을 인정하여 편안해지는 연습'을 매일매일 하고 있습니다. 자주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예전처럼 세상 탓 남 탓하며 징징대지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나는 힘이 생겼습니다.

가을 불교대학 입학(가운뎃 줄 오른쪽 세번째)
▲ 가을 불교대학 입학(가운뎃 줄 오른쪽 세번째)

제 수준은 아직, 자신이 이기적이듯 상대도 이기적이고 자신이 안 변하듯 상대도 안 변한다는 것을 아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제 삶은 경전반 졸업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달라졌습니다. 세상 모든 인연의 공덕으로 살고 있음을 잊지 않습니다. 저를 잘 살펴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에 잘 쓰이겠다고 다짐합니다. 나아가 원래 관심을 갖던 환경문제를 정토회의 가르침대로 구체적인 실천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오프라인 법당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봉사와 보시에 최선을 다하는 수행자가 되고자 발원합니다.


정토회를 만나 삶이 바뀐 허은경 님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면서, 노력한 자가 웃을 수 있다는 진리는 수행자의 삶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삶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해답을 찾기 위한 허은경 님의 노력은 정토회에서 꽃을 피우고 결실을 보았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허은경 님은 괴로움에게 “멈춰!”라고 외칠 것입니다.

글_남궁천진(노원지회 희망리포터)
편집_이정선(진주지회)


  1. 행복학교 행복해지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종교적 의식이나 프로그램을 배제하고, 법륜스님의 행복 메시지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연습을 함께 하는 곳.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12강 구성으로 진행되고 있음.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2.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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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감사합니다

2022-05-15 19:38:52

혜당

.멈춰.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2021-08-26 12:16:30

육윤희

와~~ 내가 좋아하고 싸랑하는 허은경님이닷!!^^
멋져용♥

2021-08-22 11: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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