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구미지회
한알의 씨앗이 세상을 행복하게

정토회의 오랜 전설과 같은 홍제동 시절에 스님의 법문을 듣고 그 길로 출가하여 정토회와 인연이 되었다는 신정덕 님. '이 좋은 법을 누군가 함께 들을 수 있는 법당이 있었으면 하는 원'을 가지고 수행해 온 이야기. 한 알의 씨앗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려 이웃과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또 다른 씨앗이 되었구나 느낄 수 있었던 그 이야기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문경 선유동 연수원에서 도반과 함께(왼쪽)
▲ 문경 선유동 연수원에서 도반과 함께(왼쪽)

서로 다른 환경

어린 시절 농사짓는 부모님 아래 육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사랑받으며 자랐습니다. 남편과는 중매로 만났습니다. 첫인상은 과묵했는데, 친정어머니도 그런 남편의 성격을 좋아했습니다. 남편은 평소에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술을 마시면 큰 소리로 말을 많이 했습니다.

함께 가게 일을 해서인지 사사건건 간섭과 말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남편은 부모님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와서인지 돈에 대한 애착이 심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친정에서 돈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결혼 전에는 필요한 만큼 쓰고 살았는데, 결혼 후 꼭 써야 하는 돈을 남편에게 받아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때 지인과 함께 투자한 회사가 부도나서 돈을 못 받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는 잘했지만 큰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면서 삼수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저에 대한 원망이 되었고, 남편과 갈등은 깊어졌습니다.

JTS 거리모금
▲ JTS 거리모금

가출이 출가가 되다

1998년 어느 가을, 아침부터 전날 술 마신 남편과 다투고 그 자리를 피해 간 동생네 집. 동생이 재미있는 법회가 있다고 해서 함께 갔습니다. 그렇게 홍제동 정토 포교원에서 법륜스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스님 법문은 지금까지 몰랐던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습니다.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날 바로 그곳에서 7개월을 살았습니다. 남편에게 얘기하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가출이 출가가 되었습니다.

저는 불사팀 공양간1 일을 하면서 100일 법문을 들었습니다. 천일결사2 3차부터 입재해서 지금까지 꾸준하게 빠지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검소한 생활과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놀라웠습니다.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 얼굴이 아주 밝아서 사람 사는 맛이 났습니다. 스님의 법문 한마디 한마디는 친정아버지가 힘든 딸한테 일러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곳은 든든한 친정 집처럼 아주 좋았습니다. 정토회는 바로 마음의 고향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홍제동에서 만 배를 하고 < 깨달음의 장3 >에 다녀오면서 ‘내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운하고 괴롭고 힘들고 그때마다 ‘나는 없다’ ‘나는 미물 같은 존재다’ 그러면서 남은 생을 정토 행자로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활동을 열정적으로 못할 때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지금도 자주 수행을 점검하게 해줍니다. 참회의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남편이 잘못한 줄 알았는데 다 제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착한 여자로 살려고 애 많이 썼구나’ ‘지금부터 착한 여자가 아닌 못된 여자로 나를 찾겠다’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쫓겨나기도 하면서 1년을 보냈습니다.

통일의병들과 함께(오른쪽 두 번째)
▲ 통일의병들과 함께(오른쪽 두 번째)

아무 어려움이 없었으면 수행을 계속했을까?

김천에서 대구 수성 법당을 오가면서 정말 즐겁고 신나게 정토불교대학을 다녔습니다. 과수원 농사일을 했는데 밭에서 4시 반쯤 되면 흙먼지 옷만 갈아입고 씻지도 못하고 식사도 못 한 채 시간 맞춰 기차를 타야 했습니다. 마음의 양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식사를 하지 못해도 배도 고프지 않았습니다.

늦게 마치고 온 날은 전화기도 내려놓고 대문도 걸어 잠가서 밤 12시 넘은 시간에 지인 집에서 미쳤다는 소리 들으며 자기도 했습니다. 집에 《정토》 월간지가 오면 남편이 받아서 불살라 버렸고, 안 준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문경 수련원 갈 때도 미리 얘기하면 그날부터 힘드니까 가는 날 아침에 이야기하고 갔습니다. 그렇게 간 수련회에서는 무거운 짐을 벗어 놓고 언제나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또 가게 되고 계속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토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서울, 부산 어디든지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그 덕택에 지금은 다 내려놓고 편안하게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웃으며 살 수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는 없어서가 아니라 못 내어놓기 때문에 제가 벌어서 해결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어려움 없이 편하기만 했다면 수행을 계속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백중 천도재에서(왼쪽)
▲ 백중 천도재에서(왼쪽)

김천에 법당을 열면서

대구에서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이 좋은 법을 누군가와 함께 듣고 싶었습니다. 김천에도 법문을 들을 수 있는 법당을 열겠다는 원이 생겼습니다. 그 때, 법문 들을 수 있는 사람 다섯 명만 있으면 교재를 준다는 공문이 내려와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금강경4을 100일 동안 들을 수 있는 ‘금강 행자’ 도반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04년 금강경 법회를 시작으로 2005년 수행 법회를 했습니다. 2006년에는 정토불교대학, 경전반, 수행 법회까지 모든 소임을 혼자 했습니다.

컴퓨터가 미숙해서 진행이 잘되지 않을 때는 밖에 지나가는 학생이나 청년을 붙잡고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법륜 스님이 누군신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 가운데 소수 인원으로, 법당이 아닌 가정 법회로 10년을 운영했습니다.

그 후 아들이 회사에서 진 카드빚 때문에 돈을 벌어 갚아야 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정토회 일에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불교대학 입학생이 없었고 몸도 아파서 법당을 닫아야 하는 위기가 왔습니다.

그런데 처음 불교대학 졸업한 도반이 “제가 해보겠습니다.” 하면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2014년에 정식으로 가정 법회가 아닌 법당을 개원했습니다. 도반도 별로 없이 물려 주게 되었지만, 선뜻 맡아준 도반에게 고마웠습니다. 입학생이 많을 때는 너무 기뻐서 저녁에도 가서 간식을 챙기곤 하였습니다.

가문의 영광, 가문의 행복

다른 사람들은 남편에게 전법을 잘하는데 저는 아직 못하고 있어서 숙제입니다. 남편에 대한 기도문은 ‘부처님으로 모시겠습니다’입니다. 큰아들은 < 깨달음의 장 >에 다녀왔습니다. 딸은 실무자로 5년간 행자 생활을 했는데 사위도 정토 행자 생활하다 만났습니다. 작은아들은 100일 출가를 했습니다.

문경수련원 대의원대회에서 동생과 함께(오른쪽)
▲ 문경수련원 대의원대회에서 동생과 함께(오른쪽)

남동생은 교사로 정년 퇴임 후 가족과 함께 정토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번 대의원 회의 때는 여동생과 같이 대의원으로 참석했는데 도반들이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가문의 영광이 가문의 행복이 되었습니다.

정토회 다니면서 아주 지혜로워졌습니다. 지구환경을 생각하며 휴지, 일회용품 안 쓰기 등 꾸준히 실천합니다. 새벽에 몇몇 도반들과 같이 노트북 화상으로 함께 수행 정진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도모례원 봉사를 다니고 있는데 봉사자들 덕분에 요즘 쓸쓸해 보이던 건물에 활기가 느껴집니다. 여러 도반들의 안식처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최근에 많은 법사님도 탄생하였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담는 내내 호탕했던 웃음소리가 지금도 귀에 맴돕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웃음소리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혼자서 열정 하나로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에게 법을 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특별한 비법이 있으신가요?”라는 물음에 “아이고, 장판에 때만 묻혔는데요” 하면서 또 한 번 웃습니다. 수행과 봉사의 힘이라 여겨집니다. 신정덕 님과 아도모례원에서 함께 봉사하는 날을 떠 올려 봅니다.

글_이재선 희망리포터(구미지회)
편집_허란희(수지지회)


  1. 공양간수행과 생명공경 정신이 깃든 공간으로 정토법당 대중들의 안정적인 식생활을 보장하는 곳. 공양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수행으로, 정토회 공양간은 생태적이고 소박한 밥상을 지향함. 공양간 봉사자들은 "이 음식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입니다"라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과 환경을 살릴 수 있도록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  

  2.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3.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4.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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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미

정말 많은 일들이 있으셨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 하시는지요..
와... 그냥 진짜 멋지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도 나이가 좀 들었을때 이렇게 정토회와 함께 살아온 이야기를 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1-08-19 16:19:55

혜당

저도 홍제동 근처에 살았습니다..
그때 법륜스님 만났더라면 ...
지금이라도 만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2021-08-19 15:12:58

새씨앗

덕분에 정토회에서 잘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선배 도반님 감사합니다~

2021-08-19 13: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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