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노원지회
은혜 입은 현숙씨

김현숙 님은 김병조 님의 아내입니다. 김병조 님은 정토회 천일결사 입재식, 부처님오신날 등 정토회 여러 행사의 사회를 맡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입재식에서 통역을 맡고 있는 김지현 님의 어머니입니다. 오늘은, 누구의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주인공 김현숙 님을 소개합니다.

수요법회 사회 보는 현숙님
▲ 수요법회 사회 보는 현숙님

정토회와의 인연

저는 서울제주지부 노원지회 소속으로 현재 모둠에서 일요명상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딸이 유학 생활의 어려움을 겪던 중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2009년 딸의 권유로 <깨달음의> 장1을 다녀온 후, 2014년에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해서 경전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남편과 정토회와 인연은, 딸이 2006년 '좋은 벗들 10주년 기념식' 사회를 부탁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교사를 포기하고

저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장했습니다. 부모님은 다정했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늘 출가를 생각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자취방 룸메이트를 따라 성경 공부를 1년간 열심히 해보았으나 지식으로만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교육대학을 졸업한 후 발령을 기다리던 중, 별 생각 없이 선을 보았습니다. 상대의 솔직담백함에 끌려 결혼했고 그 사람이 44년간 늘 함께 해온 지금의 남편입니다. 몇 달 후 지방의 학교로 발령을 받았지만, 서울에서 신혼집을 꾸린 탓에 교사직을 포기했습니다. 그때부터 시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외국인 대상 영어즉문즉설 끝나고 조계사에서 딸과
▲ 외국인 대상 영어즉문즉설 끝나고 조계사에서 딸과

시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은 종부

남편은 가난한 집의 7대 종손이었고, 저는 종부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결혼 초부터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며느리가 교사가 되길 원했지만,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이유였습니다. 30여 년 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왔습니다. 종가였기에 매일 손님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자라온 환경과 너무 달랐고 사랑을 주던 친정과 너무 달랐습니다.

내어놓고 싶었던 며느리 자리

남편은 어머니가 열여섯 살에 시집을 와 10년 만에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행상하며 공부시키고 장학금으로 대학까지 마친, 공부 잘 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습니다. 또 남편은 어머니의 말이라면 곧 법으로 믿고 따르는 효자였고, 저는 그런 아들의 아내로 살았습니다. 최선을 다 했지만 저의 존재는 미약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급기야 그 자리를 내어놓고 출가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엄마로서 책임감과 부부의 도리를 저버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07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불교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2009년에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후에 바로 불교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이유는, 불교에 대해 잘 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불교 서적을 많이 읽어왔고, 남편은 25년간 불교방송을 진행하는 등 불교계와 인연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쯤 다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난데없이 심장이 마구 뛰면서 혈압이 200mmHg까지 치솟았고, 당장 죽을 것 같아 몇 번을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공황장애였습니다. 잠을 못 자니 소화 기능이 나빠지고 우울증세도 나타났습니다. 혼자 있기가 무서울 때는 친정 오빠 가게에 가서 앉아 있었습니다. 1년 반 정도 고생하다가 여성 호르몬제를 먹고 조금씩 나아지면서, 갱년기 증상으로 온 자율신경 실조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4년, 때마침 한국에 온 딸이 정토불교대학을 신청해 주었습니다.

JTS 빈곤퇴치 캠페인 도반들과 함께
▲ JTS 빈곤퇴치 캠페인 도반들과 함께

신자에서 수행자로

처음에는 천일결사기도 100일 중 3분의 1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오랜 습관을 바꾸기가 힘들었습니다. 혼자서 꾸준히 하기 힘드니 법당 도반들과 함께 수행하고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서로 깨워주고 법당에서 함께 정진하면서 점점 기도하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천일결사 밴드 대문 여는 소임을 자원해서 새벽 4시 30분에 올렸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습관이 되어 4시 30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집니다. 습관이 들 때까지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도반들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한편, 경전반을 졸업한 후에는 불교대학에서 돕는이를 두 번 했습니다. 남들 앞에 잘 나서지 않던 제가 수행법회 사회자도 맡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제가 수행을 이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거치면서 저는 서서히 불교 신자에서 수행자로 변화해 나갔습니다. 숭배의 대상이나 소원을 비는 대상이 아닌, 수행자로서의 부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유일한 선택은

세상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시어머니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강제위안부 차출을 피해 시집온 어린 소녀, 남편으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청춘, 10년을 기다려서야 아들의 어머니가 된 여인, 여자 혼자 몸으로 가장이 되어 집안을 이끌어온, 그 한 많은 여자의 인생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난 앞의 어머니의 유일한 선택은 기도였습니다.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4시에 하는 기도를 시작으로 하루에 네 번 기도했습니다. 꾸준한 수행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제는 알기에 존경심이 절로 우러났습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터는 스스로 곡기를 끊으셨습니다. 절대로 병원치료를 받지 않고 안방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말씀을 이전부터 남겨놓으신 터였습니다. 며느리의 입장을 헤아려 당신의 큰 딸에게도 그것을 일러둔 현명한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준비한 대로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저를 힘들게 했던 어머니는 사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여느 스님보다 깊이 있는 수행자였습니다. 어머니의 마지막날, 어머니의 일생이 아름답게 꽃을 피웠습니다.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정토회를 만났다면, 어머니를 편안한 마음으로 모셨을 것입니다. "어머님 존경합니다"

2017 한반도 평화대회에서 남편과
▲ 2017 한반도 평화대회에서 남편과

남편의 변화

딸은 명문고등학교와 명문대학교를 나와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런 딸이 워싱턴 정토회의 상근봉사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리라 믿고 기대했던 딸이었기에 남편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동북아 역사기행에서 남편이 법륜스님과 같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그 마음에 변화가 일었습니다. 그리고 인도성지순례 당시, 가까이에서 뵌 스님의 모습에 감화를 받고 스님께 귀의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딸에 대한 남편의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몇 명 읽지도 않는 논문 쓰느라 고생하고 학생들 몇 명한테 강의하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은 삶이라고 남편은 말합니다. 부모가 지지를 해주니 딸도 가벼운 마음으로 활동을 합니다. 남편이 이제는 "우리 부부가 복을 많이 지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공한 인생

남편은 제가 전보다 부드러워졌고, 욱하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가 남편을 임신했을 때의 상황, 전쟁통의 공포, 부모님의 불화로 결핍된 사랑 그리고 가난하게 살았던 경험 때문에 늘 불안해하고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남편도 편안해지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저는 매일 새벽에 천일결사 밴드 기도대문을 띄우고 랜선법당에 접속합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지체 없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나의 뒷모습에 대고 남편이 말합니다. “존경한다”라고. 남편에게 존경한다는 말을 들으니 성공한 인생입니다.

길벗의 JTS 빈곤퇴치캠페인에 가족과 함께
▲ 길벗의 JTS 빈곤퇴치캠페인에 가족과 함께

수행자 가족

우리 가족은 <깨달음의 장> 선후배들입니다. 남편, 아들, 며느리에 친정까지 합하면 열두 명이 다녀왔습니다. 막내여동생은 캐나다에 살면서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졸업했습니다. 남편이 <깨달음의 장>에 참가할 때, 딸과 제가 공양간 바라지를 했습니다. 바라지를 마치고 딸은 백 일 출가를 했습니다. 남편은 코로나 전에는 봄가을로 아들과 함께 길벗에서 하는 JTS 거리모금 사회를 봤습니다. 며느리와 손자도 캠페인에 동참했습니다. 작년에는 아들도 불교대학을 졸업했는데 자기는 아니라고 하지만 표정이 밝아졌음을 느낍니다. 여섯 살인 손자는 공양게송을 응용하여, "이 잠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많은 분들의 공덕을 생각하며 감사히 잘 자겠습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이라는 기도문을 만들었습니다. 남편은 손주가 자라면 3대가 함께 정토회 행사의 사회를 보는 것이 꿈입니다.

어머니를 이어 부끄럽지 않은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제게는 은인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유명 연예인임에도 그 누구보다 가정적이고 성실한 남편입니다. 갱년기 증상으로 응급실 침대에 누워 남편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남편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둘째는, 착하게 자라주고 덤으로 공부까지 잘해주었던 딸과 아들입니다. 나에게 법을 전한 딸에게 감사합니다. 셋째는, 기도의 공덕을 쌓아주신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공덕으로 시댁의 형제들도 무탈하게 살고 있으며, 저희와 같은 아파트에 모여 살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도 어머니의 자리를 이어 부끄럽지 않게 노후를 마무리할 것입니다. 넷째는, 진리를 깨우쳐주시는 스승입니다. 그리고 그 외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불법을 만나 수행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더 이상 과거를 괴로워하지 않고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출가자가 되겠다고 품었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행복한 수행자'이며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입니다.

며느리와 손주가 함께 하는 JTS캠페인
▲ 며느리와 손주가 함께 하는 JTS캠페인


김현숙 님과의 인터뷰 초반에는 전법의 씨앗이 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가 후반으로 진행될수록 시어머님의 공덕이 베풀어낸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김현숙 님은 시어머님의 귀중한 유산을 잃어버리지 않고 물려받았습니다. 더해서 그 유산을 열심히 불리고 있습니다. 행복한 현재가 과거의 괴로움을 역전했고, 현재가 과거를 행복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김현숙 님은 기특한 며느리, 진정한 종부입니다.

글_남궁천진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노원지회)
편집_이정선(경남지부 진주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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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갑

제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자식들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불공을 드리다 떠나셨는데,,,,저는 아직도 어머니의 유산을 불리기는 커녕 제대로 이어가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읽었지만 다시 읽으니 또다른 감동입니다.

2023-09-06 10:51:51

이승준

저 같은 초보 수행자라면 매일 보아야 할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2023-09-06 10:16:36

박은영

정말 진정한 종부네요! 감사합니다!

2023-09-06 09: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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