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문경공동체
게으른 적은 있어도 게으른 사람은 아니야

정토회원들의 마음의 고향, 문경 수련원에는 〈백일출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백일간 출가를 해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수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회사나 가정 생활로 인해 꿈도 꾸지 못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궁금증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일 출가 후 파견복귀 3년 정진을 마친 권순형님을 소개합니다. 권순형님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을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백일출가 졸업생 정진모임 3000배 파견복귀

저는 2015년 〈백일출가〉 26기를 졸업했습니다. 〈백일출가〉 졸업생의 정진 모임인 3000배 파견복귀 프로그램이 있는데, 우연히 그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2016년 9월부터 매달 첫째 주말마다 문경에서 도반들과 3000배 정진을 했습니다. 개인사정으로 몇 번 빠진 적도 있었지만, 이 정도로 절을 했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 3년 되는 올해까지만 해보겠다고 법사님께 말씀드렸고, 후임도 물색을 마쳤습니다.

3년을 마치고 보니 어느새 커져있는 나

오리엔테이션 중 권순형님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 오리엔테이션 중 권순형님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2019년 12월의 마지막 파견복귀를 준비하며 법사님께서 3년 평가를 해보라는 말씀에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제 자신이 별로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여전히 새벽정진은 잘 하지 않고 있고, 제 바램만큼 성실히 살고 있지 않고, 괴로워하며 살고 있는 점 역시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한 달에 한번 3000배 정진은 매일 하지 못하는 한 달 치 정진을 한꺼번에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공부도, 운동도, 일도, 할 때는 무리하면서까지 하고, 안하면 아예 하지 않고 퍼져 버리는 제 성향과 맞았던 점 그리고 자존심 상 ‘힘들어서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꾸역꾸역 이어가던 특유의 오기가 겹쳐서 3년을 채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3000배 정진을 하며 문득 백일출가 회향을 하고 집에 돌아갔을 때가 기억이 났습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지만 〈백일출가〉를 회향하고 오히려 더 힘들어져 정토회와 연을 끊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백일출가만 하면 마법처럼 짠 변할 줄 알고

2017년10월 파견복귀 도반과 밤줍기 일수행(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 2017년10월 파견복귀 도반과 밤줍기 일수행(뒷줄 왼쪽에서 두번째)

저는 〈백일출가〉를 저 자신을 바꾸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했고,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곳에 들어갔습니다. 백일동안 하라는 대로만 하면 짠하고 마법처럼 제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변할 줄 알았나 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 배도 제일 빨리 했고 백일동안 열심히 생활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항상 그런 욕심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향 후 집에 돌아갔을 때 다시 예전처럼 무기력한 생활로 돌아가는 제 모습을 보며 실망도 많이 했고 난 안되나 보다 하고 우울해하기도 했습니다.

울산의 조선소에서 선박배관공 일을 하다 그만두고 백일출가를 들어왔었는데, 회향 후 다시 나와서 일해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제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으나 백일출가를 갔다 오기 전이랑 후의 제 마음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오직 그 이유만으로 6개월을 다시 일했습니다. 그만큼 백일출가에 대한 제 기대심이 컸었나 봅니다.

3달에서 시작한 3년

2017년10월 파견복귀팀과 권순형님(오른쪽 두번째)
▲ 2017년10월 파견복귀팀과 권순형님(오른쪽 두번째)

더 늦기 전에 기술이라도 배워야 되겠다 싶어 무작정 일을 그만뒀는데, 사실 별다른 대책이 없었고 마음만 조급했습니다. 어떻게 먹고 살지하는 절박한 마음에 국비지원 학원도 검색했고, 그러다 전기 분야의 기사자격증을 따보고자 했는데 전혀 모르는 분야라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 때 파견복귀 전임자였던 담당 김재우 도반이 보낸 파견복귀 홍보문자를 보게 되었고, 3000배 정진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싶어 참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김재우 도반이 개인 사정으로 저에게 3달만 파견복귀 소임을 맡아 달라 했습니다. 거절할 수가 없어 ‘그래! 3달만 하면 되겠지’ 하고 덜컥 맡아버렸는데, 그 3달이 3년이 되었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3년을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겁니다.

그 3년 동안 저에게 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평생 열심히 해본 적 없던 공부도 절실히 해봤고, 엄두가 안 났던 자격증도 땄고,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그걸 이용해 직장도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집에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집돌이인 제가 1년 반 넘게 집을 나와 기숙사, 숙소 생활을 문제없이 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3년 동안 울산에서 서울에서 반, 경기에서 반의 사람들을 태우고 문경으로 다녔습니다. 덕분에 운전 실력도 많이 늘었고, 이젠 고속도로 운행과 오르막길도 많이 편해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저 나름대로 얻은 게 많다 싶기도 합니다.

“게으른 적은 있어도 게으른 사람은 아니야“

2018년 8월 파견복귀 단체 (앞쪽왼쪽 첫번째)
▲ 2018년 8월 파견복귀 단체 (앞쪽왼쪽 첫번째)

파견복귀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8년 인도성지순례에 다녀온 것과 만 배를 한 번 더 도전한 것입니다. 둘 다 파견복귀를 안 했다면 절대 못했을 인연이었습니다. 인도를 갔다 온 후 무슨 신심이 났는지 만 배를 한 번 더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났습니다. 그 당시 인도에서 스님께 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의 영향, 그리고 자격증을 막 딴 후 취업에 대한 고민이 컸었나 봅니다.

1월말 혼자 문경에 가서 만 배를 마치고 묘수법사님과 1:1 차담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제 자신이 많이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하지를 않아 손해 본 적이 많았는데, 그 점이 참 힘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법사님께서 "아니다. 게으른 사람이 아니야. 게으른 적이 있기는 해도 게으른 사람은 아니야" 라고 말해줬습니다. '맞다. 제법이 공한 것처럼 원래 게으른 사람도 없고 부지런한 사람도 없는데. 나는 게으른 사람도 아니고 부지런한 사람도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게으른 사람이라고 상을 짓고 살았었구나.' 그 사로 잡힘을 알고나니 시야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법사님의 그 말씀은 저에게 평생 잊지 못할 힘이 되는 깨우침이었고, 그 때부터 저를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변했던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 제 자신을 바라보니, 조금씩 긍정적이 되어가고 상황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기도가 준 행복의 눈물

제 자신이 가장 변했다고 느낀 순간은 전임 소임자였던 김재우 도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순간이었습니다. 처음에 이런 힘든 소임을 줘서 원망스럽게 느껴졌던 상대에게 ‘이런 인연을 만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백일출가〉 회향 후 정토회와 연이 끊어질 수 있었는데 그 때 내게 문자를 보내줘서, 파견복귀를 맡겨줘서 이런 인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강정완님, 그리고 퇴사 후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 주신 모든 인연에게까지 감사하는 기도를 하며 이런 마음을 내는 제 자신이 무언가 변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겨울에 저녁 예불 후 홀로 대웅전에서 절을 하며 그래도 뭔가 바꿔보겠다고 참 애쓰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가 대견해 울음이 나온 적도 있습니다. 그 눈물은 뭔가 치유가 되는 눈물이었고, 스스로를 처음으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파견복귀 3년 회향후 법사님께 책 선물 받는 모습
▲ 파견복귀 3년 회향후 법사님께 책 선물 받는 모습

또 한번의 백일출가

돌이켜보면 파견복귀는 〈백일출가〉 후 제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백일출가〉였습니다. 또한 정토회와 계속 연을 이어줘 평생을 함께 할 도반들을 알게 된 고마운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이걸 하지 않았다면 제 성향상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길 싫어 분명 잠수를 탔을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과제가 있고,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하고, 제 자신이 마음에 안들 때도 많지만,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가볍습니다. 3년 동안의 경험처럼 잘될 거라는 긍정의 에너지가 밑바닥에 깔려있는 느낌이랄까요.

많은 분들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인도에서 스님께 했던 질문, 제 평생의 소망인 '더 나은 사람, 더 괜찮은 사람이 되겠습니다'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저는 죽어도 새사람이 되고 죽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여기서 행복하겠습니다. 과거에 제가 어떻게 살았든 지금이 중요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지를 중요하게 여기겠습니다.

3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파견복귀 참여자를 챙겨주며, 차담해주신 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음 내어 정진하러 왔지만 절수행이 힘든 도반들에게 고라니밭에서 비닐하우스에서 농사로 흙을 만지고, 수확의 기쁨과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해준 동지 같은 김정숙님과 행자원 도반들, 늘 반겨주는 상주 대중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 혼자 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이 더 행복해 지시기를 빕니다. 저도 잘 살겠습니다.


권순형님의 수행담을 보며 지난 날 저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휘리릭하고 지나갑니다. 왜 그리 완벽한 모습이고 싶었을까요? 저에게 보이는 안 좋은 모습들이 바뀌기를 바라고, 바꾸기 위해 수행정진을 하며 그렇게 스스로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렇지. 제법이 공한데' 순형님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법의 이치를 알아가고, 스스로가 괴로움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였습니다.

글_권순형(문경공동체)
편집_김세영(인천경기서부지부 일산지회)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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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심

우연히 읽은 글에 눈물이 나네요
게으른 적은 있지만 게으른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더나은 사람이되려 애쓰고 있다는 글이 마음에 와닿네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2022-03-30 16:54:41

YK

감동입니다. 좋은 경험담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2022-03-09 17:20:01

김은주

권순형 님 응원합니다. 진솔한 글 감동입니다.

2022-03-06 05: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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