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문경공동체
백일출가 만 배 하는 날
발바닥에 땀나는 스텝들의 하루

문경 정토 수련원은 수행 공동체로 생활하며 살림팀, 수련팀, 행자원 부서로 나눠 함께 공유하며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백일출가를 마친 후, 행자원 부서에서 “백일출가 스텝”으로 상근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의 생활이 더 활발하고, 힘이 넘친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백일출가 프로그램을 들어가기 위한 첫 관문, <만배 하는 날> 백일출가 스텝의 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일출가 프로그램 회향 후 문경 공동체에 남아서 상근 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들
▲ 백일출가 프로그램 회향 후 문경 공동체에 남아서 상근 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들

만 배 총괄자(이희영) 일기. 2020. 09. 15. 만 배 첫날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백일출가를 통해서 걱정과 생각이 많은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스텝 업무 분장을 할 때 자신은 없지만 내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만 배 담당을 하겠다고 자원했다. 백일출가 프로그램의 꽃 <만 배> 담당을 맡게 되어 걱정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기획과 준비를 마쳤다.

만 배 시작 전 셋팅 된 대 강당의 모습
▲ 만 배 시작 전 셋팅 된 대 강당의 모습

내일은 드디어 백일출가를 지원한 행자님들이 격리 생활을 끝내고 만 배를 하는 날이다. 나는 오늘도 걱정되는 마음에 만배장(대강당)에 가서 만 배 셋팅을 점검했다. 만 배 할 때 방석의 간격이 적절한지, 정수기의 물 보충 양이 충분한지, 만 배 할 때 땀을 많이 흘려서 염분이 부족하지는 않을지, 죽염도 배치해 놓았다.

만 배장 뒤에서 총 관리를 하고 있는 스텝의 모습
▲ 만 배장 뒤에서 총 관리를 하고 있는 스텝의 모습

묵언으로 만 배를 시작하는 행자님들의 모습을 보며 엄마가 된 기분이다. 행자님들의 표정만으로 어디가 불편한지 살피게 되고, 공양 시간 때 밥을 너무 적게 먹지는 않은지 걱정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오늘을 되돌아보며 만 배하는 행자님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엄마처럼 살피며 걱정하는 내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만 배 바라지(최병진) 일기. 2020. 09. 16. 만 배 둘째 날

내가 백일출가 때, 만 배 했던 날이 생각난다. 만 배 둘째 날 삼천 배를 넘길 무렵, 모든 것이 고통스러워 포기 할 생각에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 내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후 정신을 차렸을 때 뒤에서 들려오는 관음정근 소리. 함께 한다. 같이 한다. 밀어 주고 끌어 주는 그 부드럽지만 우렁찬 관음정근과 목탁 소리에 나의 만 배는 깔딱 고개를 넘겼다. 포기 하지 않고 한배 한배 넘겼던 그 기억이 스쳐 지나가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렁차게 관음 정근 목탁을 치며 바라지하는 모습
▲ 우렁차게 관음 정근 목탁을 치며 바라지하는 모습

만 배 둘째 날, 한 행자님이 만 배를 하며 후들후들 떨려 하는 모습이 계속 신경 쓰인다. 내가 그때 만 배를 포기했다면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과 자유로운 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자님이 만 배를 꼭 통과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만 배 할 때 내 뒤에서 관음정근으로 기도하셨던 분들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구나. 내가 그 입장이 되니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해가 지고 한 사람씩 만 배장을 떠나 자러 가는데 한 행자님은 절 숫자가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남아서 절을 했다. 얼마나 초조할까? 내가 만 배했던 그때 모습이 떠올라 위로해 주고 싶었다. 나는 행자님 옆에 방석을 두고 같이 절을 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런 것이구나. 나는 내가 아니라 우리로 연계되어 있구나. 행자님이 곧 나고. 내가 곧 지금껏 나를 살게 해준 많은 인연들이구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눈물이 났다. 우리가 다 관세음보살이구나.'

수련원 공양주(유영근) 일기. 2020. 09. 17. 만배 마지막 날

백일출가 행자님들이 들어오면서 문경 수련원에 생활하는 인원이 늘었다. 공양 준비도 기존보다 많이 해야 하고, 사용 할 이불과 요를 세탁하고 준비해야 한다. 법복도 개수에 맞춰 다려야 한다. 새 사람들이 오게 되면 신경 써야 할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생각하면서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만 배 마지막 날 뒤에서 만 배 바라지 하는 모습(앞쪽 흰색 겉옷이 유영근 님)
▲ 만 배 마지막 날 뒤에서 만 배 바라지 하는 모습(앞쪽 흰색 겉옷이 유영근 님)

만 배 마지막 날. 오늘 아침 법사님께서 여는 모임 때, 말씀하신 것이 인상 깊다. “큰 마음을 내어 백일출가를 지원해 만 배를 하는 행자님들을 통해서 우리도 다시 새롭게 발심하는 계기를 만들어 봅시다.” 백일출가를 회향하고 상근 생활을 하면서 내가 놓치고 있던 내 관점을 다시 잡고, 공부하는 마음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감사했다. 만 배를 하고 있는 행자님들이 혹시 너무 긴장해서 소화가 안 되지 않을까? 문경 수련원의 공양주 소임을 하면서 오늘 점심은 기름지지 않고, 속이 거북하지 않은 메뉴로 더 신중하게 정하니 뿌듯한 마음이 든다.

만 배 마지막 날 백일출가 행자님이 절 하고 있는 모습
▲ 만 배 마지막 날 백일출가 행자님이 절 하고 있는 모습

백일출가 전원 만 배 통과. 이번 행자님들은 내가 지은 밥 심으로 만 배를 전원 통과하지 않았을까? 백일출가 행자님들과 새 가족이 되어 함께 100일을 보낼 생각을 하니 설렌다.


문경 정토 수련원에서 상근 활동을 하는 법우님들의 일기를 잘 들었습니다. 백일출가 행자님들이 만 배를 해내기까지 보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 혼자였다면 불가능한 만 배. 우리가 함께 해냄으로써 모두가 하나 되는 것을 느낍니다. 함께 가는 길이라서 더 없이 든든하고, 연기법을 체험 할 수 있어 따뜻했습니다.

41기 모집 백일출가
▲ 41기 모집 백일출가

글_이희영, 최병진, 유영근(문경공동체)
정리_이희영(문경공동체)
편집_권영숙(정토회 홈페이지 운영팀)

전체댓글 28

0/200

자재왕

와! 감동, 감동입니다. 혼탁한 사바세계에 피어난 연꽃송이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020-12-28 08:00:31

무애안

백일바라지 스텝님~~ 나눔이 고맙습니다~~
정원행자님도 고맙습니다^^

2020-12-20 10:46:38

정정숙

행자님들의 마음으로 한 사람을 일으키고, 또 한 가정을 일으키게 되고, 그의 이웃들을 일으켜주십니다. 행자님들의 감동적인 마음에 뭉클하고도 수행자로서 바르게 정진하렵니다.

2020-12-18 2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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