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향명법사님 두 번째 이야기
삶을 회향하는 날까지

향명법사님의 첫 번째 이야기 감명있으셨지요. 아버지 없는 모습을 들키기 싫어 막 뛰어가는 어린 친구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젊은 시절 ‘맞다, 틀리다’ 두 가지 기준으로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며 살았던 분이, 권위보다 스스럼없이 경험을 나누는 모습에서 소통에 얼마나 진심인지 전해졌습니다. 내친김에 제 고민도 한 자락 내어볼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법사님의 두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대화의 힘

저는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옆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도 티를 내지 않으면 눈치가 부족합니다.

국장 소임을 맡고 있을 때, 전 그 도반이 참 편했습니다. “국장님은 컴퓨터로 작업 못하면서 보는 눈만 높아가지고”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편한 사이였습니다. 저와 같이 일을 할 때 제가 하자는 대로 다하고 불만이 없길래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힘들었다는 소리에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상대의 입장은 저와 달랐습니다. 상대는 거절을 못하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정말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좋았던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2017년 2월 문경정토수련원에서 통일의병 발대식
▲ 2017년 2월 문경정토수련원에서 통일의병 발대식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직접 만났습니다. 서로의 입장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자 그제야 도반은 속에 담아둔 말을 꺼냈습니다. 조급증이 있는 저와 일하는 속도에 차이가 있었고, 일을 받아들임도 달랐습니다. 공부 잘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 삶을 살았던 도반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해하려고 하니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저와는 달랐지만 공감을 나누며 더 깊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덕분인지 어느날 불쑥 그 도반이 집에 찾아왔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를 받고 식구들보다 먼저 저에게 와 알렸습니다. 수술 후 전화를 했더니 목소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제 마음도 무거웠지만 “지금 죽을 만큼 복 짓지 않았어.” 한마디 했습니다. 도반은 울다가 웃다가 했습니다. 나중에 도반이 말하길 그 말이 크게 위안이 되었답니다. 수술과 항암치료 잘 받고 지금은 회복 중에 있는 도반이 고맙습니다.

정토회에 들어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거치며 자연히 만남의 기회가 늘어 대인관계가 넓어졌습니다. 소임을 맡으니 사람들과의 교류가 더 많아졌습니다. 내가 불편하면 상대도 불편합니다. 서로의 입장 차이는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늘 공감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 저의 방식은 소통입니다.

2001년 여름 정토회 전체 자원활동가 수련(앉아있는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향명법사님)
▲ 2001년 여름 정토회 전체 자원활동가 수련(앉아있는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향명법사님)

도반에게 듣고 제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세 번 똑같이 말하면 그것은 주장하는 것임을 알고 멈춥니다.’ 나의 태도를 돌아보았습니다. 내 의견만을 주장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주장으로 인해 상대 의견이 무시되거나 거절되지는 않았는지, 상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상처를 주고도 모르고 있는지, 서로 공감할 수 있도록 충분히 대화했는지. 내 의견을 반복하는 것이 내 고집대로 하고자 하는 독단이며 상대방 의견을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모두 원만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음을 인정하고 수용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괴롭지 않아야 함을 명심합니다. ‘중도’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라는 의미임을 마음 깊이 새기며 가볍게 소통에 임합니다.

왜 무조건 '그냥 합니다'일까?

백 프로 자원봉사로 운영이 되는 정토회라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손해 보는 것도 싫지만 민폐 끼치는 것은 더 싫던 차에 동래법당에서 도서 판매를 권유받고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첫 소임이었습니다. 소임을 하다 보니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안 해본걸 하라 하면 전 일단 안 합니다. 어렵겠다는 계산이 들면 딱딱한 태도로 싫은 내색을 하거나,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합니다.

동래법당 총무소임을 제의받았을 때 일입니다. 법륜스님 부름에 방으로 갔습니다. 스님이 “동래법당 총무한다 그랬다고?” 하시길래 제가 고개를 저으며 방석에 앉으려 하니 “나가라” 하십니다. 다 앉지도 못하고 방에서 나왔습니다. ‘나가라’ 해서 나왔는데 마음에 걸렸습니다. 삼일 동안 고민하다 “제가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2017년 8월 동북아 역사기행
▲ 2017년 8월 동북아 역사기행

정토회에 온 초창기 땐 소임을 맡는 선배 도반들이 하는 ‘예, 하고 그냥 합니다.’란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구시렁댔습니다. '사람이 생각과 감정이 있는데 왜 무조건 그냥 합니다지? 나는 그렇게 못한다.' 반항이 일었습니다.

인상 깊게 본 즉문즉설이 있습니다. 해외 어느 법당에서 총무소임을 제의받은 질문자는 안 하겠다 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계속 총무 하기 싫다는 질문자에게 스님은 “그냥 말이라도 하겠습니다.” 해보라 했습니다. 싫다고 대답하는 질문자, 스님은 괜찮으니깐 말만 해보라고 또 권했습니다. 안 해도 되니 말만 해보라 했습니다. 질문자는 울고불고 안 할 건데 왜 자꾸 대답하라고 하냐며 실랑이하다 반강제적으로 질문자는 “네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제 눈에 갑자기 환해진 질문자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질문자는 갇혀있던 마음에서 해방된 듯한 목소리와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와닿은 바가 컸습니다. 저 역시 ‘그냥 합니다’가 정말 안 되는 사람으로 ‘그냥 왜 해야 돼? 내가 그것까지 해야 돼?’ 그냥 하지 않고 제 식대로 계산적으로 했습니다. 잘 못해도 그냥 하다 보면 엎어지고 자빠지며 배우면서 하는 것을, 저에게는 그게 참 어려웠습니다. 아니 두려웠습니다. 이미 그전에 두려운 걸 회피했습니다. 잘 못해도 해보자, 그냥 해보는 과정을 겪으며 엎치락 뒤치락을 연습했습니다.

2002년 동래법당에서 환경생태학교
▲ 2002년 동래법당에서 환경생태학교

국장 소임을 맡으면서 그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이젠 왜 ‘그냥 합니다’여야 하는지 잘 압니다. 그냥 하지 않고 자기 계산대로 따지고 재서 한다면 그 깜냥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변화와 성장 없이 한계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압니다. 이제는 거부하는 마음이 일면 이는 줄 알아차리고, 되던 안 되던 일단 ‘한다’는 자세로 임합니다. 소임을 하는 동안 넘어지기도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게 다 경험’이라는 지도 법사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언제나 제 수행의 동력입니다.

나눔과 얻음

바로 받아들이지 않는 비판적인 저의 성격은 두려움과 불안감이었음을 마주합니다.

국장 소임할 때 영남권에 행사가 많았습니다. 경주 남산순례 1년에 두 번, 두북 어르신 잔치 1년에 두 번, 애광원 나들이 1년에 두 번과 같은 정기적 행사 외에 일이 많았는데 돌이켜보니 저에게 좋은 기회였습니다. 일정들이 밀려오면 거절은 못하고 거부하는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표출되곤 했는데 두려움이 일을 하면서 서서히 줄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잘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적절하게 분배하면 됩니다. 소임을 통해 일은 저 혼자서 해야 하는 부담이 아니라 어려운 건 논의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풀어나가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전법활동의 확대를 위해서 소임을 늘려 돌아가면서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소임은 정토회 운영과 학생 파악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회원 간 이해의 폭도 넓어질 것입니다. 또 일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능력과 소질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도 소임을 통해 계획에서부터 진행까지 시간을 들여 관련된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또 구하며 미리미리 챙기는 소질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대략적인 가늠을 할 수 있는 장점도 발견했습니다.

소임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웁니다. 잘하지는 못하고 따라가는 정도지만 컴퓨터 활용이 일상생활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덕분에 가끔 ‘내가 이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 아닌 조금 앞서 가는 사람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흐뭇합니다.

2017년 부처님오신 날
▲ 2017년 부처님오신 날

전업주부로 집안일하는 것에만 머물렀다면 컴퓨터를 다룰 줄도 몰랐을 것이고, 구글로 다양한 자료를 찾거나 만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불교대학이나 경전대학 봉사를 하면서 나이가 천차만별인 학생들과 소통하며 가정을 벗어난 다른 사회를 경험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모여 남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한 마음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말도 강약을 조절하면서 전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 수업을 참관하며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상대의 마음과 수행 생활의 정도에 맞춘 깊이 있는 대화를 고민하고, ‘스님의 하루’로 공부함은 저를 성장시킨 큰 거름이었습니다.

법사 소임으로 정담회와 간담회에 참석해 회원들과 대화를 많이 나눕니다. 모두 말도 잘하고 수행생활에 대한 궁금증도 다양합니다. 선배법사님들이 그렇게 했듯이 어떻게 도반들의 수행정진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심합니다. 저는 비유하거나 긴 설명보다 그저 솔직하게 제 경험을 꺼내 놓습니다.

“여러분들보다 잘난 것도 잘하는 일도 없지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입재하고 처음엔 염주 한 번 안 돌렸지만, 그냥 기도를 못해도 입재하고 회향하면서 그 끈을 꼭 쥐고 계속 가니까, 이것도 나한테 들어오고, 저것도 들어왔습니다. 몰랐던 것들, 깨닫지 못했던 것들도 알게 되는 날이 왔습니다.” 함께 끈 놓지 말고 가자며 독려하는 순간은 참 행복합니다. 도반들의 얼굴도 편안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1983년 6월 친정식구들과(맨 앞 향명법사님)
▲ 1983년 6월 친정식구들과(맨 앞 향명법사님)

가정에서의 행복

남편이 젊은 나이에 명예 퇴직한 후, 줄어든 수입에 맞춰 사는 것으로 지혜롭게 살았습니다. 동생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지 저의 경제 사정을 염려해 용돈을 보내주거나 여행 갈 때 함께 가자며 청하곤 했습니다. 동생들의 배려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떤 날엔 내 형편이나 일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해 짜증을 낼 때도 있었습니다. 동생에게서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을 땐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지만, 덕분에 스스로를 더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날을 비롯 지난날을 돌아보니 여동생의 말이 옳았습니다. 제 눈의 대들보를 보지 못한 어리석은 언니였습니다. ‘내 삶의 몫을 다하고 산다는 게 쉽지 않구나!’ 서로 주고받고 상부상조하는 형제들이 있어 든든하고 지금은 동생들의 호의를 감사함으로 받는 연습 중입니다.

최근에 제가 집에 불을 낼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보리차 물을 불에 올려놓고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비상이라 못 들어온다던 아들이 마침 퇴근해 와 주전자의 나무 손잡이가 불붙기 직전에 상황을 수습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들은 목청을 높여 걱정스러움을 잔소리로 마구 쏟아냈습니다. 저는 지은 죄가 있는지라 참다가 그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아들을 보니 부드러워진 것이 숙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미안해. 그렇게 될 줄 몰랐어. 네가 어제 안 왔으면 어쩔 뻔했니.”하니 그제야 저도 아들도 마음이 괜찮아졌습니다. 전날 아들이 화내던 순간엔 가족이라 깨어있지 못했지만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해야 싸움이 줄어드는지 압니다.

딸은 중학생 때 엄마가 변기 물 내리는 거, 냉장고 사용하는 거, 비닐 사용 안 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그러는 엄마가 불편은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엄마가 좋아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커서도 엄마가 이렇게 사는 게 좋다고 합니다. 수행 덕분입니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무지와 잘못을 들여다보며 성찰을 놓지 않으니 다 큰 자식들과도 대화가 끊어지지 않고 잘 지냅니다.

2019년 10월 연수원에서 통일 특위 정일사 회향(앞줄 가운데 향명법사님)
▲ 2019년 10월 연수원에서 통일 특위 정일사 회향(앞줄 가운데 향명법사님)

특별한 원

저는 특별히 다른 원은 없습니다. 제 생활의 1순위는 정토회 수행자입니다. 정토회 목표가 곧 제 목표입니다. 개인 일정과 정토회 일정이 겹치는 경우 대개는 정토회 일정에 따라 움직입니다. 아들이 논산훈련소 들어가고 100일 후 면회날이었습니다. 그날은 정토행자대회날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갈등이 일었습니다. 그래도 국장소임자로 영남권 사업발표를 담당하고 있어 아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물론 불가피한 가족 일정인 경우는 법사단의 양해를 구해서 조절합니다.

최근에 근처 법당 소속 노도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토회 초창기부터 활동과 보시를 오래 한 노도반들을 온라인 정토회가 되면서 전보다 못 챙기는 듯합니다. 종종 정토회에서 만난 도반이 병가로 활동을 쉬거나 가족의 죽음으로 한동안 볼 수 없을 때면 마음이 불편합니다. 요즘 부쩍 회원들이 궂은 일로 고통스럽고 외로울 때 그들을 주위에서 살피고 챙김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정토회 장기계획에 이 부분에 대한 계획이 있는 줄 압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물론이고 후대를 위해 제가 미력이나마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돌아보니 법 만나 수행 보시 봉사로 살 수 있는 일상이 보람이고 행복이었습니다. 삶을 회향하는 날까지 수행자로 꾸준하겠습니다.


2024년 12월 8일 해운대법당에서 향명법사님 인터뷰
▲ 2024년 12월 8일 해운대법당에서 향명법사님 인터뷰

‘지금도 제 교재는 스님의 하루예요.’ 질문자의 의중을 깊이 파악한 스님의 적확한 답변을 자세히 읽는다는 향명법사님의 말씀을 듣는 제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늘 고민하지만 두려워 밀쳐두었던 일, 피하고 싶은 문제를 풀 열쇠를 찾은 것 같습니다. 행복과 자유에 한층 가까워진 하루였습니다. -이혜정 희망리포터

한 도반의 이야기가 인상깊게 남아있습니다. '발 씻다가 손까지 씻었다.' 법사님과의 인터뷰와 기사 쓰기가 저에게 그랬습니다. 영화의 장면처럼 보이고 들렸던 법사님의 이야기에 저의 정토회 생활을 돌아봅니다. 일단 해보기, 망설이는 마음에 한 줄 바람이 붑니다. -허승화 희망리포터

글_이혜정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금정지회)
허승화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사하지회)
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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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화

몇 년 전 내 식으로 수행하다 보니 몸을 못 챙겨 힘들어 할 때 지회장을 맡고 있던 오랜 도반이 내가 너무 걱정됐는지 만난적도 없었던 향명법사님을 전화로 연결시켜 1시간 가량 통화한 적이 있었습니다. 통화가 끝날때쯤 내가 못보던 내모습을 말씀해주셔서 '아 내가 나를 못챙겼구나!!'하고 깨달아졌습니다. 향명법사님~그때 너무 감사했습니다^^덕분에 건강해졌어요~

2025-03-09 15:10:06

김태우

네 하고 그냥 합니다.
이 말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나의 깜양에 따라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재단하고 망설이기보다 먼저 해보는 긍정적 자세를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습니다.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2025-03-09 19:04:05

감자

남에게 들으면 참 쉬운데 내가 하려니 반발심이 들고 어려운 마음이 드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내어 몸에 익히는 행동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2025-03-08 20: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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