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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참고 또 참으면 빵하고 터지거나, 누구도 못 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참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도,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알아차려라.’ 향화법사님의 첫 번째 이야기를 이렇게 요약해 봅니다. 청년 정토회를 개척하고 활동가를 키우며 대중 법사가 된 향화법사님은 수많은 인연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었다는데요. 우리에게 맞추느라 참고 참고 또 참고 있는 모든 인연에 회향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글 올립니다.
행자 교육은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법사가 된다고 하니 ‘잘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계를 받을 때쯤 법륜 스님이 “법사는 평생 수행자로 살아간다는 의미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래! 나는 수행자지’ 이렇게 수행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확 가벼워졌습니다.
행자 교육이 끝날 즈음 1년 공부를 마친 지금 마음을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편안합니다. 남의식하면서 인정받기 위해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너무 편안합니다.
행자 교육을 받는다고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습니다. 수계식에 부모님을 초대해야 하는데, 부모님께 말하기 어렵다고 법륜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수계받는 것은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용기 내어 부모님께 수계식에 올 수 있는지 여쭤보니, 만사 다 제치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수계식에 참여한 부모님은 모든 과정을 열심히 보고 들었습니다. 소감 나누기에서 제가 “부모님 공덕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라고 말하며 울컥했습니다. 부모님도 그 모습을 보고 ‘우리 딸이 앞으로 어떻게든 잘 살겠구나!’라며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걱정을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법우는 자기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항상 마음이 정리되거나 문제가 해소된 다음에 이야기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이야기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방황해도 괜찮아’ 강연을 준비하면서 한 명씩 돌아가며 잠수타는 청년 회원들로 버틸 만큼 버티다 결국 터졌습니다. 보수 법사님은 말없이 펑펑 울기만 하는 제 모습을 보고 이유를 묻지 않고 가만히 옆에 있기만 했습니다.
말하지 않는 제 이야기를 법사님이 온몸으로 공감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0분 정도 울고 난 후, “법사님, 저한테 뭐 시키려고 했지요?”라고 아무 일 없듯 물었습니다. 그리고 슈퍼에 다녀온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도 법사님은 제가 왜 울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때 상대가 말없이 온전히 제 마음을 알아준다는 느낌을 받았고, 말이 아니라도 상대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법사 된 지 얼마 후, 포항 법당에 갔습니다. 남자 어른이 많은 저녁반 간담회였습니다. 회원들과 동그랗게 앉지 않고, 법사가 법상 앞에 앉아 간담회를 했습니다. 법사의 소임이지만, 앞에 앉아 약간의 두려움과 잘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참! 법사는 잘 듣는 거지. 법사는 뭘 알려 주기보다 잘 듣는 거다.’ 되뇌며 대중의 나누기를 잘 들으니 자연스레 통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때그때 마음을 다합니다. 나이와 상관이 없었고 점점 그런 경험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싫은 소리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법사는 자자를 해야 합니다. 자자는 상대가 문제를 제기하면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상대에게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쉽지 않지만, 계속 연습합니다. 예전에는 불편한 상황에서는 아예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제가 이러이러한 점이 불편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말하기 전 ‘내가 지금 분별이 나서 말하는 것인지, 개선하고자 말하는 것인지’ 점검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분별이면 말하지 않습니다. 감정이 상해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했다면, 참회하고 마음을 정리합니다. 대부분은 부싯돌에 불이 붙듯 순간적으로 일어난 감정 놀음입니다. 그 감정에 집착하면 괴롭지만, 털어내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을 받아주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대는 그 자체로 만족한다는 것을 법륜스님께 배웠습니다. 다들 바빠 결사 행자 회의 일정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오십여 명이 참석 대상으로 그중 두세 명 일정이 맞지 않으면, 대개 그대로 진행할 텐데 스님은 계속 묻고 또 묻습니다. 누군가가 “이날 안 된다.”라고 하면 스님은 “그럼 이날은 어때요?”라며 모두에게 돌아가며 물어봅니다. 다수의 편의를 위해 소수를 제쳐두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으로 다시 하고 다시 해서 결국은 맞출 수 있는 방향으로 갑니다.
끝까지 일정이 맞지 않았던 저는 묻고 또 묻는 과정에서 충분히 배려받고 존중받아 가볍게 탁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스님 저는 이날 못 오니 저 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대중을 대할 때도 마음을 최대한 받아주고 맞춰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스님을 보고 배웠습니다.
법사 수계 전 1년간의 행자 교육 시절, 정일사에서 돌아봐졌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느 도반이 “나는 늘 주위에 모범이 될 정도로 솔선수범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면서 늘 맞추고 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가족, 도반들에게 서운하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주위 사람들이 왜 몰라주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법사님은 오히려 반대로 “주위 사람들이 도반에게 맞추며 살아왔다. 그 덕에 도반님이 활동을 여태껏 할 수 있었다. 도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한 대 맞은 듯 잠시 멍했고, 그동안 저와 함께 활동한 많은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중 한 도반은 수행으로 절을 매우 열심히 했습니다. 참회할 일 있을 때마다 천 배, 만 배 하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는 ‘그렇게 열심히 절하는 것보다 마음 한 번 바꾸는 것이 더 낫지!’라고 생각하며 그 도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늘 ‘열심히 일했고, 내가 도반을 이해했고, 상대의 의견을 들었고, 내가 열심히 해서 청년 활동에 기여를 많이 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청년 활동가 중 나와 성향이 다르고 내가 맘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 정일사에서 법사님의 말을 듣고 아! 하는 깨달음과 함께 청년 활동한 시절을 돌이켰습니다. 청년들과 나이 차이도 있는 언니가 앞에서 저렇게 열심히 하니, 청년들이 ‘나에게 많이 맞춰줬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모든 나의 활동이 ‘내가 잘해서,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도움과 공덕으로 여기까지 왔구나! 덕분에 활동했고 행자 교육까지 받게 되었구나! 정말 수많은 사람의 덕분으로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참회하는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공부를 잘해서 회향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숙연해지고 발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청년들은 대부분 현실 적응의 어려움, 우울감,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다 유튜브로 법륜스님의 법문을 접하고 정토회와 인연을 맺습니다. 청년 불교대학에서 한 20대 청년은 “저는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고, 다른 분들처럼 별다른 어려움은 없으며 지금 행복합니다. 제 삶에 만족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속으로 ‘곧 그만두겠구나!’ 했는데, 그 청년이 “오늘, 법륜스님 법문을 들으니 ‘나 혼자 행복하다고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속한 이 세상이 행복해야지 내가 행복하다.’라고 했는데, 저는 그 말에 꽂혀 공부를 계속해 보고 싶습니다.”라고 나누기했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오는 친구도 있지만, 이런 친구도 있기에 청년들은 다양하게 열어줘야 합니다. 청년들이 이 시대, 이 사회를 보면 자기 고민은 작아집니다.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넓어집니다. 스님 법문이 좋은 이유는 개인의 마음을 공부하고, 다음에는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청년들의 마음이 제일 많이 열릴 때가 역사 현장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4.3 기행을 가면 2박 3일 동안 확 바뀝니다. “통일 꼭 해야 하겠네요.”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2박 3일 동안 역사 현장을 직접 돌아보면 아픈 우리 역사를 생생히 알고 느껴 “전쟁이 있으면 안 되겠어요.” 이렇게 깨닫습니다. 본인의 삶이 안온한 것은 많은 사람의 공과 희생의 덕임을 알면 그 앎의 에너지가 건설적인 활동으로 이어집니다. 별생각 없이 참여한 동북아 역사 기행 5박 6일을 마무리하며 평소에 기도하지 않던 친구가 “내일부터 천일 결사 하겠습니다.”라고 발심합니다.
“역사 공부를 하겠다. 화합해 보겠다. 중국 사람을 미워만 해서는 우리 역사와 공존하지 못하겠다. 중국인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함께 공존의 평화를 내가 만들어 보겠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바뀌는 것이 청년입니다. 그에 반해 여전히 아픈 친구들이 너무 많습니다. ‘깨달음의 장’에 가고 싶어도 우울증으로 아파서 참여하지 못합니다. 힘들어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수행의 끈을 놓지 않으면 최악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부처님 법 만나서 ‘나는 어떤 상황에도 행복할 수 있다.’와 ‘크게 보면 이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나도 평화로워진다. 괴로움도 사라진다.’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청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청년들이 행복하고, 청년들이 살아갈 이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하도록 한 발 한 발 걷겠습니다.
희망 리포터를 하며 처음으로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마음이 긴장되고, 설레기도 했습니다. 장소 ‘공공’에 도착하니, 웃으며 반기는 도반과 향화법사님의 모습에 긴장했던 마음이 녹았습니다. 방방곡곡에서 모인 도반 모두 등불을 밝혀 자리를 비춰 든든했습니다. 편안한 인터뷰를 위해 함께 해주신 법사님과 도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글_김정림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정도현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포항지회)
편집_곽정란(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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