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충주지회
나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좋은 일

정토회에는 숱한 어려움을 수행과 정진으로 이겨내고 당당한 수행자로 거듭난 도반이 많습니다. 황보 미 님 역시 스무 살 때 뇌출혈로 쓰러진 후,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섰습니다. 역경 속에서도 효심으로 팔순의 노모를 불교대학과 경전대학까지 이끌어 졸업장을 받게했습니다. 오늘도 전법에 전념인 충주지회장 황보 미 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23년 2월 5일 인도성지순례 대성석가사 황보 미 님
▲ 2023년 2월 5일 인도성지순례 대성석가사 황보 미 님

처음 겪은 좌절

저는 충북 제천의 시골 마을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여섯 식구, 큰집 4남매, 고모네 3남매가 모여 살았습니다. 대식구로 먹을 것이 늘 부족했습니다. 어머니가 보육원이 따로 없다고 할 만큼 아이들만 11명, 식사 때면 서로 먹으려고 다투는 모습이 마치 전쟁터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잘 돌보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엄마 혼자 두부 장사를 했고,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죽어라 일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는 약골로 여기저기 자주 아파 엄마의 큰 짐이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아픈 저를 업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많이 다녔습니다.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허약했지만, 학교는 무난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취업이 잘 되는 전문대학의 사무 자동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인문계 학생이었던 제게 컴퓨터, 부기, 회계 과목 공부는 힘들었습니다. 고집이 세고 남에게 지기 싫어 지나치게 공부에 매달려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대학 1학년 뇌수술로 휴학하고, 상심은 좌절 이상이었습니다. 극단적인 생각도 했습니다. 이 일은 트라우마가 되어 매사 자신감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 되었습니다.

법문 듣는 횟수는 늘고, 싸우는 횟수는 줄고

제가 37살,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하고 온갖 짜증을 엄마에게 쏟아부었습니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요가 강사 일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올 때는 아버지를 잘 설득해 ‘술도 못 마시게 하고, 건강도 잘 챙겨야지’ 했습니다. 생각과 달리 아버지와 매일 싸웠습니다. 두 부녀가 매일 싸워 "도움은커녕 더 힘들다"라며 엄마의 푸념이 이어졌습니다. 싸우는 제 모습에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중 우연히 ‘답답하면 물어라!’ 정토회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자석에 끌리 듯 무작정 제천법당을 찾아갔습니다.

2017년 5월 3일 부처님오신날, 제천법당 도반들과 (앞줄 오른쪽 세 번째 황보 미 님)
▲ 2017년 5월 3일 부처님오신날, 제천법당 도반들과 (앞줄 오른쪽 세 번째 황보 미 님)

작은 법당 안에 몇 명의 사람들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법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절을 생각했던 저는 생소한 모습에 '사이비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TV 속 스님의 이야기는 참 신선했습니다. 그 후 매주 수요일 법당에 갔습니다. 법문을 들은 날은 신기하게 마음이 가볍고 막혔던 숨통이 트였습니다. 그렇게 법문 듣는 횟수가 늘고 아버지와 싸우는 횟수는 줄었습니다.

통곡하다

불교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후, 아버지의 위암이 췌장암으로 전이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암을 고치기 위해 식이요법, 침, 뜸 등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데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절에 들어가 3,000배 기도할 결심을 했습니다. 도반들이 말렸습니다. “아버지를 위한 기도는 우리가 할 테니 <깨달음의 장1>에 다녀오라.”라고 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아버지에게 뿌리 깊은 미움과 원망으로 뒤엉킨 제 마음을 보았습니다.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사과하고, '사는 동안 마음 편히 지내게 하자.'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1달 만에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떠나는 순간 곁에서 기도하며 편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지켰습니다.

오빠들이 있었지만, 혼자 남은 엄마는 제가 책임지고자 했습니다. 짧은 공부였지만, 몸이 약한 제가 어려운 형편을 딛고 꿋꿋이 살아가려면 '수행밖에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틈틈이 아르바이트하며 정토회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23년 2월 5일 인도성지순례, 조원들과 (오른쪽 첫 번째 황보 미 님)
▲ 2023년 2월 5일 인도성지순례, 조원들과 (오른쪽 첫 번째 황보 미 님)

최고의 효도

엄마는 불교 신자였습니다. 제가 매일 기도하는 뜻을 알고 엄마도 함께 기도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테이프 법문을 권했습니다. 그러다 함께 수행법회에 참여했습니다. 이어 불교대학과 경전대학까지 다녔습니다. 엄마는 법문 내용은 잘 알아듣지 못해도 도반과 함께하는 시간은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법당에서 언제나 명랑했고, 도반의 보살핌 속에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충주 호암체육관에서 열린 불교대학 졸업식, 많은 사람 앞에서 허리 굽은 팔순의 엄마가 법륜스님에게 졸업장을 받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기쁨에 눈가가 뜨거웠습니다. 엄마에게 부처님 법을 전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든든한 도반

저의 권유로 언니도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바라지로 언니를 응원했습니다. 가정 문제로 힘들어하는 언니의 얼굴이 환해진 모습을 보며 저와는 다른 기쁨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언니는 불교대학과 행복학교를 거쳐 경전대학까지 졸업했습니다. 천일결사도 참여하였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달려와 엄마를 돌봐줬습니다. 덕분에 2023년 1,250명이 함께하는 인도성지순례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매를 넘어 서로를 응원하는 든든한 도반입니다.

정토회 활동 초기 저는 도반들과 자주 갈등했습니다. 뜻대로 안 되면 불편함을 내색해 당시의 부총무님을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2017년 12월 23일 한반도 평화대회, 광화문광장 (오른쪽 두 번째 황보 미 님)
▲ 2017년 12월 23일 한반도 평화대회, 광화문광장 (오른쪽 두 번째 황보 미 님)

회의 때 내 주장대로 안 되면 화내고 협조하지 않거나, 회의 시간이 길어지면 비효율적이니 제 시간에 끝내달라는 재촉으로 분위기를 무겁게 했습니다. 그래도 끝난 후, 함께 집에 가며 “미안하다." "오해 풀어라.” 서로 다독였고 눈물까지 흘리며 불편한 마음을 풀었습니다. 나중에는 서로 수행을 탁마시키는 도반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법사님이 된 그 도반을 보면, 그때 힘들게 해서 미안합니다. 더불어 저를 다독여주었던 그 마음에 늘 감사합니다. 갈등을 수행의 거울로 삼을 수 있게 가르침을 준 너무 소중한 도반입니다.

모두 내가 지은 것

제가 가장 많이 기도한 대상은 엄마입니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놓기 위해 정진에 매달렸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폐결핵으로 고생을 했던 엄마는 완쾌 후 10여년 기도하고 불법 공부하며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시기 건강이 안 좋더니 치매가 시작되었습니다. 아픈 엄마를 돌보며 저 또한 두려움과 불안이 심해졌습니다. 매일 300배 정진하며 엄마에 대한 집착을 놓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엎친데 덮친다고 엄마가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의 바닥을 봤습니다.

화상 치료로 약 바르고 붕대 감으면, 엄마는 환부가 가렵고 따가워 애써 감은 붕대를 금세 풀어 헤치고 상처를 뜯어냈습니다. 엄마를 어르고 달래다 안 되면 악쓰며 소리 지르고, 엄마를 제지하려고 몸싸움까지 했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며 '엄마에게 잘하겠다.'라고 다짐하지만, 붕대를 풀고 상처를 긁는 모습을 보면 저는 무서운 사자처럼 돌변했습니다. 황당하고 맥이 풀렸습니다. 덧나는 걸 알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엄마를 안쓰러워하는 마음과 제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아픈 엄마를 부담스러워하는 마음이 계속 충돌했습니다.

2023년 5월 27일 부처님오신날 죽림정사, 충주지회의 날 (앞줄 왼쪽 세 번째 황보 미 님)
▲ 2023년 5월 27일 부처님오신날 죽림정사, 충주지회의 날 (앞줄 왼쪽 세 번째 황보 미 님)

엄마를 돌보며 지회장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법사님에게 휴가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엄마만 돌보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것이다. 시간이 되는 만큼 정토회 활동하면서 수행을 멈추지 않아야 그나마 숨통이 트일 거다.”라는 말을 듣고 형제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주말에 엄마를 맡기고 문경수련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정진으로 고된 마음을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했습니다.

몇 달 후, 엄마의 화상이 낫고 주간보호센터에 가서 저도 한시름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밤낮없이 도반들과 손발을 맞춰 준비한 6.13 만인대법회를 일주일 앞두고 엄마가 넘어졌습니다. 엄마의 허리가 골절되고 제가 휴가를 내야 했지만, 맡은 일로 인해 당장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병실 침상 옆에서 새벽 기도 하고, 노트북으로 회의하면서 엄마를 보살폈습니다. 엄마는 퇴원 후, 두 달 동안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점점 쇠약해지고 나중에는 대소변조차 가리지 못했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이어가기 힘들었고,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정일사 수련에서 법사님과 다시 엄마 문제를 상담했습니다. "그럼 엄마가 돌아가셔야겠네요?"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엄마를 끝까지 봉양하겠다는 마음이 엄마에 대한 집착인지, 활동의 걸림돌인지 살펴봤습니다.

언니와 오빠들의 의견으로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고 5개월이 지났습니다. 엄마도 요양원 생활에 적응되어 편안해 보이고, 저 또한 마음 편히 봉사할 수 있어 좋습니다. 엄마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제가 지은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기적을 만들다

저는 "몸이 약해 보인다."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그 말이 듣기 싫어 학교 다닐 때는 괜히 나서서 센 척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부딪치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특히 뇌출혈로 학업을 중단한 것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고, 앞에 나서는 일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 요가 강사 둘 다 남 앞에 나서는 일로 늘 긴장되고 편하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스가 심해 결국 그만두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점점 업식으로 굳어졌습니다.

2022년 6월 3일 행복시민 노인 복지활동 (오른쪽 두 번째 황보 미 님)
▲ 2022년 6월 3일 행복시민 노인 복지활동 (오른쪽 두 번째 황보 미 님)

내가 나를 믿지 못해 시도도 못하고 포기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그랬던 제가 정토회 수행을 16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업식을 뛰어넘은 기적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도반은 징검다리가 되었고, 법사님은 손을 잡아 이끌며 저를 기적에 닿게 했습니다.

불교대학 담당자로 활동한 5년이 어쩌면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바뀌는 학생들과 한 해 한 해 보내며 제 삶이 힘든 것조차 잊었습니다. 새로운 도반들과의 만남은 늘 새로운 세상을 살게 했습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돌고 돌아 정토회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정토회 활동을 한 지 십 년 만에 뇌수술 후 스무 살부터 복용했던 뇌신경 안정제 약을 끊었습니다. 약을 끊고 문제없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제겐 참으로 기적입니다.

결국 나를 위한 일

처음 불교대학을 진행할 때는 내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면서 분별심을 냈습니다.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나누기가 무거웠습니다. 진행자로 한 해 두 해를 넘기니 제 역할이 그들을 교육하는 게 아니라 좋은 법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줄 뿐임을 알았습니다. 학생들이 변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적으로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활동 팀장을 하면서 '세상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연기법을 배웠습니다. 통일 특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선배 도반들이 소외된 이웃을 찾아다니며 돌보는 모습에서 진정한 보살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감동을 받아 따라 하면서 적극적인 자세가 연습이 되었습니다. 대의원 소임을 통해 조직의 개념을 배우며 하나의 작은 모자이크 붓다가 모여 완성된 붓다가 되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2024년 6월 13일 만인대법회 충주지회 도반들과 (앞줄 왼쪽 첫 번째 황보 미 님)
▲ 2024년 6월 13일 만인대법회 충주지회 도반들과 (앞줄 왼쪽 첫 번째 황보 미 님)

지회장을 하면서는 지회 도반들과 원활한 소통이 어려웠습니다. 온라인이 편리한 점도 많지만, 지역 도반들과 친해지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천 활동이나 모둠활동을 가능한 많은 도반과 함께하려고 했습니다. 힘들면 어김없이 다가와 제 등을 토닥이며 힘이 되는 도반들은 제가 얻은 큰 보배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우리 충주지회가 특색을 살리며, 정토회와 한 몸이 될 수 있도록 중간 전달자로 잘 듣고 잘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앞으로의 수행 과제

남에게 비난이나 욕먹기 싫어 상대가 불편할 얘기는 잘 꺼내지 못하는 편입니다. 일하면서 꼭 해야 할 이야기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법사님은 “종종 욕먹어가며 하는 자리다. 부처님도 욕먹었고, 법륜스님도 욕먹는다. 욕먹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가볍게 하라.”라고 합니다. 이는 아직 넘어야 할 수행과제입니다.

지금도 어떤 일을 마주할 때, 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마음이 먼저 일어나 걱정과 근심부터 앞섭니다. 이 업식 또한 극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좋은 일이다.’라는 발원문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계 전법을 넘어 기후 위기 시대에 미래 대안을 위해 부탄의 오지를 다니며 애쓰는 법륜스님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행복하고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습니다.


지역 도반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지회장 자리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행복본부에서 일하고 충주지회로 다시 와 지회장을 맡은 황보 미 님은 체력도 약하고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아니어서 일을 제대로 할지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항상 정토회를 우선하고, 어려움을 만나면 개인 특별 정진의 힘으로 거뜬히 이겨내는 모습에서 강함을 느꼈습니다." 저 역시 흙이 화초를 자라게 하듯 도반들에게 따뜻한 기운의 영향을 미치는 황보 미 님에게서 적극적인 수행자의 모습을 봅니다.

글_배병갑 희망리포터(경남지부 거제지회)
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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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무애행)

지회장님~
항상 편안한 얼굴과 목소리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에 감동이었는데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그렇게 하신거군요.
지회장님이 계셔서 충주지회 첫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어 고맙고 감사합니다.

2025-03-09 19:44:07

문선

감사합니다

2025-03-08 18:47:25

이선희

지회장님~ 늘 따듯한 큰언니 같은
마음이였는데 이렇게 큰 아픔을 딛고 일어나셨군요.. 개인특별정진의 힘이 느껴집니다. 제천식구들은 저에게도 친정같이 든든한 도반님들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

2025-03-06 21: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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