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향화법사님 첫 번째 이야기
봄꽃 같은 부드러움과 거침없는 기운

오늘 만나볼 법사님은 온화한 표정과 다정한 말투로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물들이는 분입니다. 향화! 활짝 핀 웃음에 꽃향기가 폴폴 날리니 킁킁~ 향기에 취한 청년들이 뒤를 따릅니다. 청년 전법사 향화 법사님의 봄꽃 같은 부드러움과 거침없는 기운을 글로 옮겨 드립니다.

잘 참다 터지는 아이

저는 엄마를 닮아 잘 웃고, 잘 참는 친절한 아이였습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주위에 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왕따를 당하거나 혼자 있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오면 먼저 말을 걸고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제게 “참 착하다”, “현모양처 감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겉모습과 다르게 저는 마음을 표현 못 하고 늘 제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사람들과 갈등 상황이 불편해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연애할 때도 남자 친구와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아버지가 50대에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희 4남매가 모두 대학생이었습니다. 그중 학교와 집이 가까운 제가 아버지 식이요법을 위해 늘 된장찌개와 현미밥을 챙겨야 했습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도 아버지 밥을 먼저 챙겼습니다. 힘들어도 꾹꾹 참았는데, 집안일을 많이 하니 습진이 생겼습니다. 언니와 밥을 먹다 습진이 생긴 손을 보고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제야 식구들이 ‘얘가 힘들었구나!’ 짐작할 정도로 참다가 터지는 성향이었습니다.

2024년 12월 1일, 대중법사 기획기사 인터뷰
▲ 2024년 12월 1일, 대중법사 기획기사 인터뷰

몰래 맺은 인연 그리고 발심

엄마가 절에 갈 때 같이 가서 삼천 배를 했습니다. 불교에 관심이 많고 마음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출가해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이십 대 중반, 영남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학장 우학 스님은 불교를 가볍게 접할 수 있게 했고, 강의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친구를 전법 해 상을 받았습니다. 불교 공부가 재미있어 전법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후 요가원을 운영하는 스님에게 요가를 배웠습니다. 스님은 “넌 돈 떼먹을 사람은 아니다.”라며 제게 재정을 맡겼습니다. 말이 걸걸하고 일상이 칼 같은 스님은 여리고 내성적이었던 제가 견뎌내기 힘들었습니다. 스님의 “너는 업장이 세다.”라는 말도 무거웠습니다.

그곳에서 점심을 해주는 보살님에게 저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며 울었습니다. 그분은 “힘들지?”라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집에 갈 때 정토지와 법문 테이프를 주었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법회가 있으니 한 번 참석해 봐”라고 했습니다. 그때 법륜스님의 법문을 처음 듣고 정말 좋았습니다. 요가원 스님 몰래 수요일 저녁 정토 법당에 갔습니다. 아래층에 술집과 노래방이 있는 2층 법당으로 들어가니 법복을 입은 사람들이 안내하고 목탁을 쳤습니다. ‘보살님이 목탁을 치네’라고 이상하게 느꼈지만, 법사님과 도반은 젊은이가 왔다며 좋아했습니다.

경주 남산 순례를 갔을 때, 마지막 코스인 분황사에서 법륜스님을 처음 뵙고, 원효대사 이야기에 지극히 감동했습니다. 어떤 부분에 제가 그렇게 감동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방울 스님 이야기는 불교 공부를 하고 싶다는 절실한 발심으로 이어졌습니다.

2009년 서원행자 되던 날, 문경에서(가운데 향화법사님)
▲ 2009년 서원행자 되던 날, 문경에서(가운데 향화법사님)

누구에게도 ‘선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예전에는 백일기도 후, 각해 보살님에게 기도문을 받았습니다. 각해 보살님을 친견하는 자리에서 보살님은 대뜸 제게 “에휴! 아가씨, 아가씨는 악심이 있다. 악심이 있네”라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착한’ 제게 악심이 있다니 같이 간 도반들이 웃었습니다. 백일기도를 한 후이고 자신을 살필 힘이 있어서인지 제 안에 악심이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악심이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각해 보살님은 “부모한테 그러면 안 되는데, 부모 덕분에 산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를 기도문으로 받았습니다. 평소 “착하다. 정말 착하다.”는 얘기만 듣다 ‘선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기도문을 받으니, 도반들이 저를 무척 놀렸습니다. 기도문이 구체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싸운 것도, 사고를 친 것도, 미워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법문을 듣고 기도하면서 점차 아버지를 이해했지만, 어느 순간 아버지에게 향하던 화살이 어머니에게 향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늘 맞췄습니다. ‘엄마가 아빠한테 할 말을 제대로 했으면, 아빠가 저렇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원망이 있었습니다. 잘 참는 어머니의 성향을 닮은 나도 싫었습니다. ‘왜 엄마는 잘 참지?’ ‘내가 엄마 닮아서 표현도 못 하고 참네!’ 아버지의 무능함은 어머니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를 미워하니 엄마 보는 게 불편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던, 이상적인 어머니를 부정하는 것도 힘들고 당황스러웠습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를 기도문으로 정하고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그동안 내가 부모님을 잘못 보고 있었구나!’라고 깨달으니, 부모님이 자연스럽고 편해졌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을 인정하고 이해하니 애쓰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경전대학 졸업 후, 인도성지순례
▲ 2008년 경전대학 졸업 후, 인도성지순례

청년과 맛있는 만남

2007년 불교대학 졸업 후, 정토회 청년 활동을 위해 저녁에 일하는 학원 영어 강사 일을 그만두고 주간에 할 수 있는 유치원 영어 강사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청년들을 법당에 오게 할까?’를 연구했습니다. 처음엔 정토회 활동가의 자녀들 5~6명이 모였습니다. 부모의 권유에 마지못해 왔는지 얼굴이 어두웠습니다. 나누기에서 어릴 때 엄마한테 받은 상처, 엄마가 정토회 활동하느라 자식을 돌보지 않았다는 원망을 울면서 나누었습니다.

청년들은 뭔가 재미가 있어야 법당에 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금요일 저녁 법회였습니다. 저는 금요일마다 법당 근처 시장에서 장을 봐 와, 저녁밥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청년 법회는 맛있게 밥 먹고, 법문 듣고, 진지하게 나누기하는 일정으로 했습니다. 법회가 끝나면 친구나 애인은 보내고 청년 회원은 법당에서 잤습니다. 새벽 두세 시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대부분이 연애 상담이었습니다.

모두가 자고 있을 때, 저는 혼자 새벽 기도를 하고 아침밥을 했습니다. ‘김치볶음밥, 두부, 전, 월남쌈’ 등 근사하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아침 식사 후 회의를 마치고 점심때가 되면 청년 회원은 각자 데이트나 할 일을 하러 갑니다. 그런 활동을 1년 넘게 했습니다. 그러다 점차 한 명, 두 명 청년 회원이 늘어났습니다.

‘주현이 언니랑 친하게 지내지 마라’

초창기 청년 회원이었던 활동가의 자녀들은 선재 수련을 하고, 인도에서 몇 년 활동하는 등 정말 열심히 활동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해 부모에게 서운했지만, 지금은 ‘모자이크 붓다’처럼 애쓴 부모님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정토회 회원이나 활동가 자녀들이 청년 회원으로 활동할 때, 처음에는 ‘우리 애가 법회를 나오네’라며 좋아했는데, 나중에는 직장과 결혼에 관심이 없고 정토회 활동에 빠져 있다고 걱정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주현 언니랑 친하게 지내지 마라.”라고 부모가 정토회 활동을 반대합니다. 즉문즉설에서 “우리 애가 너무 빠져서 학교만 갔다 오면 이쪽으로 온다.”라고 질문한 활동가도 있었습니다.

보수 법사님은 대구 청년 정토회 활동 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제게 아버지 같습니다. 얼마 전 보수 법사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 때 보수 법사님이 어머니가 평소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내가 이 길을 가는데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잔소리한 적이 없고 야단친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의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한 번도 제가 하는 일을 야단치거나 “이런 사람이 돼라, 결혼해라.”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보수 법사님 어머니와 제 부모님의 마음과 사랑이 동시에 전해져 울컥했습니다. ‘부모 덕분에 원 없이 정토회 활동을 했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구나!’ 깨달았습니다.

2013년 '새로운 백년' 청년학교 수료식
▲ 2013년 '새로운 백년' 청년학교 수료식

방황해도 괜찮아! 내가 법사가 된다고?

‘방황해도 괜찮아’라는 주제로 청년을 위한 강연이 대구에서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청년 300명을 모아야 했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1박 2일 밤새 예쁜 엽서를 만들고, 책갈피도 만들어 홍보했습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과 대학교 앞에서 “안녕하세요. 법륜 스님이라는 분이 있는데요, 법문이 진짜 좋아요. ‘방황해도 괜찮아’라는 주제로 저희 만촌동에서…”라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홍보 미션을 했습니다. 그렇게 결국 300명을 모아 김여진 씨가 사회를 보고 강연이 이루어졌습니다. 너무도 뿌듯했습니다. 그 후 이 강연을 계기로 ‘방황해도 괜찮아’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대구청년회에서 영남권 청년 전법으로 다시 평화재단 운동 청년팀까지 개척하고 나니 이제 청년회 일은 후배들한테 물려주고 저는 지역에서 수행법회 담당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행자 교육을 받으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법사는 제게 매우 큰 존재였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보수 법사님이 그런 저의 무거움을 공감하며 함께 걷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기도 후, 아침 일찍 보수 법사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법우님 안 해도 돼. 안 하고 싶으면 내가 안 한다고 얘기할게. 그런데 공부는 한번 해볼래? 그것마저 부담스러우면 안 해도 돼.”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가벼워졌습니다. ‘안 해도 돼. 그런데 공부는 하고 싶으면 해도 돼.’ 이렇게 선택이 열리니 가벼운 마음으로 행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행자 교육 시절 싫은 도반이 있었습니다. 수행자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그 도반만 오면 온몸이 싫은 느낌으로 반응했습니다. 싫은 마음과 ‘도반을 싫어하면 안 되지’라는 무거운 마음에 이중으로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회의에 먼저 도착했는데, 그 도반의 발소리만 듣고도 온몸에서 싫은 느낌이 올라왔습니다.

평소라면 싫다는 얘기를 못 할 텐데, 마음 나누기에서 “그 도반의 발소리만 들어도 정말 싫었습니다. 하지만, 싫은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게 신기했고, 싫다는 느낌이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수 법사님이 “드디어 법우님이 공부를 시작하는구나.”라며 손뼉을 쳤습니다. 싫다는 마음을 꺼내는 것도, 싫은데 함께 할 수 있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회의 후, 도반들은 저마다 “그 사람이 나였어요?”라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늘 변하니까요. (하하)

2007년 문경에서 보수법사님, 대구 청년들과 (뒷줄 맨 왼쪽 향화법사님)
▲ 2007년 문경에서 보수법사님, 대구 청년들과 (뒷줄 맨 왼쪽 향화법사님)

나를 알아야 상대도 알고

한 번은 수련 후 “상대를 이해하려는 건 좋은데, 제 감정을 너무 참습니다.”라고 고민을 내어놓았습니다. 법사님이 ‘그러면 이렇게 하면서 더 이상 참지 말고…’ 이렇게 답할 줄 알았습니다. 뜻밖에도 법사님은 “자기는 그런 성향 때문에 청년을 이만큼 모았어. 다만 그런 성향이라는 걸 알면 돼.”라고 했습니다.

저는 도반을 만나면 인사를 잘하고 말도 잘합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이중적인 것 같아 법사님에게 “법사님 저는 이중인격인 것 같아요. 여기서는 법사님들에게 인사를 잘하는데, 집에 가면 부모님에게는 안 돼요.”라고 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답과 달리 법사님은 “그거 나도 안 돼. 법우님이 이중인격이면 나는 3중, 4중 인격이야. 그거 원래 안 돼”라고 했습니다. 그 말에 정말 가벼워졌습니다. 이 두 일화는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제 모습을 다르게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일할 때 미리 하지 않고 기일에 닥쳐 급하게 합니다. 행자 교육 때 함께 공부했던 미륵팀의 한 행자님은 과제도 제일 먼저 제출하고,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하고, 회의하면 결과까지 예측했습니다. 그 도반과 문경 수련원에서 같은 청소 구역에 배정받고 함께 청소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모여서 역할 배정하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 행자님은 방을 이미 쓸고 있었습니다. ‘저건 아니지 않아? 역할도 나누지 않았는데, 왜 저렇게 행동이 빠르지? 이해가 안 가.’라고 분별했습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그 행자님 입장에서는 ‘내가 답답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르다는 말을 과제로 삼아 공부했지만, 말로만 했구나’, ‘다르다’가 ‘틀리다’로 넘어가면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틀리다’라는 분별이 들 땐 그 행자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정말 다르지, 다를 뿐이지’라고 이해하는 연습을 합니다. 약속이나 회의에도 일찍 도착하려고 합니다. 그 행자님의 모습이 귀감이 되었습니다.

2025년 인도 성지순례
▲ 2025년 인도 성지순례


기사 취재를 위해 희망리포터, 편집자, 주인공은 보통 화상으로 만납니다. 두어 시간 화상으로 이야기 나누며 주인공 얼굴을 새깁니다. 기사에 쓸 사진에서 주인공을 콕 집어낼 수 있습니다. '실제 만나도 알아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향화법사님 특집기사는 직접 만나 취재했습니다. 이야기 나누고, 울고 웃고, 밥도 먹고, 서로 우쭈쭈우쭈쭈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단체 사진에서도 콕 집어낼 수 있고, 스치듯 만나도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향화법사님은 사진보다 실물이 훠~~~~얼씬... (독자님 마음 그대로입니다.^^)

글_김정림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경주지회), 정도현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포항지회)
편집_곽정란(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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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향화법사님 이야기 덕분에 저도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고맙습니다.

2025-03-06 12:50:14

무구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025-03-03 11:49:23

신동찬

불법과 연을 맺게 되신 계기, 정토회에 와서 활동하신 과정 하나하나가 참 흥미로웠습니다. 젊은 시절 전법을 하던 법사님의 모습에서 큰 정성이 느껴졌어요. 글을 읽으며 마음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지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2025-02-27 22: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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