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향정법사님 두 번째 이야기
쓰여야 한다는 집착

향정법사님에게는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많습니다. 그 당시 출퇴근하는 실무자로, JTS에 처음으로 청소년사업부를 만들고 자원개발부도 만들어서 새롭게 사업을 진행하셨습니다. 2018년 법사수계를 받고 대중법사로서 깨달음의 장 안내자가 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소임이 주어지면 그냥 할 뿐, 시작하는 모든 일에 망설임 없이 '그냥' 할 수 있었던 법사님의 수행담을 따라가봅니다. 향정법사님의 두번째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함께 해나가는 일

JTS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KOICA(한국국제협력단) 지원을 받아 필리핀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해외의 경우에는 현지 사정에 따라 사업이 진행되며 지원받은 사업비는 제때에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담당자가 으레 현지 일정을 맞추어서 진행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이 임박해서야 그 사업이 현지 사정이랑 맞지 않아 진행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국장인 내가 놓쳤어도 담당이 알아서 챙겼어야지’ 하는 마음이 처음에 딱 들었습니다. 그리고 챙기지 못한 것에 너무 당황했습니다. 제가 당황하고 놀란 마음에 비해 담당자는 미안해하지 않았습니다. 제출시기에 담당자는 해외출장으로 자리에 없었고 어찌 됐든 기한을 맞추느라 혼자서 프로젝트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지만, 사용하지 못한 사업비를 반환하고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어야 했습니다.

제가 놓친 건 생각하지 않고 담당자가 놓친 것에 대해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후 계속 살피는 마음속에 ‘나와 상대가 진짜 다르구나’, ‘일을 풀어가는 방식이 참으로 다르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해나가는 일인데 담당이 못하면 국장이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지’ 싶었고, 제가 ‘담당자가 책임지면 좋았을텐데’, ‘내가 놓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며 힘들어 했구나 살펴졌습니다. 사무국장인 내가 미리 챙기지 못해 담당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JTS 이미지에 누를 끼친 것에 대해 참회를 했습니다.

2004년 11월 빈그릇운동(왼쪽에서 여덟 번째 법사님)
▲ 2004년 11월 빈그릇운동(왼쪽에서 여덟 번째 법사님)

개성에도 두 번이나 가고

사무국장 신분으로 밀가루를 전달하기 위해 개성에 두 번 방문했습니다. 북한을 지원하는 여러 단체들과 함께 여권이나 비자 없이 방문 목적과 명단을 간략히 작성하는 것만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남한에서 북한으로 걸어서 너무나 쉽게 북한 땅을 밟던 순간, 북한이 그야말로 ‘우리’ 나라인 것이 실감 나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방문증명서'라는 명함 크기만한 카드를 발급받았는데, 통일부장관이 발부한 방문증명서에는 사진, 증명서 번호, 성명, 생년월일, 발급일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것에는 발급일이 2010년 9월 15일, 유효기간 2015년 9월 15일로 적혀 있었는데, 소임이 바뀌면서 막상 방문증명서는 사용해 보지 못했습니다.

개성을 처음 방문했을 때 식사가 나왔는데, 빈그릇운동을 하던 시절이라 모든 음식을 싹싹 비워서 먹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게 몸에 배었던 겁니다. 나중에야 제가 남기면 누군가 먹었을텐데 눈치도 없이 음식을 다 먹었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처음 방문했을 때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니 차에 태워 한참을 이동해 내려줬는데, 두 번째 갔을 때에는 방문지인 개성역에 바로 화장실이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2010년 필리핀현장에 갈 때는 현장 촬영도 할 겸 남편도 함께 갔습니다. 3월에 민다나오 농업기술센터 준공식 참여를 했고,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 알라원을 시작으로 여러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종교, 종족, 이념이 달라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잘 자라는 모습과 마을 주민들이 단합하는 모습과 전통을 이어가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남편이 찍은 사진 중에 스님과 아이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 기억에 남습니다.

2010년 3월 민다니오 농업기술센터 준공식(왼쪽에서 세 번째 법사님)
▲ 2010년 3월 민다니오 농업기술센터 준공식(왼쪽에서 세 번째 법사님)

깨달음의 장 돕는이가 되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문경수련원 돕는이로 첫 3년, 또 3년을 해서 6년 동안 깨달음의 장 돕는이 소임을 맡았습니다. 출퇴근하는 실무자로서 돕는이는 처음이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돕는이 소임을 하면서 제가 살아보지 못한 다양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안내자가 진행하고 수련생들이 답을 하는 과정에서 부처님 말씀으로 다 풀어지는 걸 보았습니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괴로움 없는 자유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수련생들이 자기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가지고 4박5일을 지나는 동안 가벼워지고 깨달음으로 향해 갈 수 있다는 것이 늘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누구든지 와서 보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부처님 법이 맞다, 맞다’ 깨닫고 감동하며 6년을 했습니다.

돕는이 소임을 하며 돕는이를 육성하는 교육도 했습니다. 전문돕는이 교육은 1박 2일 프로그램으로 돕는이의 모든 일정을 그대로 실습하는 워크샵으로 진행하고, 일반돕는이 교육은 일년에 상반기, 하반기로 두 번 진행하면서 돈독하게 그룹을 형성했습니다.

2013년 깨달음의 장 돕는이 워크샵(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2013년 깨달음의 장 돕는이 워크샵(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2015년 깨달음의 장 돕는이 워크샵(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 2015년 깨달음의 장 돕는이 워크샵(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깨달음의 장 안내자가 되어

2017년 행자교육을 받고 2018년 6월 24일 법사수계를 받았습니다. 6년 동안의 돕는이 역할을 한 것이 기초가 되어 대중법사로서 처음으로 깨달음의 장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깨달음의 장 안내자 교육과정 중에 모든 기존 안내자들이 돌아가면서 참관할 때가 있었습니다. 장을 진행하는 저를 보며 선배들은 꼼꼼히 살피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좀더 온전한 진행을 하기 위해 모두가 이렇게 정성을 기울이는구나 싶었고, 부담을 넘어 모든 것에 고마웠습니다.

깨달음의 장 안내자가 되어 진행을 해보니, 돕는이 시절에 ‘부처님 말씀이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길이구나, 이게 맞구나’ 했던 것을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확실히 그렇구나’,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부처님 법이 제 삶에서 더 확실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제 삶은 군더더기 없이 더욱 깔끔해졌습니다. 있는 그대로 볼 뿐 더 이상 애끓이지 않습니다. 이 길을 수련생들과 돕는이가 함께 만들어 갔습니다.

깨달음의 장 안내자 소임하면서 명상수련 온 법사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향정 법사님)
▲ 깨달음의 장 안내자 소임하면서 명상수련 온 법사님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 번째 향정 법사님)

내 식대로 했나?

법사가 되어 지회에 배정되었는데 일반법당에서 도반들과 활동경험이 거의 없어서 여러가지 애로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지회장이 저 때문에 힘들다고 했습니다. 어찌나 미안한지 참회를 했습니다. ‘내가 해보니 이렇게 하니까 좋더라’, ‘이렇게 해도 좋다’며 은연중에 하는 말이 상대를 불편하고 힘들게 한 것입니다. 저에게는 자연스럽지만 나와 다른 상대에게는 제 의견이 낯설고 또 실행으로 옮기려면 현실적인 문제와 부담도 생겨 답답하고 힘들었을 수 있습니다. 저한테 불편해서 300배 했다고 법사가 되어 말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또 내 식대로 했나 보다 하고 딱 수그러집니다. 참회할 일이 많았습니다.

정일사 할 때도 ‘깨장하듯이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한다고 생각을 못했는데 은연중에 나오나 봅니다. 먼저 보듬어주면서 가야 하는데 빨리 해결해 보려는 마음에 말투 같은 것이 깨장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살핌이 부족하여 공감하는 부드러움이 없었고, 내 식대로 서둘렀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내 앞에서 말도 못하는 도반들에게 미안하고 참회하는 마음입니다. 더 살피려고 깨어 있습니다.

끼달음의 장 안내자 소임하면서 법사님들과 함께(맨왼쪽 향정 법사님)
▲ 끼달음의 장 안내자 소임하면서 법사님들과 함께(맨왼쪽 향정 법사님)

활동가들을 추천할 때에 약간 부담이 있습니다. 정토회의 관점으로 면담하지만, 혹시 ‘내 식대로 보고 있나’, ‘저 사람의 이면에 뭔가 있을 텐데’, ‘내가 적절하게 하고 있나’를 살피게 됩니다. 활동가들은 지금도 제가 모르는 분야에서 저마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자꾸 살피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게 살피면 살필수록 더 연구하게 되고, 함께 하고 있는 도반이 있다는 것에 또 고마운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게 활동가들을 살피려면 내가 정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쓰여야 한다는 집착

2023년 여름명상 수련에 이어 깨달음의 장을 진행하고 수련 마친 다음 날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예전에 대상포진을 세 번 정도 앓았는데 그때도 소임은 하고 있었기에 병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코로나 걸려서는 후유증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병가를 내고 지부법사 소임도 깨장 안내자 소임하던 것도 멈췄습니다. 근 두 달간 잠을 못 자니 사람이 이상해지고, 초반에는 이렇게 지내다가는 앞으로 일을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또 계획해 놓은 것을 누군가 대신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 얼른 나아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정토회에 들어와 마음껏 쓰일 수 있어 좋았던 저는 정토회 들어온 이후로 한 번도 멈춰선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껏 일하고 쓰였던 경험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아팠을 때는 오히려 걸림이 되었습니다. 가족들도 저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이 걱정을 했습니다. 남편도 처음으로 일을 줄이라고 했습니다.

화성지회 후덕법사님과 함께(오른쪽 향정법사님)
▲ 화성지회 후덕법사님과 함께(오른쪽 향정법사님)

그런데 아예 그 고비를 확 넘어버리니까 ‘일을 못 할 수도 있지’, ‘일을 안 할 수도 있지’ 싶었습니다. 쓰여야 한다는 것에 집착했음을 알았고 이를 놓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오히려 여유로워졌습니다. 또 아픈 게 꼭 나쁜 건 아니어서 활동이 더욱 소중해지고, 주변에 아픈 사람들도 이해하고, 같이 하는 도반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는 사실이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주변에 도반들이 아플 때는 ‘쉬어도 돼’, ‘그 기간만 지나가면 괜찮다’ 하는 기다림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아플 수도 있고 일을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쓰임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픈 기간만 지나면, 정토회에서 아예 손만 놓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창 코로나일 때 모두 모일 수가 없을 때였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홍보는 꼭 필요한 일이었는데 모여서 할 시기가 아니니까 자기 사는 곳에서 각자 캠페인을 했습니다. 저도 사거리에서 불교대학 현수막 걸어놓고 혼자서 피켓 들고 서 있었습니다. 사거리니까 누군가는 보겠지 하며 이쪽에 섰다가 저쪽에 섰다가 하면서 혼자라도 한다는 생각에 캠페인을 했습니다. 코로나 상황이었지만 온라인 정토대학이 생겼고, 전법을 위해 해야 할 일이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하니 주변에 살던 도반이 함께 했습니다. 함께 나누기도 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냥 재미나게 합니다

절할 때 너무 힘들지 않냐고 묻는데, 힘들 때는 그냥 천천히 합니다. 그리고 너무 힘들 때는 명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명상하다 보면 무릎이 괜찮아져서 다시 절을 합니다. 너무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건 물어보면서 했습니다. 버겁고 힘들 때는 스님께 상담도 하면서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요새도 자꾸 물어봅니다. 법사님들한테 무슨 일 있으면 여쭤봅니다. 면담할 때 어떤 걸 더 물어야 하는지, 저와 다른 사람인 경우에는 한 분 얘기 들어보고, 또 한 분 얘기 들어보며 내 식대로만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가족모임도 음식솜씨 좋은 남편이 거의 준비하여 집에서 하고, 커피를 안 마시니 정토사회문화회관 2층 방문하는 유일한 찻집입니다. 먹고 입고 자는 일이 단순한 반면에, 정토회 활동은 아기자기 재미나게 합니다. 내가 이 일을 당장 안 해도 정토회는 유지되고, 모자이크 붓다로 도반들이 일을 나눠서 하니까, 내가 할 때 그냥 재미나게 하면 됩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에
▲ 인도성지순례 중에

빈 자리를 채워준 고마운 가족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남편이 음식을 내놓습니다. 제가 그냥 쉴 수 있도록 해줍니다. 고맙다고 하고 맛있게 먹는 것이 제가 하는 감사의 인사입니다. 한 달에 4박 5일 두 번은 집을 비우는 아내가 불편했을 텐데,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알아서 해왔습니다. 아내로 살 수 있고 아이들 엄마로 살 수 있고 내 할 일이 충분히 있고 모든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남편이 말리지 않듯이 나도 남편이 하는 모든 것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바뀌고 나서는 온라인 관련해서 뭐든지 잘 안 되면 남편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노트북을 사용해서 하는 활동이 많아지니 남편이 사업할 때 쓰던 커다란 모니터를 가져와 제가 일할 수 있게도 해주었습니다. 최근에 남편은 온라인으로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다시 다녔습니다. 그 힘 때문인지 대통령상도 받고 크게 자기 사업을 하던 사람인데도 남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집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딸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이모도 그렇고, 필요한 정보는 딸에게 얻습니다. 어려서부터 엄마를 대신해 집안 대소사며 아빠와 동생을 챙기다 보니, 결혼해서도 여기저기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이제는 주변을 챙기고 보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딸의 짐이 무거웠겠다 싶어 미안한 마음입니다. 딸은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1인 홍보회사를 차려 일하면서 정토회 홍보 파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위도 깨달음의장과 나눔의장을 다녀왔으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들은 태중에 있을 때부터 편안했습니다. 9개월 되었을 때 나올 수도 있다고 하여 한달간 병원에 입원하여 가만히 누워있을 때도 편안했습니다. 병실이 6인실이었는데 모든 침대가 꽉 차 있을 때도, 나 혼자만 있을 때도 편안했습니다. 키울 때도 내 마음이 편안해서인지 시아버님이 아들을 세발자전거에 태우고 앞에서 끌며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실 때 풍경이 평화로워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들이 고관절에 염증이 생겨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낮에는 친정 언니가 병원에서 돌봐주고 저는 활동을 마치고 밤에만 가서 애를 돌본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하기로 한 일은 그냥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낮에는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아이도 잘 견뎌주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아들은 청소년기에 정토회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깨달음의 장은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족들이 한두 번 권했는데 가지 않기에 아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합니다. 아빠회사에 다닐적에는 함께 연구하여 장영실상도 받았습니다. 마음맞는 여친과 살고 있으니 잘 되었습니다.

엄마의 빈 자리, 아내의 빈 자리가 속상했을 텐데, 다들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해결을 한 것같습니다. 제가 정토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가족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엄마로서 부족했고, 아내로서 부족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2018년 법사수계식에서 가족과 함께
▲ 2018년 법사수계식에서 가족과 함께

나의 서원

부처님께서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가신 것처럼, 스님께서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계신 것처럼, 일상 그대로 괴로움이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것이 제 서원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가볍고 흔쾌히 살아가는 것, 도반들과 함께 서로 살리는 일을 하면서 여유롭고 한가한 날을 살아가는 것, 주어지는 대로 소임을 하면서 고마운 일체중생 은혜를 갚으면서 살아갑니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마음껏 쓰였던 경험을 넘어서, 이제는 쓰여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셨다는 법사님의 이야기가 제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다가왔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일상에서도 문득문득 법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냥 한다, 재미나게 한다, 서로 살리는 일이다, 정토회 일을 하면 자유로워진다.' 그렇게 바쁜 일정 속에서도 점점 더 한가하고 여유로워진다는 법사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저도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겠다고 발원합니다.

글_ 김옥자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양천지회)
편집_박선희 희망리포터(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지원_김혜경(서울제주지부 노원지회)

전체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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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의

법사님 감사합니다.
나누어주셔서 글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03-01 18:52:23

큰바다

법사님의 환한 미소와 늘 긍정하시는 모습,
어떤 상황도 받아들여주시는 태도에서
참 많이 배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025-02-26 17:09:48

조애자

법사님
수행담 잘 보았습니다
법사님의 서원을 잘 받들어 저도
그길을 잘 따라 가보겠습니다

2025-02-26 14: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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