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안양지회
나를 숙이니 세상이 변했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며 사전에 건네받은 답변지를 읽었습니다. 빼곡히 쓰여진 글의 초반에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이 있었는데, 마지막에는 그것들이 모두 없어졌습니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습니다. 안양지회 모둠장 문은미 님의 신기한 사연을 함께 만나보겠습니다.

엄마는 집에 있을까?

어린 시절 제 기억은 한 장면에 꽂혀 있습니다. 집을 나가겠다는 엄마와 울면서 매달리는 나! 학교 가면서 연신 뒤돌아봤습니다.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엄마가 없을까 걱정했습니다.

경찰인 아버지는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습니다. 남대문 시장에서 아버지 도움을 받지 않은 상인이 없을 정도로 남을 돕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지 못했고, 음주가무를 좋아했습니다. 바람도 많이 피웠습니다. 아버지가 밖에서 아이가 생겨 낙태 문제로 인해 어머니는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며 집을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엄마만 집에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엄마의 착한 딸로 살았고, 엄마의 해결사 노릇을 자처했습니다.

완벽주의 성향에 자존심이 강한 어머니는 절대 집안에서 있었던 일을 밖에서 말하지 않았고, 가정생활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했습니다. 자식에 대한 집착도 굉장히 강했습니다. 한 번도 집안에서 아버지와 큰소리 내며 싸우지 않고, 아침이면 반찬을 14가지나 차렸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외면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홍보 중
▲ 정토불교대학 홍보 중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즉흥적이며 유흥을 즐기던 아버지로 인해 저는 배우자로 반대 성향의 사람을 원했습니다. 매사 정확하고 과학적인, 공부하는 남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엄마도 결혼을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착하고 순해 보였던 남편과 잘 살 것 같았지만, 내 판단은 오산이었습니다. 연애할 때는 각도까지 고려하여 의자의 위치를 변경하는 모습이 세심하고 꼼꼼하여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강박 증상인 것은 몰랐습니다. 너무나 숫기가 없어 순수한 줄 알았는데, 공감 능력이 없어 대화를 단절한 은둔형 외톨이였습니다.

결혼 초 싸우느라 무던히 힘들었습니다. 엘리트인 시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증상을 보며 남편도 저 코스를 밟겠다 싶어 많이 싸웠지만, 바뀌지 않는 남편 모습에 포기했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저에게 ‘정작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는가?’ 라고, 물으면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 이렇게 열심히 살면 뭔가 큰 보상이 오겠지’ 그것이 답이었습니다.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온갖 것을 배우고 병원에서도 승진에 목숨 걸고 몸이 부서지라 일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기에 욕먹고 비난받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경전대학 입학식(뒷줄 맨 왼쪽 문은미 님)
▲ 경전대학 입학식(뒷줄 맨 왼쪽 문은미 님)

다른 집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그런 저에게 큰 시련이 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유모차를 태울 수 없던 아이, 유달리 예민한 아이, 큰애와 많이 달랐던 아이, 둘째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언어가 느리면 돈 주고 치료하면 된다. 문제가 생기면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해결하면 된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도대체 어떻게 기르고, 나중에 어떻게 먹고 살게 해야 하나?’ 두려움과 조바심에 무척 괴로웠습니다. 당장은 둘째 아이를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쟤는 왜 그럴까? 왜 남들과 다를까?’ 계속 아이를 채근하고 닦달했지만, 좋아지지 않고 상황은 더 악화하였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 남편에 이어 아이까지 이렇게 힘드나?'라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 한반도 평화대회에 둘째 아들과 함께
▲ 2017년 한반도 평화대회에 둘째 아들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월급날만 되면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는 많은 월급, 돈으로 치료하면 좋아질거라 생각하면서 그저 그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존경심을 받는 전문가라는 타이틀에서 저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둘째로 인해 점점 우리 가정은 피폐해졌습니다. 저와 남편은 매를 들기 시작했고 협박도 하고 화도 냈습니다.

둘째가 그러니 큰애를 잡았습니다. 공부를 소홀히 하면 화를 내고 짜증을 냈습니다. 집은 따뜻한 곳이 아니라 점점 지옥이 되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급기야 "둘째를 보육원에 보내자.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에게 "인간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이만 없다면, 아이만 좋아진다면 다 해결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양정토회 사회자 교육 후(뒷줄 오른쪽 두 번째 문은미 님)
▲ 안양정토회 사회자 교육 후(뒷줄 오른쪽 두 번째 문은미 님)

아이가 좋아진다면, 지푸라기라도!

사정을 잘 아는 지인이 천일결사1를 소개하며 "너도 꼭 한번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을 믿고 2015년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공부하고 수행도 했지만, 휘몰아치는 격한 감정 속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도반과 나누기하면서 약간의 갈증이 해소되었지만, ’도대체 수행하면 무엇이 좋아진다는 거야?‘ 반문하며 역시 ’나는 안 되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아들과 JTS거리모금
▲ 둘째 아들과 JTS거리모금

둘째 아이가 어느 날 기침 틱 증상이 심해져 제가 간호사로 근무하는 병원 응급실에 데리고 갔습니다. 친분이 있던 응급실 의사에게 빨리 주사를 놓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약물의 용량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극도의 공포감을 경험하면서 그동안의 치료는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정신과 1인 실에 입원하여 1분 1초도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불도 끄지 못하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갔습니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정말 관세음보살이 입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병원 소파에서 ‘수행 맛보기’를 하며 절 수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간절함이 어떤 건지 절실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18년 동안 다닌 병원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후〈깨달음의 장2〉에 다녀오고,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옅어졌지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업식 앞에서 또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도반과 주 1일 봉사 안내(가운데 문은미 님)
▲ 도반과 주 1일 봉사 안내(가운데 문은미 님)

절하면서 나를 만났습니다.

2016년 1월 1일 군포 법당이 생기고 도반과 새벽 정진을 함께 했습니다. 매일 300배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방석에 머리를 대고 잔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같이 하는 도반이 있어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 문제로 정진을 시작했지만, 남편에 대한 참회 기도를 하다 보니 남편을 원망했던 밑 마음으로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 그리고 엄마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어린 나’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300배 백일정진’으로 부모님에게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감사기도 중 엄청나게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음식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엄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엄마는 내가 원하는 따뜻한 말 대신 엄마가 옳다는 생각으로 나를 대했구나!'를 알았습니다. 그 후로 엄마가 칭찬하든 비난하든 고생하면서 나를 키워준 엄마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있는 그대로 봐주고 기다려야 하지만, 기도해도 집착에 사로잡히면 계속 무너졌습니다. 무너지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고, ‘왜 안 될까?’ 하는 자책과 의문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막연하게 '남편에 대한 참회 기도가 건성이었구나!' 알아차렸습니다. 남편에게 불편한 마음은 여지없이 그 화살이 아이들에게 향했습니다. 남편도 부모의 갈등을 겪으며 어쩔 수 없이 그런 성격이 되었을 거라 이해하며 참회 기도를 하지만, 무의식에서 불쑥불쑥 ‘그런 너랑 사는 나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해!’라는 무시와 원망이 올라왔습니다. 남편을 향한 참회 기도는 멀고도 험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냥 하겠습니다.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법 활동가 수계식(오른쪽 문은미 님)
▲ 전법 활동가 수계식(오른쪽 문은미 님)

폭력과 존중

둘째 아이를 데리고 안산다문화센타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친구가 없던 둘째는 나비 장터 봉사, 태국축제 분리수거 봉사,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요리 교실 봉사를 했습니다. 다문화 아이들과 찜질방도 가고 음식도 같이 먹는 등 학교에서는 왕따였지만, 정토회에서는 도반들과 법사님의 따뜻함으로 아들과 저는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주 법사님이 다문화센터에서 업무를 봤습니다. 하루는 저는 법사님 주위에서 청소했고, 아이들은 대법당에서 미니 축구를 했습니다. 그러다 둘째 아이가 노트북 작업을 하는 법사님 책상으로 공을 여러 번 넘겼습니다. 저는 아이를 나무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 순간 법사님은 노트북을 덮고 “보살님, 내가 불편하다고 애기했나요? 보살님 행동을 보니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해 주의를 주었다."라고 하니 “내가 불편하면 아이에게 직접 말하면 되는 것을 보살님은 본인이 이럴 것이다. 라고 생각해 물어보지도 않고 행동하네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매사 본인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전율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제가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법사님, 제가 사실은 인도에 아이와 함께 봉사를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사님은 인도에 가고 싶은 이유를 물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상태와 제 상황을 이유로 들어 말했습니다. 법사님은 "여기에서 문제라고 느끼는 것들이 그곳에 간다고 특별히 좋아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문제라고 느끼는 보살님의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정일사 후(뒷줄 맨 오른쪽 문은미 님)
▲ 정일사 후(뒷줄 맨 오른쪽 문은미 님)

아침 정진, 나의 목숨줄

아이의 문제가 점점 괴롭지 않고, 이제는 다른 문제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로 술만 먹는 남편, 게임을 하는 큰아들 등등 내 안에 끊임없이 공부 거리가 생기지만 그럼에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올라오는 마음에 명심문을 되뇌며 다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잘 넘어가기도, 때로는 놓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침 정진은 저에게는 목숨줄 같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예전보다 자유롭고 행복해졌기 때문입니다.

수행은 하면 할수록 좋은 것 같습니다. 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일이 즐겁고 놀랍고 두렵지만, 그런 나를 다독일 힘이 생긴 것 같아 좋습니다.

법회 후 도반들과(맨 왼쪽 문은미 님)
▲ 법회 후 도반들과(맨 왼쪽 문은미 님)

숙이고 맞추겠습니다.

절하고 나누기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됩니다. 흥분하고 급했던 마음도 많이 차분해졌습니다. 내가 변하니 남편도 변하고 아이들도 변했습니다. 남편은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도반이 되었습니다. 두 아들은 행복학교3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걱정을 놓지 못했던 둘째 아이는 요리사를 꿈꾸며 현재는 취사병으로 군복무 중입니다.

지옥이던 우리 집은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내가 변하면 상대도 당연히 변해야지’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변해도 되고 안 변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내 관점의 변화였습니다. 넘어지면 관점을 다시 잡고 가면 됩니다. 지나온 정토회 10년, 돌아보면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 제일 잘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둠장을 하고 있습니다. 소임이 복이라고 모둠장을 하면서 저의 업식을 또 한 번 마주합니다. 저의 명심문은 ‘저는 없습니다. 숙이고 맞추겠습니다.’입니다. 꾸준히 수행 정진하며 잘 쓰이겠습니다.

불교대학 홍보(오른쪽 문은미 님)
▲ 불교대학 홍보(오른쪽 문은미 님)


인터뷰를 마치며 문은미 님은 “어머니는 미스 00으로 선발된 미인이었어요!”라고 말하며 해맑게 웃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행복하다는 도반의 모습을 보며 저도 따라 밝게 웃었습니다. 어지러운 시국에 잠을 설치며 우울하고 긴장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모처럼 환한 햇살을 비춘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글_민헌기 희망리포터(인천경기서부지부 인천지회)
편집_박선희(강원경기동부지부 수원지회)


  1. 천일결사 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만일)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천일)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3.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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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의

수행담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로 잘 풀어 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03-01 19:06:09

이경혜

내가 바뀌면 상대가 그대로 있어도 달리보인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마음내어 주신 글 감사합니다.

2025-02-27 07:36:30

태홍

대단하셔요. 글에서 엄청 치열하게 사투하신 세월이 느껴져요. 문은미 보살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아이와 남편이 있어서 절실하게 하신 느낌이 들었어요. 정진하는 그 힘을 저도 본받고 싶어요.

2025-02-24 16: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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