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밀양법당
넘어지면서 나아가는 수행자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화상 회의가 많아졌습니다. 며칠 전에도 온라인 전법 정담회를 했는데 그곳에서 사회를 보는 신경선 님을 만났습니다. 신경선 님은 기기에 문제가 있어 화상 회의가 매끄럽지 않을 때에도 차분하게 진행합니다. 도반들이 편안한 나누기를 하도록 진행하는 신경선 님에게 기사를 부탁했습니다. 자신은 쓸거리가 없고 부끄럽다며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도반들이 정토회 경력이 10년 가까이 되는데 그동안의 수행담을 써보라는 권유에 "예"하고 받았습니다. 신경선 님의 삶 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외동딸에 대한 집착

감사한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 감사한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저는 8년 전 정토회에 들어왔고 남편, 딸 1명과 셋이서 단촐하게 살고 있습니다. 8년 전 육아 스트레스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5살밖에 안 된 아이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사사건건 짜증을 부렸습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내 생각대로 하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화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쯤 아이 머리에 군데군데 원형 탈모가 생겼습니다. 병원에서는 머리카락을 묶어서 생긴 견인성 탈모라고 했지만 아이가 저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로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는 아이를 정말 잘 키우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영재로 키울 계획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중에 나와 있는 베스트셀러 육아서대로 키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책이 좋다하면 모아 놓은 용돈으로 책을 사고, 아이에게 자연이 좋다고 하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아이를 데리고 온 동네를 다녔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내 모습

저는 아이가 저와는 다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긴 얼굴부터, 늘 구부리고 있는 자세,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게으르고 겁 많은 성격. 뭘 하나 해도 엉성하게 하는 야무지지 못한 제 모습. 직장에서는 너무 덜렁댄다고 경달이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 딸만큼은 어딜 내놓아도 빠지지 않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제 마음도 아이 마음도 뒤로 한 채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지쳐가던 중 저는 제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아이를 맞추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가 힘들어해서 심리 상담도 갔으나, 그것은 잠시였습니다. 심리 상담이 끝난 후에는 다시 아이를 다그치고, 여전히 제 틀 안에 끼워 맞추려고 하였습니다.

정토회와의 만남

환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 환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그러던 중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학교 돌봄 교사였던 양미순 선생님을 만나 정토회를 알았습니다. 당시 불교대학과 수행법회를 담당했던 선생님은 제게 말없이 희망편지 엽서를 주었습니다. 거기에 평화재단 사이트가 있어 무심코 들어가 즉문즉설 영상을 보았습니다. 질문자들의 무거운 질문을 스님은 가볍게 풀었습니다. 밀양에도 이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알아보니 밀양법당이 있었습니다. 저도 수행자가 되어 아이에게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잣대를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불교대학 입학보다 수행법회의 법문을 먼저 들었습니다. 매주 수요일이 너무 기다려졌습니다. 수요일마다 유쾌하고 유익한 법문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내 업식을 알아차리다

영원한 도반, 남편과 표충사에서
▲ 영원한 도반, 남편과 표충사에서

저는 대중 앞에만 서면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합니다. 가슴만 콩닥거리는게 아니라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왔습니다. 그러면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대중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수행법문 중에 대중 앞에 서면 떨리고 부끄럽다는 질문에 자신이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잘하려고 하는 마음, 그렇지 못해서 오는 열등감 또는 우월감이라고 하는데 정말 제 이야기 같았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난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 부족한 모습, 붉은 얼굴로 떨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중들 앞에 서는 것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학창시절에도 그랬습니다. 발표 있는 날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고, 교탁 앞에 서면 그냥 울어 버렸습니다. 그런 제 업식을 알아차리고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대중 앞에 서는 연습을 했습니다. 여전히 긴장되고 떨리는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대중들과 나누기도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법당 총무가 수행법회 사회 봉사도 권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사회도 편안해졌습니다. 우리 도반들만 있으면 비교적 안정된 목소리로 편안하게 진행했지만 행여 누구라도 외부에서 오면 또 잘 보이고 싶어하는 업식이 작동하는지 떨리긴 했습니다.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니 아이 문제도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통해서 제가 잘나고 싶어했던 것이 보였습니다. 아이가 못하면 제가 못하는 것 같아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아이가 잘하면 제가 잘하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그동안 아이를 내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딸에게 미안했습니다. 지금도 5살 때 아이 사진을 보면 너무 미안해서 눈물이 납니다.

감동적인 스님의 답변

2019년 주간활동가들과 정기모금(맨 오른쪽)
▲ 2019년 주간활동가들과 정기모금(맨 오른쪽)

2017년 봄 불교 대학 학생에게 창원에서 진행되는 열린 법회를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활동가 도반이 그동안 봉사한 공덕으로 스님에게 질문 한 번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이 많은 대중들 앞에서 떨려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으로 할까 말까 고민하던 중 현장에서 총무가 바로 접수했습니다. "너무 떨려요. 스님, 아이가 저를 닮아 너무 걱정입니다. 저와 다른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라는 질문에 "떨려도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할 거다."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떨면서 하고 싶은 말을 꾸역꾸역 다 하고 있었습니다. 법문을 듣지 않고 수행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제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변화였고, 감동이었습니다. 스님 법문을 들으며 '아이가 엄마인 나를 닮는게 당연하구나, 비록 나를 닮았어도 나처럼 결혼해서 잘 살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님은 남편에게 감사기도를 하라고 했지만 확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 식대로 아침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에게 제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마찰도 여전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기도 중 '뭐든지 내 식대로 하는 업식이 있구나. 내 식대로 하니 안되어서 스님에게 질문을 했으니 주신 법문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에 매일 남편에게 감사의 절을 하였습니다. 절을 하던 도중 신기하게도 남편에게 감사함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감사함이 저절로 올라왔습니다. 안 아프고, 학교 잘 다녀오고, 친구들이랑 싸우지 않고, 술 담배 안 하고, 힘들면 제게 와서 얘기하고 이런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저 주어진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자유롭고 편안해 지는 방법

딸과의 행복한 문화산책
▲ 딸과의 행복한 문화산책

정토회를 통해 불법을 만나 제 모습을 알아차리고 수행을 하니 삶이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연습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 그냥 지켜보기, 욕 잘 얻어먹기, 주름진 얼굴 잘 받아들이기, 다른 이와 비교하지 않기, 친정엄마의 무한 반복되는 이야기 듣기, 하기 싫은 것 그냥 해보기, 주어진 규칙대로 해 보기 등. 수행하는 동안 날 괴롭혔던 업식이 두더지 게임같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더 자유롭게 행복해지는 방법은 꾸준한 연습밖에 없다는 법문이 요즈음 많이 와닿습니다. 매일 먼지를 닦아내듯 꾸준히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한지에 물감이 서서히 번지듯 옆에 있으면 신경선 님의 선한 기운에 저도 함께 물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넘어지면서도 나아가는 신경선 님의 수행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8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래도록 회계 소임을 맡았고, 수행법회 사회와 경전반 스텝, 그리고 모둠장 등을 맡아 꾸준히 봉사를 해온 신경선 님. 스님의 법문처럼 뒤집어썼던 양동이를 바로 세워 가득 받은 법비가 신경선 님의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과 세상에 고루 뿌려져 모두가 행복해지길 기원합니다.

[신경선 님의 질문 영상]

▲ 내가 행복해야 우리 아이도 행복하다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신입생모집
▲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신입생모집

글_조계연_희망리포터(김해정토회_밀양법당)
편집_손정화(수성정토회_수성법당)

전체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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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왕

정토행자님들이 내어 놓는 수행담이 모두 살아있는 법문입니다. 도반이 스승입니다. 감사합니다.

2021-02-20 08:27:28

산무명

와, 엄청난 용기를 내셨네요..
추운 겨울날 아랫목에 있는 화롯불 같은 지혜화보살님,
감동입니다~~
평소에도 많이 배우는데.. 내공이 걍 쌓이는게 아니군요 역시!!

2021-02-16 23:04:06

이용애

스님께 즉문즉설 하셨네요^^
꾸준히 하는 행복한 수행자님
고맙습니다

2021-02-16 19: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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