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성정토회
자등명 법등명의 가르침을 품에 안고

주인공 조현아 님은 정토회와 인연 맺은 지 3년이 되어가는 새내기입니다. 정토불교대학, 경전반을 졸업하고 지금은 온라인 정토불교대학 스텝과 금요정기법회 진행자를 맡고있습니다. 마치 봄비 내린 대숲의 죽순처럼 쑤욱~ 쑥 활동가로 자라나고 있는데요. 활동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개인 문제를 수행과 봉사로 해결하고 있다는 조현아님을 만나보겠습니다.

내 삶이 무너지는 순간 정토불교대학을 만나다.

13년의 결혼 기간 중 남편은 3년에 한 번씩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상의 하지 않고 가정경제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한 의논도 없이 무작정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이상해서 물어보면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남편이 ‘얼마나 힘들면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직장을 그만두었을까’ 싶어 이해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입학식날 도반들과 함께
▲ 정토불교대학 입학식날 도반들과 함께

신혼 때 남편의 차를 탔던 어느 날, 차문 보관함에 은행통장이 있어 살펴보니 마이너스 통장과 보험회사 대출금 고지서가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이 있다는 것과 남편에게 빚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했나 우리 가족 모두 잘 살게 하려고 그랬지. 그리고 회사의 실적을 맞추려고 하니까 그렇게 됐지.” 하고 당당하고 말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어린 나이였고 8살이 많은 남편이라 ‘아 남편의 말이 맞겠구나, 남편도 당연히 가족을 위해서 그런 거였구나. 함께 갚아 나가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빚을 갚았습니다. 빚을 갚은 돈은 결혼할 때 예단비 대신하여 집 살 때 보태기로 한 친정어머니의 돈이었습니다. 저와의 상의도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대출을 받아 빚도 많았지만 저는 여전히 남편이 좋고 듬직했습니다.

남편은 다시 직장을 다니다가 3년이 되자 아무런 말 없이 또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이때 까지도 하더라도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의 뜻에 맞춰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가정경제가 갈수록 나빠질 때 쯤 저는 결혼 전에 다녔던 직장을 더 좋은 조건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원하는 가정은 제가 전업주부로서 아이들과 늘 함께있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직장을 다니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아이들 하교 후 제가 집에 없다는 이유로 남편은 직장 다니는 저를 싫어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남편이 저를 원망을 할 때에도 ‘아! 남편이 힘들어서 그렇겠지, 언젠가는 잘 될 거야’ 하는 생각과 희망으로 남편을 이해하려고 했지 원망하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남편은 3년 전 퇴직을 끝으로 직장을 구하지 않았고, 친정집의 돈을 빌려서 애완동물 용품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 되었지만 주변에 대형 애완동물 용품 가게가 생기자 가게는 갈수록 힘들어졌습니다. 더 이상 가게 운영이 어렵게 되자 가게를 정리했습니다. 가게를 시작할 때 친정집에서 빌려간 자본금은 다 까먹고 빚만 잔뜩 남았습니다. 남편은 가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저와 친정 부모님께 그간의 사정에 대한 설명도, 해명도 없었습니다. 가게 정리를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버텨왔던 남편에 대한 저의 신뢰감이 한없이 무너져 내렸고 ‘앞으로 잘 될 거야.’ 하는 희망도, 마음도 멀어졌습니다.

남편에 대한 신뢰감과 희망이 무너지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법륜스님의 ‘희망편지’가 카카오스토리에 정토불교대학 홍보로 나왔습니다. 용기를 내서 입학원서를 내고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불교대학을 개근하겠다는 마음으로 빠짐없이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퇴근해서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 준비해 놓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도 불교대학을 다니는 저를 남편은 항상 싫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꿋꿋하게 불교대학을 개근으로 졸업했습니다.

결혼 10년 만에 오롯이 저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았고, 법문을 듣고 소임을 하는 생활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더 편해지고 저를 표현하는 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당당해지고 편해지는 만큼 남편은 저를 더 미워하고 원망했습니다. “네가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자존감이 높아져서 사람을 무시한다.”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외로움 투성이 어린 소녀

저는 어릴 때 작은 마을 농사짓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위로 언니와 오빠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어린 저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게 되었고 언니와 오빠만 대구로 전학을 보냈습니다. 전에는 항상 언니, 오빠와 함께 놀았는데 하교 후 집에 오니 함께 있을 사람이 없었고 늘 혼자였습니다. 농사일이 적은 겨울철 잠깐만 제외하고 부모님은 농사일에 바쁘셔서 저와 같이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해가 길어 늦게까지 들 일을 할 수 있는 여름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혼자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외로움을 느꼈나 봅니다.

경주남산순례 중 도반들과 함께(윗줄 가운데)
▲ 경주남산순례 중 도반들과 함께(윗줄 가운데)

<깨달음의 장1>에서 이게 내 외로움을 시작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랑 놀다가 싸우거나 삐지면 “우리 집에 오지 마” 하고 집으로 가는 친구에게는 집에 형제가 있지만 저는 늘 혼자였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외롭고 싫어, 초등학교 일학년인 저는 엄마가 집에 오기 전에 밥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외로우면 청소와 정리를 하는 습관이 생겼나 봅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느낄 때면 청소를 했습니다. 다 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제 속도 모르고 사람들은 청소를 열심히 하는 저를 칭찬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불편하거나 불안하면 청소를 하고 주변 정리를 합니다. 이제는 ‘불안해서 내가 움직이고 있구나, 청소를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초등학교 4학년 쯤 저 역시 대구로 전학을 왔지만 언니는 이미 고등학생이었고, 오빠는 사춘기 중학생이라 저와 같이 놀아줄 사람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언니는 시집을 가고 오빠는 군대를 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늘 혼자였습니다. 어른이 되어 남자를 만날 때에도 이 남자가 떠나고 나면 또 혼자가 될까 봐 늘 두려웠습니다. 외로워질까 두려워 주장도 못하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다시 혼자가 되지 않으려고 남자에게 무조건 맞추거나 나에게 잘해주는 남자만 만났습니다.

처음 저에게 잘해주는 남편은 너무 자상했고 든든했습니다.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스물일곱,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저는 여전히 외로운 순간이 많았습니다. 외로움을 느낄 때면 어린 시절 저를 외롭게 만들었던 부모님과 형제들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부모님를 향한 원망이 감사함으로.

<깨달음의 장>을 하면서 초등학교 1학년 겨울 늦은 시간, 혼자 있기 싫어서 엄마 손을 잡고 수박 비닐하우스에 갔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춥다고 따뜻하게 천으로 저를 덮어주고 비닐하우스를 돌면서 일을 다 마친 엄마가 저를 업고 집으로 돌아오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엄마 등의 따뜻한 온기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았던 포근한 느낌이 엄마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경전반 졸업식날 도반들과 함께
▲ 경전반 졸업식날 도반들과 함께

그때의 엄마 나이가 지금 내 나이였구나, 그때의 엄마도 참 힘들었구나, 농사일도 힘들고 여러 명의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들었겠구나, 열심히 일해도 수확이 나지 않는 농사도 힘들었고, 술만 먹으면 화를 내고 엄마를 때리기도 하는 아버지도 힘들었겠구나...
이런 생각에 저를 혼자 둔 엄마가 이해되었습니다. 술을 먹으면 지나간 잘못을 들추어내 화를 내고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 자식에게 화를 내고 때리기도 했던 아버지도 자기 삶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구나 생각이 듭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고 사느라 힘들어서 가까운 가족에게 화풀이를 했구나,’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언니도 언니대로, 오빠의 심각했던 사춘기 방황도 각자의 인생을 잘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던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부모, 형제가 저를 외롭게 만들었다며 원망하고 살았을까요? 누구나 다 외로운 순간과 혼자인 시간이 있는데 오로지 ‘나 혼자만 외로운 사람’이라고 괴롭히는 제가 보였습니다. 잘못된 생각이라는 자각과 함께 저의 외로움과 부모, 형제에 대한 원망이 스르르 녹아 내렸습니다. 그 힘들었던 시간에도 우리에게 화를 내지도 때리지도 않았던, 그런 엄마로 인해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도 생겼습니다.

깨달음은 여러 가지의 모습으로.

전에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저한테만 잘 해주면 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 선택했습니다. 남편의 자상함이 좋았고 섬세함이 좋아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그 자상함과 섬세함은 저를 구속하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저는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혼날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이 있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늘 외로웠고, 그 외로움을 두려워한다는 것 또한 <깨달음의 장>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제 생각과 요구를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저의 생각대로 해주지 않는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불교공부를 하면서 점점 더 편안해지고, 저의 생각을 표현하게 되니 남편은 제가 변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본인에 비해 의견을 더 표현하며 당당히 법당을 다니는 저에게 남편을 무시한다고 합니다. 제가 본인에게 맞추지 않자 남편은 점점 힘들어했습니다. 가게 정리 후 친정 오빠의 회사에 다니던 남편은 유조차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대출을 요구하는 본인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자 대화는 없어지고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5개월 전, 아이들 다 챙겨주고 방에 들어가 수행법회를 듣고 있는데 남편이 작을 딸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때리는 시늉을 했습니다. 아이가 놀라서 내 방으로 슬금슬금 들어왔습니다. 물어보니 아이가 숙제를 안 했으면서 했다고 한 거짓말이 원인이었습니다. 그 순간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고, 남편이 아이에게 취한 행동에 더 화가 났습니다. 그 순간 저도 ‘거짓말하면 안 된다.’ 하면서 아이를 때렸습니다. 그러자 자기 앞에서 내가 아이를 때리는 것은 가장의 권위가 무너진 것이라고 말하면서 남편은 말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남편이 집을 나가 제주도 여행을 갔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었고, 오빠를 통해서는 남편이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또 생기자 남편에 대한 신뢰는 또 다시 무너졌습니다. 남편이 집을 나간 두 달 동안 나와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 하는 자책도 많이 했고, 이런 상황의 제가 서러웠습니다.

저만큼이나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빠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다독여 주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남편이 집을 나간 후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과 달리 잔소리하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지니 눈치 볼 사람도 없어서 좋았습니다. 아이들도 늘 간섭하고 지시하는 아빠가 없는 상황을 자유롭고 편안해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남편 앞에서 아이를 때린 일은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지로 사과를 한 후 두 달 만에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네가 사과를 해서 돌아왔는데, 내가 없을 때 어땠어?”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막막함도 있었고, 당신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지만 편안한 점도 있었어.” 라고 솔직한 제 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은 나의 마음이 편안했다는 말에 속상해서 인지 화를 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둔 이유를 묻는 말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야 가족 간의 소통과 화합이 잘 된다고 생각했던 저와는 달리 남편은 가족관계가 좋은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경제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습니다.

봉사를 통해 글로 배운 깨달음을 몸으로 체험하다.

불교대학를 다니면서 만난 선배 도반들은 시간이 많아서 봉사하겠지 하는 마음에 감사함, 고마움은 별로 없었습니다. ‘나는 남편 눈치 보면서 공부하러 왔는데 저 사람들은 좋은 신랑을 만나서 이렇게 활동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부럽기도 했습니다.

고민과 갈등이 많았던 저에게 불교대학 스텝 소임 제안이 왔을 때에도 노트북도, 진행 장소도 마땅찮은 상황이었습니다. 들은 건 있어서 소임이 오면 ‘네~ 하고 받습니다.’가 생각나서 일단 소임은 받았습니다. 소임덕분에 학생 때와 다르게 책임감을 가지고 수업을 듣다 보니 법문이 새롭게 들리고 사물과 사람에 대한 관점도, 제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경전반 입학 축하무대(오른쪽 조현아님)
▲ 경전반 입학 축하무대(오른쪽 조현아님)

예전에는 글로만 배웠다면 이제는 제 몸의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전에는 아침 기도를 해도 참회가 되지 않는 날도 많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넘어가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봉사 소임을 하면서 저절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아침기도를 빼먹지 않고 합니다.

특히 함께 봉사하는 저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진행자분과 함께하면서도 사람들의 다름도 알게 됩니다. 학생들과 함께 나누기를 하고, 화상으로 아침기도를 함께 하며 밀어주고 끌어주는 이것이 ‘도반의 힘’임을 압니다.

불교대학과 경전반 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소임을 하면서 ‘아!! 그게 이거였구나’ 하는 깨우침을 얻는 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몸으로 체득되어 제 것이 되는 경험, 나의 업식이 변화되는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소임이 올 때면 왜 무조건 ‘네’ 하고 받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봉사가 내 수행의 밑거름이자 자산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제가 학생일 때 봉사해주신 선배 도반들에게도 많이 감사합니다.

자유롭고 당당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서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과 소통을 잘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꿋꿋이 잘 섰을 때 저와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제가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족쇄를 풀고 꿋꿋하게 서기 위해 이혼을 선택했습니다.

이혼은 남편이 먼저 하자고 했습니다. 다시 남편은 집을 나갔고 이혼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남편에 대해 원망은 더 이상 없습니다. 다만 애들 아빠로서 역할은 잘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혼녀라는 사회적 선입견, 아이들에게 미안함도 컸습니다. 하지만 법문을 들으며 수행을 하고, 관점을 달리하니 이것 또한 나의 편견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혼을 선택하기 전, 저는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추어 살면서 저의 생각과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노예로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당당하게 제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제 삶의 주인으로서 삶을 선택했습니다.

‘나의 삶은 내가 선택하고 따라오는 평가와 주변의 시선들에 대해서 그래, 그것도 나야.’ 하면서 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제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제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살겠습니다. ‘자등명, 법등명’의 가르침을 품에 안고 수행자의 삶의 살고자 합니다.


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날 대구에도 긴 가뭄 속에서 풀풀 날리는 먼지를 잠재워주는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앞에 앉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다 울컥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조현아 님에게서는 잔가지 끝까지 물이 오른 이른 봄 나무의 싱싱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싱싱함이 내 안의 생동감을 다시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울창한 숲을 함께 이루며 살아가는 도반임이 참 감사했습니다.

글_안정미 희망리포터(수성정토회 수성법당)
편집_정지혜(해운대정토회 반여법당)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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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란

내 마음이 지옥이라 답답한 마음에 여러번 불교대학을 신청하고 취소하기를 여러번...
이 글을 읽고 등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신점도 보고 용하다는 철학관도 가보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결과에 돌덩어리만 가슴에 더 올려둔 꼴이었습니다.
무조건 참고 기도하라고 하니 한숨만 나고 모든 것이 내 사주때문이라고 해서 더욱 답답했습니다.
나눔 감사합니다

2021-02-28 13:00:11

박신영

도반님의 어려운 결정에 진심으로 위로에 말을 전합니다 자기삶을 당당하게 살면 아이들도 엄마가 든든한 울타리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솔직하고 진실한 나누기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02-19 06:17:14

김인선

안녕하세요, 현아샘~
이곳에서 샘의 소식을 듣게 되네요~
저는 샘을 기억하는데, 현아샘도 저를 기억하실지는 ??
샘의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샘이 어떤 선택을 하던 지지하고 축하드려요~
샘을 만난 반가움에 많은 이야길하고 싶지만 그럴수 없어서 아쉽네요.
멀리서나마 샘을 응원할게요~
건강하세요~^^

2021-02-17 11: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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