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대잠법당
이제는 정말 괜찮아요

오늘은 인생의 절반을 가족들 병간호와 뒷바라지로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내 고집을 버리는’ 이치를 몸소 실천하며 배웠다는 대잠법당의 마더 테레사 이행숙 님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입니다.

법륜스님 희망강연 봉사 중(왼쪽에서 네 번째 이행숙 님)
▲ 법륜스님 희망강연 봉사 중(왼쪽에서 네 번째 이행숙 님)

나는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요

부유하진 않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에서 2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기도하는 것을 좋아해서 동네 언니들을 따라 교회에도 가보고 성당도 다녀봤습니다. 배우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그런 저를 어머니는 어느 종교를 믿던 자유라며 존중해 주었습니다. 바로 위의 언니는 소아마비로 다리를 많이 접니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사달라고 떼를 쓰는 언니를 보며 나는 부모님께 짐이 되지 않으려 어릴 때부터 언니 몫까지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다 25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신혼부터 뜻하지 않은 고된 시집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살림해보지 않은 저는 경조사와 명절 행사 등 모든 게 어렵기만 했습니다. 시어머님은 머리카락 빼고 온몸이 다 아프다며 누워만 계셨습니다. 날마다 술에 취해있는 아버님의 뒷바라지는 제 몫이 되었습니다. 외항선을 타는 아주버님은 집에 오실 때면 3~4개월씩 꼼짝 않고 술만 마셨습니다. 항상 술에 취해 가족들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니 집안은 풍비박산이었습니다. 시어머님 병시중에 아버님과 아주버님 뒷바라지하며 시집 조카들도 돌봤습니다. 꿈꿔온 결혼생활과는 정반대라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가끔 연락이 오면 걱정 하실까봐 다들 잘해주신다며 제 마음을 숨기고 괜찮은 척했습니다.

건강을 위해 산에 올라 운동 중
▲ 건강을 위해 산에 올라 운동 중

먼저 간 첫 아이가 준 큰 선물

임신을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유아용품을 장만하며 꿈에 부풀어 지냈습니다. 교대근무하는 남편 퇴근을 기다렸다가 자전거 뒤에 앉아서 함께 오기도 하며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 둘은 행복했습니다. 어둡기만 했던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자 차츰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우리 곁에 함께한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병원 진료를 보러 갔다가 아기에게 이상이 있다며 큰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첫 아이를 지켜주지 못하고 보내고 말았습니다. 매미를 봐도 꽃을 봐도 새가 울어도 그 아이인 것처럼 느껴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남에게 못된 짓 안 하고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버님은 손자 잃은 슬픔에 술을 드시고 주무시기만 합니다. 어머님은 집에 있으면 손자 생각이 난다며 경로당에서 지내며 울기만 하십니다. 남편도 자는 척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나도 불어난 젖을 삭히며 몰래몰래 웁니다. 우리 가족은 아픔의 시간을 지나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지켜주지 못한 아이를 생각하면서 아들 셋을 낳았고 아이들은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아이 덕분에 바람 잘 날 없던 가정이 돈독해지고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며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아이는 짧게 왔다 갔지만, 우리 가족에게 큰 선물을 주고 떠났음을 알았습니다.

JTS 거리 모금 중
▲ JTS 거리 모금 중

삶이 무거웠지만 그 또한 괜찮아요

어느 날 남편이 다급한 목소리로 당장 병원 응급실로 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에 가니 아주버님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누워있었습니다. 만취해서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입니다. 2년 동안의 긴 병원 생활 끝에 퇴원했지만, 집으로 와서도 일상생활을 하기는 무리였습니다. 혼자는 버거워 도움을 요청했지만 ‘지 팔자니까 어떻게 되든지 내버려 둬라’하며 시집 식구들은 외면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남편과 세 아들 챙기랴 어머님, 아주버님 병시중하랴 초능력으로 사는 나날이었습니다. 매일 배로 나오는 아주버님의 변을 치워가며 마비되어있는 다리에 뜨거운 물로 찜질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남편은 자식들을 불러놓고 보게 합니다. 살아가다 우리 중 누가 이런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가르치며 삼 형제를 강하게 키웠습니다. 무거운 짐 지기 싫어서 남편과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남편은 남에게도 봉사하는데 가까운 가족 봉사하는 마음으로 돌보자고 호소합니다. 많은 일을 겪으며 내 몸 아파도 아픈 줄 모르며 바쁘게 살았습니다. 살림도 점점 익숙해지고 정성스럽게 간호한 덕에 아주버님은 차츰 건강을 회복했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6년간 기저귀를 차고 지내다가 마지막으로 남편 손 붙잡아보고 눈을 감았습니다. 아버님도 치매로 6개월간 고생하다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백중기도 목탁바라지(오른쪽 이행숙 님)
▲ 백중기도 목탁바라지(오른쪽 이행숙 님)

괜찮은 척이 아닌 정말 괜찮구나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공허함과 우울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곁에서 도움을 주던 요양보호사가 정토회 회원이어서, 그 모습을 보고 정토불교대학에 가보라 권유했습니다. 남편도 저에게 가보라고 권해서 불교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입학식에서 선배 도반의 입학 축하공연에 감동해서 결석하지 않고 다녀보자 마음먹었습니다. 허리 협착증으로 몸이 많이 불편했지만, 수업이 재미있어서 법당 가는 길이 항상 설레었습니다. 불교대학 수업 중 1박 2일 문경특강을 갔습니다. 300배를 마치고 내려 올 때 다리에 마비가 와서 동료 도반들이 저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부축해주었습니다. 도반들끼리 서로 챙기며 도반의 소중함을 알아갔습니다.

하지만 재밌기만 하던 수업에 마장이 찾아왔습니다. 경전을 배우고 싶어서 왔는데 JTS 거리모금, 거리 홍보 등에 마구 내던져지는 것 같았습니다. 수업에서 배운 법과 일상생활에서 직접 체험해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를 알아가는 시간이 힘들게 느껴질 때쯤 <깨달음의 장1>에 가게 되었습니다. 긴 세월 가족들 뒷바라지로 힘들었던 날들을 원망하며 지낼 뻔했는데, 제 마음 하나 고쳐먹으니 그 세월이 제게 얼마나 큰 복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시부모님 가시는 날까지 보살피다가 보내드린 것이 더는 저에게 한으로 남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줄 알았는데 주변에 잘 쓰이고 있었음을 알게 되니 더없이 뿌듯했습니다. 그렇게 4박 5일을 마치고 나온 저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도 제가 많이 변했다며 덩달아 불교대학에 입학했고, 저희는 둘도 없는 도반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새벽이 되면 ‘기도해야지’ 하면서 자는 저를 깨워줍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길을 둘이 함께한다는 것이 참 고맙습니다. 저는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지만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는 자신이 좋습니다. 부족하고 작게만 느껴지던 제가 이제는 어느 자리에서든 주인 된 삶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 하나 잘살면 됩니다.

남편과 희망강연 봉사 중
▲ 남편과 희망강연 봉사 중

불교대학 홍보중인 주인공
▲ 불교대학 홍보중인 주인공


가족 간의 상처와 고통도 결국엔 가정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치유되었다는 이행숙 님. 꾸준한 정진을 통해 불행도 행복으로 만드는 비결을 전수한 그녀. 많은 시련이 지금의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주었다는 말을 들으며, 행복과 자신감의 원천은 웃음 넘치는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글_정도현 희망리포터(경주정토회 대잠법당)
편집_도경화(달서정토회 구미법당)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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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왕

행숙님이 지장보살이고 관세음보살이십니다.

2020-12-28 08:10:58

금강화

감사합니다

2020-12-22 12:22:36

차보경

사람의 인내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된 여정을 겪어 내신 도반님 존경합니다

2020-12-18 1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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