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계룡법당
중학교를 자퇴한다고? 그래 놀아라.

두 아들의 중학교 자퇴에 "그래, 놀아라."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학교를 안가면 실패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한 생각을 바꾼 이 사람. 한 생각을 바꿔도 정말 세상은 괜찮을까요? 올해 서원행자로 발심한 진태옥 님의 바뀐 삶을 만나보겠습니다.

2017년, 평화대회(왼쪽에서 세번째 진태옥 님)
▲ 2017년, 평화대회(왼쪽에서 세번째 진태옥 님)

결혼한 친구의 괴로움이 나에겐 설레임

1996년 12월 31일, 서른 살이 되기 전날 밤, 결혼해서 아들을 키우는 친구 집에 놀러 갔습니다. 친구는 제게 시댁 식구와 관계가 힘들다고 했지만, 듣는 저는 오히려 재밌고 설렜습니다.

‘그래, 바로 저거야, 저렇게 어려움을 겪어야 인생 공부가 제대로 되는 거야. 나는 이제 결혼해야겠어, 누구라도 만나 내가 맞춰가며 살아보자’라는 결심을 했습니다. 두 달 안에 결혼이 목표인 지금의 남편과 소개팅으로 만나, 7주 반 만에 결혼했습니다.

인생에 더 큰 공부를 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결혼한 저에게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많이 의지했고, 심지어 정리하지 않은 여자도 있었습니다. 짧은 기간에 결혼하느라 미처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고 남편은 변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시댁은 제게 당당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결혼목적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현실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큰아이를 임신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자살 충동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어찌 잘 견디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2017년, 평화대회에 참석한 남편과 아들들
▲ 2017년, 평화대회에 참석한 남편과 아들들

아들의 자살 충동과 우울증

그 큰아이가 자라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하고 얼마 안 된 아들이 학교 친구들에게 여러 차례 맞아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자살 충동과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몇 달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결국 2012년 3월,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만큼 저 또한 짜증이 나고 우울했습니다.

그 무렵 동생이 대전시청에서 열린 법륜스님의 강연을 소개해주었습니다. 강연 참가자들의 이상한 질문에 법륜스님의 답변은 참으로 지혜로웠습니다. 저는 망설이지 않고, 그날 바로 봄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법당에 처음 갔을 때, 난생처음 들어보는 참회게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갈 때마다 한동안 참회게만 들으면 눈물이 저절로 났습니다. ‘다겁생래 지은업장’이라는 문구에서, 다겁생래 살아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업장을 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속에 또 다른 내가 참회게를 듣고 우는 느낌이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남산 순례를 다녀오고, 일주일 뒤 입재식에 참가했습니다. 염주를 목에 거는 순간, 이제 살길이 열렸구나 싶었습니다. 정토회 시스템은 완벽한 조직으로 보였습니다. 수행자가 되겠다는 사람에게는 회원 가입에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는 정토회가 신기했습니다. 태어나서 45년 만에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앞으로 45년은 정토회에서 부처님과 법륜스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겠다고 발원했습니다.

2018년 가을불교대,특강수련 우측에서 네 번째 진태옥 님
▲ 2018년 가을불교대,특강수련 우측에서 네 번째 진태옥 님

두 아들의 자퇴, 그래 놀아라

불교대학을 다니고, 스님의 법문을 유튜브로 들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아이의 자살 충동과 우울증은 학교폭력으로 드러났을 뿐이지, 그 씨앗은 이미 오래전에 제가 뿌린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저의 자살 충동이 아이에게 영양을 미친 것입니다. 법륜스님께서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는 한 3년 놀게 해도 좋다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3년은 집에서 놀아도 좋다고 했습니다. 큰아이는 3년 동안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혼자 지내면서 피아노치고, 영화 보고, 컴퓨터 게임을 했습니다. 나가서 사고 치지 않고 안전하게 있으니, 저는 아무런 걱정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 6월, 중학교 3학년이던 작은 아이마저 학교를 거부했습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성적이 낮고 게임만 한다는 이유로 개, 돼지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학교 밖 청소년인 큰아이 덕분에, 작은 아이는 학교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때였습니다. 결국 작은 아이도 학교를 그만두고, 형처럼 3년을 놀아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학교를 보냈다가는 오히려 아이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습니다. 큰아이가 혼자 집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작은아이가 함께 있으면 친구도 되고,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 계룡법당 10-1차 입재식(뒷줄 가운데)
▲ 2020년 계룡법당 10-1차 입재식(뒷줄 가운데)

원하던 삶을 살고 있다

2013년 2월 불교대학을 졸업할 즈음, 개원 법회 담당을 제안받았습니다. 남편에게 의견을 물으니 “결혼도 했는데, 이 세상에서 못할 게 뭐 있어?”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가정 법회를 바로 열었고, 4월 13일에 개원 법회를 했습니다. 그날은 결혼 16주년이었습니다. 직장은 공주시에, 경전반 수업은 대전법당에서, 수행 법회와 2013년 봄불교대 담당은 계룡법당에서 진행을 맡았습니다. 계룡법당 부총무소임은 제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나머지는 대전정토회에서 했습니다.

2020년 지금 저는 계룡법당 경전반 꼭지입니다. 봄경전 저녁반 학생은 3명입니다. 남편, 친정 엄마, 동생이 학생입니다. 봉사하면서 알아차린 것은, 제가 그토록 원하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남편과 시댁 식구 등 모든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돌이켜보니, 상대의 말들이 이해됐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로 인해 불편했을 사람들에게 참회도 됐습니다.

2020년, 봄경전반 수업 나누기 사진
▲ 2020년, 봄경전반 수업 나누기 사진

우리 가정을 살린 동아줄, 정토회

지금은 아이들이 모두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큰 흔들림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정토회 끈을 놓지 않고, 봉사했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보니 제게 주어진 봉사가 저와 제 아이들을 살려준 동아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저도 정토회에서 많이 성장했습니다. 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날마다 새롭게 알았고, 돌이키는 힘도 제법 길러졌습니다. 소임이 버겁다고 느낄수록 모든 것이 성장의 기회였고, 제 마음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제가 이렇게 살면서 은혜 입은 것을 이제는 이웃과 세상에 회향하고자 합니다.


결혼을 더 큰 공부의 장으로 생각했다는 진태옥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이 났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결혼해서 살아봐야 어려운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저와 너무 같았기 때문입니다. 진태옥 님 같은 도반이 있어 지금의 저를 한번 더 돌아봅니다. 수행의 전부가 도반이라는 부처님의 말씀, 우리는 소중한 도반입니다.

글_진태옥(계룡법당)
편집_권영숙(온라인 홍보팀)

전체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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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랭이

반갑습니다 ~^^

2020-10-04 21:20:30

능인선

너무 재밌고 흥미로운 인생 수행담이 정말 감동입니다!! 특히 경전반 학생이 모두 가족이라는 문구에서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2020-10-02 10:18:37

이원진

*결혼한 친구의 괴로움이 나의 설레임*의 소제목을 잘못이해하고, "와~~ 상대의 괴로움이 전법대상의 타겟으로 삼는구나."라 생각하며 읽어내려가는데...
그나저나 불법과 지도법사님의 말씀을 굳게믿고 아들들의 마음을 편안케 했던 실천( 행동 )에 높은 찬사를 보냅니다.

2020-10-01 06: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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