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보향 법사님 첫 번째 이야기
부처님 말씀을 일상에서 그대로 실현하는 곳

‘잘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우리는 늘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합니다. 보향 법사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일상에서 실현하는 정토회에서 그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운명처럼 마주한 ‘나침반’이 법륜 스님을 찾게 하고 수행의 방향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꽁무니를 빼려다 등 떠밀리듯 정일사에 입재하는 모습은 웃음이 나면서도 인간적입니다. 아침 수행을 이어가던 어느 날 문득 아들이, 아내가 떠오르며 참회의 눈물이 흐르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당연하던 습관을 멈추고 바꿔보는 기적은 깨달음의 길을 향한 서막에 불과합니다.
법사님은 도반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정토회 활동을 하며 각자 소임에 따라 부처님이 말씀하신 평등과 상가의 법이 일상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동을 받는다는 보향 법사님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보향 법사님
▲ 보향 법사님

울보였던 어린 시절

저는 2남 3녀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시골에 살다가 자수성가한 형님을 따라 중학교 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형님 밑에서 일을 하며 학교에 다녔는데, 집이 남영동 공장 바로 옆에 붙어있어서 주변이 번잡하고 소음이 심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그런 환경에서 보내서인지 저는 지금도 소음에 민감한 편입니다. 부모님은 5인 가족계획을 세웠는데, 장남인 저를 낳고 아들을 더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을 줄줄이 다섯을 낳았습니다. 고단한 시절, 공장 옆 번잡한 집에서 두 살 터울 동생들과 복작이며 살다 보니 부모님의 사랑을 받거나 편안했던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

어릴 적 한번은 온 가족이 뚝섬유원지(현 뚝섬한강공원)에 놀러 갔는데 지금으로 치면 제주도에 가는 일처럼 큰 소풍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미아가 됐습니다. 저를 찾아 부모님이 경찰서에 갔더니, 아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울기만 하니까 특징란에 ‘울보’라고 적혀 있었답니다. 이후 초등학교 때 남영동을 떠나 전학을 갔는데 우락부락한 남자 선생님과 낯선 환경이 힘들었는지 그때도 자주 울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산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가슴에 화가 있었습니다. 시골에 살던 중학생이 어느 날 서울로 올라와, 형과 형수의 눈치를 봐가며 학교에 다녔으니 하루하루 얼마나 고단했을까 싶습니다. 충남 공주에서 잘사는 집 딸이었던 어머니는 돈 많은 외할아버지가 첩을 들인 일로 가슴에 상처를 안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무슨 일을 해도 철두철미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른 새벽에 일하러 나가면 꼭 아침상을 차려드리고, 도시락까지 준비했습니다. 빈틈없는 성격으로 당신 자신도 힘들었을 뿐 아니라 가족들도 어머니의 기준에 부합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와 다툰 일화를 들으며 자라서인지 저는 헌신적인 어머니가 힘들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아버님이 힘드셨겠다”고 말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제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편안하게 대화하거나 위로하며 품어주기보다는 완벽한 남편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위안이나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렸을 아버지가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이 힘든 시절을 지내신 것 같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그렇게 해서 먹고는 살겠냐?”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세상은 위험하고 경계심을 늦추면 안 되는 곳이니 스스로 보호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듯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정토회를 알고 법회에 참여할 때,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큰 사건이 있던 것은 아니고 다만 ‘좀 너그럽고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북한산 산행 중
▲ 북한산 산행 중

금강경을 따라 정토회로

정토회를 알기 전에 절에 다니거나 불교를 공부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문득 금강경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근처 서점에 갔습니다. 직원에게 불교를 모르는 초심자를 위한 금강경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찾아주었습니다. 책이 너무 재미있어 세 번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정착해 사는 아들을 따라 이주한 노보살님에게 “아들을 남이라고 생각하면 괴로울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 내용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금강경 법문에 빠져들며 새로운 세계와 만난 듯했습니다. 금강경을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쓴 법륜 스님이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궁금해졌습니다. 스님이 어느 산에 계시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봤더니 가까운 서초동에 계신다고 하여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2002년 봄, 서초 법당에서는 반야심경 강의가 막 시작된 시기였습니다. 강의를 듣기 위해 매주 법당에 가기 시작했고, 8회 강의를 모두 마친 후 수요법회에 참석했습니다. 퇴근 후 법당에 가면 입구에 마련된 출석부에 출석 체크를 하고 법문을 들었습니다. 저녁부가 따로 없어서 법회와 같은 저녁 시간대의 모든 행사와 활동을 청년들이 도맡아 했습니다. 당시 갓 대학교를 졸업한 두 여성 도반이 법회를 운영하며 대중을 맞이했고, 저와 같은 직장인들은 참석만 했지 봉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방석을 깔거나 단순 녹취 정도였고, 지금처럼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은 없던 시절입니다.

거절할 용기가 없던 덕분에 ‘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이 되어

어느 날 담당자가 ‘정일사’ 프로그램을 알려주면서 참여를 권유했습니다. ‘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수련 프로그램이라고 하길래 “아, 그렇군요! 저는 힘들겠네요”라고 간단히 거절하고 넘어갔습니다. 다음 주 법회에 갔더니 또 정일사 얘기를 꺼냈습니다. “지난주에 못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했더니 더 생각해보라기에 알겠다고 하고 또 지나갔습니다. 그다음 주에 세 번째로 물어보는데 그만 짜증이 났습니다. 며칠 후 저녁 10시쯤 휴대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정일사 신청 마감을 하려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있는 늦은 시간에 통화가 길어지니 난처해져서 ‘몇 번을 얘기했는데 또 이러나?’ 싶어 화가 났습니다. 반면 그와 동시에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정성을 다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급히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다음 수요일 법당에 갔더니 “지난번에 하시기로 했잖아요”라는 말과 함께 이미 입재 신청이 되어있었습니다.

무변심 법사님 지도하에 아홉 명이 입재했는데, 새벽 5시 정진에 대한 안내를 받고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오전 7시에도 잘 못 일어나는데, 도저히 못 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때 법사님이 “함께 시작해서 한 명이라도 게으르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자신이 없는 사람은 안 한다고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법사님은 한 명씩 이름을 불러가며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저는 속으로 ‘잘됐다, 못 하겠다고 해야지’ 하고 대답을 준비했습니다. “김환기 씨”, “네”, “하시겠습니까?”, “…네!”

무변심 법사님의 카리스마에 눌려 마음속 생각과는 다른 대답이 나왔고, 결국 거절할 용기가 없었던 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정일사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해본 적 없는 108배가 너무 힘들었지만, 법사님의 응원에 힘입어 이어나갔습니다.

기도를 통해 자각하고 참회까지

새벽기도를 시작한 지 열흘쯤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아들에게 참회하는 눈물이 났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에게 불편한 마음이나 죄의식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저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여동생과 싸우기라도 하면 무조건 아들을 혼냈습니다. 자식은 내 생각과 성질대로 나무라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무의식에서는 그게 잘못이라고 느꼈는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기도하다가 북받쳐서 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울기도 했습니다.

이 일이 제게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귀한 인연인 자식에게 아버지 역할도 제대로 못 하고, 심지어 그 사실조차 모른 채 무엇을 그리 애달프게 살았나 싶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살고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겠구나’ 하고 자각하니 기도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자 빠지지 않고 정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참회의 대상은 아내로 향했습니다. 묘덕 법사님이 활동가들을 몇 명씩 그룹을 만들어서 당시 부산에 있던 각해 보살님을 찾아갔습니다. 각해 보살님은 각자 현재 시점에 걸려 있는 문제를 짚어주고 기도문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라’는 기도문을 받았고, 묘덕 법사님이 각해 보살님 말씀을 타이핑해서 기도문을 한 페이지로 자세히 정리해 건네주셨습니다. 아침 정진을 하기 전에 수행문과 함께 이 기도문을 매일 읽었습니다.

일 년쯤 지났을 때 무엇이 화근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내와 심하게 부딪혀 난리를 피운 일이 있습니다. 다음 날 수행문과 아내에 대한 기도문을 읽던 중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새벽마다 하던 수행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하는 회의감이 들면서 내 무의식에서는 아내를 훼방꾼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족 모임이 잦은 편인데 제가 정토회 활동을 우선순위에 두다 보니, 시댁에 아내 혼자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내의 마음이 좋을 리 없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왜 혼자 왔느냐?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인데 왜 바깥으로 도는 거냐?”라며 아내를 타박하셨습니다. 아내가 불평을 쏟아내자 저 또한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닌 터라 아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방해하는 존재인 것만 같아 불만이 쌓였습니다. 그런 생각에 일 년 정도 서로 모른 척하며 지내오다가 감정이 크게 터진 것입니다. 각해 보살님께 받은 기도문을 통해 아내의 힘든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저의 어리석음을 참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전처럼 정토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정작 아내가 달라졌습니다. ‘저 사람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조금씩 열어 보입니다. 그사이 우리 가족은 아내와 아들, 딸 모두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정토회 가정이 되었습니다.

외손자 돌잔치 날(맨 오른쪽이 보향 법사님)
▲ 외손자 돌잔치 날(맨 오른쪽이 보향 법사님)

아들의 불교대학 졸업식 날(오른쪽이 보향 법사님)
▲ 아들의 불교대학 졸업식 날(오른쪽이 보향 법사님)

법사수계식 날 가족과 함께(맨 오른쪽이 보향 법사님)
▲ 법사수계식 날 가족과 함께(맨 오른쪽이 보향 법사님)

늘 하던 습관을 멈추고 바꿔보기

수요일마다 퇴근하고 저녁 법회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 아홉 명이 정일사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청년들에게 의지하던 저녁 법회를, 직장인을 포함한 대중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저녁부’를 만들기 위한 계획으로 지금의 ‘새물정진’에 가깝습니다. 우선 새벽 5시에 정진을 함께 하는 것으로 첫 저녁부가 구성됐습니다. 수요법회도 자립적으로 진행하고, 불교대학도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저녁부는 안정화되었고, 저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일사’는 제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정일사 기간이면 ‘어떤 과제를 한번 넘어볼까?’ 하며 안 되는 문제를 개선해보려 궁리합니다. 수행에 가장 도움이 된 시간은 8일 동안 개인 과제로 실천해보는 ‘출가열반용맹정진’입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오랫동안 습관이 되어 멈추면 금단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는 당시 자가용만 이용하던 터라 타는 방법과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대중교통 타보기’로 과제를 정해서 실천했습니다. 의외로 편하고 좋은 점이 많았습니다. 주차할 곳이 없어 주변을 몇 바퀴씩 돌지 않아도 되고, 뒤에서 차가 빵빵거려 짜증나는 일도 없어서 마음이 한결 편안했습니다. 이후로 지금까지 자가용을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한번은 밥을 허겁지겁 급하게 먹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저녁을 안 먹겠다’로 정해서 8일간 실천했습니다. 저녁을 안 먹는다는 생각에 사실은 점심을 엄청나게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배가 많이 고파서 먹고 싶은 욕구가 컸지만, 잘 지켜보며 넘어가니 차츰 욕구가 줄었습니다. 천천히 좀 적게 먹는 모습으로 변화했습니다.

꼬라지를 알면 변화가 시작되는 원리

저녁부가 만들어지고 첫 회의에서 한 도반이 “왜 그렇게 인상을 쓰고 회의를 진행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얼얼했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골치 아픈 문제로 회의할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주로 업무를 지시하는 방식의 회의 형태에 익숙해온 터라 무의식중에 나온 모습이었습니다. 회사에서 회의할 때는 사장이 인상을 쓰고 말을 해도 직원들이 속으로는 욕할지언정 앞에서는 뭐라고 하지 않으니 그동안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토회의 수평적 분위기에서 스스럼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가운데 그간 의식하지 못하던 내 모습이 보였습니다.

회사를 창업할 때부터 함께한 친구가 있는데 회의에서 제가 무슨 말만 하면 그 친구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저는 “야, 뭘 몰라?” 그러고는 다시 설명을 해줍니다. 그럼에도 친구가 잘 모르겠다고 하면, 그때부터는 슬슬 성질이 나기 시작합니다.

정토회에서 회의를 하고 수행을 하며 공부를 하다 보니 그 친구의 ‘모르겠다’는 말은 ‘그건 아닌 것 같다, 하기 싫다’라는 의미의 표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저와 성향이 달라서 사업을 진행할 때 먼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고 논리적으로 진행하는 스타일이고, 저는 일단 시작해서 부딪혀보는 스타일입니다. 서로 성향이 달라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친구를 이해하니 소통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야, 하자!’가 아니라 ‘이게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을까?’ 이렇게 되물으면, 친구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소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잘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고, 그 변화는 서서히 주변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상가의 법을 따르는 곳

하루는 무변심 법사님이 “거사님, 오늘 법회 전에 한 시간 정도 법당을 써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이게 무슨 소리지? 법사님은 법당 주인인데, 막 들어온 나한테 법당을 사용해도 되냐고 왜 묻는 거지?’ 싶어 의아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녁 시간 법당은 저녁부 소관이기 때문에 저녁부 책임을 맡은 저에게 양해를 구하고 법당을 사용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활동 기간이 오래되었거나 법당에 상주하는 공동체 소관과 상관없이 각자 맡은 소임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당시 법당에 상주하는 공동체 실무자들은 항상 수요법회에 참석하여 법당에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입재식이 있을 때는 공동체 실무자들이 주도적으로 일을 맡고 봉사자들은 시키는 일만 조금 도와주는 정도였습니다. 예전에는 입재식을 문경에서 1박 2일간 진행했기 때문에 준비할 것이 매우 많았습니다.

언젠가 일 년 정도 활동한 실무자가 입재식 총괄을 맡고, 20년 된 실무자가 한 팀에서 진행 보조를 했습니다. 직급이 무엇이든 새내기 총괄에게 뭐든지 보고하고 자기 의견도 말할 수 있지만 총괄이 ‘이렇게 해주세요’ 하면 그 결정에 따랐습니다. 진행되고 있는 행사의 총괄이 누구인지, 각자 역할이 무엇인가에 따라서만 움직일 뿐입니다.

법당을 써도 되겠느냐는 법사님의 물음은 아주 강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실무자들이 일을 함께 해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런 일을 접할 때마다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평등과 상가의 법이 일상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매번 감동을 받습니다.

3.1절 기념법회에서 성남지회 도반들과 함께(가운데가 보향 법사님)
▲ 3.1절 기념법회에서 성남지회 도반들과 함께(가운데가 보향 법사님)


보향 법사님 말씀을 듣는 내내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수행 과정을 들려주셨습니다.
격의 없이 질문에 답해주신 법사님의 말씀을 다시 새기며 마음이 푸근해지고 너그러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 전혜연 소감 -

글_전혜연(서울제주지부), 정현숙(대전충청지부), 정수지(강원경기동부지부)
편집_이현숙(서울제주지부), 허인영(강원경기동부지부)

전체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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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

고맙습니다

2025-02-28 07:50:21

현광 변상용

그때 얼떨결에 정일사를 하게 된 게 시작이 되었군요. 그 일이 아니었어도 결국엔 정토회로 오셨을 것 같아요.
몇 년전 정일사 때 담당 법사님으로 함께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다짐했던 걸 지금도 지키고 있나 자문해 보게 됩니다.
다시 한번 정일사에서 뵙고 싶네요 ㅎ

2025-02-16 15:49:40

양영주

보향법사님의 수행담과 깨달음 인상깊게 잘 읽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인터뷰 해주신 전혜연님 감사합니다.

2025-02-13 19:2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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