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
내 인생의 주인
이 사회의 주인으로
행복하게 삽니다

최지선 님은 스스로를 '모범생 업식'이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니 모범생 + 업식이라고? 모범생이라는 긍정적 이미지에 업식이라는 단어가 조합되니 색다른 느낌이 들면서도, 어떤 부분에서 힘들었을지 살짝 예상되는 면이 있기도 합니다. (아주 솔직히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 최지선 님은 정토회 활동 뿐만 아니라, '미래당'이라는 정당을 대표해 선거에 나갈 정도로 정치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 멋지고, 참 자랑스러운 청년의 수행담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쁜 마음입니다.

북 콘서트 하는데 와볼래?

2012년 5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고등학교 동창이 저를 ‘북 콘서트’에 초대했습니다. 그야말로 ‘북(드럼)’ 공연인 줄 알고 갔는데,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백년 북 콘서트’였습니다. 그때 친구는 정토회 활동을 하던 삼촌의 영향으로 북 콘서트 서포터즈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저는 NGO 쪽에서 일하고 싶어 봉사활동 프로그램에도 참여했고, 통일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날 법륜 스님이 남북관계를 보는 혜안에 깜짝 놀랐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봄, 평화재단 ‘새로운 백년 청년학교’에 참여했습니다. 청년들이 스님의 책 『방황해도 괜찮아』, 『스님의 주례사』, 『행복한 출근길』 등을 읽고 소감 나누기와 마음 나누기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또래 친구들과 직접 소통하며 고민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 큰 위안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법륜 스님의 가르침을 같이 듣고 매달 캠프도 하고, 환경 실천 공부도 하면서 점점 사회와 연결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인 번뇌나 갈등,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스님을 통해 관점 바꾸는 방법을 알 수 있어 좋았고, 다양한 활동이 있어서 저한테는 딱 맞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제야 제가 청소년기와 외국 유학 생활 동안 외로웠고 늘 이런 소통을 원해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청년포럼 시절 동학운동 역사기행에서(최지선 님)
▲ 청년포럼 시절 동학운동 역사기행에서(최지선 님)

3년 동안 부모님에게 참회기도 하다

저는 온화하고 헌신적인 부모님 밑에서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천주교 집안이라 매주 온 가족이 성당에 나가고 봉사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저 스스로 공부에 대한 집착이 무척 컸습니다. 모범생 스타일인 데다 특목고라는 환경에서 경쟁하다 보니 자신을 더 몰아붙이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미국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부모님은 유복한 환경이 아님에도 무리해서 지원해주었습니다.

갈등은 제가 유학에서 돌아온 뒤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에 더 머물 수도 있었지만, 내 뿌리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평화재단 활동이 재미있고 만족스러워서 계속 활동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에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계약직 연구원, 영어 통번역, 영어 강사 등의 일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비싼 학비 들여 미국 유학까지 보낸 딸이 한국에 와서 번듯한 직업 없이 겉도는 것을 못마땅해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귀던 멕시코인 남자친구를 무척 싫어하셨는데, 외국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우리보다 까만 피부에 대한 무시, 인종차별이라 생각해 저 역시 부모님에 대한 반감이 커질 대로 커졌습니다. 살면서 내내 저를 지지하고 칭찬만 해주던 부모님이 나를 못마땅해하자, 저 역시 부모님이 너무 미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부모님께 참회하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하며 3년 동안 기도하니, 제가 어릴 때부터 너무 오냐오냐 자라서 아버지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동안 무조건 나를 지지하고 칭찬하던 것에 익숙해져서 부모님이 조금만 권위적인 태도를 보여도 반항하는 마음이 크게 일어났고, 그런 내 모습에 부모님도 상처를 많이 받으셨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졸업 후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도 알았고, 아버지 입장에서는 유학까지 다녀온 딸이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이상했을지 이해되었습니다. 3년 동안 숙이고 돌아보는 연습을 꾸준히 하자 부모님을 미워하던 마음이 줄어들었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 때 학생들과 함께한 연탄봉사(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최지선 님)
▲ 불교대학 진행자 때 학생들과 함께한 연탄봉사(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최지선 님)

연애, 업식의 종합선물세트

청년학교 1기를 이수하고, 청년학교 출신 청년들과 각종 사회문제를 학습하고 현장에 가서 연대하는 ‘현장탐방’ 스태프로 참가했습니다. 일종의 사회활동이자 교육 프로그램으로 4대강 사업, 쌍용자동차 노동자 해고, 밀양 송전탑 건설, 세월호 사건 등 각종 갈등과 충돌의 현장에서 3년 정도 활동했습니다. 이후 평화재단에서 ‘청춘콘서트’, ‘김제동과 우리들의 마이크’ 등 스님과 김제동 님 강연을 봉사자들과 함께 준비했고, 이를 통해 외부 연대활동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천주교라는 종교적 영향과 천주교 재단 대학교에서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학풍에 익숙해서인지, 공익적인 활동이 저에게 잘 맞았고 함께 활동하는 청년들과 소통하면서 비로소 내 자리를 찾은 것 같은 만족감도 느꼈지만, 국가폭력 문제나 다양한 사회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접하는 활동이다 보니 우울감도 컸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을까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깨달음의 장도 다녀왔습니다. 제가 사회활동으로 정토회를 먼저 알아서 그런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은 재미가 덜했습니다. 그러던 중 활동가 청년들 여럿이 백일출가를 했는데, 다들 좋다고 해서 저도 2017년 여름에 입방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간절한 원을 세우고 백일출가를 했다면 수행을 더 잘했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런 계획이나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백일출가 31기 도반들과 함께 태종 무열왕릉 방문(맨 앞 가운데가 최지선 님)
▲ 백일출가 31기 도반들과 함께 태종 무열왕릉 방문(맨 앞 가운데가 최지선 님)

백일출가 회향 후 공동체 생활할 때 연애했는데, 공동체 상근활동과 연애를 통해 제 업식이 무엇인지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무변심 법사님이 “지선 법우는 수행과제로 일탈을 좀 해보세요”라고 할 만큼 저는 모범생 업식이 강했습니다. 하기로 결정한 것은 해내고, 도반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수행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모범생 업식 덕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규칙과 계를 따르기 위해 저를 엄청 억압했습니다. 그런 스트레스를 잠깐씩 외출 나와서 남자친구와 맛있는 것 먹고 데이트하는 걸로 풀었습니다. 공동체 생활은 3년을 하기로 계획했었고 남자친구도 기다려주겠다고 했는데, 남자친구가 힘들었는지 어느 날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심하게 흔들리면서 1년 3개월 만에 공동체에서 나오기로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욕구에 엄청 끄달리는 업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마음먹은 건 해내는 사람이야. 남들과는 달라’라는 자만도 무참히 깨졌습니다. 3년 하기로 한 것을 지키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해서, 유수 스님께 회향 인사로 삼배를 올리며 마음이 괴롭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안에 있는 지선 법우나 밖에 있는 지선 법우나 다 같은 지선 법우인데 뭐가 그렇게 괴롭습니까. 다음 번에 위기나 욕구가 왔을 때 안 넘어지는 게 중요하지 괴로워할 건 없습니다.”그때, 내가 또 안과 밖에 대한 상을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마음이 좀 가벼워졌습니다.

청년특별지부 모둠장, 지원팀장들과 함께(맨 앞 왼쪽이 최지선 님)
▲ 청년특별지부 모둠장, 지원팀장들과 함께(맨 앞 왼쪽이 최지선 님)

선거에 세 번 떨어져도, 나는 행복한 수행자

저는 지금 정토회 청년특별지부와 국제협력팀에서 활동하며 ‘미래당’에서 정당 활동도 겸하고 있습니다. 미래당은 ‘청춘콘서트’ 자원활동가와 청년단체들이 연대하여 2017년에 창당한 정당입니다. ‘청년독립’, ‘국민주권’, ‘기본소득’, ‘통일한국’이라는 4대 강령 아래 7년째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정당을 대표해 선거를 세 번이나 경험했습니다. 2021년 보궐선거 때 송파구의원 후보로 출마해 7.01%를 얻었을 때는 첫 도전치고 나쁘지 않은 성과라 열심히 하면 다음번엔 당선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2022년 지방선거에서 7.47%, 2024년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후보로 득표율 0.04%를 얻는 데 그쳤습니다. 양당 구도가 워낙 굳건한 상황이니 이런 결과가 당연한 건데, 제 업식이 일을 잘하고 싶어 하고 성과를 내고 싶어 하다 보니 좌절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법륜 스님이 늘 하시는 말씀을 떠올립니다. “성패에 상관없이 필요한 일을 계속 해나가는 게 수행자다. 나는 뭘 하든 애쓰지 않고 편하게 한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내가 좋아서 해놓고 안 된다고 이렇게 좌절하는구나,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돌이키게 됩니다. 요즘은 ‘지금 이대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연습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정토회 활동과 정당 활동은 지금 제 인생을 움직이는 양 날개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게 수행이라면, 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 정치 참여니까요. 앞으로도 성패에 상관없이 편안하게, 필요한 일을 해나갈 겁니다.

22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 토론회 방송 출연 장면
▲ 22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 토론회 방송 출연 장면


이 글은 <월간정토> 2024년 8월호에 수록된 최지선 님의 청년수행톡톡 입니다.

글_최지선(청년특별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전체댓글 20

0/200

윤경희

지선님! 반갑고 잔잔하게 감동적으로 잘 들었습니다
멋지게 앞으로 나아가는 지선님 응원합니다^^

2025-03-10 07:58:55

황지우

응원합니다

2025-02-28 21:44:55

보혠

고맙습니다

2025-02-28 07:31:04

전체 댓글 보기

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