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용인지회
떴다! 장보살~ 수구리!!

이순(耳順)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용인지회 장정윤 님은 정토회 역사와 함께 한 25년간의 이야기를 풀어 주었습니다. 소녀 같은 상냥한 모습에 어떻게 저렇게 말씀을 잘할까 부러웠습니다. 장보살이 뜨면 다 같이 수그려야 했다는데요. 수그리고, 숙이는 이야기 다 같이 들어 볼게요~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30대 중반 중환자실 기계를 달고 퇴원하신 시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1년여 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간호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정도 지난 후 시아버님도 투병하시다 돌아가시고 나니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허전함에 마음 둘 곳 없어도,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누가 좋은 곳을 간다 해도 즐거운 것을 한다 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괴로움 없이 편안하게 사는 방법이 없을까?’ 그 길만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인연이 되어 1999년 서초동 정토회관 개관기념 백일법문을 들으러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습니다. 백일법문을 마치고 불교대학, 수행법회, 홍보, 중앙사무국 전국 불교대학 담당 봉사를 거쳐 2005년 회원조직부 은평지부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매일 정토회관에서 상근 자원봉사를 하면서 매주 월요일은 집에서 가정법회를 열었습니다. 그렇게 2년간 아들 셋을 키우며 가족과 주변의 도움으로 수행법회와 불교대학을 운영해 나갔습니다. ‘우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해 법당을 만들어 보자’라는 원이 씨앗이 되어 2007년 7월 13일 은평법당을 개원했습니다.

2005년 가정 법회 모습(두 번째 줄 왼쪽 끝 분홍색 상의)
▲ 2005년 가정 법회 모습(두 번째 줄 왼쪽 끝 분홍색 상의)

내 맘은 내 맘대로, 네 맘도 내 맘대로

정토회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법륜스님에게 즉문즉설 질문을 했습니다. 정토회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까 할 정도로 혼났습니다. 스님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 마음까지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 한다.”라며 독재자라 꾸짖었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인데, 상대방이 내 의도까지 헤아려 맞춰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남편에게 말대꾸하지 말라"는 말씀에 남편에게는 말대꾸를 안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처럼 남편에게 착하고 말대꾸 안 하고 시부모님 잘 모시고 아들 잘 키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른 사람처럼 사치해?, 여행가기를 해? 뭘 하기를 해?”라며 스스로 잘난 체했습니다. 겉으로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남편이 하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반박하는 것도 말대꾸임을 알았습니다.

2014년 부처님 오신 날 마야부인들과 함께(왼쪽에서 두 번째)
▲ 2014년 부처님 오신 날 마야부인들과 함께(왼쪽에서 두 번째)

“있는 그대로 보라”라는 법문을 들을 때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게 과연 어떤 것인가?’ 늘 궁금했습니다. 오랜 기간 정토회 활동을 하다 보니 그 뜻을 조금씩 알았습니다. ‘이건 이럴 거야, 저건 저럴 거야’ 하고 미리 짐작하는 버릇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상대방이 말을 할 때 부정적인 마음이 슬그머니 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너 또 그러는구나, 상대의 마음을 미리 짐작하지 마라' 하며 저를 보고 웃습니다.

이제는 남편에게 겉으로가 아닌 마음속에서부터 숙입니다. 숙이기도 하지만 현실에 부딪히면 또 욱하고 올라옵니다. 욱하고 올라오면 다시 알아차리고 ‘내가 또 남편에게 마음속으로 말대꾸하는구나!’ 알아차립니다.

장보살 떴다~ 수그리!

정토회 봉사를 하며 처음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하다 모르는 게 많아 하루에도 수십 번 정토회관 2층을 오르내리며 실무자를 귀찮게 하니, 제가 나타나면 실무자들이 “장보살 떴다! 수구리!!” 하며 외쳤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주저하지 않습니다. 누가 무엇을 하자면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연구합니다. 모르면 물으면 됩니다. ‘누구한테 물으면 될까’부터 시작합니다. 물어보고 대답을 못 얻으면 다른 이에게 물어보고, 또 모르면 또 다른 이에게 물어봅니다. 장보살 떴다~ 수구리! 근성입니다.

정토회에서 활동할 때 앞에 서는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을 해보세요” 하면 일단 “네” 하고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 앞에서 잘해야 하고, 못하면 안 되고, 비난을 받아서도 안 된다’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주변에서도 "장보살은 칭찬만 해주면 저 죽는 줄 모르고 한다"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저는 분명 '사랑 고파병'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무엇이든 하다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 상황과 지금 상황은 다르니 다른 상황에 적응만 하면 됩니다. 온몸과 마음에서 힘이 빠지고 잘해야 하는 욕망에서도 한 발 떼었습니다. 현재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습니다.

2024년 환경실천 활동 '용기내서 용기내'(왼쪽에서 두 번째)
▲ 2024년 환경실천 활동 '용기내서 용기내'(왼쪽에서 두 번째)

한 생각 바뀌니

그룹장 교육을 받을 때 일입니다. 무변심 법사님이 “일반 회원은 삼보수호비 납부 외에 그 어떤 의무도 없다. 법회도 듣고 싶으면 듣는 것이니 모둠장이 ‘법회 왜 안 들어오지?’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법회 참석을 안 하는 회원에게 ‘왜 법문을 안 듣지, 왜 그러는 거지?’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소중한 회원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법문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문득 남편이 떠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하고자 하는 건 못하게 한 적 없고, 제가 말만 하면 다 들어주는 사람인데 ‘왜 남편한테 감사한 마음을 못 갖고 남편을 내 마음대로 고쳐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을 제 마음대로 바꾸고 싶어 문제없는 사람을 고치려 했던 제가 남편보다 더 고집 센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촘촘한 배움의 장

과거 오프라인에서 활동할 때에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쳐가며 배웠습니다. 잘 모르는, 힘에 버거운 일에 괴로울 때는 정일사 수행으로 관점을 다시 잡고 활동했습니다. 울며불며 괴로웠지만 그렇게 배우는 것이 참 재밌었습니다. 정토회의 온라인 전환 후 여러 가지 교육 자료를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모든 교육과정이 촘촘히 짜여 있었습니다. 온라인 교육과정은 오프라인 세대인 제게는 너무나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모둠장 교육받을 때는 무슨 교육이 이렇게 많나 싶어 놀랐지만, 교육 자료를 읽으며 제가 다시 채워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정토회의 취지, 방향, 비전을 정확히 알게 되고 일반 회원들을 대하는 마음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모둠장으로서의 역할과 수행의 관점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이 교육 자료에 다 있었습니다.

자료를 읽으면서 제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무언가 제안했을 때 상대방이 안 받아들이고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수행의 관점이 잘못된 거다. 내가 제안했어도 결정은 결정권자에게 달린 거다.”는 구절입니다. 제 업식을 다스릴 이 문구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온라인 교육과정은 오프라인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마무리하며 정돈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정진' 주간 담당(왼쪽)
▲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000일 정진' 주간 담당(왼쪽)

남편은 내 편

남편은 대화를 잘 받아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말 저런 말 다 하고 싶은데 남편은 말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루는 남편에게 왜 대답을 안 해주냐고 물어보니 “한 번 받아주고 두 번 받아주면 끊임없이 받아줘야 한다. 그래서 안 받아주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참으로 무관심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정토회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갖는지 제가 말을 안 했으니 남편은 아무것도 모를 거로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알아?” 물으니 “자기는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에 있어” 대답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제게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제가 정토회에서 오랜 기간 봉사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도와주었습니다. 남편의 말 없는 지지 덕분에 정토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남편 덕분이라는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613 만인 대법회 사전 평화 행동 모둠 활동(맨 오른쪽)
▲ 613 만인 대법회 사전 평화 행동 모둠 활동(맨 오른쪽)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사람

직접 체험해보고 내용을 알아야 모둠장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회, 모둠 활동 공지를 할 때도 직접 경험해 보고 공지합니다. 해봤기 때문에 공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고 모둠원이 질문하면 상세히 안내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해보는 게 최선입니다. 지회장님이 이런 게 있는데 해보겠느냐고 물어보면 무엇이든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신청합니다. 새물 정진, 반나절 템플스테이, 백일법문 학사 콜센터, 깨달음의 장 돕는 이 등 큰 고민 없이 해봅니다.

그러다 보니 이름도 많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일 때는 정토회의 꽃, 콜센터 봉사할 때는 정토회의 얼굴, 모둠장 활동할 때에는 정토회의 손과 발입니다. 지회장은 제게 다시 피는 꽃이라 합니다. 나이가 많은 제가 모둠장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너무나 재밌고 신나게 활동하는 제 모습을 보고 붙여준 이름입니다.

저는 정말 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손도 발도 얼굴도 꽃도, 그리고 다시 피는 꽃도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도 '무엇이든 되는' 이 성장이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 어느 곳이든 그 자리에 꼭 걸맞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김에 잘 쓰이겠습니다.

2025년 1월, 새물 정진 돕는 이(맨 뒷줄 가운데)
▲ 2025년 1월, 새물 정진 돕는 이(맨 뒷줄 가운데)


“마음의 문을 열고 있으니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가볍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궁금하다”라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정토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주인공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는 동안 희망리포터 또한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고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 감사했습니다.

글_송옥희 희망리포터(서울제주지부 서대문지회)
편집_곽정란(대구경북지부 구미지회)

전체댓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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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

함께 울고 웃었던 날들이 생각나네요^^
잘 보았습니다~

2025-03-09 12:04:40

김희선

오랫동안 인연된 도반 님~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저도 이세상 태어난 김에 잘쓰이겠습니다()

2025-02-22 16:40:56

현광 변상용

우와~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분이 나오셨네요. 경력으로 보나 공력으로 보나 한참 대선배신데 그앞에서 아는 척 했던 첫 만남이 생각이 나네요 ㅎㅎ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요 어디서든 그보다 더 잘 쓰이실 수가 있을까 싶네요.
사진속에 반가운 얼굴들도 보여서 더욱 반가운 수행담이었어요. 어디서든 또 봬요~

2025-02-13 10: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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