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12 나비장터 1일째, 김장축제, 행복학교 특강
“외도하고 이혼했던 아빠가 뇌졸중으로 입원했어요, 도와드려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새벽 4시 30분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예불, 종송,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한 후 스님이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해 법문을 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8시에는 2차 만일결사 준비위원회와 미래 30년에 정토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회의를 하고, 9시 30분에 운동장으로 나왔습니다.

나비장터 그리고 김장축제

오늘은 두북 수련원에서 나비장터와 김장축제가 함께 열리는 날입니다. 1년 동안 농사지은 생산물을 정토회 회원들과 나누고,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을 필요한 사람이 가져갈 수 있게 공유하는 축제의 장입니다.

9시 40분이 되자 각 부스별로 사전 준비를 마친 후 봉사자들 모두가 나비장터 현수막 앞에 모였습니다. 삼귀의, 수행문을 낭독한 후 스님에게 여는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나비장터는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한 실천 활동이라고 소개하며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준비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늘부터 ‘나눔과 비움의 장터’라는 의미를 지닌 ‘나비장터’를 1박 2일 동안 열게 됩니다. 나비장터는 우선 두북수련원에서 여러분들의 봉사를 통해 생산된 쌀, 고구마, 감자 등의 농산물을 정토회 회원들과 나누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아도모례원, 천룡사, 죽림정사 등 다른 으뜸절에서 생산한 농산물도 함께 나눕니다.

또 원광명법사님이 간장을 나눠주고 얻은 수익금을 JTS에 보시하라고 간장 100병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여정화님은 고물상을 하시다가 올해 처음으로 배농사를 지었는데 농사가 잘 돼서145상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수익금을 JTS에 보시해 달라고 하셔서 나비장터가 작년보다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김장축제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한 실천 활동

그리고 재활용 유통 센터에서는 쓰다 남은 물건을 창고에 차곡차곡 모아 두었는데 그걸 재활용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개인이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가져와서 교환을 하는 부스도 준비했고요.

안 쓰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버리려고 했던 걸 다시 쓰는 것도 환경운동입니다. 환경운동이 내 삶과 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삶에도 이롭고, 너에게도 이롭고, 자연에도 이로운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한 실천 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연기적 세계관을 법문 시간에 이론적으로만 배우는 게 아니라 내 삶에서 직접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취지에서 저도 이곳에 내려와 지내면서 여러 가지 실천운동을 시작한 겁니다. 물론 모든 걸 한꺼번에 할 수는 없어요. 아직 우리가 계획한 것을 전면적으로 다 진행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목표를 향해 조금씩 업그레이드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애써서 준비한 것들이 정토회 회원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정토회 회원들의 참여가 이 운동이 더욱 확산되는 밑거름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자원봉사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스님은 오늘과 내일 생방송 일정이 꽉 차 있어서 하루 종일 나비장터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 후 여는 말씀을 마쳤습니다.

자원봉사자 모두가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각자 자신이 맡은 부스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다시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행복학교 특강

오전 10시 정각에는 행복학교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수업과정 중에 생긴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음 과정으로 이어갈 수 있게 격려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주말에 청년들과 경주 역사기행을 다녀온 모습과 얼마 전 JTS가 파키스탄에서 홍수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을 지원한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외도를 하고 이혼을 한 아빠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입원을 했다는 연락을 받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외도하고 이혼한 아빠가 뇌졸중으로 입원했어요, 도와줘야 할까요?

“저는 22년간 연락 없이 지낸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너무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부모님은 아빠의 외도로 이혼을 하셨고, 그동안 친정 식구 모두 아빠와는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올 8월쯤 친척 분께 아빠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직계 가족 확인이 필요하다고 하여 제가 보호자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편마비와 연하장애로 재활병원에 입원 중이십니다. 저는 친정 식구들에게 아빠의 상황을 전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했습니다. 친정 식구들은 각자의 의견이 달라 마음이 상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가정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인생을 선택하여 살다가 병든 아빠를 어찌 해야 할까요?”

“22년간 연락이 없던 아빠가 돌아가시고 유산이 남았는데, 가족을 찾아서 이 유산을 물려준다고 하면 가족들이 받을까요, 안 받을까요?”

“아마 받으려고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대답이 더 필요합니까?” (웃음)

“...”

“이 고민은 아빠의 외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아빠가 외도를 했든 어떻게 했든 만약 유산을 남기셔서 가족들에게 온 것이라면 그때도 ‘외도한 사람의 유산이기 때문에 안 받는다’ 이렇게 할까요? 외도한 것은 안 따지고 그냥 유산을 다 받을까요?”

“만약 금전적인 유산 문제라면 고민할 것도 없고, 서로 받으려고 하겠죠.”

“아버지가 남긴 것이 유산이었다면 외도한 것을 안 따지는데, 아버지가 쓰러져서 병원에 있는 지금 상황은 다들 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에 외도한 것을 따지는 겁니다. 내가 간호를 해야 되니까 그걸 피하려고 외도를 했느니, 이혼을 했느니, 집을 나갔느니, 이런 핑계를 대는 거예요. 아버지의 병간호를 거부할 수는 있는데, 그것이 외도를 했느냐, 이혼을 했느냐 하는 문제 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문제를 직시해서 보면 그렇다는 거예요. 만약 나한테 득이 되는 것이었으면 아무런 불평 없이 다 받았을 텐데, 지금 나한테 부담이 되는 것을 받아야 하니까 안 받으려고 하는 거죠. 숫제 ‘제가 받으려니 부담이 되는데 이걸 안 받아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괜찮은데, 지금처럼 ‘아버지가 외도를 했다’, ‘나를 돌보지 않았다’, ‘이혼을 했다’ 이런 이유들을 자꾸 말하는 것은 그 일을 맡지 않기 위한 핑계라는 겁니다.”

“이번에 아빠를 직접 본 사람은 저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별로 좋지가 않았어요. 아빠가 잘 사셨으면 상관이 없었을 텐데, 그렇게 아픈 모습을 보고 나서는 저도 마음이 약해져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 다른 친정 식구들은 이견이 많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도 없어서 ‘나 혼자만이라고 도움을 드려야 하나’ 하고 생각을 했지만, 막상 혼자서 감당을 하게 되면 제가 부담으로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부담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빠가 유산을 남겼는데 다른 가족들이 그 돈은 싫다고 안 받으면, 질문자는 그 돈을 다 받을 거예요? 다른 가족들도 안 받으니까 나도 안 받겠다고 하고 갖다 버릴 거예요?”

“솔직히 저도 왔다 갔다 합니다. 저도 아빠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과 상처가 남아 있긴 하거든요. 그냥 아빠를 외면했으면 이런 질문도 드리지 않았을 텐데, 지금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냐 싶은 마음이 들어서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핵심은 그 일이 지금 손해 나는 일이니까 가족들이 안 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명색이 가족인데 손해가 난다고 해서 환자를 안 받겠다고 하기가 미안하니까 그 핑계로 ‘이혼을 했다’, ‘가정을 버렸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스님이 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만약 돈이었다면 이혼을 해서 번 돈이든, 외도를 해서 번 돈이든 상관없이 다 받았을 텐데, 즉 나한테 득이 되는 거면 그런 거 안 따지고 다 받는데 지금 손해가 나는 상황이라서 안 받으려고 하다 보니 그런 핑계를 댄다는 거예요. 그러니 아빠가 이혼을 했느니, 가정을 돌보지 않았느니, 이런 이야기는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외도를 했든지, 이혼을 했든지 이건 논할 필요가 없고, 이제는 ‘병든 아빠를 내가 돌볼 거냐, 안 돌볼 거냐’ 이렇게 딱 단순화해야 합니다. 다른 가족들이 돌보느냐, 안 돌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게 득이 되는 상황이었으면 다른 가족들이 안 받을수록 내가 더 많이 가지니까 좋다고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른 가족들도 이 문제에서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첫째, 아버지를 안 모셔도 괜찮습니다. 아버지가 외도를 했고, 이혼을 했기 때문에 안 모셔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는 아버지와 내가 성인과 성인의 관계이기 때문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안 도와줘도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결정하면 돼요. 이유를 붙이지 말고, 아버지도 자기 인생을 살다가 자기가 넘어진 거니까 법적으로 필요해서 서명이 필요하면 서명을 해주는 정도는 하지만, 만약 경제적으로는 별로 돕고 싶지도 않다면 안 해도 됩니다. 그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아버지를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으면 그때는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돌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보장제도입니다. 사회보장제도는 계속해서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만약 아버지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일가친척의 비난이 있다면, 그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적 통념에는 부모가 병들면 자식이 돌보게 되어 있는데, 질문자는 안 돌보니까 비난을 감수해야 해요. 형사처벌을 받는 건 아니지만, 사회적 통념에 의한 비난은 감수해야 합니다. 만약 비난을 받기가 싫으면 아버지를 돌봐야 하고, 돌보기 싫으면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둘째, 이러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질문자가 후회할 가능성이 있어요. 아버지를 돌보지 않으면 현재는 편하지만, 미래의 고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미래에 내가 후회를 안 하려면 지금 돌보는 게 나아요. 이것은 질문자가 결정해야 합니다. ‘부모니까 돌봐야 한다’, ‘외도를 했으니까 안 돌봐도 된다’ 이렇게 따지면 결정하기가 어려운데 그런 건 따질 필요가 없어요.

부모님이 병들었는데 내가 돌보지 않으면 주위로부터 비난을 받게 됩니다. 비난을 받기 싫으면 돌봐야 하고, 돌보기 싫으면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만약 비난을 감수하기로 결정을 하면, 비난에 대해 끄떡하지 않아야 해요. 그리고 돌아가신 후에 후회할 것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후회를 할 것 같다면, 미래의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 지금 돌봐야 합니다. 대신 돌보고 싶지 않다면, 미래에도 후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비난을 감수할 것인가 아닌가, 후회를 할 것인가 아닌가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할 일이지, 다른 가족이 하느냐 안 하느냐, 아버지가 외도를 했냐 안 했냐, 이건 이 문제와 하등 관계가 없는 얘기예요. 외도를 한 건 엄마와 아빠, 부부 사이의 일이지 자식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질문자는 이제 딱 두 가지를 검토해야 해요. 부모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자식이 돌보지 않음으로써 주위 아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들일 것인가. 만약 감수하겠다면 안 돌봐도 됩니다. 그다음으로 돌아가신 뒤에 내가 후회하겠는가, 만약 후회를 안 한다면 안 돌봐도 됩니다.

병원에 입원하실 때 서명도 안 해도 돼요. 그러나 그 정도는 도와줄 필요가 있겠다 싶으면 그 정도만 도와주고 끝내면 됩니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알리기는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다른 가족들이 돕기 싫다고 하면 그 가족을 원망하거나 나무랄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원래 안 돌봐도 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대신 도덕적 비난은 있을 수 있습니다. 법률적인 잘못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통념상 아직 도덕적인 비난이 있을 수 있어요. 다만, 아버지의 외도나 이혼 등 집안 사정을 아는 사람들로부터의 비난은 적을 수 있겠죠.

언젠가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어요. 아이를 버린 여성이 20년 동안 연락이 없다가, 아이가 소방공무원이 되어 사고로 죽게 되자 국가로부터 나온 보상금을 제일 먼저 타갔다는 기사였어요. 현재 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한테 이익이 되니까 벼락같이 와서 찾아가잖아요. 만약 다친 아이를 평생 돌봐야 되는 상황이었다면 그 어머니가 찾아왔을까요? 이런 상황에서는 찾아와도 되고, 안 와도 됩니다. 성인과 성인 사이에 의무사항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도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것이 의무 사항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젠가 아이들한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될 텐데 ‘그때 내가 돌보지 않아서 혼자 돌아가셨다’ 이런 말을 해도 아무렇지 않다면 아버지를 안 돌봐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마음이 불편하다면, 전적으로는 돌보지 못하더라도 조금은 돌보는 게 낫겠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이 모두 질문자 자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발뺌의 핑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이혼을 했다, 바람을 피웠다, 이런 이야기는 발뺌의 핑계일 뿐이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기한테 손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발뺌을 하려는 거예요.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노인이라고 하더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야 합니다. 그게 곧 천국에 가는 길이고, 성인이 되는 길입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 천국에 갈 이유도 없고, 성인이 되고 싶지도 않고, 보통 사람으로 살겠다면, 아버지를 돕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해요. 자기 인생이니까 다 자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질문자가 선택하면 됩니다. ‘그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해요?’ 하고 물으면 스님도 할 말이 없어요. 그건 질문자가 알아서 선택할 일이지, 다른 사람이 해줄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대신 아버지도 나무라지 말고, 가족들이나 어머니도 나무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도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이에요. ‘왜 나만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 이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어요. 내가 비난과 후회 여부를 따져보고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만 아버지를 돕게 되면 가족들로부터 ‘그래 너 잘났다, 너는 어릴 때 그렇게 고생하고도 아버지를 돕느냐’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는데, 이런 비난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래도 아버지인 걸 어떡하냐’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해야지, 자기가 결정을 해놓고 후회하는 건 수행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결정을 하면 좋겠어요. 이제 질문자가 결정할 일만 남은 거예요.”

“스님 말씀대로 제가 감수할 부분은 감수하고, 돌아가신 다음 후회하지 않게 제 선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도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너무 냉정하게 얘기했어요? 인생은 다 내 일입니다. 남의 일 같지만 이것도 내 일이에요. 예를 들어 지금 파키스탄에 홍수가 났는데, 그것도 파키스탄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내 일입니다. 홍수가 난 걸 몰랐으면 내가 아무런 행동을 안 했을 거예요. 그런데 알았다는 건 그건 이미 내 일이 됐다는 겁니다. 이제 내가 어떡할 것인가만 남은 거예요. 그냥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편하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내가 밥 두 그릇 먹는 것보다는 한 그릇을 주는 게 낫다면 그렇게 행동하는 거예요. 이것도 내 선택입니다. 그러니 칭찬받을 것도 없고, 안 했다고 비난할 일도 아닙니다.”

“여러 날을 생각해도 풀리지 않던 문제가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확신이 생겼습니다. 주변 상황을 핑계 대지 않고 제 결정에 후회하지 않고 책임지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인생고민과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나온 스님은 다시 운동장으로 나와 나비장터와 김장축제를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올해에는 물품의 종류와 코너가 작년보다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스님은 기와에 꽃그림을 그리는 코너에 멈춰 섰습니다.


기와 한 장마다 다양한 꽃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서 가진 후 보시금을 내고 목공 코너로 이동했습니다.

“요즘 거사님들의 목공 솜씨가 나날이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연습을 하니까 실력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럼 오히려 제가 교육비를 받아야겠네요.” (웃음)

먹거리도 풍성했습니다. 배추전, 물떡, 삶은 감자와 고구마 등 다양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어 구경도 하고 요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김장 축제를 함께 열게 되어 한쪽에서는 배추를 절이고 씻고, 양념을 치대는 작업이 계속되었습니다. 큰 튜브에 배추 2천 포기를 담그고, 여러 명이 릴레이로 서서 배추를 씻고 절이고 운반했습니다.




창고 안에서는 양념을 만들고, 잘 절여진 배추에 양념을 치댔습니다. 여러 명이 함께 작업을 하니 순식간에 김치가 한 통씩 만들어졌습니다.




올해에는 ‘배추반’을 신설하여 봉사자들이 직접 키운 유기농 배추로 김장을 담가서 특별히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김치를 원하는 사람들이 좀 있어요?”

“그럼요! 김치가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김치 코너는 일치감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호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번호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렸다가 각자 집에서 가져온 통에 김치를 담아 갔습니다.

봉사자들과 공동체가 함께 키운 유기농 야채와 쌀도 푸짐하게 준비가 되었습니다. 여름 내내 많은 봉사자들이 피를 뽑으러 왔던 논에서 나온 쌀이어서 쌀을 나눠주는 봉사자들도 각별히 애정을 담아 한 포대씩 대중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풋고추를 많이 나눠주세요. 풋고추가 정말 많아요.”

“네!”

천룡사에서 온 감식초와 된장, 죽림정사에서 온 야채와 장아찌, 아도모례원에서 온 감자 등 곳곳에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벼룩시장에는 다양한 물건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도 고무신을 하나 신어보았습니다.


사이즈가 작아 더 큰 고무신을 고르고 보시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살리고센터 안으로 가보았습니다. 살리고센터 안팎으로 다양한 체험코너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바느질 공방에 가서 가사를 수선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구멍 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오후 법회 전까지 수선하기 어렵다고 해서 다시 가사를 받았습니다. 스님은 나비장터를 한 바퀴 둘러본 후 봉사자들을 격려하고 다시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오후에는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인 ‘청춘톡톡’ 생방송을 하고, 서원행자 신청자들과 온라인으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보고 난 후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후 이야기는 내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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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

엄마와 이혼하지도 않고 연락하고 지내던 아빠도 만약 간호 책임이 오래 가게 되면 결국은 나자빠지게 됩니다. 병자 간호는 돈과 노동력이 너무 많이 들어서 혼자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불쌍한 마음이 든다고 하셨으니 그 불쌍한 마음이 사라질 때까지 몇개월이 되든 몇년이 되든 간호하고 내 마음이 소중하니까요.

2022-12-02 07:01:36

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명확하고 아주 날선 느낌이지만 확연하게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11-25 09:59:06

김다선

감사합니다
다내문제구나깨달음 교훈을 받았 습니다~^^

2022-11-23 07: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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