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12 (오후) 청춘톡톡, 서원행자 신청자 교육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울 때마다 찝찝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두북 수련원 운동장에서 나눔과 비움의 장터 ‘나비장터’가 열렸습니다. 먼저 영상으로 그 모습을 함께 보시죠.

▲ 나비장터 영상 보기

오전에 이어서 오후 2시부터는 청년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인 ‘청춘톡톡’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청춘톡톡

유튜브 라이브가 시작되자 청년들 6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인사말에 이어서 얼마 전 파키스탄에 일어난 홍수 피해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JTS가 구호활동을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서 스님은 청년들이 주위에 어려운 이웃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청년다운 기상을 가져볼 것을 당부했습니다.

“20년 전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온 난민들이 발생했을 때의 모습은 아주 비참했습니다. 너무나 비참해서 그들을 돕고자 나섰을 때 많은 대학생들이 학교를 휴학하거나 그만두고 중국으로 가서 난민들을 도왔습니다. 그때는 참 위험했었고, 나중에 일부는 중국 정부에 잡혀서 몇 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대학생들이 해외에 나가서 1년 또는 3년씩 봉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청년들을 보면, 국제사회에 나가서 이렇게 활동을 하려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JTS에서도 이런 청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나이가 점점 많아져서 대부분이 40대 또는 50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일에 나서서 활동을 한번 해보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학교 1년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어요. 이런 경험을 하면 ‘내가 사는 게 정말 나쁜 게 아니고, 큰 혜택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고 알 수 있고, ‘대한민국이 지옥이 아니라 정말 좋은 환경이구나’ 하는 걸 자각하기도 합니다. 내가 놓인 처지가 그렇게 낙담할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국적만 가지고 있어도 엄청난 기득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각을 하게 되면 내면으로부터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의욕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여러분 모두 청년다운 기상을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는 젊은이가 되길 바랍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의 청년들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유기견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는 청년이었는데 어떻게 하면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울 때 일어나는 불편한 마음을 없앨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울 때마다 찝찝합니다

“주말에 한 번씩 유기견 보호소에 가서 봉사활동을 가는데, 강아지 배설물을 치울 때마다 냄새가 나고 촉감이 불편합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더럽다는 생각 없이 치우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처음보다는 덜 더럽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강아지들이 똥 밟은 발로 제게 안길 때마다 찝찝합니다. 어떻게 하면 강아지의 배설물이 더럽다고 인식하지 않을 수 있나요?”

“우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유기견 보호소에 안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냄새나는데 뭐 때문에 유기견 보호소에 가요? 안 가는 게 제일 낫습니다. 그러면 이런 문제를 신경 안 써도 되잖아요. 굳이 강아지 배설물을 치우면서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다’ 이런 생각을 억지로 할 필요가 없잖아요.

수행삼아 한번 해보는 것은 괜찮아요. 그러나 그곳보다 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세상에는 많잖아요. 아기를 낳아놓고도 못 키우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런 아기를 봐줄 수도 있고요. 첫째, 유기견 보호소에 안 가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유기견 봉사활동이 긴급한 구호 활동은 아니기 때문에 안 가도 된다는 겁니다.

둘째, 버려진 강아지가 가슴 아플 정도로 강아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유기견 보호소에 간다면서 왜 강아지의 똥은 싫어하죠? 그 똥이 뭐 다른 곳에 있다가 온 것도 아니고 강아지 뱃속에 있다가 나온 거잖아요. 강아지는 좋은데 강아지가 밟은 똥은 싫다는 것도 좋은 공부 거리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밖에 안 내보내고 집 안에서 키우죠. 나는 강아지가 귀엽다고 집 안에서 키우지만 강아지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답답할 거 아니겠어요? 우리가 강아지를 귀여워한다는 것은 결국 강아지를 위해서일까요, 나를 위해서일까?”

“나를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강아지를 키울 때 꼬리에 문제가 있다고 꼬리를 잘라버린다든지, 교미를 해서 문제가 생긴다고 성 기능을 절제해 버린다든지, 아파트에서 자꾸 짖는다고 목젖을 잘라버리는 성대 수술을 한다든지, 강아지는 털이 많아서 그냥 다녀도 되는데 옷을 해서 입힌다든지, 목줄을 좋은 걸로 걸어준다든지, 이런 것들은 전부 나의 취향이지 강아지의 취향은 아니지 않을까요? 강아지 자신은 추위에 좀 떨더라도 밖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강아지가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는 모습이 사람이 보기에 가슴 아프지, 강아지는 이것저것 먹고 아무 데나 똥 누고 돌아다니는 게 제일 자유롭지 않을까요? 존재는 자기 생긴 대로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이 동물을 키우는 것은 동물의 자유를 박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살도록 놔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수행공동체 안에서는 원래 동물을 못 키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스님들 중에서도 개를 키우는 경우가 많지만 원래 계율에는 동물을 못 키우게 되어 있어요.

몇 년 전에 제가 캐나다에 갔는데 국립공원에서는 동물에게 일절 먹이를 못 주게 합니다. 사람들이 동물에게 먹이를 주면 자연 생태 기능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먹이를 안 줘서 굶어 죽게 되어도 그걸 불쌍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연 생태의 원리라고 보는 거죠. 관광객들이 자꾸 먹이를 주면 동물들이 자연 속에 안 살고 자꾸 민가로 내려오는 문제도 생긴다고 합니다.

예전에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바다표범이 어떤 이유로 육지에 있는 농장에 낙오가 되어 있었어요. 어떻게 그곳까지 왔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깜짝 놀란 농부가 바다표범을 구제하고 보살펴서 바다로 운반하려고 하다가 자연보호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잡혀서 벌금을 수백만 원 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생명을 살려야 되지 않느냐 생각하지만 인위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거예요. 생명을 해치는 포획도 하면 안 되지만, 자연 속에서 죽는 것도 그들의 생존대로 내버려두라는 거예요. 이렇게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가하지 말라는 쪽으로 자연관이 바뀌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산에 나무를 많이 심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자연 속에서 산림이 자라도록 그냥 놔두라는 새로운 이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나무가 없는 곳에 새로 나무를 심고 그랬잖아요. 특히 산불이 나고 나면 나무를 새로 심잖아요. 요즘은 산불이 꺼지면 자연적으로 거기에 씨가 떨어지고 자랄 수 있도록 놔두어야 한다는 새로운 자연관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유기견 보호소에 안 가도 된다고 말한 것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에요. 유기견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동물 애호가들은 ‘어떻게 스님이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하고 비판할 수도 있는데, 제가 볼 때는 그것도 하나의 편견이고 집착인 것 같아요. 동물을 보살핀다고 비난하면 그것도 편견이고 집착이듯이, 유기견을 보호해야 한다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 고양이 수십 마리를 키우는 사람의 경우 얼핏 보면 동물 애호가 같지만 심리적으로 깊이 살펴보면 정신적인 어떤 결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저렇게 하는 것은 나쁘다’ 이렇게 쉽게 단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기견 보호소에 안 가도 된다고 얘기한 겁니다.

그다음에 강아지가 불쌍해서 유기견 보호소에 갔다면, 강아지가 갖고 있는 다른 것도 어느 정도 수용을 해야 합니다. 내가 아기를 봐주기로 했는데 아기가 똥을 누었다고 버리고 갈 거예요? 아기를 봐주기로 했다는 것은 그 속에 아기의 똥을 치우는 것도 포함되어 있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러운 것을 안 더럽다고 생각해라는 뜻이 아니에요. 냄새가 나는 것은 맞는데 냄새가 난다고 해서 더럽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객관적으로는 그냥 냄새가 나는 것이고, 나는 그 냄새에 거부 반응이 있는 겁니다. 그 냄새가 더럽다는 것은 주관이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청국장 냄새를 한국 사람은 좋아하지만 외국 사람은 역겹다고 하잖아요. 치즈가 발효될 때 나오는 냄새는 스위스 사람들에게는 향기로울지 몰라도 한국 사람들은 똥 냄새보다 더 지독하다고 하거든요. 냄새가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냄새가 역겨운지 향기로운지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되면 아이의 똥과 오줌이 조금 역겹더라도 그것을 치워야 됩니다. 어떤 일을 할 때도 냄새든 맛이든 모양이든 소리든 그것이 나하고 안 맞을 수가 있어요. 나의 취향에 안 맞으면 우리는 다 나쁘다고 말하는데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런 냄새를 맡으니 나는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괜찮습니다. 거부 반응이 없어야 된다는 것은 논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수행을 하면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에요. 수행자는 냄새에 더욱 예민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냄새가 아주 향기로워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역겹다고 해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하고 알 뿐이지 그걸 가지고 들뜨거나 가라앉거나 하지 않는 게 수행입니다.

냄새를 못 맡는 게 수행이 아니에요. ‘이 냄새는 나한테 좀 거부반응이 있구나’ 이렇게 알고 거부반응이 와도 유기견 보호소에 가서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저도 요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유기농을 하니까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려면 여러 가지 음식찌꺼기를 발효시켜야 됩니다. 낙엽도 갖다 썩히고, 온갖 것을 다 썩혀야 하는데, 특히 은행은 그 냄새가 굉장히 지독합니다. 그렇게 발효를 시켜서 만든 것이 액비인데, 액비를 밭에 뿌릴 때 그 냄새가 옛날 제가 어릴 때 똥을 치울 때보다 더 역겨워요. 하지만 저는 비닐 옷을 입고 액비를 밭에 뿌리는 작업을 하거든요. 왜냐하면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한테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늘 그렇습니다. 불쌍한 강아지를 돕는 일을 하려면 그런 정도는 감수해야 합니다. 역겹지 않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조금 역겹지만 그런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몇 번 냄새를 반복해서 맡으면 조금씩 익숙해집니다. 오히려 더 자주 가면 거부반응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일은 자기 좋은 것만 취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 남자 친구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좋은데 저건 나쁩니다. 돈이 좀 있으면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이 있는데, 대신에 목에 힘을 줍니다. 인물이 좀 잘났으면 보기는 좋은데 인물값을 합니다. 또 리더십이 있어 보여서 좋았지만 막상 같이 살아보면 고집이 황소고집입니다. 사람은 늘 이렇게 이중성을 갖고 있어요. 사근사근해서 좋은 사람은 줏대가 없습니다. 이 세상 만물은 모든 면이 내 마음에 들 수가 없어요. 그건 나의 잘못된 희망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양면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강아지가 예쁘면 강아지의 똥도 받아들여야 됩니다. 유기견 보호소에 가서 이런 수행을 미리 하면 좋죠.”

“네,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대로 제가 좋은 것만 너무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양면을 함께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헤어짐이 어렵습니다. 법륜스님이 연세가 있으신데 청년들도 힘든 일과를 해내시는 것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고, 걱정이 많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감정이 덜 들 수 있을까요?
  • 저의 고민은 제가 아직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어 독립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집니다. 어떡하죠?
  • 저의 능력보다 훨씬 높은 일들이 들어옵니다. 나는 이 정도밖에 못한다고 말해야 할 때면 수치스럽고 도망가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오늘로써 올해 마지막 청춘톡톡 시간이었습니다. 신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서원행자 신청자 교육

잠시 쉬었다가 오후 4시 30분부터는 서원행자 신청자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교육생 23명이 그룹장, 돕는이들과 함께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그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요. 그중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지회장 소임을 맡는 것이 흔쾌하지 않음을 자각하고 앞으로 어떤 수행을 해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서원행자가 되면 어떤 관점과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욕먹기 싫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죠?

“서원행자 교육을 받으면서 지회장 소임을 흔쾌히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흔쾌히 받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지금도 충분히 살만한데’ 하는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욕먹기 싫은 마음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수행을 하면 될까요?”

“서원행자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지회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회장이 될 자격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회장이 되는지 여부는 대중이 선택하게 됩니다. 즉, 정토회 내 특정 지도부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대중이 선택하는 거예요. 정토회에서는 ‘이 정도면 지회장이 되어도 좋겠다’ 하고 지회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할 뿐이고, 실제로 이번에 누가 지회장이 되면 좋겠는가에 대해서는 대중이 선택을 하게 됩니다.

서원행자는 이 땅에 정토를 이루겠다는 원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의 선택을 받았는데도 거절한다면, 그는 원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서원행자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꼭 내가 지회장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수행자의 자격이 없는 거예요.

대중의 선택을 받았는데도 지회장이 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은 서원행자를 그만두고 전법행자로서의 자기 역할만 하면 됩니다. 만약 전법행자로서의 자기 역할을 할 때도 부족한 점을 고칠 의향이 없다면, 전법행자를 그만두고 일반회원으로서 내 수행만 해나가면 돼요.

일반회원은 내가 시간 날 때 가서 봉사하고, 내가 시간 날 때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발심행자부터는 의무와 책임이 생깁니다. 일반회원은 수행자를 지향하는 사람이고, 발심행자부터는 수행자라고 규정되는 사람입니다. 발심행자부터는 계율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도 주어지고, 꼭 참여해야 하는 일들도 생깁니다.

‘자원봉사를 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책임까지 져야 하는가’ 하고 생각이 들면 자유로운 일반회원으로 활동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수행자로 살겠다’ 하는 원(願)을 세운 사람은 적어도 법회에 규칙적으로 참석하고, 보시와 봉사를 해야 합니다. 이건 수행자로서 스스로 약속하는 거예요.

수행자가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 속에서 발심행자, 서원행자, 결사행자의 구분은 결심의 정도에 따라 나눈 거예요. 수행자의 원칙을 지키면서 ‘내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은 사람은 발심행자가 되고, ‘내가 정토회 임원을 맡아서 보다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은 사람은 서원행자가 되고, ‘내 삶의 목표는 늘 수행과 전법이지 세상살이가 아니다’라고 할 정도로 결심이 선 사람은 결사행자가 됩니다. 굳이 절에 들어와서 살지 않더라도 이 정도로 원(願)을 세우고 활동해나간다면 결사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에서는 수행자로서 살더라도 어떤 정도의 원을 세우는지에 따라 선택을 하도록 했습니다. 앞으로도 가능하면 모든 부분을 스스로 선택하게끔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이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서 복을 받거나 천당 간다는 이야기도 안 하고, 내생에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안 하고, 현생에 복을 받는다는 소리도 안 하잖아요. 그러니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기쁨과 만족을 내가 누리는 겁니다. 인생은 자기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무언가 추상적인 것을 좇지 말고, 늘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정토회 활동을 보면서 자신과 안 맞으면 안 해도 되고, 또 나를 극복하고자 하는 원이 있으면 같이 나아가도 됩니다. 이걸 안 한다고 해서 낙마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꼭 욕심을 냅니다. 욕심을 내니까 부담이 되는 겁니다. 그만두게 되어도 마치 낙오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런 게 다 욕심에서 비롯되는 거예요. 그러니 욕심을 내려놓고, 자유로운 상태로 편하게 임하면 좋겠습니다.”

이 외에도 소임, 정토회, 서원행자, 교육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나니 저녁 6시가 다 되었습니다. 교육생 모두 서원행자로서의 관점을 분명하게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고 나서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을 한 후 통일특별위원회 리더십 연수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오후에는 나비장터와 김장축제를 준비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갖고, 저녁에는 일요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9

0/200

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2022-12-01 18:23:16

청정화

감사합니다

2022-11-21 16:49:32

김은경

장단점이 있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나를 봅니다. 자연관도 바뀌고 있다는 걸 오늘 알았습니다.

2022-11-18 12: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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