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23 천일결사 기도, 경전대학 즉문즉설, 행복학교 특강, 통일의병 농사체험
“중3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 스님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으로 진행한 후, 두북 공동체 대중과 발우공양을 하고, 오전 10시에 방송실에서 정토 경전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9월에 입학한 정토 경전대학 학생들은 지금 금강경 수업을 배우고 있습니다. 수업 중 궁금한 점에 대해 여섯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스님은 수행 연습을 통한 생활 실천을 강조한 후 다음 주 일요일에 열리는 10-7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참여해 볼 것을 권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정토 경전대학은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배우는 곳입니다.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실제로 내가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교 철학은 심오하기 때문에 법문을 듣고 논리와 이치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내가 경험하고 체험해서 화를 한 번이라도 덜 내고, 괴로움이 덜 생기고, 슬픔이 덜 생기는 것입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은 불교학과 교수가 직업으로 필요할지는 몰라도 수행자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바른 이치를 알면 바른 실천을 하기가 쉽기 때문에 경전대학에서도 이치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 강의만 듣고 끝내지 말고 작은 행동이라도 직접 해봐야 합니다. 오늘 배운 내용을 남편에게도 적용해보고, 아이에게도 적용해보고, 직장에 가서도 적용해봐야 해요.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면 점점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정토회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1시간씩 정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100일을 정진하면 내 모습이 어떠한지 알게 됩니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나려면 1000일 정진을 해야 합니다.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가족들로부터 ‘당신, 요즘 좀 변한 것 같아’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천일결사 백일기도 입재식을 백일마다 하고 있는데, 이번 일요일에 10-7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열리니까 여러분 모두 참석하셔서 발심을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부터는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유튜브 공개 방송으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26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사전에 세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답답한 마음을 울먹이며 이야기했습니다.

중3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있는데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관계와 학교생활을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다 6학년 때 발 골절로 인해 학교를 쉰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더욱 학교에 가는 걸 힘들어했습니다. 중학교 진학 후에도 학교에 가다, 안 가다를 반복했는데, 급기야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학교에 학업 심려제를 신청하여 집에서 쉬게 했고, 가족 상담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상담 결과 아이는 자기애가 강하고 무기력을 수반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은 상담을 하면서 부모의 양육 태도의 중요성을 알고 변화하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고, 지금도 애쓰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제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부모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거의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면 사실 부모가 크게 도울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을 찾고 싶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 스스로가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부모가 아이 때문에 우울해하면 오히려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아이와 상관없이 부모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아이가 골절상을 입은 후 집에서 쉬게 됐다’, ‘누구와 싸운 후 문제가 생겼다’, ‘담임선생님과 싸운 후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모두 사실과 다릅니다. 아이는 이미 심리적으로 약한 고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약한 고리가 교통사고로 인해, 친구와의 싸움으로 인해, 또는 선생님께 야단맞는 것을 계기로 발병을 하게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서, 친구와 심하게 싸웠다고 해서, 또는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았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정신적으로 내재된 요인을 가지고 살다가 특정한 계기로 인해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우선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아이가 어떻게 하다가 그런 약한 고리를 갖게 되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아이에게 성장 과정에서 심리적으로 어떤 충격을 줄만한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일을 소재로 치료를 해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특별하게 충격을 줄만한 일이 없었다면, 아이의 정신적 질환은 대부분 어머니의 정서적 불안증이나 히스테리 등으로 인해 생겨나게 됩니다. 어머니가 정서적으로 불안하면 아이의 심리에 약한 고리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니 우선 아이가 지금까지 성장해오는 과정에서 혹시 부부갈등이 심했던 건 아닌지, 질문자가 우울증을 앓았던 건 아닌지, 정서적으로 불안감이 많았던 건 아닌지, 남편과 같이 살지 말지 고민이 많았던 건 아닌지 한 번 살펴보면 좋겠어요. 그 요인을 찾게 되면 지금 아이가 학교에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이가 학교에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를 지나치게 신경 쓰는데, 그건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나면 뒤늦게 후회를 하게 돼요. 엄마는 항상 아이의 건강을 가장 우선시해야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안 가고는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자꾸 아이가 어떻게 되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아이의 심리에 약한 고리를 형성하는 데 질문자가 영향을 많이 미쳤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해요. 질문자가 나쁜 의도로 그런 게 아니라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게 한 거잖아요. 우선 여기에 대한 깊은 참회가 필요합니다. 남편 때문에 힘들었으면 남편에게 참회를 해야 하고,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었으면 시어머니에게 참회를 해야 해요.

참회를 하라고 하면 대개 상대방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서 해결을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한다고 상처가 치유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 사람을 시비해서 상처를 입은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시비하지 않음으로 해서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참회입니다. 이렇게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면 우선 나부터 밝아집니다.

내가 밝아지면 아이가 문제를 제기해도 내가 그걸 받아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아이를 고치는 데 내가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내게 그런 힘이 생기면 아이가 불안증이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아이의 반응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응을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아이가 혼자 방 안에만 있을 때 ‘학교도 안 가고 하루 종일 방에만 있어서 어떡하나’ 이렇게 엄마가 답답하게 생각하는 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줍니다. 설령 아이가 학교에 간다고 해도 엄마라면 ‘네 건강이 지금 제일 중요하지 학교가 뭐가 그리 중요하니?’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탁 나야 합니다. 밥을 먹으라고 했는데 아이가 먹지 않으면 ‘그래, 네가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말해’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럴 정도로 질문자가 아이에 대한 집착을 놓아야 합니다.

우선 이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질문자라는 점을 자각해야 해요. 그렇다고 죄의식을 가지라는 게 아닙니다. 핵심은 이 문제의 원인을 내가 제공했으니 자꾸 아이한테 무언가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방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아이가 학교에 갔으면 좋겠다’ 이런 요구들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내가 아이에게 미친 영향에 비해서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건강해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방에 있는다고 하더라도 나가서 말썽 안 피우는 것이 다행이고, 자살 안 하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아이의 행위에 대해서 포용하는 힘이 생겨요. 그렇게 해야 아이의 치유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병이 질문자로 인해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이제 아이의 병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치료 과정에서 아이의 병을 악화시키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질문자도 스스로를 치유해서 질문자가 아이를 포용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행복학교에도 참여하면서 남편에게 참회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비해 마음이 많이 편해지기는 했는데, 아직 아이를 보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습니다.”

“본인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 건 생각 안 하고 아이한테만 ‘바뀌어라’ 하고 욕심으로 접근하니까 마음이 안 편하죠.

‘내가 끼친 영향에 비해 아이가 이만큼이면 건강하다. 만약 영향을 끼친 그대로 아이가 전부 다 받았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쁠 텐데, 지금 같은 정도라서 엄마는 참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항상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하나도 불편하지가 않습니다. 만약 아이를 보면서 죄책감을 느낀다면 질문자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나는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안 할 사람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높이 평가할 때 느끼는 게 죄책감입니다. 질문자도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질문자도 당시에 살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한 거잖아요. 일부러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질문자도 결혼해서 살기가 힘드니까 몸부림을 쳤고, 그러다 보니 아이한테 안 좋은 영향을 주게 된 거예요. 그러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조금 어리석었던 거죠.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종교를 가질수록 더 죄책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데, 도대체 여러분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죄책감을 가집니까? 죄를 지은 게 아니라 당시에 어리석었던 겁니다. 어리석어서 뜻하지 않은 결과를 얻게 된 거예요. 자꾸 죄책감을 갖게 되면 그 죄책감을 씻어 내고자 아이에게 더욱더 지나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의 상태를 더 악화시키게 돼요.

아이는 이미 사춘기가 되었기 때문에 부모가 조금 떨어져 있어줘야 합니다. 환자가 아니어도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떨어져 있어줘야 하는데, 지금은 아이가 환자이기 때문에 더욱 떨어져 있어줘야 해요. 아이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되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고 항상 떨어져 있어줘야 합니다. 마음이 아픈 아이를 가진 질문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아이도 심리적으로 약한 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꾸 ‘보통 아이들처럼 지내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아이에게 약한 고리가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못하더라도 행복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늘 현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자꾸 ‘아이가 이랬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면, 아이는 그렇게 할 수 없는데 부모가 자꾸 그걸 요구하니까 아이는 엄청난 압박으로 느낍니다. 그러니 지금 아이에게 어떠한 요구도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아이의 상태를 긍정적으로 보는 게 필요해요. 아이를 내팽개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간섭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지켜보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고,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면 한 발 떨어져 있으면서 ‘이대로도 괜찮다’ 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아이 걱정을 하지 말고 자기 수행에 더욱 치중하세요. 우선 질문자부터 편안해지는 경지에 이르러야 아이의 치유에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저는 인성도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너무 많아서 행복학교를 열 자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별명이 괴짜인 저는 오해도 쉽게 사고, 약간 별난 사람인데요.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봉사를 할 수 있을까요?
  • 많은 전문가들도 언급하듯이 경제 발전이 통일의 이점임을 압니다. 하지만 평화의 목적이 평화에 있지 않고, 우리의 이기심에 더 큰 방점이 찍혀 있다면 더 분열이 조장될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스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질문한 분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 때문에 고민인 분도 가벼워진 얼굴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네, 스님 말씀 듣고 많이 밝아졌습니다.”

“눈물을 흘리더니 아직 눈은 빨갛네요.” (웃음)

“오늘 좋은 말씀 너무 감사히 잘 들었고, 우선 저부터 행복하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를 위해 한마디를 더 해주었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아이의 상태를 그대로 두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앞으로 상담해 줄 곳이 많습니다. 이런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이 전국에 수만 명이 넘을 겁니다. 그런 곳에 가서 자기 사연을 들려주고, 어떻게 나도 행복하고 아이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어요. 그렇게 되려면 우선 내가 그걸 진짜로 체험해야 합니다. 내가 실제로 경험해야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정작 내 문제도 못 푼 상태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가 없습니다. 악조건을 극복하면 엄청난 재산이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행복학교 참가자들이 다음 과정인 관계 편과 심화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게 안내한 후 오후 4시에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스님은 논으로 서둘러 나가 보았습니다. 오늘은 콤바인이 들어와서 벼를 수확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논에 도착하니 스님의 고향 친구인 동네 분이 콤바인으로 벼를 베어내고 있었습니다.

“잘한다!”

스님은 콤바인을 운전해주는 분에게 큰 목소리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콤바인을 세워놓고 두 분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고마워요. 어제 모퉁이마다 기계가 지나갈 수 있게 벼를 베어놓았는데, 다른 논도 이 정도 크기로 베어놓으면 돼요?”

“베어진 면적이 좀 작아요. 더 넓게 베어주세요. 왜냐하면 콤바인이 방향을 틀어야 하니까 조금 더 벼를 베어내야 해요.”

“알았어요. 내일 오전까지 제가 모퉁이마다 벼를 다 베어놓을게요.”

콤바인이 논의 외곽을 베어내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 후 스님은 산 아랫 밭으로 향했습니다.

산 아랫 밭에서는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이 겨울 채소를 심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은 1박 2일 일정으로 농사 체험 프로그램을 하러 왔습니다. 오늘은 오후 1시부터 두둑을 만들고 비닐 멀칭을 한 후 양파를 심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일은 할 만해요?”

“네, 그런데 저는 태어나서 양파를 처음 심어 봐요.”

구멍이 숭숭 뚫린 곳마다 양파를 하나씩 심어 나갔습니다. 스님이 결합하자 일은 더욱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오시니까 갑자기 다들 손놀림이 빨라지네요.”

한 두둑에 2000개의 양파를 심고 일단 마무리를 한 후 마지막으로 생강을 수확했습니다.

어제 수확하려다가 땅이 너무 질어서 하루 더 땅을 말렸더니 한결 수월하게 생강을 캐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게 생강이에요? 생강 잎이 이렇게 생겼는지 처음 봤어요.”

다들 생강 잎을 처음 봤는지 신기해하며 하나씩 생강을 캤습니다.

두둑은 한 줄이었는데 수확한 생강은 컨테이너 박스에 가득 찼습니다.

“수고했어요. 다들 저녁식사 맛있게 하시고, 저녁에 대화를 나눕시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평화재단 통일의병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그동안 통일의병 활동을 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스님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질문했습니다.

연이어 질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명은 통일을 꿈꿔온 지 35년이 되었지만 요즘은 절망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과연 통일이 될런지 절망감이 들 때 어떡하죠?

“저는 스무 살부터 통일이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고 이제 35년 정도 됐습니다. 주변에 통일 운동을 같이 해온 사람들을 보면 ‘평생 통일운동을 해왔는데 실제로 통일이 될까?’ 하는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통일의 기운이 올 것 같다’ 하고 희망을 갖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떡 버티고 있으니 우리나라 대통령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우리 통일의병들이 무엇을 해야 통일에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통일 운동하는 것만 해도 이렇게 막막하고 어려운데,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우리보다 열 배, 스무 배 고생했고, 우리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막막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게 바른 길이라면 그저 꾸준히 가는 것이지 당장 눈앞에 어떤 결과물이 없다고 해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지 날짜를 점치는 게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한 발 한 발 통일에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면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을 때는 기다려야죠.

앞으로 민간 통일운동 영역에서는 큰 역할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 민간 영역에서 큰 원(願)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시민단체들이나 정치권을 봐도 옛날 운동권이 가졌던 원(願)은 이제 거의 소진되었다고 보여요.

평화와 통일을 원하는 세력이 과거에는 학생과 노동자 계층이었다면, 앞으로는 권력층이나 재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남북 교류를 하게 되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부자 계층이 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재벌이나 권력층이 남북문제를 푸는 게 자기들한테 유리하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때는 재벌이나 권력층이 통일운동에 가장 앞장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남북교류의 기회가 오면 통일의병 여러분이 할 일이 없어지게 되고, 그런 기회가 오지 않으면 여러분이 뭘 한다고 해도 잘 안 이루어지겠죠. (모두 웃음)

남북대화에 물꼬가 트이면 민간에서는 대화에 참여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일은 대부분 정부가 담당하게 될 거예요. 시민운동의 폭도 과거에 비해 차츰 좁아지고 있습니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시민단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지 않고,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시민단체가 하려고 한 일을 정부가 다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정부의 성격과 관계없이 점차 시민운동의 폭이 좁아지는 게 현실입니다.

사회 분위기도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국민이 광범위하게 연대해서 손을 잡고 정부에 요구를 하는 것도 이제는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어요. 국민들이 연대하기보다는 개별화된 분위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측면만 보면 여러 가지 조건이 불리해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나쁘게 보거나 누굴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그걸 정부가 나서서 하든, 재벌이 나서서 하든, 누가 하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부가 나서면 통일 이후 정쟁이 심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성과 뒤에는 늘 논공행상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재벌이 통일을 주도하게 되면 통일 이후 재벌 공화국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습니다. 종교가 주도하게 되면 통일 이후 종교 공화국으로 흘러갈 위험이 있죠. 시민이나 노동자가 통일을 주도하게 되면 통일 이후 시민 공화국이나 노동자 공화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통일의 주체 세력이 시민이나 노동자가 되기는 조금 어려워 보입니다. 시민이나 노동자가 주체가 되려면 원(願)이 있어야 하고 다수의 결집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원(願)도 부족하고, 다수의 결집력도 부족합니다.

재벌이 통일에 적극 나서기 위해서는 이익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북한 개발은 확실한 이익이 보장된다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재벌이 통일을 주도할 가능성은 아직 여지가 있습니다.

정부가 통일에 적극 나서는 이유도 국가의 미래 비전을 위해서라고 보면 안 됩니다. 통일 문제를 푸는 게 정권 연장에 도움이 된다거나, 역사적 성과를 남기는 데에 도움이 된다거나, 또는 그런 걸 막기 위해 죽기 살기로 반대한다고 보는 게 현실적입니다. 결국은 통일을 정쟁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죠.

여당이든 야당이든 통일에 대한 원(願)이 정말 있다면, 반대하는 세력을 설득하려고 할 텐데, 어느 정권이든 그런 모습이 거의 없잖아요. 통일을 향한 움직임은 지속적이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반대 세력과 합의한 만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거나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노선만 가려고 하잖아요. 그 이유는 통일에 대한 원(願)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지 날짜를 헤아리는 건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통일로 나아가는 계단을 하나씩 쌓아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기회가 올 때 재바르게 그 기회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할 때도 5년 동안 아무런 지원을 못했다고 해서 사업을 접는 게 아니라, 문이 열리면 신속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문이 1년 후에 열리든, 3년 후에 열리든, 5년 후에 열리든, 그와 상관없이 기회가 주어질 때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켜보며 준비해 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통일의 문을 열려면, 국제 정세, 국내 정세, 북한의 상황 등을 주시하며, 기회가 올 때 어떻게 그 기회를 살릴 것인가를 늘 연구해야 합니다.

통일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좌절하거나 통일운동 단체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나쁠 게 없습니다. 다른 단체들이 모두 없어지면 이제 통일의병 여러분들이 통일운동을 주도하게 되잖아요. 통일의병은 비록 작은 단체이지만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판을 주도하게 됩니다. (웃음)

반면 우후죽순으로 다른 단체들이 생겨나면 그만큼 통일에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되니까 그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다 나서서 하니까 여러분들이 안 보이게 되겠죠.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통일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많아지면 통일에 훨씬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니까 좋다고 생각해야 하고, 우리만 남고 다른 단체들이 다 사라지면 외롭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기회가 오면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다보고 부지런히 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급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인지만 생각해보면 됩니다. 통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희망을 가질 만한 일인지, 국가의 비전으로 삼아볼 만한 일인지, 아니면 이 정도로 만족하고 안주할 일인지, 이것만 생각해보면 돼요. 만약 우리가 가야 할 국가적 비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 방향을 향해서 한 발씩 나아가면 됩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음악,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이렇게 유행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한류가 일어났잖아요. 아마도 외국인의 눈에는 한류 열풍이야말로 남북통일보다 더한 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30년 전에는 한국 상품이 전 세계적으로 팔릴 것이라고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오징어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 K-평화

만약 한국이 통일을 하면 ‘K-평화’라는 상품은 지금의 ‘오징어 게임’ 열풍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도 세계적 파급력을 갖게 될 거예요. 한국이 평화를 이루어내고 통일할 수 있을 길을 열었다는 건 중동에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걸 시사합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그만큼 해결하기도 어렵지만 한 번 해결하고 나면 수많은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도 길게 보면 좋겠습니다. 관계가 개선됐다가 정체됐다가 하는 것은 조금씩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조금씩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하는 게 뭐가 그리 큰일이겠어요. 그러니 길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수행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듣고 통일의병 활동에 힘을 좀 얻었는지, 오히려 동력이 상실됐는지 모르겠네요. 어땠어요?”

“힘을 듬뿍 얻었습니다.”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려면 항상 새로운 100년을 내다봐야 합니다. 1년의 진행상황을 보고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안 된다고 체념할 때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오는 법입니다. 긍정적으로 보고 꾸준히 해나갑시다.”

통일의병들은 스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큰 힘을 내었습니다. 돌아보니 마침 8년 전 이곳 두북 수련원에서 통일의병 창립을 위한 발기인 대회가 열렸습니다. 통일의병을 처음 시작한 자리에서 다시 한번 원(願)을 세워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벼를 수확하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들깨를 터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 명상을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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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한다 감사합니다

2021-11-04 19:17:40

홍지안

스님의 말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행복하고 편안한 엄마가 되겠습니다.

2021-10-31 06:01:26

김미화

길게보고 실망하지 말고 꾸준한 활동을 해야 한다는 말씀잘들어습니다ᆢ

2021-10-30 00: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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