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24 벼 수확, 평화재단 통일의병 농사체험, 일요명상
“스님이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연중 가장 큰 농사일 중에 하나인 벼를 수확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정토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일절 공식 행사를 열지 않기로 한 가정의 날입니다. 그래서 봉사를 하러 온 대중은 아무도 없었고, 스님과 두북 공동체 대중, 그리고 1박 2일 동안 농사체험을 하러 온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이 일손을 도왔습니다.

옛날과 달리 벼를 사람 손으로 베는 게 아니라 콤바인이 벼를 베는 일과 탈곡하는 일을 한꺼번에 합니다. 하지만 논의 모서리마다 콤바인이 회전하는 곳은 사람이 손으로 직접 벼를 베어 놓아야 합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논으로 나가 모서리 부분에 벼를 미리 베어놓는 일을 했습니다.

오늘 수확하는 논은 모두 6개의 필지입니다. 먼저 첫 번째 필지의 모서리로 가서 벼를 베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하자 들판은 더욱더 황금빛으로 넘실거렸습니다.

하나의 모서리를 베고 난 후 다음 모서리로 이동하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가장자리에 이앙기가 심지 못한 부분에는 손으로 벼를 다 심었기 때문에 다시 손으로 벼를 베어야 합니다.

“가장자리는 향존 법사님이 심었으니까 법사님이 책임지고 벼를 다 베어주세요.” (웃음)

두 번째 필지로 이동하여 벼를 베는 중에 스님이 사용하던 낫이 고장이 났습니다. 스님은 철사와 뺀치를 이용하여 뚝딱뚝딱 금방 낫을 수리했습니다.


세 번째 필지로 이동하여 모서리를 베고, 네 번째 필지로 이동했습니다. 그 사이 해는 더욱 높이 떠오르고 햇살도 더 강해졌습니다.

“아이고, 갑자기 덥네요.”

스님은 입고 있던 우의를 상의만 걷어 내린 후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모서리를 다 베고 나오는데 동네 어르신이 스님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스님이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해요? 스님은 옷을 곱게 차려입고 절에 편안히 앉아 있어야지.”

“염불만 하고 노는 중이 되면 안 되잖아요. 밥을 먹으려면 밥값을 해야죠.”

어르신은 활짝 웃으며 가던 길을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렁이 농법으로 논농사를 짓는 저수지 밑으로 갔습니다. 역시 모서리를 반듯하게 베어내었습니다.


스님은 벼를 베면서 이삭 줍기가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이삭 줍기가 무엇인지 알아요? 옛날 가난한 시절에는 추수를 다 한 뒤에 빈 논을 다니면서 이삭을 주워서 먹고살았어요. 요즘은 기계로 추수를 하기 때문에 이삭이 더 많이 떨어져 있는데도 아무도 이삭을 줍는 사람이 없죠.” (웃음)

아랫 논을 다 베어내고 윗 논으로 올라갔습니다.

논의 모서리를 베어내는 작업이 모두 끝나자 드디어 콤바인이 논에 들어와서 벼를 수확하기 시작했습니다. 콤바인이 벼를 베고 탈곡하는 일은 순식간에 이뤄졌습니다.


콤바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베어낸 벼가 가지런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아랫 논까지만 제가 벨게요. 윗 논은 향존법사님과 행자님이 좀 마무리해주세요. 저는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이 아랫 밭에서 일하고 있어서 한 시간이라도 같이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마무리는 향존 법사님과 행자님에게 맡기고 스님은 산 아랫 밭으로 향했습니다. 산 아랫 밭에서는 평화재단 통일의병들이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까지 겨울 채소를 열심히 심고 있습니다.

“많이 심었어요?”

“네, 어제 두 두둑을 다 심었고, 오늘도 두 두둑을 다 심었습니다.”

스님도 통일의병들이 일하고 있는 무리 속으로 들어가 함께 채소를 심었습니다.

두둑의 양쪽에서 양파 모종을 동시에 심어나가고, 모종이 심어진 자리에는 뒤이어 흙을 덮어 나갔습니다. 한 사람은 양동이에 흙을 계속 퍼 나르는 일을 해주었습니다.

빠른 손놀림으로 모종을 아주 잘 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묵묵히 흙을 계속 퍼 날라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필요에 따라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양파 모종 심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스님은 상추마늘을 심었습니다.

“한쪽 구석에는 상추마늘을 좀 심읍시다.”

다들 상추마늘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뿌리를 먹는 게 아니고 잎과 줄기로 상추 쌈장을 만드는데 쓰여요. 마늘장 몰라요? 이 지역에서는 상추쌈을 먹을 때 된장으로 먹지 않고 마늘장으로 먹어요.”

상추마늘은 일반적으로 키우는 육쪽마늘보다 씨앗의 크기가 아주 작았습니다.

“마음 나누기도 해야 하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일을 마칩시다.”

오전 울력을 끝내고 다 같이 잔디밭에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1박 2일 일정으로 스님과 함께 농사 체험도 하고 즉문즉설도 하고 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편안하게 느낀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소감 나누기 중에 스님은 왜 농사일을 하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소감을 다 듣고 나서 스님이 그에 대해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저도 여러분과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 직접 얼굴을 보니까 반가웠고요. 그냥 앉아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일도 하고 산책도 하며 얘기하는 게 더 좋지 않나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위드 코로나로 정책이 바뀌면 이런 자리를 더 자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북 수련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방문하든, 또 정토회 내부 사람도 두북 수련원에 와서 밥을 먹고 가려면, 일단 하루 2시간은 노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일이 있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하듯이 여기서는 매일 2시간은 울력을 합니다. 울력을 하루 종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든 예외 없이 2시간은 울력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기 맡은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도 법문이 있든, 다른 일정이 있든, 일단 아침 2시간은 울력을 하고 있습니다. 강의가 하루에 대여섯 번 있어서 울력을 못 하는 날은 이튿날 하루 종일 울력을 한다든지 하며 살고 있습니다.

통일의병 여러분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내고자 나선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전쟁의 불행이 일어나는 건 막아야 합니다. 신문에서 시리아 난민이나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식을 접하다 보면 마치 우리나라가 6.25 전쟁을 겪을 때가 생각나잖아요. 엄청난 고아들이 외국에 가고 그랬는데 그런 불행이 다시는 이 땅에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입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에 따른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과가 나든 안 나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우리가 한 마음을 내고 같이 활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입니다. 긴급한 상황이 일어나면 생계를 내팽개치고라도 이 일을 해야 되고, 긴급하지 않으면 자기 생활을 영위하면서 이 일을 하는 거예요. 긴급하지 않은 데도 모든 걸 걷어붙이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관점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수행자가 농사일을 하는 이유

여러분들이 일을 하고 나서 ‘내가 일한 대가가 얼마이다’ 하는 것도 정하기 나름이에요. 여기서 농사일을 해보면 제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해봐야 돈으로 계산하면 일당 5만 원밖에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심어 놓은 상추를 하루 종일 따고 씻고 다듬어서 시장에 팔면 10만 원도 받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남의 집에 가서 일해주면 십만 원 정도 받습니다. 그리고 제가 강의를 할 경우 만약 강사료를 받는다면 몇 백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몇 백만 원을 받으면 몇 백만 원이 자기의 재능이고 가치인 줄 잘못 알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숫자 놀음에 불과한 거예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꼭 게을러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요즘에는 돈이 돈을 버는 시대 아닙니까. 노동 가치설이 무색해진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이런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서 주어지는 편안함은 자칫 잘못하면 자기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자연 속에서 생태적으로 살면서 자기가 노력하고 움직여서 자기 먹을 것을 생산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보존하는 길입니다.

TV에서 방영하는 사극을 보면 왕궁에서 물질적으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조건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늘 시기 질투하며 갈등하고 싸우잖아요. 물질적으로 풍요롭더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닙니다. 삶의 관점이 딱 잡혀 있어야 인생이 편안해지지 그렇지 않으면 늘 허상 속에서 살게 됩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게 흙을 만져서 좋은 것도 있지만, 가치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생각을 바뀌게 만드는 점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보존하는 길

만약 제가 절에서 법문만 하거나, 신도들로부터 ‘스님, 스님’ 하는 대접을 받고, 강의를 하러 다니면서 강의료를 받고 산다면, 제 삶은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게 아니라 공중에 뜬 것과 같습니다. 말을 해도 허황되게 하고, 큰소리만 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낫 들고 호미 들고 살면 허황될 수가 없죠. 농촌에 계신 동네 할머니가 저보다 일을 훨씬 더 잘하시거든요. 그렇게 낮은 데서 자신의 삶을 늘 관찰해야 자기가 자기를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남에 의해서 부풀어진 거품처럼 살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살아야 됩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한 명 한 명에게 감 홍시를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들깨를 터는 일을 했습니다. 며칠 전 산 윗 밭에 들깨를 모두 베어내고 햇볕에 말려 두었습니다. 다시 올라가 보니 들깨가 아주 잘 말라 있었습니다.

“내일 기계로 들깨를 털려고 했는데, 마른 걸 보니 기계로 털 양은 아니네요. 대중들에게 올라오라고 해서 우리가 손으로 그냥 텁시다.”

묘당 법사님을 비롯한 농사팀 행자들이 휴식하고 있다가 다시 모였습니다. 펼쳐 둔 들깨를 한 묶음씩 모아서 크게 한번 털고, 다 털고 난 들깨는 한 군데로 모아서 쌓았습니다.

갑바 위에 떨어진 들깨는 갈퀴로 긁어모아서 망사 위에 올리고, 망사를 두 사람이 잡고 흔들어서 들깨를 걸러내었습니다. 하얀 깨가 걸러져서 망사 아래로 꽤 많은 양이 떨어졌습니다. 한 번 걸러진 들깨는 다시 한번 더 망사로 흔들어서 걸러내었습니다. 걸러지지 않은 찌꺼기들은 다시 바짝 말려서 한 번 더 걸러내려고 따로 한 군데에 모아두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깨를 털다 보니 금세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해지기 전에 마무리하려다 보니 손이 더욱 바빠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갑바를 쓱쓱 털어내서 한 톨도 남김없이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수확한 들깨를 모두 모아보니 두 바구니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일을 해서 지칠 법도 한데 스님도 행자님도 다들 웃으면서 깨를 털었습니다.

“내일 할 일을 오늘 했으니까 내일 오후는 모두 휴식하세요.”

해가 지고 저녁 8시 30분부터는 온라인 일요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시작한 온라인 명상 시간이 벌써 81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법문 없이 중간에 포행을 하고 두 타임 명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한 상태에서 명상과 함께 일주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하고, 모든 긴장을 풀고, 관심을 콧구멍 끝에 둡니다. 숨이 들어갈 때 들어가는 줄 알고, 숨이 나올 때는 나오는 줄을 압니다. 몸에서 어떤 통증이 일어나더라도, 바깥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더라도, 졸음이 오더라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더라도, 미래에 이런저런 해야 할 구상이 떠오르더라도,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다만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애쓰거나 긴장하지도 말고, 안 된다고 포기하지도 말고, 편안한 가운데 마음을 콧구멍 끝에 관심을 두고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혹시 관심을 다른 곳에 두어 호흡을 놓쳤더라도 ‘놓쳤구나!’ 하고 다시 호흡을 알아차립니다.”

탁, 탁, 탁!

죽비 소리와 함께 30분 간 명상을 하고, 10분 간 포행을 했습니다.

“10분간 포행 시간입니다. 포행이란 움직이면서 그 동작을 알아차리는 명상입니다. 천천히 일어나고 천천히 걷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일어나는 줄을 알아차리고, 움직일 때는 움직이는 줄 알아차립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한가운데 조급해하거나, 애쓰지 말고, 안 된다고 포기하지도 말고, 자신의 동작을 알아차립니다.”

다시 30분 간 명상을 한 후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해보니 어땠습니까?”

실시간 댓글창에는 수십 개의 소감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망상 속에 헤맸습니다.”
“I was distracted by delusions.

“마음이 차분합니다.”
“I’m feeling calm.”

“다리가 저렸습니다.”
“My legs went numb.”

“포행 후 확실히 몸에 더 집중이 되는 느낌이었습니다.”
“I was able to focus on my body much better after the walking meditation.”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방금 여러분들이 나눠준 얘기들은 직접 명상을 해본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얘기들입니다. 명상을 할 때처럼 일상생활도 나날이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말에 또 뵙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건조장에 가서 나락을 빼고 넣는 작업과 20kg씩 포대 자루에 담는 일을 하고, 오전에는 전법 활동가 법회를 생방송한 후, 오후에는 농산물을 차에 싣고 서울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7

0/200

백승관

뜻밖에 마주친 이 글을 보고 나자신을 볼아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2021-11-15 10:58:49

함경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2021-11-03 22:35:42

조정민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1-11-03 01:11:27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