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10.22 정토대전 회의, 금요 즉문즉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다른 여성과 아기를 가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발우공양을 마친 후 7시 30분부터 정토대전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문경 수련원과 무안 미륵사에서 법사님들도 새벽에 출발해 발우공양을 함께 한 후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내일 벼를 수확하기로 했는데 오늘 모퉁이 부분은 사람이 손으로 미리 벼를 베어 놓아야 해요. 아침에 벼를 베면 옷이 다 젖어서 오후에 울력을 하고, 공부를 먼저 합시다.”

평소와 순서를 바꾸어서 정토대전 공부를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주에 화엄경에 대한 검토를 모두 끝냈기 때문에 오늘은 대승불교의 여러 가지 경전들을 두루 검토했습니다.

법사님들은 관무량수경, 불설아미타경, 무량수경, 승만경에 대해 각자 공부해 와서 발표한 후 어떤 관점에서 정토대전을 편집해야 하는지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수고했어요. 그럼 점심 먹고 오후에는 울력을 합시다.”

점심 식사 후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논으로 나갔습니다. 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 황금 들녘이 바람에 넘실거렸습니다.

정토회에서 경작하는 논은 여러 군데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중 오늘은 800평 논을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콤바인이 들어가는 입구의 벼를 베어야 하고, 모퉁이마다 벼를 미리 베어놓아야 해요. 그래야 내일 콤바인이 모퉁이를 돌 때 알곡 손실이 없어요.”

먼저 콤바인이 들어가는 입구에 벼를 베었습니다. 낫을 든 스님은 빠른 손동작으로 한꺼번에 벼를 세 포기씩 잡고 베었습니다.

“서툰 사람은 벼를 한 포기씩 베는데, 숙련된 농사꾼은 한꺼번에 두세 포기씩 잡고 베어요. 벼를 잡는 법이 다릅니다. 이러면 훨씬 속도가 빨라요.”

순식간에 입구에 있는 벼를 베고, 곧바로 다른 모퉁이로 이동했습니다.



역시 빠른 속도로 썩썩 벼를 베고, 다시 다음 모퉁이로 이동했습니다.


“이 정도 면적만 베어도 되는지, 더 넓게 베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침 옆 논을 보니 벼를 베어낸 면적이 그렇게 크지 않아 보여서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벼 베기 작업을 마쳤습니다.


논을 나가는 길에 가지가 늘어진 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나뭇가지를 친 후 산 아랫밭으로 향했습니다. 산 아랫밭에는 어제 아침에 널어 둔 잡초 매트가 가득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여기를 지나다닐 수 있으니까 잡초 매트부터 먼저 정리합시다.”


스님과 행자님 한 명이 다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비닐하우스에서 울력하고 있던 법사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법사님들이 결합하자 잡초 매트 정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잡초 매트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매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역시 사람이 많으니까 한결 수월하네요. 감사합니다.”

잡초 매트를 모두 정리한 후 생강을 수확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생강을 하나 캐어보니 땅이 너무 질었습니다.

“땅이 너무 질어요. 비닐을 걷어내고 내일 하루 햇볕에 땅을 말린 다음에 수확합시다.”

내일 생강을 수확할 수 있게 비닐만 모두 걷어낸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오후 4시부터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시작했습니다. 10차 천일결사 목표 수정, 백일기도 열 가지 약속 문구 수정, 10-7차 백일기도 입재식 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검토하고 토론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시도별 밴드를 통해 13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이번 주에 갑자기 일어난 한파주의보를 이야기하며 요즘 스님의 하루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0월에 한파주의보가 내리기는 제 평생에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어제 낙동강 상류 지역을 산책했는데 평년 같으면 이때쯤 단풍이 들 시기인데도 산꼭대기부터 아래쪽까지 나뭇잎이 다 푸르렀습니다. 그런데 온도는 영하로 떨어졌어요. 기후변화가 그만큼 심한 것 같습니다. 저도 10월인데 벌써 스웨터 내복을 꺼내 입었습니다. (웃음)

그래도 예전 같았으면 여러분들이 강의장까지 오려면 코트를 꺼내 입고 와야 할 텐데 온라인 강연이라 따뜻한 자기 방에서 들으니까 좋죠? 지금 제가 강의하는 곳은 폐교예요. 폐교의 교실을 이용해서 스튜디오를 꾸몄기 때문에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요.”

곧바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첫 번째 질문자는 굉장히 딱한 사정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아들을 낳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수십 번 했지만 실패한 가운데, 어느 날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아기가 생겼다며 어떡하면 좋을지 막막해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다른 여성과 아기를 가졌습니다

“저는 남편과 동갑인 부부이고, 딸을 하나 두고 있습니다. 남편은 장남이고 시아버지가 아들을 너무 원하셔서 제가 시험관 인공수정을 수십 번 했습니다. 그래도 아기가 안 생기자 산부인과에서 더 이상 하게 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고 해서 포기한 지 3년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아이를 가졌습니다. 딸이면 아기를 지우고, 아들이면 낳아서 키우는 조건으로 2년 동안 바람을 피웠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너무 힘들고 괴롭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댁에서는 잔치 분위기입니다. 게다가 상대 여자는 아기를 낳으면 첩으로 살겠다고 합니다. 저는 아기를 데려오면 얼마든지 사랑과 정성으로 키울 의향은 있는데 첩으로 지내면서 두 집 살림을 하겠다고 하니까 정말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남편이 너무 가정적이고 그동안 잘해 왔기에 바람을 피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해서 배신감도 엄청나게 큽니다. 과연 아들이 뭔지, 대를 잇는다는 게 뭔지, 왜 딸은 남의 자식이고 꼭 아들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지 답답합니다. 이 와중에도 시어머니는 아기가 잘 크는 지에 대해서만 궁금해하고, 고통 속에 있는 저는 아무도 걱정을 안 해주고 있습니다.”

“아기를 낳았어요? 안 낳았어요?”

“딸인지 아들인지도 아직까지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자기가 선택을 하면 되잖아요. 남편이 약속을 어기고 혼인관계를 파괴했으니 충분한 이혼사유가 됩니다. 그러니 이혼을 신청해서 적절한 재산분배를 해서 따로 사는 수밖에 없어요. 이미 그렇게 된 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만약 남편이 상대 여성과 결혼을 약속했다고 하면 이것은 중혼에 해당이 되기 때문에 아마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저는 가정을 지키고 싶어요. 이혼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남편도 가정은 지키겠다고 합니다.”

“남편이 좀 이상한 사람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남자가 좋다면 중혼을 인정하고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괴로워하면 안 돼요. 괴로워한다는 것은 욕심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아무리 남자가 좋고 돈이 많아도 나는 이런 식으로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교통정리를 해야죠.

그런데 남편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아들을 너무 원하는 시부모와의 관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상대 여성분이 원하는 것을 드리고 입양을 한 후 관계는 정리하겠다는 약속을 남편에게 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은 남편도 동의하고, 상대 여성분도 동의를 해야 됩니다. 상대 여성분이 동의하지 않는데 애기를 데려오면 범법 행위가 돼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다 자기가 낳은 아기를 키울 권리가 있고, 아이도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 여성분이 입양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의논해서 처리해야 됩니다. 그것이 합의되지 않는다면 두 집 살림을 사는 것에 대해 질문자가 눈 감고 받아들여야 해요.

너무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마세요. 인생을 살다 보면 남편이 죽어도 사는데 이왕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어떻게 할지는 자기가 선택을 하면 됩니다. 이 상황에서도 남편과 계속 같이 살 것인지, 같이 사는 경우에도 이런저런 방식이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살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해요. 혼자서 끙끙 앓고만 있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지금은 이것이 아주 큰 문제 같지만 세월이 흘러서 나중에 죽을 때가 돼서 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단지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지금 벌어졌을 뿐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하면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미 일어나버렸으니 어쩔 수 없잖아요. 만약 상대 여성분이 아기만 낳아주고 가면 하나의 차선책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려는 여자가 누가 있을까요? 자기라면 그렇게 하겠어요?”

“남편이 양육비랑 생활비를 준다고 하니까 그 여자분은 본인이 아기를 키우려고 해요.”

“그러니 그 여자분을 나무랄 수는 없잖아요.”

“네. 그리고 그 여자분은 이미 자녀가 둘 있습니다.”

“그러면 서로가 잘 합의만 하면 조정이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서로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아기는 질문자가 입양을 하는 대신에 상대 여성분에게 충분한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건 어때요? 애기가 있는 엄마니까 가정을 지키자는 것에 대해 동의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나 이 상황을 괴로워하고 상대를 자꾸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이혼을 해서 그들이 어떻게 살든 알아서 살도록 하고 나는 내 생활을 하는 쪽으로 선택을 하든지, 아니면 그런 관계를 인정하고 함께 살든지요. 그런데 그런 관계를 인정하고 살면 이 문제가 계속 자기에게 고민거리가 될 겁니다. 그러니 그건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에요.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미련을 갖지 말고 질문자가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생겼다고 괴로워하면 자기만 손해예요. 이보다 더한 일이 생기면 이런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게 돼요. 이런 일이 안 생긴 것에 비해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살펴보면 몸을 다친 것도 아니고 재산이 손해난 것도 아니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상대 여성분이 원하는 것을 드린 후 관계를 정리하고 입양을 해오는 길이 있습니다. 둘째,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도 결국 살아가는 것처럼 당장은 그것이 큰 문제 같지만 이혼을 하고 사는 길이 있습니다. 셋째, 상대 여성분이 제안한 대로 중혼을 인정하고 사는 길도 있어요. 이 상황을 모두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사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면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절대 터치를 해서는 안 됩니다.”

“...” (한숨)

“한숨 쉰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아요. 질문자는 어떤 해결책을 원해요? 만약 제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그래 알았다. 이혼을 하고 앞으로는 친구로 지내자’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를 할 겁니다. 서로 싸워서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몇십 년 같이 산 남편의 사정이 그렇다니 이해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대신에 나는 이중생활을 하는 것은 싫으니 이혼을 하고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지내면 되죠.”

“남편은 그 여자랑 절대로 같이 살지는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현혹되는 것 자체가 질문자에게 미련이 있다는 거예요. 아기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양육비를 줘야 한다면 ‘양육비를 보내주는 건 좋다. 그런데 그 여자와 더 이상의 관계는 여기서 끝내라’ 이렇게 말해서 정리를 하도록 하면 되잖아요. 그게 도저히 어렵다고 하면, 그 여자분과 잘 얘기해서 입양을 하고 정리를 하든지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이혼을 하든,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살든, 결정을 내려야죠. 자꾸 양쪽을 다 가지려고 잔머리를 굴리면 자기만 괴로워요.

남편이 평소에 잘 안 했다면 이런 고민은 생기지 않았겠죠 남편이 평소에 잘했으니까 이런 고민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게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남편이 오히려 평소에 잘 안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고민할 것도 없으니 훨씬 나을 겁니다.

그런데 평소에 잘하는 사람이어서 문제가 되는 거예요. 버리려고 하니 아깝고, 가지려고 하니 흠이 있는 겁니다. 쉽게 비유하면, 아주 고급이고 비싼 물건인데 값이 싸게 나와서 봤더니 흠이 있어요. 사려니 흠이 있고, 버리려니 아까운 겁니다. 남편 문제도 아니고, 그 여자 문제도 아니에요. 이런 경우에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내가 결정하면 됩니다. 단지 내가 결정을 못하고 우유부단한 거예요.”

“제가 부부관계가 너무 좋았기에 지금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가정을 버린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지금도 남편은 너무 따뜻하게 잘하고, 예전처럼 똑같이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고민이 돼요?”

“첩을 보고 살아야 하잖아요.”

“첩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양육비를 보내 줄 테니 관계를 정리하라고 하면 되죠. 지금까지 남편을 믿고 살았으면 그걸 믿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그 아이를 보기 위해 그 집에 왕래를 해야 되잖아요.”

“이혼한 사람들도 전처나 전남편을 보러 다니잖아요. 그런 것처럼 왕래하게 하면 되지요.”

“그런데 둘은 2년을 만나면서 서로 사랑을 했다고 해요.”

“두 집 살림을 살 건지, 아이가 생겼으니 양육비만 주고 관계를 정리할 것인지, 남편에게 물어보세요.”

“남편은 아기를 갖기 위한 목적 때문에 그랬지 그 여자와 같이 살지는 않겠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여자에게 가라고 하니 절대 안 간다고 해요.”

“질문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편이 하는 말이니까 그 말을 믿겠지만, 요즘 같은 현대 사회에서 그런 말은 보편적인 합당함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궤변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 아무리 부부관계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너무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남편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용서하고 평생 같이 살 것이다’ 이런 관점이 분명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아들이 필요하다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관계를 맺고 아기를 낳았으니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 그 여자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면서 애기 아빠로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게 필요하다고 하는 걸 어떡해요? 마음을 좀 넓게 가지고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죠.

질문자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정말 사랑한다면 이런 것까지 과감하게 포용해야죠. 그런데 질문자는 내가 바라는 대로 되면 남편을 사랑하지만, 내가 바라는 대로 안 되면 미워하잖아요. 사랑이라는 이름의 장막 뒤에 숨어서 자기를 속일 필요는 없어요. 사랑이라는 생각을 딱 버리고 이해관계로 접근을 하세요.

‘남편이 나한테 지금까지 잘해주었는데, 남편과 앞으로도 계속 같이 살려면 이 정도는 허용을 해 주고 사는 수밖에 없겠다.’

이렇게 딱 결정을 하든지, 아무리 관계가 좋고 그동안 잘해줬다 하더라도 이렇게 이중으로 관계를 맺고 살기는 어렵겠다면 정리를 해야 됩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게 머리를 많이 쓸 일이 아니에요. 이런 일이 있어도 사실은 질문자에게 큰 손실은 없습니다. 그냥 이 상황을 수용해버리면 되니까요.

질문자의 말대로 남편을 정말 사랑한다면, 사랑을 내가 독점할 수는 없으니 80은 내가 갖고 20은 상대에게 주는 거예요. 80만 해도 많이 갖는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이해관계로 빨리 접근을 해서 딱 교통정리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꾸 사랑이니 윤리는 도덕이니 하는 장막 뒤에 숨으면 인생이 괴로워집니다. 이럴 때는 재빨리 이해관계로 접근해야 합니다.

‘내가 100을 가지면 좋겠지만 20을 버린다고 해도 나한테는 이것이 유리하다’

이렇게 결론을 내려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딱 포용을 하고 같이 살면 됩니다. 남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편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같이 살아도 돼요.

‘당신을 사랑하니까 이해하겠다. 그러니 당신도 이 선까지는 넘지 말고 같이 한번 살아보자. 그런데 만약 당신이 이 선을 넘으면 그때 가서는 당신과 정리를 하겠다.’

제 말의 요점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가 볼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겠지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관점을 딱 가지면 훨씬 마음이 편해집니다.”

“감사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에게도 발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혹시 소감이나 할 얘기가 있으신 분은 얘기해보세요.”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질문자를 위해 한 마디를 해주었습니다.

“저도 결혼 6년 차인데 아기가 없기 때문에 질문자 분의 사연을 듣고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매우 힘드실 것 같지만 결국 어떻게 살 건지는 본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저라면 당당하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제가 떠날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시면 좋겠어요. 저는 법륜 스님을 만나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는데, 질문자 분도 법륜 스님의 행복학교에 입학하셔서 마음을 치유한 후 다른 쪽으로도 관심을 가져보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요.”

실시간 댓글창에도 질문자를 격려하거나 자신의 경험담, 생각을 나눠주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본인의 뜻을 강요하고 쉼 없이 남과 비교하는 부모님과 연을 끊었습니다. 부모님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지, 나에게 적용해야 할 법문을 남에게 적용하는 우를 범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 이혼한 부모님을 합치게 하고 저축한 돈으로 집을 사드리며 평범한 가정처럼 제발 조용히 사시길 부탁드렸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계속 저에게 의지하고 부담을 줍니다. 부모님과 거리를 두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 33살 창업 준비생입니다.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자신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연애도 못하고, 다음 직장도 못 잡고, 이런 일상의 반복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상황이 나를 옭아매는 것도 있겠지만, 관점만 바꾸면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탁 받아들이면 전혀 문제가 안 되어버려요.

어떤 조건에 놓여도 행복한 삶

방금 질문자의 경우,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 인공수정을 해도 아기를 낳을 수가 없었는데 남편이 어디 가서 애기를 하나 낳아 왔다고 하니 공짜로 얻은 거잖아요. 내가 낳아서 키우려면 엄청나게 힘이 들 텐데, 누군가가 대신 낳아서 키워 주겠다고 하니 얼마나 좋아요. 내가 데리고 와서 키우려면 유모를 써야 하니 돈이 들고, 또 대리모를 통해서 아기를 가지려면 수 천만 원이 들 겁니다. 그런데 생모가 키워주니 아기도 잘 키워 줄 거잖아요. 이렇게 생각을 탁 바꿔버리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까지 말을 안 한 것은 잘못하면 질문자가 상처를 입을까 싶어서 그랬어요. 그러나 해탈은 바로 이런 거예요. 아무리 좋은 남편이라도 이런 복잡한 관계를 맺고는 살고 싶지 않다면 산뜻하게 정리를 하면 되고, 만약 남편에게 미련이 남는다면 이렇게 탁 돌이키는 겁니다.

‘좋아. 애기 하나 생겼네. 거기에 생모가 와서 키워주기까지 한다니 완전히 횡재한 거네.’

이렇게 관점을 딱 바꾸면 곧바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정말 도(道)를 찾는다고 하면 이렇게 탁 넘어버려야 세상에 걸림이 없어집니다. 처음에는 약간 괴로워하다가도 금방 딱 생각을 돌이켜서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전환해서 행복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질문자가 받아들이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아서 자기 이익을 챙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정도로 말씀을 드린 겁니다. 경제적으로 손해난 것도 아니고, 신체적으로 부상당한 것도 아닌데, 큰 문제가 아니라고 슬쩍 얘기해보니 질문자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얘기를 하니까 저도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수행이라는 것은 상대 여성분과 같이 살아도 아무런 괴로움이 없는 겁니다. 같이 안 살려면 싹 정리하고 미련을 가지면 안 됩니다. ‘천금을 준다 해도 나는 이런 관계는 싫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자기 주관이 있어야 해요.

지금은 괴롭다고 하지만 눈 감을 때 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대학에 떨어져서 재수를 했다, 애인과 헤어져서 가슴앓이를 했다, 이런 일들이 그때는 죽을 것 같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조그마한 해프닝에 불과하잖아요. 이렇게 딱 사물을 관통해서 볼 수 있어야 어떤 조건에 놓여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은 인간의 괴로움을 소재로 해서 법문을 하는 것이지 인생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관점에서 스님이 어느 쪽으로 조언할까 궁금해하는데,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혼을 해도 행복한 길이 어떤 길이고, 이혼을 안 해도 행복한 길이 어떤 길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문즉설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내가 괴로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즉문즉설을 인생 상담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인생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각자 알아서 사는 것이지 왜 스님이 남의 인생에 간섭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괴롭다고 하니 ‘이렇게 하면 괴로움을 좀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뜻에서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오전에는 경전대학 학생들을 위해 즉문즉설을 하고, 오후에는 행복학교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 특강을 하고, 저녁에는 평화재단 통일의병과 함께 즉문즉설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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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82

0/200

이민정

현명한 선택을 내리셨으면 좋겠습니다..인생 한번뿐이고 그 인생은 나를 소중히 할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2021-11-24 11:14:17

만행화

시댁도 이상하고
남편도 이상해요
그런아들 낳아본들 ....
아이고 생각만해도 짜증나네요

2021-11-14 16:03:57

하..남편 더러워요

2021-11-13 23: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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