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01.6. 인도성지순례 4일째 (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식)
"구걸하던 아이들이 이렇게 멋지게 자랐습니다"

7오늘은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하셨던 발자취를 따라 둥게스와리 전정각산으로 향합니다. 전정각산 아래에는 불가촉천민을 위해 JTS가 설립한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습니다. 오늘은 수자타아카데미 26주년 개교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새벽 5시,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가운데 스님과 A팀 순례자들은 쁘락보디홀에서 예불을 드렸습니다. 예불 후에 스님은 이와 같이 축원했습니다.

“저희 순례자들은 부처님께서 6년 수행정진하신 전정각산 아래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하여 부처님 6년 고행을 생각하고 부처님께서 수행 정진한 곳을 둘러보며 저희 또한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발원하옵니다.

오늘 이 전정각산 아래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을 위하여 수자타아카데미를 개교한 이래 26년이 지났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와 지바카 병원 개원을 기념하며 마을 주민들을 초청하여 수자타아카데미 아이들이 갖가지 재주를 선보일 것이니 이 수자타 아카데미가 가난한 천민마을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미래의 희망이 되게 하여지이다.”

이어서 108배와 명상을 하고 전정각산에 오르기 위해 바로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스님은 어제 바라나시에서 수자타아카데미까지 16시간 동안 차를 타고 온 A팀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제 고생했죠? 태어나고 차를 제일 오래 탔을 거예요. 여러분이 어제 연습한 결과로 오늘 오는 팀은 빨리 올 거예요. 그러고 보면 실패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실패를 딛고 뒷 사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제 도착해서 전정각산에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어제 늦은 밤에 도착했기 때문에 지금 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저하고 같이 가려고 그렇게 늦게 왔나 봐요. 이렇게 매사 좋게 생각하는 거예요.”(모두 박수)

학교 교문을 나서고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돌무더기 앞에서 멈췄습니다. 지금은 돌무더기지만 어느 가난한 여인이 죽기 전 자신이 입었던 분소의를 부처님에게 드릴 수 있기를 발원한 곳을 기념하여 탑을 세운 자리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돌무더기에서 불을 피워 추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탑을 바라보며 반야심경을 독송한 후 전정각산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6시가 넘자 어둠이 점차 스러졌습니다. 이른 아침에도 전정각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구걸하러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0여분을 올라 너른 터에 자리를 깔고 스님에게 전정각산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곳에서 6년 고행을 하신 후, 고행의 무익함을 아시고 이 산 길을 따라 하산하셨어요 그리고 네이란자라 강에서 목욕을 하시고 강을 건너서 마지막 정진을 하시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곳은 보드가야지만 그건 잠깐이에요. 6년을 보낸 곳은 여기입니다.

저 산에 올라가면 봉우리마다 다 탑이 있습니다. 여기서 왼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부처님이 드셨던 샘물도 있어요. 부처님이 고행하셨다는 동굴도 있습니다. 전정각산에는 부처님께서 6년 고행하셨을 때의 흔적이 아주 많이 남아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고생하시던 당시의 상황도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부처님이 6년 간 고행한 곳, 전정각산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기 전 6년 동안 극심한 고행을 행하셨어요. 어깨에 먼지가 앉고 때가 껴서 이끼가 자랐다고 합니다. 이끼가 자라니까 벌레가 생기고, 또 그 벌레를 먹으려고 새가 와서 쪼아댈 정도였다고 해요.

경전에는 천민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정진하는 고타마의 모습을 보고 저 사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시험하려고 흙덩이를 고타마에게 던집니다. 그러나 고타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거 봐, 죽었잖아.’
‘안 죽었다니까. 저 눈 좀 봐!’

그러다가 한 아이는 진짜로 죽었는지 시험한답시고 심지어 나무 꼬챙이를 귀에 넣고 돌로 쳤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그 통증을 지긋이 감내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에 나옵니다. 이렇게 결심을 하고 정진에 매진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번뇌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숲 속에서 정진하다가 죽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전에서는 이러한 번뇌를 마왕의 유혹으로 표현합니다.

‘고타마여, 당신이 이렇게 정진하다가 숲 속에서 죽어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 당신이 고행을 포기하고 신들에게 제사를 지낸다면 전 인도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의 자리가 당신에게 열려 있다.’

이렇게 마왕이 고타마에게 속삭이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런 건 모두 내면의 번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전에는 부처님이 번민을 했다고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까 마왕의 유혹을 빌려서 번뇌를 표현한 겁니다.

경전을 보면 이러한 번뇌가 여러 번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런 번뇌가 있을 때마다 부처님은 단호하게 결심을 합니다.

‘내가 너에게 항복할 것 같으냐? 내가 이곳에서 죽었으면 죽었지, 항복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번뇌를 물리치고 정진을 계속하는 장면이 경전에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경전에서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설명을 마친 후 스님은 실제 경전 속에서는 이 모습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살펴보자며 경전을 펼쳐 들었습니다. 순례객 모두 다 함께 전정각산을 마주 보고 앉아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경전에는 부처님의 수행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아서 그 때의 정황을 머릿속으로도 아주 선명히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이곳에서 극도의 고행을 행했던 부처님의 정진을 되새겨보며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 앉은 이 자리에서도 부처님께서 거닐었거나 정진을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명상을 마치고 전정각산 능선에 올랐습니다. 몸이 힘든 분은 바로 유영굴을 참배하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순례자가 스님을 따랐습니다.

전정각산을 내려와 아침 식사 후 8시 30분부터는 인도 JTS에서 봉사하시다가 무장괴한의 침입으로 돌아가신 설성봉 거사님 추모식을 열었습니다.

추모식을 하는 동안에 학교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부다가야의 외국절 스님들과 이 지역 내빈들이 26주년 개교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학교 옆 두르가푸르와 자그디스푸르 마을에서 주민들도 초청했습니다. 총 2200여 명이 모인 큰 행사였습니다. 

요란한 축하 음악과 함께 기념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을 위해 오랫동한 준비한 학생들의 공연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먼저 유치원생들이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보기만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데 곰 세 마리에 맞춰 앙증맞은 춤을 보여주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여학생, 중학교 남학생들이 각각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무대 아래 사람들은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평소에 갈고 닦은 태권도 실력도 뽐냈습니다. 야무지게 팔을 내지르고 시원한 발차기로 돌을 격파했습니다. 아이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한국인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을 태권도로 때려눕히는 공연도 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개교기념식에는 매년 마을 주민들도 공연을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두르가푸르, 자그디스푸르 마을 청년들이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춤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을 청년들은 수자타아카데미 졸업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참 신나게 공연을 즐기고 스님께서 축사를 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아이들이 손으로 휘파람를 불고 박수를 칩니다.

“오늘은 수자타 아카데미 26주년 개교기념식입니다. 오늘 개교기념식에서 아이들이 아주 예쁘게 춤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이 아주 힘차게 춤을 추고 놀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와서 멋진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지난 26년 동안 학교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둥게스와리 주위 14개 유치원에 천 여명이 다니고 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와 까나홀 분교에서 6백여 명의 초등학생이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또 중학생들이 다니고 있고요. 이렇게 오늘의 수자타아카데미가 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자타 아카데미를 오랫동안 지원해 주셨던 미얀마 스님, 학교를 세울 당시 땅을 보시하였던 이곳의 가난하고 헐벗은 동네사람들, 학교에서 자원봉사했던 인도인과 한국인들 하나하나 소개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에 의해서 수자타 아카데미는 운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계속 잘 운영해나가겠습니다. 학생 여러분, 공부 열심히 하세요.”

“네!”

“마을 주민 여러분들, 계속 아이들을 학교에 잘 보내주시고 후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음식을 마련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식사 하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박수)

지역 의회 의원도 참석하여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구걸하던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켜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인도 사람들도 하지 못한 일들을 먼 타국에서 오셔서 해주셨습니다. 어떤 말로 감사의 말을 전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바로 희망입니다.”

마지막 공연은 매년 같은 공연입니다. 수자타아카데미의 시작과 현재를 표현하는 춤입니다. 1993년, 구걸하던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변화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공연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공연 끝에 아이들이 법륜스님과 여러 귀빈들을 모시고 무대 위로 올라와서 꽃목걸이를 걸어주었습니다. 오늘 공연했던 모든 아이들이 올라와 손을 흔들며 개교기념식이 끝났습니다.

개교기념식이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 학교 마당에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 중학생들이 배식을 돕고 뒷정리를 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은 도시락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멋진 공연을 보여준 마을 청년들과 땅을 기부해주신 분들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학교를 처음 열 때 심었던 보리수는 큰 나무가 되어 학생들의 그늘이 되었고, 학교 선생님들의 자식들은 선생님들이 처음 학교에 왔을 때 보다 더 컸습니다.

이렇게 개교기념식을 하는 사이 B팀은 새벽 4시에 사르나트에서 출발해 수자타아카데미로 오고 있었습니다.

오는 길에 있는 찬돌리 다리가 끊어져 평소 다니던 길을 돌아가야했습니다. 어제 A팀은 길을 찾아가며 다니느라 16시간이 걸렸는데, A팀이 잘못간 길을 피해 B팀은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B팀이 수자타 아카데미에 도착하자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꽃목걸이를 손에 들고 길 양 옆으로 서서 뜨겁게 환영해주었습니다.

학생들은 순례단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준 후 손을 잡고 수자타 아카데미 교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구걸하던 아이들이 교복을 차려입고 활짝 웃으며 순례단을 반갑게 환영해주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장에는 짜이와 인도 과자도 준비해주었습니다. 상급생들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짜이를 따라주었습니다.

곧이어 운동장에서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의 환영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환영공연은 개교기념식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환영공연을 본 후 스님은 B팀과 함께 다시 전정각산에 올랐습니다. A팀은 둥게스와리의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어제 오신 분들이 하도 고생을 해서 어디로 가면 막히고, 어디로 가면 안 막히는지를 다 알려줘서 여러분은 오늘 일찍 오게 되었습니다. 앞 팀의 실패를 딛고 한 발 더 나아가게 됐습니다. 그래서 꼭 내가 성공을 해야하는 게 아니예요. 내가 실패했다하더라도 그 경험이 후손에게 전달이 돼서 거기서 앞으로 나아가면 결과적으로 나도 성공한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를 함께 봐야 하니까요.”

전정각산을 다녀온 후 조별로 밥을 지어먹었습니다. 매일 먹는 밑반찬에 수자타아카데미 활동가들이 따뜻한 된장국을 준비해주어 저녁이 풍성했습니다. 저녁예불 후에는 병원 2층 컬쳐홀에 모여 인도 JTS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먼저 인도 JTS의 역사를 영상으로 만나보았습니다. 이어서 인도 JTS를 운영하는 인도인과 한국인 활동가를 소개했습니다.

“여태껏 한국인들이 주로 책임을 지고 인도인들은 지원했는데 3-4년 전부터 인도인들이 팀장을 맡고 한국인들이 지원하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처음 팀장이 됐을 때 스님께서 인도인들에게 노트북을 선물했어요. (모두 박수) 그 말은 노트북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봤다는 이야기잖아요. 이제는 PPT까지도 한국인보다 잘 만들 정도입니다.”

학교, 병원, 마을개발, 건축, 재정 담당자를 차례로 소개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인도 JTS의 살아있는 역사였습니다.

“유치원 책임자 아짓지입니다. 유치원 때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이제 유치원 전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책임자 아자이지입니다. 스님께서 매일 학교에 오면 사탕을 주겠다고 해서 그 때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학교에 왔다고 합니다.”
“정동표 거사님은 여러분과 같이 성지순례에 왔다가 아내에게 3년만 봉사하겠다고 허락 맡고 인도에 와서 4년 반이 지났습니다. 내년에는 아내도 퇴직하고 와서 부부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도 퇴직하고 다 오세요.”

활동가 한 명 한 명이 소개될 때 마다 박수소리가 쩌렁쩌렁했습니다. 둥게스와리에는 15개 마을에 만천 여명이 살고 있고, 불가촉천민이 80%입니다. 이 곳에서 어떤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부문별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순례자들은 법륜스님께 정리말씀을 청했습니다.

“특별히 정리할 말은 없고요. 누구든지 질문할 게 있으면 질문해보세요”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내었습니다. 모두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감동적이었던 두가지 질문과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뱃사공에게 왜 부처님은 법을 설하지 않으셨을까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바라나시로 가는 길에 뱃사공을 만났는데 법을 청하지 않아서 법을 알려주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법을 알려줬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깨닫기 어렵기 때문에 안 가르쳐 주신 건가요?”

“부처님께서는 법을 구하는 사람이 물을 때만 법을 설하셨습니다. 법에 대해 묻지 않을 때는 법을 설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대상이 부자냐, 가난한 사람이냐와 관계된 문제가 아닙니다.

법(法)이라는 것은 스스로 구할 때만 얻을 수가 있어요. 법을 묻지도 않았는데 가르쳐준다면, 실제로 전달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지식입니다. 법에 대한 개념을 질문자가 잘 몰라서 그래요.”

“제 생각에는 너무 가난한 상황에 처해있거나, 살아가는데 매몰되어 있으면 법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법을 구하기가 힘이 들 것 같아요.”

“네, 아무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법을 접하는 시기가 늦어집니다. 그런데 그건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돈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사람들도 법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제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때는 제가 어떤 마음으로 불법(佛法)을 전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도와주면 됩니다. 상대방이 밥을 원하면 밥을 주고, 물을 원하면 물을 주는 거예요.”

“네, 잘 알겠습니다.”

“법(法)은 가난하기 때문에 접하기 쉽거나, 가난하기 때문에 접하기 어려운 게 아닙니다. 법은 원하는 사람만 구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법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에요. 경전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 중에도 부처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행복해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주 많이 나옵니다. 그들은 법을 구했기 때문에 접할 수 있었던 거예요.

여기서 ‘구한다’는 의미는 진리를 구한다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에요. 예를 들자면 아기가 죽어서 괴로운 여인은 부처님을 찾아와서 그 괴로움을 하소연을 했다는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예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자식 때문에 힘이 듭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곧 법을 구하는 자세이지,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 게 법을 구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진리가 뭐냐고 묻는 사람은 법에 대해서 이해를 잘 못하는 거예요. 자기가 괴로움이 있을 때 그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스스로 구할 때 법의 문이 열립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법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불교대학을 다니면서도 열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불교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있는 것이지,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성제, 팔정도를 아는 것이 법을 아는 게 아닙니다. ‘고뇌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관점을 가질 때만 거기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열립니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법을 아는 게 아닙니다. 배고픈 아이들에게는 밥을 주고, 지식이 필요하니까 지식을 가르쳐주고,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보살핌을 주는 것이지, 그것이 곧 법은 아닙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전보다 더 행복해졌는지 여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옆에서 보기에 웃으면서 다니고, 옷도 전보다 잘 입고 다니니까 행복해 보일 뿐이죠. 실제 내면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더 행복한지,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가 더 행복한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가르쳐보면 유치원에 다니거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가르쳐줘도 고맙다는 인사를 할 줄 모릅니다. 가르쳐줘도 그만이고, 안 가르쳐줘도 그만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사탕을 준다고 하면 사탕을 먹으러 오는 것이지, 가르쳐주는 게 고마워서 오는 건 아닙니다.

마을 주민들도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건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쌀이나 옷을 주는 걸 고마워하지,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걸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을 집에 데려가서 일을 시키려고 학교에 찾아오는 부모들이 많았죠.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중학교에 가고 싶으니 도와 달라’ 이런 요구가 생깁니다. 그때 도와주지 않으면 좀 섭섭해 합니다. 마음속에서 미워져요. 그러다가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합니다. 이 때 도와주지 않으면 원망이 생깁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합니다. 이 때 도와주지 않으면 욕을 합니다. 이렇게 원수가 되기 쉽습니다.

‘스님이 저 사람들을 도와주니까 저 사람들은 스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키우면 키울수록 원수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모두 웃음)

아예 도와주지 않으면 원수 될 일이 없는데, 계속 도와주면 원수가 되기 쉬운 거예요. 사람의 심리를 살펴보면 그건 당연한 겁니다.

‘원수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를 시키는 게 낫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 원수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공부를 시키는 거예요. ‘공부시키면 나중에 인사를 하겠지’ 이렇게 생각해서 공부를 시킨다면 그건 어리석은 행위예요.

공부하는 것과 불법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많이 배워서 더 괴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을 한 번 보세요. 한국 사람들은 지식도 많고 수입도 많은데 왜 그렇게 괴롭겠어요. 바로 불법에 무지하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많지만, 마음의 이치나 법에는 무지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거예요. 배우는 지식과 불법을 같다고 생각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여기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부처님의 법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이 동네에 오지 않았다면 이 동네 사람들과 원수가 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 공부를 시키면 시킬수록 원수가 더 많이 생기지, 그 반대는 아니에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도와주지 않으면 나쁜 마음을 품고 나중에 해코지를 할 수도 있어요. 해코지하는 능력이 생겼기에 해코지를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대개 이런 일을 하고 인사를 들으려고 하기 때문에 늘 인생이 괴로운 겁니다. ‘내가 이렇게 가르쳐줬으니까 저 아이들은 고맙게 생각하겠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어리석은 자, 법을 모르는 자가 하는 생각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지 않으면 ‘내 보따리 내놔’라고 할 일이 아예 없는데, 건져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법이라는 건 뭘까요? ‘내 보따리 내 놔’라고 해서 보따리 값을 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물에 빠진 사람은 건지는 겁니다. 이런 걸 법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결혼을 할 때는 부부지간에 원수가 될 각오를 해야 하는 거예요. 결혼을 하지 않으면 남편이나 아내와 원수가 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했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거예요. 사랑을 했기 때문에 원수가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내가 너를 사랑했는데 어떻게 너는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괴로운 거예요. 이런 결과가 빚어지는 이유는 법에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심리가 작동하는 이치에 무지하기 때문에 인생살이가 피곤한 겁니다.”

“그런 무지에서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깨어나려면 불법(佛法)을 배워야죠. (모두 웃음)

여기에서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부처님의 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는 게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덕과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에 공덕이 있다면 그렇다는 말씀이에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에 공덕이 없다면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만약 공덕이 있다면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는 것의 공덕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병에 걸렸을 때 치료하는 것이 공덕이 있다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에도 그와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입니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JTS도 세 가지를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은 치료 받아야 합니다.
아이는 제때 배워야 합니다.

경전에 보면 이와 같은 것이 네 가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첫째, 배고픈 이에게 먹을 걸 주는 것, 둘째,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 셋째, 가난한 자를 돕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는 것, 넷째, 청정하게 수행하는 자를 외호하는 것, 이 네 가지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덕과 같다고 경전에 나옵니다. 이 중에서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니까 네 번째 수행자에 대한 것을 빼고 나머지 세 가지 내용을 모토로 삼은 거예요. 가난하면 아이를 가르칠 수 없으니까 ‘아이는 제때 배워야 합니다’라는 내용을 넣은 겁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북한 사람들을 왜 도와 주느냐’라고 묻는데, 부처님의 법이 여러분의 생각과 늘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상대방이 원수든, 종교가 다른 사람이든, 어제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이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병들면 치료받아야 해요.

수자타 아카데미에도 이 동네 사람 중 한 명이 무장한 갱단과 함께 총을 들고 학교에 쳐들어와서 그 때문에 봉사자 한 명이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까 동네 사람 중 한 사람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서 그 사람은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데, 그 사람 집은 가장이 감옥에까지 들어갔으니 살림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 집에서 두 아이가 수자타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봉사자 한 분이 돌아가셨으니, 사람 감정만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 집 아이들을 계속 학교에 다니게 하기가 어렵죠. 그렇지만 그건 세속적인 생각입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아버지가 한 일이지, 아이들은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제때 배워야 합니다. 어느 집 자식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법입니다.”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 구제할 수 있을까요

“순례를 다니면서 성지에서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난하고 배고픈 자, 병든 자를 도우라고 하셨는데 도우려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어디까지 어떻게 도와야할까요?”

“그건 질문자 스스로 연구해서 답을 찾아야죠. 저도 성지순례에 와서 가장 고민했던 것이 ‘구걸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느냐는 생각이 화두가 되어서 성지가 눈에 안 들어왔어요. 제가 캘커타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난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분유를 사달라는 것을 외면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반성해서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돈이며 옷가지를 모두 나누어줬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가는 곳마다 뒤에 수십 명씩 따라다녀서 같이 가는 사람들이 ‘당신 때문에 여행도 못하겠소’라고 불평을 할 정도였습니다. (모두 웃음)

그러다 어느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휴게소에 들렀는데, 아이들이 보이기에 뭔가 주려고 불렀더니 모두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때 번쩍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아이들이 가난해서 거지가 된 게 아니라 누군가가 줬기 때문에 거지가 된 것이구나.’

시골은 더 가난한데도 아무도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거지가 된 아이들이 한 명도 없는 거예요. 도시나 관광지에 거지가 많은 건 사람들이 주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자꾸 줘서 아이들을 거지로 만들었구나. 나의 값싼 자비심이 아이들을 거지로 만들었구나.’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아무것도 안 줬습니다. 아무리 달라고 해도 안 주고 버텼어요. (모두 웃음)

그러다가 우리가 내일 가게 될 수자타 공양터가 있는 마을에 가게 되었는데, 한 아이가 다리를 못 쓰고 양손으로 엉덩이를 끌고 다니면서 ‘박시시, 박시시’라고 했습니다. 논두렁길을 1km도 넘게 따라오는 거예요. 그때 제가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주지 않는 것이 바른 길인가?’

그래서 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가 제겐 아주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내가 안 주려는 건 내 문제니까 주는 마음만 내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준다고 해서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는가를 생각해보면 해결되지 않는 거예요. 그런 고민을 하다가 이 동네에 와서 찾게 된 길이 바로 수자타 아카데미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안 주는 내 마음은 반성해서 주되, 거지가 되지 않도록 줘야겠다. 그 아이가 자립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주는 방법이 무엇일까?’

수자타 아카데미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번뇌가 생긴다면 그건 질문자가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질문자는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서, 벌써 ‘인도의 모든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 도와줄 수 있을까’ 이 생각부터 하는 건데, 그게 욕심이에요.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도와줄 생각부터 하지 말고, 우선 하나라도 책임을 확실히 져보는 게 필요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어떻게 배출되고 있나요? 공인 자격증을 취득했나요?”
“저는 유아교육을 40년 했어요. 유치원 다닐 때 모든 것이 형성되는 시기인데 어떻게 중학생이 유치원생을 가르칠 수 있는지 염려됩니다.”
“이제 인도인들이 팀장을 맡는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인도인들이 완전히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실 것 같은데요. 인도 JTS에 대해 어떤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이 졸업하고 JTS에서 배운대로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를 만드는 주역이 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스님은 성지순례객들에게 화두를 던졌습니다.

나의 재능을 어디에 쓸 것인가

“여러분은 성지순례를 온 것이긴 하지만, 이곳 마을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보셨을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반성을 조금 하셔야 합니다. 첫째,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도 다 잘 살아가는데, 한국에서 잘 먹고 잘 살면서 아직도 경제문제로 어렵다고 느낀다면 그건 정신적인 문제이지, 실제로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선 이 결론이 확실히 나야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둘째,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걸 계속 추구하면 과연 끝이 날까 하는 겁니다. 잘 먹고, 잘 입는 것만으로는 괴로움이 끝이 안 납니다. 결국 여러분들이 가진 재능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깨달았습니다. 제가 학원 선생을 했는데, 당시 서울대 가려는 아이들만 고액으로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가진 재능을 내가 자란 시골 사람들을 위해 쓰지 않고 부잣집 아이들을 위해서 쓰고 있구나.’

돈을 버는 재미도 있었고, 재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결국 제가 가진 재능을 부자들을 위해 쓰며 그들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생각이 들자 학원 선생을 그만두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넘어서서 여러분이 가진 재능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재능을 돈으로 바꿔서 그렇게 번 돈으로 큰 집을 산다면, 자기의 재능을 평생 큰 집을 사는 데 쓰게 되는 겁니다. 자기의 재능을 평생 옷을 사는 데 쓸 수도 있겠죠. 결국 자기 삶의 방향을 어떻게 정하느냐의 문제예요. 집을 사거나 물건을 사는 데 재능을 쓴다면 결국 시간이 흐른 뒤 되돌아보면 인생을 낭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계를 굴리듯이 여러분들의 몸과 재능을 굴려서 도대체 무엇과 바꾸고 있습니까? 자기 개인의 이익을 조금만 넘어서서 생각해보시면 좋겠어요. JTS는 여러분이 내는 작은 돈과 봉사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서 인도에 있는 가난한 마을을 살기 좋게 만드는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중학생이 자기 공부도 하지만 벌써 유치원을 가르치면서 봉사를 하고, 고등학생도 초등학생을 가르치면서 봉사를 하고, 대학생은 중학생을 가르치면서 봉사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동네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문맹을 퇴치했습니까? 이 가난한 동네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이건 돈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건물을 짓는 비용을 제외하면 운영 경비에는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운영 경비로 들어가는 돈은 그에 비해 아주 작은 돈입니다.

이것은 모두 작은 힘들을 조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현재의 삶을 영위해 가더라도 이런 면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고, 자기가 버는 돈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보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자선을 넘어서서 여러분의 삶이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는가 하는 문제예요. 그리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능도 기부를 해야 합니다.

은퇴를 하고 나면 퇴직금만으로도 살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 돈에 대한 생각은 이제 끊으세요. 60대 중반에 은퇴하면 80세까지 10년 넘게 더 일할 수 있습니다. 그 기간을 다시 또 돈을 버는데 쓸래요? (모두 웃음)

그러지 말고 이곳에 와서 자기 재능을 쓰는 건 어떨까요? 꼭 수자타 아카데미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지구 환경을 보존하는 활동에 쓰거나,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전법 활동에 쓰거나, 배고픈 사람을 돕는 일에 쓰는 것도 좋아요. 결국 자기가 가진 기술과 재능을 어디에 쓸 것인가는 자기 삶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까지 내내 자기가 가진 기술과 재능을 돈으로 바꾸는 일밖에 해보지 않았습니다.

첫째, 내가 겪는 괴로움은 꼭 경제적인 이유로 겪는 게 아닙니다. 과연 자기가 겪는 괴로움이 꼭 돈이 없어서, 직장에 문제가 있어서, 배우자를 잘못 만나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번 성지순례를 하면서 무엇보다 이 부분을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선 자기의 삶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둘째, 자기의 재능을 어떻게 쓰고 사는 것이 하루를 살아도 보람 있게 사는 것인지를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자기 삶의 방향을 잘 잡고 살아가는 것이 저는 부처님의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전을 몇 권 읽었느냐, 공(空)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스스로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면

단순히 이 아이들을 돕고 있다는 생각에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주는 모습을 보고, 또 아이들이 맑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를 깨우치는 계기가 된다면, 결국 우리는 이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들로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크게 깨우치는 셈입니다.

여러분을 구경시켜주려고 바라나시에 간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바라나시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한 것은 무언가 깨우치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에요. 바라나시 시내 모습도 보고, 빈민촌의 모습도 보고, 수자타 아카데미에서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도 보면서, 지금까지 가져온 삶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그 변화가 무엇일지는 아직 모릅니다. 여기서 깨우친 바를 바탕으로 여러분이 이곳에 와서 봉사를 하겠다는 결심을 할지, 이곳에서 깨우친 걸 계기로 부부간에 화합을 할지, 아니면 돌아가서 이혼을 할지, 어떤 결론이 날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모두 웃음)

누에가 제 입에서 나온 실로 고치를 짓고 그 속에 갇혀 살 듯이 스스로 만든 굴레에 갇혀 사는 삶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자 하는 것이 성지순례의 목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다니긴 곤란하니까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제가 안내를 하고 다니면서 그런 계기를 마련하는 거예요. 어느 장소에서 깨달음이 올지는 알 수 없어요. 거리에서 용변 보다가 똥을 밟아서 깨닫게 될 수도 있어요. (모두 웃음)

어떤 분은 차에서 내려서 용변을 보라고 하니까 괜히 사람들을 피한다고 200m나 떨어져서 용변을 봤는데, 다 보고 나니까 바로 옆에 인도 남자가 서 있었대요. (모두 웃음) 그래서 제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 보여주고 인도 사람한테 엉덩이 보여주려고 그 멀리까지 갔느냐고 농담을 했습니다.

어떤 계기를 만나 삶의 모순을 깨달을지는 여러분에게 던져진 화두입니다. 사실 가난한 사람 한 명을 돕고, 돕지 않고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생각이 탁 바뀌면 그 사람은 붓다가 됩니다. 한 사람이라도 붓다가 된다면 인류를 위해서 엄청난 일을 한 겁니다. 이번 성지순례가 여러분에게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모두 박수)

질문하고 싶은 사람이 더 있었지만, 내일 순례를 위해서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 예불을 올린 후 수자타 아카데미를 출발해 보드가야까지 걸어서 이동할 예정입니다. 부처님이 전정각산에서 6년간 고행하다가 고행을 멈추고 보드가야까지 걸어갔던 그 길을 따라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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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여

갔던곳을 1년지나 다시 곱씹으며 읽었습니다
눈물이 여전히 납니다
스님이 무엇을 알게 해주시려했는지 알것같아 더 눈물이 납니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행복을 전하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2021-01-09 13:21:32

김은경

제가 가지고있는 무엇을 나눌수 있을까 저를 돌아봅니다
감사합니다

2020-05-02 22:06:22

이선아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반성하고 제가 막연히 생각하던 것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0-03-19 13: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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