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7 인도성지순례 5일째(보드가야)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 성지순례단과 함께 부처님께서 6년 고행을 마치고 목욕을 하다가 쓰러지셨던 네이란자라강을 건너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던 보드가야를 순례했습니다.

부처님이 걸으셨던 바로 그 길을 따라

성지순례단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새벽예불을 드린 후 수자타아카데미 정문 앞에서 보드가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늘부터는 A,B팀 450여명이 함께 순례를 합니다.

아직 사방이 깜깜했습니다. 손전등을 하나씩 들고 줄을 지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고행을 마치고 걸어가신 바로 그 길입니다.

스님은 순례객들에게 조용히, 먼지가 나지 않도록 신발을 끌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아직 마을 사람들이 자고 있을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을을 지날 때마다 수자타아카데미 부속 유치원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마을을 따라서 걷자 모래 사장처럼 보이는 네이란자라 강이 저 멀리 보였습니다.

네이란자라강은 건기라 물이 거의 말랐지만 물이 흐르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신발을 벗고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강을 건넜습니다.

“시원하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야윈 몸으로 여기까지 걸어오기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차가운 물에 몸을 씻었을까요. 이 강 어딘가에서 쓰러지는 부처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강을 건너는 사이 붉은 해가 떠올랐습니다. 네이란자라강을 건너오자 허물어진 탑터가 나타났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바로 부처님께서 쓰러진 곳에 세워진 탑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없었다면 알아보기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논두렁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탑을 바라보며 부처님이 쓰러지셨을 당시와 수자타가 공양을 올린 정황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6년 간의 고행을 마치고 전정각산에서 야윈 몸을 이끌고 출발하셨어요. 우리도 오늘 새벽에 전정각산에서 출발을 했잖아요. 부처님은 시신을 덮었던 분소의(糞掃衣)를 하나 주워서 입으시고, 우리가 온 이 길을 따라 이 강에 이르셨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우리가 처음 강을 만난 지점에서 목욕을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왜 강의 건너편까지 오셨는지가 저는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산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우리가 서있는 쪽이 지대가 낮아서 건기에는 물이 이쪽으로 흐르고, 우기가 되면 반대편까지 다 물에 잠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기에는 백사장까지 다 강물이 차오르니까 강이 바다처럼 넓게 보입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부처님께서 쓰러지셨던 때는 건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건기라고 해도 지금보다 더 늦은 시기는 아니었을 거예요. 지금보다 늦으면 물이 말라버리니까요. 경전에는 부처님께서 강에서 목욕을 하다가 쓰러지셔서 물에 떠내려갔다고 하니까 물의 양이 지금 우리가 건넌 물 정도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많아야겠죠. 방금 우리가 건너온 물의 양 정도는 사람이 떠내려갈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러니 그보다 조금 더 물이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 강가에 이르러 분소의를 빨아서 강변에 널어놓고 목욕을 하셨는데, 워낙 허기가 져서 기운이 없다 보니 그만 물에 빠져 떠내려가셨습니다. 허기가 질 때 목욕을 하면 현기증이 나잖아요. 그렇게 물에 떠내려가다가 나뭇가지를 잡고 기어올랐어요.

부처님이 쓰러지신 곳에 세운 탑

그런데 인도에서는 모든 사물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경전에는 ’아사나 나무 신이 가지를 드리워서 부처님을 건져 올렸다’ 이렇게 인도식으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강가에 아사나 나무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가지를 잡고 기어 올라와서 이곳 강가에 쓰러져 계셨습니다. 그것을 기념해서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에 탑을 쌓았던 겁니다. 강물 위에는 탑을 쌓을 수 없으니까 강 언덕 위에 탑을 쌓아서 부처님이 쓰러진 곳을 기념했습니다.”

스님의 설명을 듣고 경전 독송을 하니 그 때의 모습이 다시 그림 그리듯이 머릿속에 펼쳐졌습니다. 독송을 마치고 한 사람이 겨우 걸을만한 좁은 길을 줄지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토회가 명상 센터를 짓기 위해 구입해 놓은 공터에 도착했습니다. 공터에 들어서니 풀이 말끔히 베어져 있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순례객들이 방문하기 전에 풀을 베어놓았다고 합니다.

명상센터 부지에서 다함께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조별로 모여서 어제 싸놓은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부처님께서 우루벨라 가섭 3형제를 교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보드가야를 가는 길에 수자타 공양터와 우루벨라 교화터, 수자타 탑터를 지나가는데, 그 때마다 설명을 하면 대중이 모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 이 곳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명상센터 부지를 나오자 대문 앞에는 스님으로부터 사탕을 받고자 많은 아이들이 긴 줄로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미리 준비한 사탕을 법사님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고 먼저 걸어갔습니다.

다음은 부처님이 수자타의 공양을 받은 곳에 세워진 탑을 향해 걸었습니다. 조금 더 걸으니 무덤 같이 생긴 작은 탑터가 보였습니다.

스님은 이곳이 부처님이 수자타로부터 공양을 받으셨던 곳이라고 알려주고 먼저 탑을 향해 삼배를 했습니다. 탑터를 바라보고 반야심경을 한편 독송했습니다. 2천 6백년 전 수자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루벨라 가섭이 수행했다고 하는 곳을 지나 아주 웅장한 규모로 세워진 수자타의 공양을 기념한 탑 앞에 도착했습니다.

탑 앞에는 ‘아미타부, 아미타부’를 외치며 구걸하는 노인과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돈을 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애매한 표정으로 순례자들은 탑으로 들어섰습니다.

순례단은 탑을 한 바퀴 돌면서 석가모니불 정근을 했습니다. 탑의 규모가 워낙 커서 한 참을 돌아야 했습니다.

드디어 순례단은 보드가야로 향하는 긴 다리를 만났습니다. 여기까지 2만 보 가까이를 걸었습니다.

“다리 아파요? 이렇게 걸어야 순례죠.”(웃음)

강 건너 편에는 높이 우뚝 솟은 대탑이 한 눈에 보였습니다. 부처님은 대탑이 세워진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49일 동안의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4시간을 걸어 보드가야 대탑에 도착했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은 부처님이 성도하신 자리에 아쇼카 왕이 세운 불탑으로 ‘Maha Bodhi Stupa마하보디 수투파’라고도 합니다. 불교가 쇠퇴하자 힌두절이 되었는데 미얀마 왕이 거금을 주고 관리 권한을 얻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보드가야대탑에는 각국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스님과 순례자들은 가사를 수하고 조용히 석가모니불을 외며 보리수까지 한 줄로 걸어갔습니다.

정토회 성지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 관리측에 요청하여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보리수 아래 자리잡았습니다. 커다란 보리수 그늘 아래 450명이 너끈히 앉을 수 있었습니다.

450명이 모두 자리를 잡자 마음을 모아 예불을 올렸습니다. 예불을 마친 후 스님은 부처님께서 성도하기 전후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전과 후, 98일 동안 일어난 일

“부처님께서는 수자타의 공양을 받으시고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시고, 네이란자라 강을 건너서 이곳 보리수 나무 아래에 오셔서, 목동으로부터 길상초 한아름을 얻어 나무 아래에 깔고, 동편을 향해 앉으셨습니다.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이렇게 크게 다짐을 하시고, 선정에 들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점점 선정이 깊어졌습니다. 마지막 7주째에 이르러서 모든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49일 간의 정진 끝에 동쪽에서 샛별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 첫 번째 일주일 동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깨달음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두 번째 주에는 자리를 옮겨서 자신이 앉았던 보리수 나무를 가만히 응시하면서 일주일을 보내셨습니다. 세 번째 주에는 보리수 나무 주위에서 걷기 명상을 하셨습니다. 네 번째 주에는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온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방광을 했습니다.

다섯 번째 주에는 한 바라문이 지나가다가 ‘무엇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것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바라문이 듣고 싶었던 대답은 ‘부모님 양쪽으로 7대에 걸쳐서 브라만의 피를 물려 받은 사람이 가장 고귀하다’ 하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청정한 자가 가장 고귀하다’ 이렇게 대답했고, 그러자 바라문이 ‘흥!’ 이러면서 지나가 버렸습니다. (모두 웃음)

여섯 번째 주에는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이곳이 전부 물에 잠겼습니다. 이 때 무차린다 용왕이 부처님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머리가 일곱 개가 달린 큰 뱀이 부처님을 보호하는 모양이 그것을 상징합니다. 일곱 번째 주에는 이곳을 지나가던 상인이 복을 빌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부처님은 성도하기 전 49일 동안 식사를 안 했고, 성도 후 49일 동안에도 식사를 안 한 상태였습니다. 짧게는 91일 동안, 길게는 98일 동안 식사를 안 한 겁니다. 이것은 사람이 100일 정도는 아무것도 안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요. 그래서 저도 이것을 실험해 보려고 70일 동안 단식을 해봤습니다. 결국 옆에서 사람들이 말려서 그만두긴 했는데, 100일 동안 단식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이렇게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스스로 체험해보고 검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전에는 부처님이 고행할 때 숨을 쉬지 않으니까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저는 젊은 시절에 고문을 당하면서 그것을 경험해 봤어요. 얼굴에 수건을 씌워놓고 물을 부으면 숨을 못 쉬거든요. 그때 가슴이 벌럭벌럭 하다가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경전에 나오는 묘사는 그것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표현하지 못할 만큼 굉장히 사실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도 후 7주가 지난 후 이 좋은 법을 세상에 나누어주려고 했는데, 이 좋은 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스승은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고행했던 다섯 친구를 찾아 사르나트로 가셨습니다. 이런 성도 전후의 정황을 경전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경전을 독송하고 함께 정진을 했습니다.

“이 곳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생각하면서 정진을 하겠습니다. 다들 피곤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꾸벅꾸벅 졸겠네요.”(모두 웃음)

35분 동안 명상을 하고 108배 절을 했습니다.

다함께 정진을 마치고 자유롭게 정진을 하거나 대탑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탑 주위에는 성도 후 부처님께서 7주간 머무셨던 장소에 표지판이 세워져있었습니다.

보드가야 대탑에는 오체투지를 하는 티벳 불교도인들이 많았고 사람들마다 기도하는 방식도 다양했습니다.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저마다 정성스러운 마음이 베어 나왔습니다.

보드가야대탑에서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길에 가야산을 들렀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산위에 서서 전정각산에서 고행을 하리라 마음먹은 곳이자 천명의 제자들에게 ‘불의 설법’을 한 곳입니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걸어서인지 가야산을 오르는데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찼습니다.

산 위에 오르자 흐릿하지만 건너편 전정각산의 윤곽이 보였습니다. 대중이 산에 다 오르자 스님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인도에 처음 왔을 때는 전정각산(前正覺山)이란 이름밖에 몰랐어요. 그래서 인도 젊은이한테 전정각산으로 가는 길을 물어볼 때 ‘마운틴(mountain), 마운틴’ 그랬어요. 유영굴(留影窟)을 영어나 인도말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그렇게 말했더니 이곳 가야산으로 데려다 줬어요. 그래서 이 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쫙 돌아봤지만 동굴은 없었어요.

숙소에 돌아가서 전정각산을 다녀왔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어디 다녀왔냐고 물어요. 설명을 했더니 거기는 전정각산이 아니고 브람조니(Bramyoni), 즉 가야산(伽揶山)이래요. 그래서 첫번째로 인도에 왔을 때는 전정각산을 못 봤습니다. (모두 웃음)

두 번째로 인도에 왔을 때는 여행사를 따라왔더니 아예 전정각산 쪽으로는 안 갔어요. 인도에 세 번째로 왔을 때에야 겨우 보드가야에서 걸어서 전정각산에 가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동네 사람들을 처음 만났고, 애들이 구걸하는 모습도 보았고, 이곳에 학교가 필요하다고 해서 수자타 아카데미를 짓게 됐습니다.

우리가 올라온 이 산이 경전에 나오는 가야산입니다. 상두산(象頭山)이라고도 해요. 저쪽이 라즈길(Rajgir, 王舍城)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라즈길에서 여기로 오셔서 가야 시내에서 탁발을 하신 뒤 이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셨어요. 저 앞에 강이 보이죠? 지금은 안개가 껴서 잘 안 보이지만 저 강 건너편이 전정각산입니다. 여기서 전정각산의 모습을 보고 ‘저기에 가서 수행하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셔서 강을 건너가셨다고 합니다. 이 산 아래쪽으로는 가야 가섭을 교화한 자리가 있습니다.”

부처님을 떠올리며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순례단은 보드가야 대탑과 가야산의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수자타아카데미로 돌아왔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 B팀은 일정상 하지 못한 마을 방문을 하고 A팀은 먼저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은 라면이었습니다.

매일 쌀밥에 비슷한 밑반찬을 먹다가 라면을 먹으니 무척 맛있었습니다. 저녁 예불을 드리고, 지바카 병원 2층 홀에 모여 법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실 수 있어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는데, 그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부처님은 당시에 수행하던 사람들과 달리 새로운 길인 중도(中道)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중도가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부처님이 다른 사람을 깨우치고 대중을 교화할 때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로 다른 사람을 깨우쳤다고 하는데, 사성제가 정확하게 무엇일까요?

이런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질문이 많은 겁니다. 자기는 아는 것 같지만 막상 남이 물으면 대답을 못해요.

부처님이 발견한 세상의 모순

부처님 당시에는 고행주의자와 쾌락주의자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 종교인들은 고행주의자에 속할까요, 쾌락주의자에 속할까요?”

“고행주의자요.”

“아니에요. 쾌락주의자입니다. 여러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잖아요. 엄밀히 말해 여러분은 쾌락주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 2층에서 아무리 좋은 법문을 해도 1층에서 누가 ‘저 강의를 들으면 주식이 대박난다’, ‘저 사람이 말하는 곳에 부동산을 사면 대박난다’ 이런 평을 듣는 강의를 한다면 다들 1층으로 갈 겁니다. (모두 웃음)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부처님이 태어나시고 자랄 때 사회적 배경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바라문(婆羅門)이라는 주류와 출가사문(出家沙門)이라는 비주류가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뿌자를 하면서 복을 빌어주는 사람을 바라문이라고 하고, 고행주의를 주장하면서 새로운 인생철학을 내세운 사람들을 출가사문이라고 해요. 경전을 읽으면 이런 말이 많이 나옵니다.

‘어떤 브라만도, 어떤 사문도 부처님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

출가사문은 주어진 신분이 아니라 자신의 신분을 뛰어넘어 그 길을 선택해서 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출가사문에는 브라만 계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왕족도 있고, 장자 계급도 있고, 평민 계급도 있고, 심지어 천민 계급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인도 사회에서 비주류였어요. 주류인 브라만에 반대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왜 이런 비주류가 세상에 출현했을까요? 주류의 주장에 모순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어린 시절에 주류에 속했습니다. 신분도 한 나라의 태자였으니 상위 계급에 속했고, 어릴 때 자신을 가르친 교사도 주류의 가치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참여했다가 새가 벌레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경전에서는 그 모순을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 농부의 비참한 얼굴을 보고 왕궁의 행복이 농부의 비참함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농부가 소를 모는 모습를 보고 농부의 농사짓는 편리함이 소의 고통에 기반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새가 벌레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 새의 생존이 벌레의 죽음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열두살 때 농경제에 참여했다가 처음으로 이런 모순을 보았어요. 그 모순에 대해 질문했을 때 스승도 부모도 아무 대답을 못했어요. 그래서 탐구를 시작했는데, 그래도 대화가 통했던 사람이 주류 사회가 아닌 비주류에 속했던 출가사문들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주류에서 성장해서 세상에 모순을 느끼고 탐구를 하다가 비주류 사람들을 만난 거예요. 거기에서 뭔가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본인도 출가사문의 길을 가려고 했기 때문에 주류 사회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부모입니다. 가장 강력한 주류 사회의 신봉자는 부모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처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최고의 마왕은 부모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부모가 최고의 은혜로운 사람이고, 성장해서는 부모가 최고의 방해자입니다. (모두 웃음)

불법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더욱 공감이 가는 이유

부처님은 이곳 전정각산에 이르러서 자기 스스로 자기의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 극단적으로까지 몰고 가봤습니다. 이건 누구를 따라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극단적으로까지 고행을 몰고 갈 수 있었던 배경은 본인이 출가하기 전에 쾌락을 쫓아봤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싯다르타 태자를 부러워했습니다. 신분이나 건강이나 모든 것이 좋아 보여서 다들 ‘저런 사람은 무슨 걱정이 있겠냐’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은 번뇌가 많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적기를 만난 것 같아요. 오늘날에는 여러분의 기본적인 생활이 싯다르타 태자처럼 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져서 괴롭다고 아우성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제는 먹는 것이나 입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어쩌면 다른 사람이 보면 ‘이 정도면 뭐가 걱정이냐’라고 할 형편입니다.

부처님은 이미 2,600여 년 전에 그런 조건에 처했고, 그런 조건에서 출발해서 인생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났거나 억압 받고 자라다가 저항심을 갖고 도(道)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의 현대인들, 그것도 지식인이거나 기본 생존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형편이 좀 되는 사람들이 접했을 때 공감이 많이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처지가 부처님과 유사하기 때문이고, 부처님의 문제의식이 굉장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2,600년 전의 이야기에도 여러분이 공감할 수 있는 까닭은 여러분이 그 당시 수준으로는 왕자 수준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왕자 수준으로 살고 있는데도 괴로워하고 있잖아요. (모두 웃음)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닌, 제3의 길

그 당시에 수행방법으로는 고행주의 외의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쾌락주의는 길이 아니라고 본인이 확인했기 때문에 고행주의를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6년의 극단적인 고행을 한 끝에 고행상의 모습에 이르렀던 거예요. 고행의 끝까지 가 본 겁니다. 우리처럼 하다가 힘들다고 그만두었으면 미련이 남았을 텐데,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곧 정각(正覺)을 이루겠다고 할 만큼 고행을 했습니다. 태자 시절에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하면서 감탄했듯이, 이번에는 그가 고행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감탄했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이 봤을 때는 해탈의 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6년 고행의 끝자락에 자기의 수행과 삶을 돌아봅니다. 출가하기 전을 돌아봤더니 욕망을 따라갔고, 출가한 이후에는 고행을 하면서 욕망을 억제했어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가자며 내 팔을 잡아당기면, 끌려가거나, 아니면 안 가겠다고 버티겠죠. 둘 다 누군가가 나를 가자고 잡아당기는 데서 생기는 문제예요. 잡아당길 때 따라가든, 안 가겠다고 저항하든, 그것은 나로부터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부터 일어난 거예요. 따라가거나 저항하거나, 둘 다 잡아당기는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명상을 할 때 다리가 아파서 ‘아야!’ 하고 다리를 펴는 것은 욕망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죽비 칠 때까지 참아야지’ 하는 것은 욕망을 억제하는 거예요. 둘 다 욕망에 대한 반응입니다. 드러난 현상은 정반대이지만 뿌리는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남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에 대한 나의 반응인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에 내가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길이었어요. 이것이 중도(中道)라는 거예요. 중도는 쾌락도 아니고 고행도 아닙니다. 쾌락과 고행의 뿌리는 모두 욕망이예요. 그런데 중도는 다만 욕구를 욕구인 줄 알아차릴 뿐, 욕구를 따라가려고 하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돼요. 우리는 통증이 생기면 참거나 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다만 통증을 통증이라고 안다’ 이렇게 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맛이 입에 딱 맞으면 먹으려고 하고, 맛이 입에 딱 안 맞으면 뱉으려고 합니다. ‘다만 신맛을 신맛으로 안다’ 이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 중도가 바로 제3의 길, 알아차림입니다. 부처님은 양쪽을 다 가본 뒤에야 이 제3의 길인 ‘알아차림’을 발견해내신 거예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윤회(輪廻)는 사람이 죽어서 또 태어나는 것을 뜻하죠. 이런 뜻을 가진 윤회는 인도의 전통 사상입니다. 부처님이 말한 윤회는 고(苦)와 락(樂)이 끊임없이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욕망이 충족되면 즐거움이 일어나고, 욕망이 충족이 안 되면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락에서 벗어났다’라는 말은 윤회의 사슬을 끊었다는 뜻입니다.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버리니까 윤회의 고리가 끊어져버린 거예요. 이렇게 되면 고(苦)도 사라지지만 락(樂)도 함께 사라지는 거예요. 그것이 해탈(解脫)입니다.

그러니 고(苦)는 물론이고, 락(樂)이라는 것도 껍데기만 다를 뿐 곧 고(苦)입니다. 이것을 경전에서는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을 담아둔 것과 같다’라는 표현으로 나옵니다. 잘 채색된 아름다운 항아리는 즐거움(樂)을 상징하고, 그 속에 똥이 들었다는 것은 괴로움(苦)을 상징합니다. 즉, 락(樂)이 곧 고(苦)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젊은 세 여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노파로 변해버렸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젊은 여인이 락(樂)을 상징한다면 노파는 고(苦)를 상징합니다. 젊은 여인이 노파로 바뀌었다는 것은 락(樂)의 본질이 고(苦)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에서 고성제(苦聖諦)를 안다는 것은 ‘인생은 괴로운 것이다’, ‘인생은 무상하다’ 이런 뜻이 아닙니다. 낙이 곧 고임을 알아야 고성제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사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제 저녁에 낙이던 것이 오늘 새벽에 고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고성제를 체험했기 때문에 단박에 법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법문을 듣고 고행을 해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고(苦)를 버리고 락(樂)만 얻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지순례를 와서 죽어라고 고생하는 이유도 나중에 락(樂)을 얻고 싶어서잖아요. (모두 웃음)

이에 대해 경전에는 다양한 비유가 나옵니다. 쥐약의 비유도 나오고, 낚시밥의 비유도 나오고, 젊은 여자와 노파 얘기도 나오고, 공덕천(功德天)과 흑암천(黑暗天) 얘기도 나와요. 아름다운 여인이 찾아와서 ‘어서 들어오세요’ 하고 맞아들이니까 좀 있다가 못생긴 여인이 따라 들어오려고 했어요. ‘당신은 들어오지 마세요’ 하니까 못생긴 여인이 ‘우리는 자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때 어리석은 자는 두 여인을 같이 받아들이고, 지혜로운 자는 둘 다 쫓아냅니다. 어리석은 자는 낙에 집착해서 고를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지혜로운 자는 고를 버리기 위해서 낙도 버린다는 뜻이에요. 즉 낙의 본질이 고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만 고(苦)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세속에서 말하는 괴로움입니다. 고집멸도에서 고성제는 낙이 곧 고임을 꿰뚫어 아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첫 설법 내용이 낙이 고임을 깨닫는 겁니다.

중도라는 것은 그냥 ‘이것과 저것의 중간’이 아닙니다. 당시 인도에는 주류와 비주류라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인생관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둘의 모순을 보고 그것을 모두 뛰어넘은 새로운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중도(中道)’, ‘제3의 길’이라고 표현하는 것뿐이지, 이것은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새 길이에요. 그래서 중도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명상을 해봐도 중도를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리가 아픈 것을 참거나 풀거나, 이렇게 둘 중 하나에 치우치기 쉬워요.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억제하지도 않고, 편안한 가운데 다만 알아차리는 것이 중도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잘 안 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줄을 매고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외줄타기를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왼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오른쪽으로도 기울지 말고, 똑바로 가면 돼요. (모두 웃음)

그런데 줄에 올라가 보면 왼쪽으로 넘어지든, 오른쪽으로 넘어지든, 계속 넘어지게 되죠.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또 가능하다고 해서 쉽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꾸준히 정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치를 깨치는 것은 단박에 할 수 있지만, 체험하는 데는 조금 연습이 필요합니다. 알아차림을 놓친다는 사실을 계속 알아차리는 가운데 놓치면 다시 하고, 놓치면 다시 하기를 반복하며 조금식 나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성지순례를 할 때도 ‘힘들다’, ‘기분 좋다’ 이렇게 반복만 하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해도 해탈하기가 어렵습니다. 힘든 가운데서 편안해지는 길을 찾아야 해요. 기분 좋은 가운데서 치우치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해요. 힘든 것을 참는 것은 성질내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남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자기는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그래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집에 가면 ‘아이고, 이제 살았다!’ 이렇게 됩니다. (모두 웃음)

성지순례를 하면서 불편한 가운데 편안해지는 길을 찾아야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여기까지 온 값을 하는 겁니다. 그래야 집에 갔을 때 보름이나 집을 비웠다며 남편이나 아내가 성질을 팍팍 내도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여보, 미안해. 혼자서 밥 해먹는다고 고생했지? 이제 내가 잘해줄게.’

이렇게 생글생글 웃어야 성지순례를 한 보람이 있는 거예요. 알았죠?”

“네!”

“부처님은 여기 오셔서 6년 동안 고행을 하면서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해보고, 어디에 모순이 있었는지 발견하고, 제3의 길을 찾아냈습니다. 그 새로운 길을 발견했기 때문에 전정각산에서 내려간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비난하고 외면하는 것도 별로 신경 안 쓰고 목욕을 했고, 음식도 먹어서 건강을 회복하셨던 겁니다.”

1시간 30분 동안 법문을 듣고 순례자들은 ‘온갖 분별심은 다 내 업식이 짓는 상일 뿐입니다’는 명심문을 가지고 하루를 돌아보며 나누기를 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께서 10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왕사성으로 가서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고 설법을 하신 영축산, 죽림정사, 열반하신 후 500 아라한이 모여 경전을 결집한 칠엽굴, 불교가 번창하면서 세워진 나란다 대학 등이 있는 라즈길로 이동합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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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어릴 때는 부모가 최고의 은혜로운 사람이고, 성장해서는 부모가 최고의 방해자입니다.
중도는 다만 욕구를 욕구인 줄 알아차릴 뿐, 욕구를 따라가려고 하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온갖 분별심은 다 내 업식이 짓는 상일 뿐입니다
마음에 새기며 수행정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5-04 04:56:10

임규태

스님께 감사드리며 여러 봉사자님들과 참가자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_^

2020-02-28 23:13:59

손승희

몸이 아파서 대중과 함께하지 못했다.
아픈 일행들과 이동해야했으며 멈추지 않는 기침과 오한에 고통스러웠다.
대탑 검색대 앞에서 법사님의 잘못된 안내를 믿는 바람에 물건 가져다 나르기를 두어차례 하니 진이 다 빠져버렸고 잘못 알려준 법사님한테 화가 나기 보다 미리 공지해준 걸 들었어야 한다는 걸 알아차리는 나를 보고 살짝 놀라웠다.
조금씩 변하고 있구나.

2020-01-28 06: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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