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성지회
착한 척, 친절한 척, 배려하는 척, 이제 '척척'은 가라

소극적이고 비활동적이던 김경혜 님이 불교대학 입학 신청 때 처음으로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봉사하며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도 정토회와 평생 같이하겠다는 확신도 생겼습니다. 한치의 의문 없이 선배 도반들이 이끌어 주는 대로 해보니 지금은 편하고 행복합니다. 치매인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리며 행복감을 느끼기까지 어떤 삶의 과정이 있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택시 뒷면에서 본 '정토회, 법륜스님'

삼십 대 후반쯤 노희경, 배종옥 님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정토회를 알았습니다. 관심은 갔으나 서울에 있을 테니, 나중에 대구에 생기면 그때 찾아가려 했습니다. 20대 때 여러 산을 다니며, 산에 있는 절을 갔습니다. 처음에는 사천왕상이 무서웠는데 자꾸 다니다 보니 익숙해졌습니다. 절이 익숙해지면서 언젠가는 불교 공부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2013년쯤 삶이 아주 괴로워 어느 사찰의 불교대학을 다녔습니다. 삼배, 반배 사홍서원을 하며 눈물이 참 많이도 났지만 이유는 몰랐습니다. 공부하며 불교가 저와 맞고 인연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진 후에는 안 나갔지만 ‘이것은 아닌데?’라는 의문은 있었습니다. 정토회라는 이름을 처음 알고 10년쯤 지난 2018년 택시 뒷면에서 ‘법륜스님, 정토회’라는 글자를 봤습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바로 전화해 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적극적이지도, 행동파도 아닌 제가 적극적으로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 안의 나를 찾다

불교대학을 공부하며 ‘정토회는 진짜다. 80살이 되어도, 내가 절할 수만 있다면 온다’라고 확신하였습니다. 분별심이 생기면, ‘내 마음 편하게 하자고 왔는데 이렇게 불편하면 계속 여기 올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어디서 이런 진짜를 또 찾겠어. 안 오면 내가 손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정토회에 붙어 있어야 하니 마음을 돌이키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니 갈등이 해결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갈등도 큰 것이 아니라 작고 작은 것이었습니다. 봉사를 못 한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불편했습니다. ‘예’라고만 하고 자랐기에 ‘아니요’라고 답하는 것이 미안하고 힘들었습니다. 갈등으로 인연을 끊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고, 그 갈등을 풀어나가야 함을 불법 공부하며 알았습니다. 불편하면 그만두는 업식을 정토회에서 공부하면서 바꿨습니다.

경전대학 졸업-둘째 줄-왼쪽 두 번째
▲ 경전대학 졸업-둘째 줄-왼쪽 두 번째

우기는 것을 멈추다

불교대학 공부도 정말 좋았지만, 경전 대학 공부는 더 좋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옳다고 인식하며 살던 기준이 '그게 아니었구나'라고 느껴질 때는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진리도, 진실도, 아닌 것을 옳다고 고집하고 우기며 살았습니다. 예전에는 불교의 내용이나 인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뻥이 너무 심하네. 저건 과장이다. 현실감이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금강경1 수업 중 우주가 연상되며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전 공부를 하며 ‘내 생각이 맞나? 틀릴 수도 있겠구나’라고 다시 생각하면서 고집과 우기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수업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저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못하는 게 많다는 것을 이전에는 몰랐습니다. 잘한다고 내세우고 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잘한다. 내가 잘났다.’라는 자만심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오만 덩어리였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턱을 치켜들고 살았던 제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저를 알게 되는 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2019 경전대 사찰순례
▲ 2019 경전대 사찰순례

꼬임에 빠져 시작한 봉사

봉사를 하며 새로운 경험들도 많이 했습니다. 경전대학 담당이 봉사를 하자고 꼬셨습니다. 이렇게 꼬시고, 저렇게 꼬시고, 그 말발에 취해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못한다는 소리를 못 해서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말 고맙습니다. 못한다 해도 "경혜 님, 이거 해봐. 경혜 님 두북 가자. 경혜 님 저거 해봐." 계속 다른 봉사들도 권유했습니다. 그냥 놔뒀으면 못 할 사람인데 자꾸 권하니 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권하는 것이 저를 챙겨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마운 마음으로 봉사에 참여했습니다. 봉사만이 아닌 정토회 활동도 권했습니다. 〈깨달음의 장2〉, 동북아 역사 기행, 인도 성지순례, 나눔의 장3 등 한 가지 하고 나면 '그것보다 이것이 더 좋다'라며 다른 걸 하자고 꼬셨습니다. 꼬임에 빠져 하고 나면 정말 좋아서 계속했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를 하며 이전에 했던 경험들이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학생들에게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공지할 때 경험에서 우러나 진심으로 했습니다. 경전대학을 권유할 때도 "불교대학보다 훨씬 더 좋다. 그러니 졸업을 위해 출석 일수를 잘 맞춰야 한다"라고 자신 있게 안내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도 자기 출석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저의 경험이 있었기에 무미건조한 전달이 아닌 살아있는 안내가 가능했습니다.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직장 휴가를 내어 온라인 명상에도 참여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도 신청했고, 10월에는 〈나눔의장〉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두북봉사-둘째 줄 왼쪽 첫 번째
▲ 두북봉사-둘째 줄 왼쪽 첫 번째

29살 때 처음으로 '아니요'

대학 생활과 사회 생활을 하며 제가 친구들과 다름을 알았습니다. 우리집 분위기도 다른 집들과 아주 달랐습니다. 저는 늘 주눅들어 있고, 남 앞에서 말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뭔가를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의 기준은 ‘아버지가 좋아할까?’였습니다.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고 원리원칙주의자이며 반듯한 분이었습니다. 29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아니요”라는 답을 했습니다. 그 전에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좋아했지만 늘 아버지의 사랑이 고팠습니다. 대학 다니면서 죽어라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은 이유도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였습니다.

인간관계도 잘하지 못하고, 친구도 없어 자책하던 제가, 직장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들은 저와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직장 동료들을 관찰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태도, 문제 해결방식 등을 배웠습니다. 상담, 심리학 공부, 가족 상담 공부를 통해 다른 사람 앞에서 말도 할 수 없었던 저의 모습은 아버지와 관련 있음을 알았습니다. 남들 앞에서 말도 못 하고 여러 가지로 바보 같은 저 자신과 싸우며 보낸 20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의 숙제, 아버지를 이해하다

40대 중반 어느 날, 아버지는 먼 산을 보며 "내 어릴 때 저 산에 나무하러 다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덟 살의 어린아이가 산 하나를 넘어 저 먼 산으로 나무하러 다녔다는 말에 눈물이 났습니다. 대가족이어서 다른 집 아이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나무를 해야 했고, 어떤 날은 저 먼산을 혼자 갈 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초등학교도 안 보내줘서 일 년을 울고 그다음 해에 초등학교에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어려서 사랑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했기에 자식에게 사랑을 어떻게 주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날 저는 아버지가 불쌍하고 너무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알고 나니, 소리 빽빽 지르는 것도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날 이후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도모례원 봉사
▲ 아도모례원 봉사

전에는 효녀인 척하려고 집에 갔지만 이제는 즐겁고 신나게 갑니다. 소리를 지르고 화내는 아버지에게 부드러운 사랑을 알려줍니다. 처음 아버지를 안을 때는 각목처럼 굳어 있었지만, 두 팔에 힘을 주어 저를 안는 법을 알려주고, 귓속말로 "사랑해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사랑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요즘은 아버지가 저에게 응석을 부립니다. 저도 응석를 부립니다. 아버지에게 혼나도 울지도 못하고 꾹꾹 참기만 했던 제가 이제는 저를 알아가고 저를 표현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 너무 여유롭고 편안합니다.

지긋지긋하게 싫었던 착하고 친절한 나

불교대학, 경전 대학을 다니며 스님이 하라는 대로 다 했습니다. ‘정토회와 스님 법문에 대해 확신이 있으니 하라는 대로 다 해본다. 내가 이해되고 안되고는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하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2~30년 먼저 공부한 도반들이 다 겪어보고 하라는 것이니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불교대학 수행 연습 프로그램으로 현관 삼배를 할 때였습니다. 모든 것에는 불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 집에 사는 제가 바로 부처인데 저 자신을 정말 하찮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했던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폭풍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지금까지도 현관 삼배를 매일 합니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제집이 참 좋고 행복합니다. 그러면서 제 존재의 근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제가 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귀한 줄 알게 되니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전에는 착한 척, 친절한 척, 배려하는 척하면서 저한테는 소홀했는데 이제는 착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은 저를 그냥 보여 줍니다. 그래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긴 시간 동안 지긋지긋하게 싫었던 착하고 친절한 저에게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전법 모둠원들과 불교대학홍보-현수막 들고 있는 분
▲ 전법 모둠원들과 불교대학홍보-현수막 들고 있는 분

소임과 봉사가 우선인 삶

제 삶의 에너지 중 90% 이상을 직장에 쏟고 살았습니다. 휴가도 마음대로 가지 않고, 직장 일에 파묻혀 미친 듯이 일만 했고, 그것이 잘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일을 잘하니 다른 사람들이 저와 같이 일하고 싶어 한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고개를 쳐들고 살았습니다.

코로나 발생 후 직장 일이 해도해도 끝이 없을 만큼 엄청나게 늘어 감당이 안 되었습니다. 회사는 아무런 조치도 안 해주고 조직원의 희생만 요구했습니다. 희망이 안 보였습니다. 겉으로 행복한 척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끼치지 않으려 참고 또 참았습니다. 어느 날 스님 법문에까지 분별심 내는 저를 보며 저에게 이상이 생겼음을 알았습니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었습니다. 정신과에도 갔습니다. 의사는 휴직을 권유했지만, 남들의 비난이 두렵고, 저로 인해 일이 더 많아질 동료들이 마음에 걸려 버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별일 아닌 내용의 민원전화를 받고 남들이 다 있는 사무실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제가 산산조각이 난 느낌이었습니다. 휴직은 생각도 못하고 쓰러질 때까지 일했을 저였지만, 정토회에서의 공부 덕분에 휴직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휴직 6개월간 먹고, 잠자고, 불교대학 돕는 이만 했습니다. 복직 후 생방송 진행자를 하며 매주 3일은 땡 퇴근합니다. 직장과 봉사를 함께 할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실제로 해보니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먼저 쓸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은 제 문제였을 뿐입니다. 직장이 아닌 저 자신과 정토회 소임이 우선입니다.

지금은 남의 시선에 갇혀 있던 저에게서 많이 벗어났습니다. 상사를 만났을 때 직책이 먼저 보여 저 자신이 쪼그라들어 피해 다녔는데 이제는 피하지 않고 인사합니다. 직책이 아닌 사람이 보입니다. 직장 상사와 저의 관계를 권력의 상하관계가 아닌, 역할 관계로 인식하니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정토회에서 공부하고 수행한 결과입니다.

백일 공동 정진 회향-둘째 줄 오른쪽
▲ 백일 공동 정진 회향-둘째 줄 오른쪽

내 삶의 우선순위인 정토회 활동

정토회와 함께하는 것이 ‘내 인생 잘 사는 거다’라고 확신합니다. 제 삶의 우선순위를 직장 일에서 정토회 활동으로 옮겨 수행도 공부도 더 깊게 해보고 싶습니다. 서원행자4도 하고 싶습니다. 제 시간과 에너지를 정토회 활동에 더 많이 내어놓을수록, 스님 법문을 더 많이 들을 수 있고,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온다'라는 글귀가 온몸으로 느껴진 만남이었습니다. 정토 행자의 하루를 쓰면서 온전히 그 삶을 받아들입니다.

글_안정미 희망리포터 (대구경북지부 수성지회)
편집_최미영 (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1.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2.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3.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4. 서원행자 정토회 정회원은 발심행자[^각주33], 서원행자, 결사행자로 구분됨. 수행, 봉사, 보시 활동을 기준으로 하며, 발심행자 3년 후 추천과 심사를 통해 서원행자 자격이 주어짐. 서원행자는 임원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을 가짐.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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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당

꼬임에 넘어가고 싶습니다 ~~~**

2022-09-20 22:24:21

권기숙

감동적인 수행담입니다 특히 직장보다는 니와정토회를 우선에둔다는 말씀 용기있는결단 부럽습니다 저도 공감함니다.

2022-08-31 06:28:16

시명화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2022-08-30 08: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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