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성지회
내 안에 타오르던 화의 불씨를 세상을 밝히는 불씨로

오늘의 주인공은 대구경북지부 수성지회 이창희 님입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기 전에는 화를 억누르며 착한 여자 가면을 쓰고 살다가, 불법을 만나고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게 되어 화날 일이 없다는 그녀. 남은 인생은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으로 불법 만난 복을 회향하며 살겠다는 이창희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23.7.9 범어모둠원들과 두북수련원 땅꽁 도라지밭 잡초제거(제일 오른쪽 이창희 님)
▲ 23.7.9 범어모둠원들과 두북수련원 땅꽁 도라지밭 잡초제거(제일 오른쪽 이창희 님)

천국을 향해 걸어왔는데 벼랑 끝에 서다

저는 생활력 강한 성실한 아버지, 이해심이 바다같이 넓은 어머니의 맏딸로 여동생 둘, 남동생 둘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 엄마를 자기 엄마처럼 생각하는 철없는 고모, 고전소설을 읽어달라는 할머니, 생활력 없이 막걸리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함께 대가족으로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고된 시어머니 시집살이를 했으나, 유순한 성격 덕분에 슬기롭게 헤쳐 나간 듯합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무능함에 화가 쌓여 충돌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 기억에는 매우 자상한 할아버지로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이가 좋았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남에게 욕 들을 짓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제가 중학생 때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노래를 흥얼거리면 “그런 침침한 노래는 부르지 마라. 끝이 확 풀리는 노래를 부르라”고 교육했습니다. 그 말을 신념처럼 꼭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시댁 어른들한테도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잘 지냈습니다. 직장 생활하며 꼬박꼬박 돈 벌어주는 남편, 금쪽같은 아들 하나와 오손도손 잘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은 신문에서 토종닭 사업에 관한 기사를 읽고 갑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신문에 실린 농장으로 찾아가 닭을 3마리 사 왔습니다. 아이와 저를 태우고 시댁으로 가서 토종닭을 삶고 모두에게 맛보여 주며 그 자리에서 남편은 사업을 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23.6.22 울산 포항 수성지회 도반과 두북수련원 감자캐기 봉사(앞줄 제일 오른쪽 이창희 님)
▲ 23.6.22 울산 포항 수성지회 도반과 두북수련원 감자캐기 봉사(앞줄 제일 오른쪽 이창희 님)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은 1년간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아들은 시골로 가지 않겠다며 대구에 머물고, 남편 혼자 농장이 있는 시골로 가서 토종닭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대로 직장생활하고 남편은 남편대로 사업을 해나가는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닭은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고 달걀도 처치 곤란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하던 일 관두고 식당을 차려서 닭도 처리하고 사료비도 벌자며 또 한 번 설득했습니다. 사업 손해가 커지는 상황이 불안했던 저는 마지못해 남편을 돕기로 하고 백숙 가게를 차렸습니다.

식당 운영과 달걀 납품으로 너무나 바쁜 나머지 아들에게 점점 소홀해졌고, 남편과 다투는 날도 많아졌습니다.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하니 그 사이에서 숨을 곳이 없던 아들은 게임을 하며 그 상황을 피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학교도 가지 않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니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법륜스님을 만났고 불교 공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한국불교대학과 정토불교대학 중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 집 근처에 정토법당이 있어 정토불교대학에 등록했습니다.

23.3.25 두북수련원 범어모둠원과 감자심기(제일 앞 흰 모자 쓴 이창희 님)
▲ 23.3.25 두북수련원 범어모둠원과 감자심기(제일 앞 흰 모자 쓴 이창희 님)

남편의 욕은 언어습관이고 하나의 소리일 뿐

첫 수업을 듣고 놀랐습니다. “종교로서, 철학으로서의 불교 공부를 원하면 잘못 왔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 여기는 수행으로서 불교를 배우는 곳이다.” 그 말을 듣고 잘못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부처님께 빌면 괴로움이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불교대학 수업을 들을수록 제가 불교에 대해 문외한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사성제, 팔정도, 12연기를 배우며 환희를 느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이 바로 여기 있구나. 여기서 노후를 보내면 되겠구나’

가게 일 때문에 수업에 빠져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해 답답할 때는 유튜브를 찾아보았습니다.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2014년 <깨달음의 장1>을 다녀왔습니다. <깨달음의 장> 5일 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남편의 욕설이 상처가 되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수련으로 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욕이 남편의 언어습관이고, 하나의 소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렇게 가볍던 마음이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또 눈물이 났습니다. 저의 상처를 밖으로 내놓은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산산조각 나버린 자존감을 회복하기 힘들었습니다.

가게는 날로 번창했습니다. 가게 일을 우선하니 법당에 나가는 일이 줄었습니다. 백일기도 입재식2은 빠지지 말자고 다짐하며 끈만 잡고 4년 정도를 보낼 즈음, 아들이 미국 위스콘신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아들이 게임만 해서 학업을 포기했다고 닦달하며 괴롭던 제 마음이 한순간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음을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불법은 기쁨의 순간도 항상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23.5.27 부처님오신날  향자재법사님과 범어모둠원들 아도모례원 법당앞에서(왼쪽에서 세 번째 이창희 님)
▲ 23.5.27 부처님오신날 향자재법사님과 범어모둠원들 아도모례원 법당앞에서(왼쪽에서 세 번째 이창희 님)

좋았던 사이도 어느 날 탁 뒤집히니 괴로움이 되는구나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 새벽 북지장사 견학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그때 묘당법사님이 “가게 일보다 수행을 하지”라고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했습니다. 아마도 제 얼굴에 괴로움이 묻어있었나 봅니다. 저는 시댁에 가면 남편 흉을 보며 집안일을 함께 할 정도로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시댁과의 관계가 냉랭해졌습니다.

시어머니는 아들이 펜대 굴리며 먹고 살라고 대학까지 보냈는데, 제가 말리지 않아 아들 손에 닭똥 묻히며 힘들게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새 저는 아들 고생시키는 며느리가 되어있었습니다. 남편은 주말에만 대구로 나오니 저는 혼자 아이 키우랴, 남편이 키운 닭과 달걀을 팔아서 사료비 대랴 고단한 생활의 연속인데 시어머니는 제 처지를 몰라주었습니다. 시부모로부터 위로받기는커녕 도리어 저를 탓하니 앞이 캄캄하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법당에 나가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108배를 하면서 저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만약 내 아들이 그렇다면 내 마음이 어떨까?’ 입장바꿔 생각하니 밉기만 했던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 혼자 시골 보내놓고 밥도 안 해주며 팽개치는 며느리가 미웠겠다. 바쁘다는 핑계로 신경 안 써 점점 비뚤어지는 손자 모습을 보면서도 내가 미웠겠구나’ 이해하니 그동안 원망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부처님 법을 몰랐다면 제 입장만 고수하며 평생을 미워하며 얼굴 붉히고 살았을 생각에 아찔했습니다. 마음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괴로웠던 일들이 아무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23.2.5 인도성지순례 수성지회 도반과 룸비니에서(제일 오른쪽 이창희 님)
▲ 23.2.5 인도성지순례 수성지회 도반과 룸비니에서(제일 오른쪽 이창희 님)

화내는 남편을 봐도 화가 나지 않습니다

정토회 활동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2015년 주어진 모둠장 소임을 아무것도 모르고 맡았다가 제대로 하지 못해 3개월 만에 다른 도반에게 넘겼습니다. 모둠장이 새벽기도 대문 열고 봉사도 해야 하는데, 기도 대문도 다른 도반이 열고 저는 기도도, 봉사도 하지 못했습니다. ‘갱년기가 온 줄도 모르게 한창 바쁘던 시기인데 처음부터 못 한다고 할 걸……’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감당할 수 없는 소임을 맡은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미국에서 취직하고 농장도 팔려 저는 가게보다는 봉사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실무 컴퓨터 교육도 받고, 행복학교3 진행자, 불교대 돕는이와 진행자를 하며 부처님 법에 물들어 갔습니다.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면 떨려서 말이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잘 보이고 싶어 떨린다는 것을 알고는 ‘잘 보여서 뭐 할래?’ 제게 되물으니, 말도 하게 되고 떨림도 사라졌습니다. 도반의 말에 분별이 올라오면 분별하는 제 마음을 살피니 더 불붙지 않고 고요해집니다.

23.5.27 '부처님 오신날'  동대구지회 도반과 아도모례원 공양간에서(왼쪽 이창희 님)
▲ 23.5.27 '부처님 오신날' 동대구지회 도반과 아도모례원 공양간에서(왼쪽 이창희 님)

최근 제가 하던 가게 건물이 팔리면서 모두 정리하고 남편이 사는 시골로 살림을 합쳤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며 다니던 정토회에 남편은 가게 일 안 하고 딴짓한다고 야단칠 때 “내 소원은 정토회에 다니는 것이다. 제발 다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60살이 넘으면 니 맘대로 해라. 나는 등산하면서 살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둠장 소임을 맡으니, 회의도 잦아지고 나가는 일이 늘어나니 기름값 아까운 줄 모르고 싸돌아다닌다고 잔소리합니다.

남편이 허리 수술로 후유증에 시달리니 화와 짜증이 많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실천 활동을 하러 가려는데 자동차 열쇠가 없어졌습니다. 승용차로 1시간 10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 타면 2시간이 소요됩니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고 택시를 타고 갔다 와야 했고, 어느 날은 실천활동 다녀오니 노트북이 없어졌습니다. 노트북을 일주일 동안 숨겨놓고 돌려주지 않아 “나 노트북 없으면 새벽기도 대문 못 열어서 쫓겨난다. 언제 줄 거냐?”며 매일 부드럽게 약간 애교를 섞어 말했습니다. 그런지 일주일째 되는 날 노트북을 돌려받았습니다.

2019년 대구경북 새물정진 6주차 아도모례원에서(중간 이창희 님)
▲ 2019년 대구경북 새물정진 6주차 아도모례원에서(중간 이창희 님)

작은 날갯짓이 산들바람이 되기를

과거의 상처는 근육이 되었습니다. 소리 지르고 불평하고 협박해도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러다 쓰러지면 어떡하나?’ 오히려 걱정이 앞섭니다. 구멍 숭숭 뚫린 마음이 어느덧 단단해졌습니다. 불법의 이치를 몰랐으면 종교에 의지하며 복 받을 궁리만 하고 살았을 겁니다. 새벽마다 정진하는 저를 보는 남편과 친정 식구들은 제발 잠 좀 자라고 합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이 뇌리에 박혀 정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편이 중국 여행 중에 만난 중국 사람과 대화하는 위챗 대화창에 채널 ‘정토 소사이어티’에 나오는 중국어 자막 즉문즉설을 남편에게 보냅니다. 남편에게 허락받아 남편 전화기에서 중국 사람들에게 다시 보냅니다. 여행 중에 만난 중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 만난 가이드에게도 보냅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면 좋을 것 같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다시 괴로움에 빠지는 걸 알았으니 바라는 마음을 놓아버립니다. 윤회하는 삶에서 벗어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걸림없이 살아가겠습니다.

22.7.10 봄불교대 학생들 '역사기행' 대구근대역사관에서(왼쪽에서 네 번째 이창희 님)
▲ 22.7.10 봄불교대 학생들 '역사기행' 대구근대역사관에서(왼쪽에서 네 번째 이창희 님)


낮잠 자던 아기가 깨어 소란한 분위기에도 온화한 얼굴, 상냥한 말씨로 인터뷰 내내 수행자의 면모를 몸소 보여준 이창희 님. 앞으로 어떤 어려움도 가볍게 뛰어넘어 갈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글_정도현 희망리포터(대구경북지부 포항지회)
편집_도경화(대구경북지부 동대구지회)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2. 입재식정토행자 천일결사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3.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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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숙

감동 받으며 잘 읽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수행담에 담긴 살아오신 모습이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라는 말씀과 참 닮았습니다
귀한 수행담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전달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

2023-08-04 06:30:33

보현

고맙습니다

2023-07-21 09:07:56

이은여

바쁘게 살아오신 보살님
이제는 수행 보시 봉사를 통해 부처의길로 한발 나아가 편안한 모습 항상 응원합니다

2023-07-21 0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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