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강서법당
일을 놀이처럼!

2010년 아파트에서 열린법회를 시작으로 지금의 강서법당이 있기까지. 어려운 일이 오히려 수행으로 이끌어줬다며 환하게 웃는 분이 있습니다. 소임을 놀이삼아, 놀거리를 주는 정토회가 좋다는, 양천정토회 지역 대의원이자 전국 대의원, 강서법당 긍정 마인드 이원진 님을 만나 보겠습니다.

정토회와 인연을 맺기까지

2000년 6월, 아이들 엄마가 42살의 젊은 나이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눈앞이 아득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 없이 살아갈 아이들을 보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과하지 않던 술과 담배마저 끊고, 귀금속점을 운영하면서 서툰 집안일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의 심한 의부증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게 특성상 여성 고객이 많았는데 아내는 손님뿐만 아니라 여자와 대화만 해도 의심하며 제 속을 뒤집어놓았습니다.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모든 걸 없던 일로 하고 싶었지만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아, 자기도 의지대로 안 되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힘든 상황은 반복되었고 저는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노이로제 증상까지 생겼습니다. 급기야 육탄전까지 벌이며 서로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까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살려고 했던지 정토회와 먼저 인연을 맺은 건 아내였습니다. 제가 힘든 만큼 아내도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여느 때처럼 싸운 어느 날, 아내는 바로 후회하며 3년만 지켜봐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1년쯤 지날 무렵부터 아내는 점차 변해 갔습니다. 조금씩 집착이 사라지고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니 어느 절을 다니는지, 마음공부 하는 곳을 다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나 혹시 사이비에 현혹되지 않을까 해서 아내에게 너무 빠지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JTS 거리 모금 중에 이원진 님
▲ JTS 거리 모금 중에 이원진 님

아내에게 받은 선물

2006년 여름, 아내가 4박 5일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장소는 문경이라고 하였습니다. 백두대간 코스인 데다 등산을 다니면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곳이었기에 '머리나 식히러 가자'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도착한 곳은 문경 정토 수련원의 〈깨달음의 장〉이었습니다. 머리끝에서부터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맛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그 느낌으로 사즉생이라는 말의 뜻이 각인되었고 정토회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온 이듬해에는 〈나눔의 장〉, 2008년 불교대학까지 매년 아내는 저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불교대학은 첫 수업부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놀라웠습니다. 영상 속 스님의 말씀과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살면서 큰 고비를 겪을 때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불법이 너무 재미있어 2009년 경전반은 자진해서 입학한 일로 아내는 지금까지도 저를 놀린답니다.

예전에 거액을 투자한 IT 회사의 부도로 큰돈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노숙자처럼 피폐해진 대표이사를 만나 '사람이 살아야 다시 회사를 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며 밥을 사주며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또 오피스텔 건축 사업을 추진하던 때에는 시공사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불법을 공부하기 전이었으면 상대를 탓하고 원망하면서 괴로움에 몸부림쳤을 테지만, 모든 것은 나의 욕심과 어리석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아침마다 참회 기도를 했습니다. 벤처회사 부도와 건축 사업 실패로 수십 억을 날렸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은 모든 원인이 저에게 있음을 깨닫게 해준 큰 스승이었습니다.

온라인 행복학교 현수막 설치 후
▲ 온라인 행복학교 현수막 설치 후

전법의 기쁨

2010년, 저와 아내는 집에서 열린법회를 열었습니다. 법회에 오셨던 분들이 법문을 통해 변화해 가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깨우치는 것도 기쁘지만 전법의 기쁨은 더 크다는 것을 실감하던 때입니다. 열린법회에서 불교대학을 열려고 알아보니 학생이 5명은 모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살던 아파트 단지의 우편함 전체에 불교대학 홍보지를 넣었지만 학생은 1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와 아내는 물러서는 마음 없이 다음 학기, 또 다음 학기에 도전했고, 드디어 학생 수 6명으로 불교대학이 개설되었습니다. 아파트에서 시작해 건설 시행사 사무실 한 켠, 새 오피스텔 두 칸, 그리고 이어서 옥탑방에 법당이 차려졌습니다.

사무실에서 시작하여 옥탑방까지 불교대학과 경전반 총 네 학기를 열었고, 그때의 불교대학 졸업생들과 뜻을 모아 2013년 12월, 지금의 강서법당이 개원했습니다. 아내와 제가 열린법회를 시작할 때 세운 원은 1차 만일결사까지 강서구 60만 인구의 1%인 6천 명에게 전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진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원을 행복학교를 하면서 계속 이어가겠다는 생각을 하니 참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그때 함께 활동했던 도반들 중 지금은 법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한번 정토회의 맛을 본 도반들을 다시 불러 모으고 싶은 마음으로 연락을 시도하고 있으며 법당 총무님을 비롯한 정회원님들과 논의해 볼 작정입니다.

11년 전에 오피스텔을 분양하면서 모델하우스에 참회문을 적은 커다란 간판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건물이 완공된 후에는 아예 건물 앞에 참회문을 적은 입간판을 세웠습니다. 오늘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던 사람이, 또 오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이 우연히 건물 앞을 지나가다 그 글을 보고 그릇된 결심을 멈춰 당사자나 가족은 물론 사회적으로 큰 손실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제 수행에 더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매일 지나다니며 잊지 않으니 사로잡히는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원진 님이 건물 앞에 세운 참회문 입간판
▲ 이원진 님이 건물 앞에 세운 참회문 입간판

일과 수행의 통일

2008년, 불법에 재미를 느끼며 한창 불교대학에 다닐 때, 정토회에서는 ‘북한 돕기 100만 인 서명 운동’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불교 공부 재밌게 하고 있는데 왜 이런 걸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이 많았습니다. 식당에 오는 손님에게도 서명을 부탁하는 아내의 모습에 불편한 마음이 올라 왔습니다.

그런데 100만 인 서명 완료 후,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 동포의 심정으로 70일 동안 단식을 하셨던 법륜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제가 가졌던 불만과 불편한 마음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사람이 서명해 줄까?’ 하며 스스로 만들어 낸마음에 사로 잡혀 있었던 어리석은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눈앞의 상황만 보고 분별심을 낸 것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할 뿐이고 안 되면 연구, 탐구하여 하면 될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정토회 활동도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동안 컴퓨터를 안 쓰다가 다시 쓰려니 서툴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 배우면서 해나가고 있습니다. 화상회의 덕분에 회의도 자주 하고, 다들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일을 놀이처럼 하라는 말씀처럼 일이 아니라 놀 거리가 많아진 것이라고 봅니다. 모든 것을 일로 보면 힘들고 하기 싫어지기 마련이지만, ‘이게 수행이구나’ 하고 수행적 관점으로 돌리면 훨씬 신명나고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온라인 행복학교에 힘을 실어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해서 잘 안 되는 노트북 사용법도 시험해 보는 중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행복학교가 국민 행복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정회원님들 한 분, 한 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저 역시 모자이크 붓다의 일원이라는 것이 뿌듯합니다. 지금껏 정토회가 문명 전환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 왔다면 앞으로는 많은 행복 시민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새로운 문명을 견인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가슴 떨리는 일입니다.

온라인 환경학교에 참가한 도반들과 (가운데 왼쪽 이원진 님)
▲ 온라인 환경학교에 참가한 도반들과 (가운데 왼쪽 이원진 님)

어느날 옥상에서 북쪽 밤하늘을 바라보다, '구름이나 새들이 막힘없이 넘나드는데 사상이나 이념이 뭐기에 강대국이 그어 논 선을 넘나들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자의 덕목인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 거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고이 간직합니다. 저를 눈뜨게 한 경제적 손실을 교훈 삼고, ‘정토행자의 서원’을 명심문 삼아 비뚤어진 것을 자리이타 정신으로 바로잡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게 하려는 통일 운동과 환경, 복지 운동을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하렵니다. 감사합니다.


글_오수진 희망리포터(양천정토회 강서법당)
편집_정지혜 (해운대정토회 반야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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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다

멋진 이원진님의 발걸음을 응원합니다...짝!짝!짝!

2020-11-18 19:14:19

굴뚝연기

이미 그곳에 들어서셨군요‥축하드립니다^^깨달음에 그치지않고,실행으로까지 옮기시니‥님의 그 걸음이 부럽고 신기하네요^^다만,참회문입간판엔 출처를 밝히셨는지요?^^법륜스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알고있는데요^^*

2020-11-09 23:42:36

혜등명

이원진거사님~
어떤 어려움도 수행꺼리로, 놀이로 받아들이는 모습 멋지십니다.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

2020-11-09 19: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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