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향상법사님 첫 번째 이야기
부처님께 지극히 향을 올리는 사람

제2차 만일결사1 1~7차 입재식2이 있던 11월 10일 일요일 오후 5시, 서초동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향상법사님을 인터뷰하였습니다. 온라인이 일상인 시대에 컴퓨터 화면을 나와서 법사님을 직접 대면하니 반가움과 설렘이 컸습니다. 향상법사님은 통영에 삽니다. 이번 인터뷰는 통영으로 돌아가기 전 두세 시간을 앞두고 하였습니다. 향상법사님은 잘 웃고, 유쾌하며 시원시원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첫 마음 그대로 직진해 온 수행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2020. 1. 30 통영법당 정초순회법회 (가운데 향상법사님)
▲ 2020. 1. 30 통영법당 정초순회법회 (가운데 향상법사님)

쪽지 하나에 이끌려 인생의 숙제를 끝내고

청년 시절, 저는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무척 불안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저를 오래 봐 오던 선배가 “넌 어째 갈수록 근심이 많아 보이니? 애가 점점 늙어가는구나.”라고 염려할 정도였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나면 직장에 가서 적응하고 밥벌이도 해야 하고, 결혼은 또 어떻게 하지?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는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책 저 책 많이 읽으며 실마리를 찾아보려 했지만, 이거다 싶은 답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고민과 불안으로 방황하는 마음과 함께 박사과정을 마칠 즈음, 친하게 지내던 대학 후배가 작은 메모지를 건넸습니다. “선배, 여기 한번 가보세요.” 그뿐, 어떤 설명도 없이 달랑 전화번호 하나 쓰여 있었습니다. 전화를 걸었고, ‘깨달음의 장3’이라고 소개를 들으니, 배울 것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렇게 정토회와 인연이 이어진 것은 그 후배의 얼굴 때문이었습니다. 늘 우거지상을 하고 인생의 짐을 질질 끌고 다니던 후배의 얼굴이 달덩이로 변해 있었습니다. 편안하고 팽팽하게 빛나는 그 얼굴과 표정을 보면서, 이 친구가 이렇게 바뀌고, 가보라고 하는 곳이라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999년 2월 제145차 정토회 ‘〈깨달음의 장〉(이후 깨장)’에 참석하였습니다. 깨장을 하는 동안 ‘아,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살면 되겠구나. 여기서 배운 대로 마음을 살피고 살면, 진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며 오랜 불안과 고민이 확 없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깨장에서 인생의 숙제를 다 마친 저는 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깨장 안내자에게 물어 부산의 동래법당을 소개받았습니다. 이후로 제 삶은 정토행자가 되는 길로 일사천리 직진하였습니다.

초발심 행자의 환희와 참회

저의 수행에 가장 영향이 컸던 것은 스님의 법문이었습니다. 금강경4 강의 중 원효스님의 수행 이야기 속에서 모양과 형색에 시비 분별하는 상을 짓지 않으면 세상은 걸림 없이 모두가 평화롭다는 법문을 듣고 환희심으로 전율하였습니다. 동북아 역사기행으로 갔던 영하 40도의 백두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쁨도 생생합니다. 인도 성지순례, 〈나눔의 장5〉, 〈일체의 장〉, 청년 정토회 활동 등등 참여할 수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스님의 검소한 생활이 제 생활을 이끄는 거울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번 기운 흔적의 스님 신발, 멀리 외국으로 갈 때도 제일 싼 비행기 좌석을 이용하고, 공항 의자에서의 잠자리도 꺼리지 않으며, 국수 수준을 넘지 않는 간소한 식사 모습을 보았습니다. 수행자는 제가 먹을 음식이나 일상의 일은 스스로 해결한다는 가르침도 받았습니다. 스님의 행동과 가르침에 따라 그동안 어머니가 하던 식사 준비, 설거지, 빨래를 이제 저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눈물 밥 먹은 어린 시절

3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별거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집에서 살았습니다. 새어머니와 살던 13살까지 거의 매일 눈물 밥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새어머니에게 맞은 적은 없지만, 저를 보호해 주던 누나가 손찌검당하기도 하며 억울한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아이는 3살까지는 제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스님이 말했던 그 시점의 경계선에서 양육자가 바뀌었기에, 저의 가장 밑 마음에는 어머니의 애정과 보살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저희 남매를 만나러 1년에 몇 번 학교로 와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고 밖에 나가서 맛있는 것도 사주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어머니는 “내 새끼들 고생한다. 미안하다.” 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당당하게 뛰놀지 못하고 소외된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어머니도 마음이 아파서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만난 친어머니가 사준 새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면 새어머니가 이게 어디서 났느냐고 하면서 신발을 잡아 뜯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두 어머니 사이에서 늘 시달리며 지내야 했습니다. 어떨 때는 친어머니가 있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싫기도 했습니다. 집에 가면 또 시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늘 모른 척하였습니다. 세 명의 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저의 존재감에 대한 자긍심도 없이 안팎으로 늘 위축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3살 때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완전히 기반을 잡은 후부터 저희 남매는 친어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저는 소극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우유부단하고,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한 성격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화가 나면, 꼭 제 아비 닮았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후 이런 성격에서 벗어나려고 일부러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 깨장에서 무겁게 살아왔던 과거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렇게 살 필요가 없는데 왜 그렇게 살았을까? 지금부터는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현재에 만족하면서 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확연히 하였습니다.

2017. 12. 2 대구 평화캠페인 (왼쪽 향상법사님)
▲ 2017. 12. 2 대구 평화캠페인 (왼쪽 향상법사님)

2020. 2. 19 창원법당 정회원 교육 안내 법사 (가운데 향상법사님)
▲ 2020. 2. 19 창원법당 정회원 교육 안내 법사 (가운데 향상법사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뛰어넘는 기도

깨장을 마치고 바로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청년회 활동과 여러 가지 봉사를 하였습니다. 스님 순회강연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참석했습니다. 법문도 듣고, 사회를 맡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100일 기도 정진을 자청해서 했지만, 자주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입재식 때마다 ‘장판 때’라는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일 부모님에 대한 제 원망을 녹여내는 기도를 했습니다. 스님 법문을 꾸준히 들으면서 '제 속에 있는 세 명의 부모님을 향한 미워했던 마음과 원망을 녹여내는 기도였구나’를 깨달았습니다.

20여 년 동안 정토회의 수련을 놓치지 않고 참여하였습니다. 스님이 쓴 책, 테이프를 사서 읽고 들었습니다. 법문 내용이 좋으니까 그야말로 신이 나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법사님과 선배 도반들이 열심히 정진하라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부산에 동래법당이 있던 시절, 도반들과 법당에 모여 100일 기도도 하고, 철야 정진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이 길만이 내가 갈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뛰어넘어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차례의 참회 정진을 하는 과정에서 대성통곡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뭔가 답답했던 것들이 가슴에서 쑥 씻겨 나갔습니다. 그런 느낌을 몇 번 경험하면서, 어느새 아버지와 두 어머니에게 품고 있던 미움이 사라졌습니다.

인생의 황금기: 불교대학과 부산청년정토회

1999년 불교대학 사회자 소임을 요청받았습니다. “예, 하겠습니다.” 했지만, 사찰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던 저로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긴장과 부담 속에서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봉사를 시작했고, 이어서 청년 정토회 발족의 원을 세우고 매일 500배 정진하며 열성을 다하였습니다. 같은 해 9월 부산청년정토회를 창립하였고, 사무국장 역할을 맡아 청년들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실로 제 인생의 황금기였습니다.

주중에는 불교대학에, 주말에는 9월에 창립한 청년정토회에 참가하기 위해 통영과 부산을 왕복했습니다. 특히 평일 저녁 시간은 통영에서 부산의 법당까지 다니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퇴근 시간에 낙동강을 건너 부산까지 가는 길은 얼마나 막히던지, 한 번은 4시간이 걸려 겨우 법당에 도착했을 때 “자, 이제 나누기를 마치겠습니다.” 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졸업 출석률 70%를 채우지 못해 2년 과정을 4년 걸려서 간신히 졸업했습니다.

2016. 3. 1기념법회 죽림정사 (가운데 향상법사님)
▲ 2016. 3. 1기념법회 죽림정사 (가운데 향상법사님)

2019. 8. 9 동북아역사기행-집안 산성하무덤떼 (오른쪽 향상법사님)
▲ 2019. 8. 9 동북아역사기행-집안 산성하무덤떼 (오른쪽 향상법사님)

몸이 아니라 ‘힘들다는 생각’이 문제

통영에서 강의를 마치고 저녁과 주말 매주 두 번씩 부산으로 불교대학과 청년정토회 활동을 위해 왕래하던 시절 즐겁기는 했지만, 몸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법회나 불교대학 수업이 저녁 늦게 마쳤기 때문에 자택이 있던 부산에서 자고 이후 강의를 위해 새벽에 통영으로 출발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기진맥진한 채 누워 생각해 보니, 매주 이동 거리가 1,000km 정도였습니다.

그 당시는 스님이 전국 순회법회를 하러 직접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월요일 하루 동안, 아침에 서울에서 법회하고, 오후에 대구에서 법회를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 스님의 이동 거리를 계산하니 주당 10,000km였습니다. ‘스님은 매주 10,000km를 다니면서 활동하는데 내가 겨우 1,000km를 다니고 이렇게 피곤해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아, 내가 힘든 건 몸이 아니라, 힘들다는 생각 때문에 힘든 거구나!’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 후 아무리 바쁘고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일이 생겨도 힘든 줄 모르고 가볍게 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환경도 좋아지는가?

박사과정에서 환경공학 기술을 연구하면서 늘 고민이 함께 있었습니다. 공부할수록 환경공학 분야의 목표는 기존의 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확실한데, 동시에 환경을 개선하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과연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의심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연구 논문들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에서 ‘지난 100년 동안 환경공학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지구 환경의 질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였다. 그러니 ‘기술 발전이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라는 논문을 발견했습니다. 세계적 석학인 아놀드 토인비도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을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고 쾌적한 단계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환경파괴와 인류 종말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인류가 겪은 가장 큰 사건은 서양 과학기술 문명과 불교의 만남이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현대 산업 문명과 과학기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네 삶의 철학, 행동 양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부처님의 연기법이야말로 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는 돌파구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법륜스님께서 몸소 실천하며 보여 주시는 삶의 대안이야말로 토인비가 말했던 서양 과학기술과 불교의 ‘만남’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모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교대학에서 무소유, 인연과보에 대해 배우고 비닐 안 쓰기 실천을 하던 차에, 동래법당 환경특강을 하던 당시 환경교육원 사무국장 유정길 선생님이 “기술이 우리를 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죠?” 하고 툭 한마디 던졌습니다. 마음속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부터 가정이나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보호 방법이 무엇일까 고심하며 생태 불교학 학술 시리즈를 탐독하였습니다.

2004년에 정토회 에코붓다에 소속하여 활동한 첫 활동이 ‘쓰레기제로백서’를 발간하는 것이었습니다. 1999년부터 서초법당에서 진행했던 쓰레기제로운동의 성과를 정리하여 백서를 발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가족환경실천단 사업을 진행하였고, 이 실험을 바탕으로 빈그릇운동을 기획하였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정토회 내부 활동가들이 먼저 실천하고, 차츰 일반 시민들에게 확산하는 전략을 갖고 매주 통영에서 서울로 올라와 기획 회의를 하며 본격적으로 준비하였습니다.

비빔밥 교수와 에코캠퍼스

정토행자의 대학교수 모델이 되어보자는 마음을 먹었고, 대학교 안에서부터 실천하였습니다. 학교 식당의 식판은 구석구석 반찬을 남김없이 닦아 먹기엔 불편했습니다. 식당 아주머니에게 우동 그릇을 구해 밥을 먼저 넣고, 그 위에 반찬을 얹어서 비벼 먹은 다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을 헹궈서 먹었습니다. 밥과 반찬을 한 그릇에 넣고 비벼 먹는 저를 두고 “비빔밥을 그렇게 좋아하세요?”라며 사람들이 놀리기도 하면서 ‘비빔밥 교수’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정토회에서 배운 쓰레기제로운동을 제가 사는 통영 지역사회에 적용해보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2005년 학생들과 영국과 독일의 친환경 생태공동체 마을을 몇 군데 탐방하고 난 후였습니다. 학생들에게 “학교에서부터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보자”라고 권유하였습니다. 사회 변화와 발전의 주역이 되어야 할 청년 대학생들이 실제로는 어떤 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소비만 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3·1 독립만세운동이나 4·19 혁명, 민주화 투쟁 때도 학생들이 앞장서 활약했듯이 먼저 실천하는 청년들이 리더이고, 그렇게 해야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겠냐며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연구실 학생 다섯 명이 중심이 되어 에코캠퍼스 동아리가 탄생하였습니다.

캠퍼스 안에서 시작된 변화

에코 캠퍼스 동아리 학생들과 정토회에서 배운 대로 학교 내 쓰레기통을 다 뒤집어 쓰레기를 분류 조사하면서 학교 내 쓰레기 처리의 실태를 분석했습니다.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한 학생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개선해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제가 제안했습니다. “남들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나부터 실천해봐야 되지 않겠나?” 정토회에서 배운 그대로였습니다. 제가 쓴 환경 실천 일지를 예시로 보여 주고 학생들이 써 보게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환경실천가, 환경운동가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통영에서 하숙하며 근무하였기에 학생들과 같이 살다시피 하며 이 운동을 어떻게 확산해 나갈지 토론하고 연구하였습니다. 학생들을 서울로 데려와 청년 정토회원들과 숙식하며 워크숍을 갖기도 하고, 환경 실천 방법을 따라 배우고 체험했습니다.

에코 캠퍼스 활동에 열정이 타오르던 2005년 가을, 학생들과 살터어울림 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열었습니다. 캠퍼스를 지속 가능한 캠퍼스로 만들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수개월을 준비하였습니다. 하나의 동아리가 준비한 축제였는데, 교내의 학생과 교수들 대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리더들이 대거 참여하도록 하였습니다. 통영시장과 시 의장, 도의원과 시의원, 시민 단체 대표들이 모두 참여하는 어마어마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통상적으로 먹고 마시고 버리는 대학 축제가 아니라 빈그릇운동, 쓰레기 줄이기를 위한 환경운동으로 대중들이 참여하는 축제였기에 창원 KBS에서 취재를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2004. 8. 17 에코캠퍼스 동아리 독일생태공동체탐방 (왼쪽 향상법사님)
▲ 2004. 8. 17 에코캠퍼스 동아리 독일생태공동체탐방 (왼쪽 향상법사님)

2005. 8. 3 태안에서 에코캠퍼스 대학생 생태수련_ 청년정토회+경상대 에코캠퍼스 동아리 (가운데 향상법사님)
▲ 2005. 8. 3 태안에서 에코캠퍼스 대학생 생태수련_ 청년정토회+경상대 에코캠퍼스 동아리 (가운데 향상법사님)

2011. 5.16 경상대학교 에코캠퍼스 동아리협약식 (왼쪽 두 번째 향상법사님)
▲ 2011. 5.16 경상대학교 에코캠퍼스 동아리협약식 (왼쪽 두 번째 향상법사님)

빈그릇운동, 캠퍼스를 넘어 지역사회로

캠퍼스 안에서의 활동이 곧 지역사회로 이어졌습니다. 동아리 학생들과 통영 시내 중·고등학교 교장 선생님들을 설득하여 중·고등학생들에게 빈그릇운동의 필요성을 교육하러 다녔습니다. 제가 몇 번의 교육 시범을 보이고 이후에는 대학생들이 직접 강연하였습니다. 배우는 학생에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사회 변화를 선도하는 위치로 바뀌자, 학생들은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통영시청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고, 그곳 영양사와 협조하여 잔반 데이터를 그래프로 그려 게시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시청 식당의 잔반량은 50%, 저희 대학교의 잔반량은 무려 75%가 줄었습니다. 변화된 데이터를 보며 "진짜 하면 되는구나!" 하며 모두가 신이 났습니다.

2006년 정토회 빈그릇운동은 160만 명 동참 서명을 받았고, 성과보고회에서 환경부 장관이 와서 우수 빈 그릇 상을 시상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지역사회, 종교, 시민 단체, 기업체에서도 빈그릇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정토회의 모델을 전수해 달라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빈그릇운동은 전국으로 확산하였습니다.

변화의 주체로 성장한 학생들

UN이 ‘지속가능 발전교육 10개년(UN Decade of 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을 선포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을 전 세계로 확산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005년 10월 통영시가 세계에서 여덟 번째,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유엔지속가능발전교육센터 RCE(UN지속가능발전교육 10개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UN대학에서 지정한 지속가능발전교육센터. Regional Center of Expertise on ESD)로 지정되었습니다. 통영과 주변 지역에 지속가능 발전교육을 확산하는 거점으로서 역할을 맡긴 것입니다. 2006년 2월 통영시의 지속가능 발전교육 센터 지정을 선포하는 행사에 저와 학생들에게 행사 기획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대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 지역사회를 흔들어대는 활동을 하니 통영 지역사회가 주목하였던 것입니다.

유엔 관계자를 포함해서 3,000명 이상의 국내외 관계자들이 모이는 행사였는데, 우리 학생들이 센터 사무국과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앞다리가 쑥, 뒷다리가 쑥’ 노래에 맞춰 직접 개사한 ‘빈그릇 송’으로 춤을 추며 무대 공연도 하였습니다. 학생들이 지역사회에서 펼치는 의미 있는 활동으로 언론에 30여 차례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을 포함한 해외 도시에 가서 사례를 발표하며 학생들은 지역사회의 변화를 선도하는 리더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때 우리 대학생들은 거의 미친 듯이 활동했고, 핵심 학생들은 결국, 환경공학 전공 분야를 버리고, 비정부 기구나 지속가능 발전 교육센터와 같이 환경과 교육 관련 분야로 인생의 행로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부처님께 향을 올린다는 뜻으로 ‘향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법사님. 삶에 대한 단 하나의 의문이 얼마나 강하고 큰 것이었길래, 그 숙제를 해결하자마자 두리번거림도 망설임도 없이, 한 길을 오롯이 올 수 있었을까? 향상법사님은 자신의 수행 이야기를 그저 있는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들려주었지만, 리포터에게는 의심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의 평온한 얼굴과 향을 피우는 그 아이의 깨끗한 손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 아이가 부처님 앞에 피우는 향의 향기가 온 세상에 퍼지기를 소망하며 제 두 손도 함께 모읍니다. -이경희 소감-

향상법사님의 수행이야기는 총 2회로 발행 예정입니다.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

글_이경희 희망리포터 (서울제주지부 서대문지회) 이재선 희망리포터 (서울제주지부 구로지회)
편집_최미영 (국제지부 아태지회)


  1. 만일결사정토회는 개인의 행복과 정토세상 실현을 위해 1993년 3월 만일결사를 시작. 3년을 정진하면 개인의 의식 흐름이 바뀌고, 30년을 정진하면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3년 단위로 천일결사 정진을 이어오고 있음 

  2. 입재식정토행자 천일결사[^각주26]를 백일 단위로 나누어 매 백일 마다 함께 모여 수행을 점검하고, 새롭게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의식. 

  3.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4. 금강경대승불교 경전의 하나 

  5. 나눔의 장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인간관계가 평화로워지는 4박 5일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깨달음의 장을 다녀온 참여자만 신청하여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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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수호자

감사합니다...스님
건강하십시오...
저의 과거거울을 통해서
지금 여기를 사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03-08 10:44:52

김미례

감동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물한바가지 라도 아껴쓰겠습니다

2025-02-08 13:05:40

보현심

감동적입니다.. 감사합니다!!!

2025-02-06 19:5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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