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28 천룡사 방문, 금요 즉문즉설
"명절에 동생이 저에게 욕을 했어요. 너무 화가 납니다."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랜만에 두북 수련원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노희경 작가님과 배우 조인성 씨 일행입니다. 스님은 일행과 함께 경주 남산 천룡사에 올라 천룡사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30분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자 천룡사가 나왔습니다.

“산 위에 이렇게 넓은 평지가 있어요. 밑에서 산길을 올라가는 사람은 상상을 못 할 거예요.”

스님이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유훈 중에 천룡사를 복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고, 그와 관련하여 스승님에 대해 여러 가지 일화가 있다며 들려주자 모두들 재미있어했습니다. 함께 차담을 나눈 후 산을 내려왔습니다.

천룡사를 오르고 내리는 탐방로가 예전과 달리 잘 정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곳곳에 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무너진 축대가 다시 튼튼하게 복원이 되었고 교량도 설치가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경주 국립공원사무소에서 탐방로 공사를 완공한 것입니다.

경주 국립공원 관계자가 찾아와서 탐방로 공사가 다 되었으니 함께 개통식을 간단하게 하자고 했지만 일정 조정을 계속 못하다가 마침 오늘 간 김에 하기로 했습니다.

“탐방로 공사를 잘해 주셨는데 준공식도 제대로 한 번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스님은 경주 국립공원사무소 관계자들이 도착하자 먼저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대신 오늘 유명인사들도 온 김에 조촐하게 개통식을 하게 되었다고 사정을 말했습니다.

얼떨결에 준공식 이벤트를 하게 되었지만 공원 관계자들도 기뻐했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탐방로를 안전하게 만들어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후에는 노희경 작가님 일행과 남산을 산책한 후 기차 시간에 맞춰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 생방송을 했습니다. 오늘도 유튜브 공개 형식으로 누구나 시청할 수 있게 생방송을 열었습니다. 52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세 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질문자들의 아주 솔직한 질문 덕분에 마치 오프라인 강연장에서 즉문즉설을 할 때처럼 스님의 직설 화법이 다시 되살아난 것 같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혼자 고생하는 엄마를 돕고 있지만 정작 명절에는 동생에게 욕을 들어야 했다며 엉망이 된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질문했습니다.

명절에 동생이 저에게 욕을 했어요. 너무 화가 납니다.

“저는 1남 4녀 중에 둘째이고 마흔두 살 미혼입니다. 평생 혼자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위해 제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서울에 혼자 있으면서도 고향을 왕래하면서 온갖 집안 대소사에 신경 썼고 스무 살 때부터 서울에서 학비, 생활비 혼자 책임졌습니다. 투잡, 쓰리잡을 뛰고 빚을 지면서까지 어머니께 금전적으로도 도움을 많이 드렸습니다. 게다가 형제들끼리 우애 있게 지내기 위해 싸움을 중재하고 해결도 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런 저보다, 어머니께 함부로 하고 이기적인 큰 딸, 큰 아들만 편애하십니다.

제가 성공했더라면 어머니가 고생도 하지 않으셨을 거고, 언행이나 가치관이 이렇게 변하지 않으셨을 텐데 자책이 됩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그 가치관 때문에 싸우게 되고 저는 화를 많이 냅니다. 저는 무리하게 일하다가 몇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어머니께는 그저 목감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마흔이 넘어서 이제야 제 자신만 돌보며 살고 싶고 어머니의 사랑이 그립습니다.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지만 신세한탄만 하시고 자식 원망하시는 어머니가 밉습니다. 지난 명절에는 어머니와 살고 있는 막내 남동생이 다 큰 조카들 앞에서 제게 욕을 하고 지금까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엉망입니다.”

“네. 제가 볼 때는 별 일 아니에요.”

“그래요?” (웃음)

“별 일 아닌데 질문자가 별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형제 사이에 갈등은 집집마다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 또래들도 전부 돈을 벌어서 자기 학비를 대고 부모를 봉양하고 살았어요. 질문자가 자신을 어느 부잣집 딸과 비교하는지 모르겠는데 질문자가 특별히 고생을 한 건 아니에요. 질문자는 두 가지 병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대단하다고 착각하는 병이에요. 다른 하나는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유아적 사고를 하는 병입니다. 마흔이면 마흔에 맞는 사고를 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아직 부모 밑에서 '형제간에 우애 있어라.'라는 말을 듣던 어린 시절의 사고와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요.

형제도 스무 살이 넘었고 결혼하면 남이에요. 옛날에 한 집에 같이 살았던 경험이 있지만 이제 남이기 때문에 간섭을 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나서서 간섭하는 게 다 화를 자초하는 거예요. 자기 말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안 된다고 화내고 짜증내고 있잖아요. 또 언니와 어머니는 나와 별개로 딸과 어머니의 관계인데, 자기들끼리 뭘 많이 주든 적게 주든 그걸 왜 질문자가 나서서 간섭해요?”

“간섭하지 않기가 어려워요.”

“주제넘게 남의 인생에 간섭해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별일 아니라는 거예요. 실컷 간섭하다가 제 풀에 지쳐서 '이제 나만 생각하며 살겠다.'라고 하는 거잖아요. 누가 본인만 생각하고 살지 말라고 한 사람이 있나요? 자기 혼자 누가 마음에 들어서 좋아했다가, 또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미워하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질문자는 어리석지 착한 구석은 하나도 없어요. 누구나 다 하는 일을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난리를 피우고, 나이 마흔에 아직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허투루 산거예요.

인도에 가면 거리에서 거지 행색을 한 아이들이 '박시시, 박시시'라고 구걸하면서 계속 따라옵니다. 사람들이 불쌍해서 아이에게 돈을 주면 그 아이가 돈을 받고 갈까요, 돈을 받고도 또 따라올까요? 또 따라와요. 그러면 돈을 준 사람이 ‘너 아까 받았잖아. 받았으면 가야지, 왜 와!’ 이렇게 성질을 내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에이, 쟤들은 또 주면 안 돼, 버릇 나빠진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그 아이들이 문제일까요? 아이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것도 자기 문제고, 또 따라오는 아이에게 화내는 것도 자기 문제예요. 아이들이 돈을 안 준다고 돌멩이를 던지거나 해코지를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아이들이 불쌍해서 돈을 줬잖아요. 그런데 백 원짜리 하나 받고 아이들이 어떻게 만족을 하겠어요. 당연히 더 달라고 하죠. 그런데 ‘넌 받았으니 받지 마.’ 그건 자기 생각이잖아요.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야단치고 애들 버릇 나빠진다면서 다른 사람 보고도 주지 말라고 합니다. 저도 옛날에 인도에서 아이들이 하도 돈을 달라고 해서 백 원짜리 하나 줬어요. 또 손을 내밀어서 또 줬어요. 또 손을 내밀어서 또 줬어요. 몇 번을 주면 손을 안 내미나 하고 계속 줘보니까 서른일곱 번이 되어서야 다시는 손을 안 내밀더라고요. 백 원짜리를 37번 줘봐야 3700원 아닙니까? 이게 서른일곱 번 손을 내민 아이 문제인가요? 처음부터 내가 만 원을 한 장 줬으면 안 따라왔겠죠.

사람들은 자기감정에 치우쳐서 남을 도와주다가 상대가 자기 뜻대로 안 해주면 섭섭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간섭합니다. 인생의 이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누군가를 좋아해 놓고 상대가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저를 좋아한다고 해도 딱 경계합니다. '원수 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해요. 나를 좋아하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좋다고 해도 자기 뜻대로 안 되면 금방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원수 될 일이 없어요. 좋아한다고 하면 원수 될 소지가 딱 생기는 거예요. 또 누가 날 존경한다고 하면 실망할 일이 생길 수 있는 거죠. 모든 일에는 다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어요. ‘법륜스님 즉문즉설’이 좋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앞으로는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 일만 남습니다. 어떤 사람은 별 기대 없이 즉문즉설을 들었다가 너무 좋아서 주위 사람들한테도 막 들어보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추천을 받은 사람들은 기대가 높은 상태에서 즉문즉설을 듣는 거예요. 즉문즉설만 들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기대를 하는데 막상 들어도 해결이 안 돼요. '에이 별 거 아니구먼. 왜 이걸 가지고 사람들이 그리 난리지?' 이러면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해요. 이게 마음의 이치입니다.

요즘 대통령 후보 중에 사람들이 누구는 토론을 잘할 거라고 하고 누구는 잘 못 할 거라고 합니다. 실제로 해보면 잘할 거라고 한 사람은 객관적으로 훨씬 잘해도 원래 잘할 거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잘해야 본전입니다. 못할 거라고 한 사람은 못해도 본전이에요. 그럼 결과적으로 어떻게 될까요? 못하는 사람이 조금만 잘해도 '오, 생각보다 잘하네.' 이렇게 생각해요. 최근에 녹음파일 사건도 사람들이 굉장히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개하니까 별 문제가 안 되는 겁니다. '생각보다 괜찮네. 별 거 없네.'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세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전부 주관적으로 보고 있어요. 백만 원 받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오십만 원을 주면 실망합니다.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안 했을 때는 십만 원만 용돈을 줘도 너무 고마워요. 기대를 하면 50만 원 받고도 욕을 하고 기대가 없으면 10만 원만 받아도 기뻐하는 게 인간이에요. 그런데 여러분은 주관을 객관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겁니다.

엄마가 없으면 내가 밥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집에 돈이 없으면 내가 벌어서라도 살아야 하는 거지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에요? 지구가 생긴 이래로 지금까지 사람들이 다 그러고 살았어요. 부모가 돈이 있으면 자식들이 그 부모 돈을 빼먹고, 부모가 유산을 남기면 자식들끼리 싸우는 게 인간사예요. 사람이 나빠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부모가 돈이 있으면 누가 그 돈을 가질 것인가를 두고 경쟁해야 하니 싸우는 겁니다. 돈이 없으면 누군가는 줘야 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세상에서 보통 일어나는 일인데 특별한 일인 것처럼 난리를 피우고 있어요. 부모님도 아무 문제가 없고 언니도 동생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난리를 피우니까 동생한테 욕을 얻어먹죠. 가만히 있는 동생이 왜 욕을 하겠어요?”

“그 부분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얘기 해보세요.”

“어머니께 금전적인 걸 크게 해 드렸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돈을 벌면 조금이라도 모아 드리고 어머니한테 십 원 한번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힘들게 모아서 드린 돈을 얼토당토않게 언니하고 남동생한테 허투루 돈을 쓰시는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가 자기 딸, 자기 아들한테 주는 돈을 왜 허투루 쓴다고 해요? 얼마나 건방진 얘기예요? 질문자는 진짜 나쁜 사람이에요. 어머니에게 돈을 줬으면 그건 어머니 돈이에요. 어머니가 그 돈을 누구한테 주든 어디 쓰든 그건 어머니 자유입니다. 질문자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에요.”

“마흔이 된 남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생활비도 내지 않거든요. 제 기준에서는 남동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남동생을 데리고 산다고 생각해서 남동생한테 화가 많이 났었어요.”

“본인이 어머니를 모실 수 있으면 모시면 되잖아요. 지금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남동생이 어머니 돈을 빼먹든 어머니가 남동생에게 돈을 다 주든 그건 질문자가 간섭할 일이 아니에요. 쓸데없이 남의 인생에 간섭하니까 욕을 얻어먹죠.”

“그 사건은 진짜 할 말이 있어요. 어머니와 남동생이 둘이 사는 집에 세탁기가 고장 나서 빨래방을 가야 됐어요. 그런데 남동생이 빨래 비용으로 만원도 안 되는 돈을 엄마한테 받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 정도 돈은 네가 내라는 말을 했을 뿐이에요.”

“왜 그런 말을 해요? 둘이 사는 것에 왜 간섭을 하냐는 거예요. 욕 얻어먹어도 싸죠.”

“저처럼 말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연하지 않아요. 다 큰 동생에게 왜 간섭을 해요.”

“마흔이 다 된 아들이 엄마한테 돈을 받아가는 게 말이 되나요?”

“아들이 자기 어머니한테 얼마를 받든 그걸 왜 질문자가 간섭해요? 계속 그렇게 살면 고생만 죽도록 하고 욕은 욕대로 얻어먹고 가족과 원수 돼요. 뻔히 보여요.”

“조금만 더 말씀을 해 주세요.”

“저는 다 얘기했어요. 질문자는 남의 인생에 아무 데나 간섭하는 웃기는 사람이에요. 어머니가 자기 아들, 딸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든 그건 그들의 문제입니다. 왜 남의 집에 가서 아들이 어머니한테 돈을 받든, 어머니가 아들한테 돈을 주든 그걸 간섭해요?

“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돼요.”

“남이죠. 나이가 몇 살인데요.”

“가족이잖아요.”

“누가 가족이에요? 질문자가 인생 경험이 부족해서 그래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늘 어린애 같은 생각을 하는 겁니다. 어떻게 가족이에요? 스무 살 넘으면 가족이 아니에요.”

“가족이 아니에요?”

“그럼요.”

“가족을 남이라고 하는 말씀이 너무 어려워요.”

“사회를 보세요. 스무 살이 넘으면 독립된 인격으로 대우합니다. 부모 밑에서 함께 보호받고 있을 때는 동생과 질문자가 가족이 맞습니다. 그런데 스무 살이 넘으면 더 이상 가족이라고 볼 수 없어요. 남이라고 봐야 됩니다. 촌수로만 따지면 대한민국에 가족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대한민국 국민 오천만 명이 다 가족이겠죠. 형제지간에 가족이라고 부를 때는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을 때를 말해요.

“그럼 스무 살이 넘으면 다 남인가요?”

“남이지요. 그냥 남이 아니라 옛날에 한 가족으로 지냈던 남이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옛날 우리 회사 멤버였던 거예요. 지금은 다른 회사로 갔지만 옛날에 우리 회사 다녔던 멤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질문자가 어머니께 돈을 주는 건 본인 마음입니다. ‘어머니, 음식 사드세요.’ 하면서 돈을 주는 건 본인 입장이고, 어머니는 자기가 먹는 것보다는 아들이나 손자한테 주는 게 더 좋은 거예요. 수많은 집에서 이런 일이 생겨요. 할머니한테 돈을 드리면서 ‘맛있는 거 먹으세요. 따뜻하게 불 때세요.’라고 해도 할머니는 그 돈을 넣어놨다가 못 사는 아들 주거나 행패 피우는 아들 줍니다. 그러면 돈을 준 자식은 왜 돈을 그렇게 쓰냐고 난리를 피우죠. 집집마다 다 있는 일이에요. 내가 돈을 줬으면 그 돈을 갖다 버리든 어디 쓰든 그건 어머니의 자유입니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안 주면 되지 간섭할 일은 아니에요.

질문자도 결혼을 해서 자기 가정을 꾸리는 게 좋아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혼자 살아서 외로우니까 남의 가족한테 붙어서 나도 그 가족에게 끼어달라고 하는 거랑 똑같아요. 정신 차려야 해요. (웃음) 억울하거든 얘기하세요. 질문자도 거침없이 말하고 저도 거침없이 말해도 되는 곳이 즉문즉설이니까요. 이해가 안 되면 더 얘기해 봐요.”

“애초에 스님께 좋은 얘기만 들으려고 질문을 한 건 아니었어요. 이 상황에 문제가 있으면 잘 듣고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질문한 건데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스님 즉문즉설 영상도 많이 찾아봤거든요. 오늘 말씀해 주신 그 부분이 항상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씀을 또 해주셔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제가 동생한테 욕을 먹어도 싸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거든요.”

“동생이 사과하기를 바라면 동생하고 원수가 됩니다. '아, 내가 쓸데없는 간섭을 했구나.' 하면 진짜 누나와 동생이 되는 거예요. ‘미안하다. 내가 쓸데없는 간섭을 했네.’ 이렇게 마음을 내면 사과받을 일도 없고 용서할 일도 없습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욕을 할 수 있어? 사과해.’ 이러면 죽을 때까지 원수가 되는 거예요. 원수는 동생이 만드는 게 아니라 본인이 만드는 겁니다.”

“다 큰 자식이 어머니에게 만원 달라고 한 게 정말 화가 났거든요.”

“다 큰 자식이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해서 화가 났다고 했죠? 그런데 동생이 보기에는 누나가 남의 집에 왔으면 밥이나 먹고 얘기나 하고 가지, 잘했니 못했니 간섭하는 게 더 화날 일인 거예요. 질문자의 태도는 요즘 말로 내로남불입니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인 거죠. 본인이 화내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동생 입장에서는 더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서 욕을 하고 화를 내는 거예요.”

“제가 많이 부족한 가 봐요.”

“부족한 거랑 상관이 없어요. 어리석어서 생긴 문제입니다.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사고하는 게 문제예요. 어린아이는 착할지는 몰라도 어리석어요. 왜 남의 집에 가서 간섭을 해요?”

“남의 집이 아니라 어머니 집이고, 어머니가 다 큰 아들을 키우는 상황이거든요.”

“어머니가 스스로 좋아서 다 큰 아들 키우는데 왜 질문자가 간섭을 해요? 육십 된 아들에게도 용돈을 주든 말든 그건 어머니 마음이에요.”

“남동생 보고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대요.”

“그건 모자가 알아서 할 문제이지 본인이 간섭할 일은 아니에요. 이 관점을 안 잡으면 형제간에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얘기했잖아요. 사람이 그리우면 남의 집에 가서 간섭하지 말고 자기 가족을 만들어서 사는 게 좋다고요. 괜히 남 붙들고 싸우지 마세요. 그들이 알아서 살도록 놔두고, 자기 인생이나 잘 사세요. 집착이에요. 이 집착을 딱 끊으면 형제간에 우애가 생기고, 이 집착을 못 끊으면 형제가 원수가 됩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할 일이 아니에요.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됩니다. 아직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있어요. 질문자는 몸뚱이만 컸지, 사고는 어린아이에 머물러서 '내가 뭐가 문젠데?'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은 사십이 되었는데 정신은 일곱 살이에요. 제가 처음부터 딱 ‘별 일 아니에요.’라고 말했잖아요. 이야기를 나눠보니 역시 어린아이 티가 나네요.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마세요. 내 어머니라도 자식이 간섭할 일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어떤 인생을 살든 그건 어머니의 선택이에요.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돕고, 도울 수 없으면 안 도우면 돼요. 자기 인생은 자기가 결정하면 됩니다. 질문자 보고 본인 인생 살지 말라고 한 사람이 있어요? 질문자는 아직 어린아이라서 자기 혼자 인생을 못 사는 거예요. 어머니 집에 가서 얼쩡얼쩡 거리면서 사랑을 구걸하고 간섭해야 합니다. 오늘 제가 말을 심하게 했나요? (웃음) 즉문즉설은 강연장에서 해야 눈에 눈물이 팍 나도록 얘기를 해 줄 수 있는데 온라인이니까 조심히 얘기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지금 진짜 생각 잘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질문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대한민국 집집마다 부모 자식, 형제자매 간에 원수가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별 거 아니라는 겁니다. 어느 집에나 다 있는 뻔한 이야기예요. 생각을 딱 바꾸세요. 지금 잘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질문자가 좀 커야 하니까 젖 떨어지거든 다시 오세요. 그때 또 얘기합시다.”(웃음)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작년에 음주운전이 세 번째 적발되었고, 가게 운영에도 어려움이 있어 심적으로 많이 힘듭니다. 앞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 제왕절개를 하고 건강한 여아를 출산하였지만 수술 부위에 문제가 생겨 피부 유착이 되었고, 흉측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랑으로 아이를 안아 주어야 하는데,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탓하기도 하고, 아이가 밉기도 하고, 결혼을 왜 했나 싶기도 합니다. 어떡하죠?

대화를 다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한 분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던 질문자도 한층 밝아진 얼굴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혼나서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래도 스님하고 대화했으니 정말 영광이고 행복합니다.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질문자 덕분에 오늘 드디어 온라인에서도 즉문즉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온라인 즉문즉설로 바뀌고 법륜스님이 야단치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이런 분들이 가끔 나와야 스님 진가가 보입니다. (웃음) 저와 대화를 하고 나서 원수 될까 봐 걱정했는데 끝에 웃으면서 소감을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중이 이런 게 다 있나? 내가 힘드니까 너한테 상담했지, 너한테 야단맞으려고 상담한 줄 아냐?' 이렇게 화가 나서 확 화면을 꺼버리고 나갈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자기 할 얘기 다 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즉문즉설에서는 질문자처럼 해야 해요. 문제가 안 풀리면 주장을 해도 괜찮아요. 오늘 오래간만에 즉문즉설다운 즉문즉설이었네요. 고맙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보세요. ‘다람쥐도 살고 토끼도 사는데 뭣 때문에 사람이 못 살겠나!’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사는 게 편해집니다.

그럼 행복한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오늘 질문자처럼 내 기준으로 가족을 간섭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마세요.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겁니다. 내가 줄 게 있으면 나눠주고 그저 살펴보고 오셔야 합니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늘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까? 만날 때는 반가웠는데 헤어질 때는 '다시는 오나 봐라.' 이런 결심하고 헤어지는 명절이 안 되도록 관점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오랜만에 스님의 직설화법과 질문자들의 솔직한 고민을 들으며 시청자들의 가슴도 뻥 뚫리는 시간이었습니다.

1월 29일부터 설 연휴인 4박 5일 동안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 머물며 온라인 명상수련에 참가했습니다. 내일은 온라인 명상수련 회향식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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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끼던 동생에게 때아닌 욕을 듣고 맞고 나서 너무 비참해 구글을 떠돌다가 찾아왔습니다.
역시 지나침은 우군요! 덕분에 큰 깨달음 얻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를 배워갑니다. 간섭하지 않기, 명심하겠습니다. 간섭하던 에너지로 저 자신을 가꿔나가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평안한 나날들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2022-02-17 19:57:29

김은혜

제 얘기인 것 같아요. 제가 몸만 큰 어린아이입니다. 제 인생을 살겠습니다. "스님의 하루" 를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2022-02-10 07:06:09

조혜원

스님... 저도 남의 인생. 남의집일에. 남일에 주제 넘게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건강하세요.스님🙏

2022-02-09 10: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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