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26 종교인 모임, 수행법회
"일자리가 점점 없어지는데, 괜찮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도 서울 정토회관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종교인 분들을 한 분씩 정성껏 맞이했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이 차례대로 도착하자, 스님이 직접 농사지은 채소로 만든 반찬과 밥, 국이 나왔고,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이 새해 첫 모임입니다. 목사님께서 덕담을 해주세요.”

스님이 목사님에게 새해 덕담을 청했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우리 종교인들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이 참 소중한 것 같아요. 성경에도 마태복음 9장에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종교가 다르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같이 해온 것을 보면, 우리 종교인들이야 말로 성인들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들 같아요. 새해에도 한결 같이 모임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의 덕담이 끝나자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아멘!” (웃음)

식사를 마치고 나서 먼저 스님이 최근 북한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북-중 교역은 기차가 하루에 20량 정도의 물량을 싣고 단동에서 신의주로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는 1000량 정도의 물자를 이동하기로 북한과 중국 사이에 합의가 되었다고 해요. 앞으로 50일 정도는 물자 이동이 계속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시장에 풀릴 수 있는 물품들은 아니고,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건축자재, 약품, 생필품 등이 일부 들어가는 것 같아요. 아마도 2년 전에 예약되어있던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면서 중단된 물품들이 지금에서야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달러 가치가 좀 올라가고 있어요.

식량 사정은 어려운 곤궁한 상태입니다. 쌀값이 1kg에 4800원 정도인데, 밀가루의 가격이 1kg에 1만 원을 넘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밀가루는 수입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밀을 심으라는 당국의 지시 가 내려가고 있는데, 옥수수밭에 밀을 심으면 식량 수확량이 많이 떨어진다고 해요. 필요한 식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전체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런 해법은 식량 생산량을 오히려 감소시킬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량난을 더욱 가중시키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있어요.

조만간 로켓을 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지만 외부에서는 ICBM 미사일이라고 추측을 하죠. 만약 남한의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에 로켓을 쏘게 되면 남한에도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이어서 종교인 분들은 앞으로 남북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전망해 보았습니다. 특히 곧 있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들 우려되는 점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대통령 후보 중에 힘을 통한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심지어 선제타격을 이야기했을 때 젊은 사람들이 시원하다고 반응하는 걸 보고 많이 놀랐거든요...”

“군사력만 놓고 보면 남한이 세계 6위이고, 북한은 25위입니다. 군사력은 남한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유하고 있어요. 거기다가 남한에는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미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남한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북한의 안보 위협은 실질적이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군사력 문제는 전문가들도 다 그렇게 평가하지만, 언론이 왜곡된 정보를 계속 흘려보내는 문제도 심각한 것 같아요...”

“진보 정권 역시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관계를 정부가 모두 주도해버리고, 민간의 남북 교류 영역을 축소시켜 버렸거든요. 민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지원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습니다...”


토론을 거듭하다 보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남한 국민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북한 주민들의 곤궁을 걱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달에 또 뵙겠습니다. 설 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곧이어 10시부터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연이어 손님들이 찾아와서 미팅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약속된 미팅을 다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가볍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매서운 추위도 이제 한풀 꺾인 것 같습니다. 소한과 대한을 지났으니 아직 봄은 오지 않았지만 더 이상의 추위는 없어진 시기입니다. 설과 입춘을 지나면 봄을 맞이하게 될 것 같네요.

수행이란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

12월과 1월의 날씨가 유난히 추웠습니다. 추위가 있었지만 이미 다 지나갔습니다. 그것처럼 인생의 어려움도 그때 그때는 힘들지만 지나 놓고 보면 또한 별 일 아닙니다. 지나 놓고 보면 별 일 아닌 일들을 그때 그때도 별 일 아닌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인생살이가 힘들지 않겠죠. 우리는 늘 그때 그때는 힘들다고 해놓고 지나 놓고 나서는 ‘그때가 좋았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지금이 좋은 줄 알아야 해요.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 지금이 좋은 줄 알지 말고, 지금 바로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이 수행입니다.”

오늘은 4주 간의 기획 강좌 중 세 번째 시간으로 집값, 주식에 이어서 ‘일자리’가 오늘의 법회 주제입니다. 먼저 일자리 문제와 관련된 영상 자료를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의 끝 무렵 여러 대중들이 스님에게 한 질문들이 소개되었습니다. 플랫폼 노동을 하는 30대 청년, 아이가 둘인 40대 가정주부, 은퇴를 걱정하는 50대 후반 직장인의 질문이었습니다.

  • 대학을 나오고 자격증도 있지만 현재에는 배달 알바를 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에 취직하거나 힘든 일을 하면 되지 않냐는 얘기도 듣지만,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게 좋을지 고민입니다.
  • 아이들이 크면서 교육비, 생활비가 부담스러워지고 있습니다. 남편이 버는 돈만으로는 빠듯해지면서 같이 맞벌이라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 이제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연금 등이 있기는 하지만 다들 어렵다는 자영업에 뛰어들기도 그렇고 새로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스님은 질문을 경청한 후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지 반문하며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좋은 일자리란 무엇일까요?

“어떤 게 좋은 일자리일까요? 사람들은 일은 적게 하고, 편하게 하고, 위험하지 않은데, 월급은 많이 받는 직업을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일이 많고, 어렵고, 위험한데, 월급을 적게 받는 직업은 나쁜 일자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좋은 일자리를 찾습니다.

예를 들어, 일자리가 10개 있으면, 그중에 어떤 일은 월급이 많고, 어떤 일은 월급이 적고, 어떤 일은 위험하고, 어떤 일은 덜 위험하고, 어떤 일은 편하고, 어떤 일은 어렵습니다. 조건이 다 똑같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한 직업군 내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또 다른 직업군과 비교하면 쉬운 편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인식은 상대적입니다. 내가 한 달 동안 일하고 100만 원을 받는데 주위 사람들은 모두 30만 원을 받는다면, 내 일자리가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내가 한 달에 200만 원을 받는데도 주위 사람들이 다 500만 원을 받는다면, 내 일자리가 나쁘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워요.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똑같은 일자리라고 해도 주위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서 어떤 때는 좋은 일자리라는 평가를 받고, 어떤 때는 나쁜 일자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 ‘모든 일자리가 다 좋은 일자리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좋은 일자리란 없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일자리란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절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가 10개라고 하면 개중에 좀 나은 조건에 있는 일자리는 결국 소수가 차지할 수밖에 없어요. 또 10개 중에 나쁜 일자리도 역시 누군가가 맡아야만 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를 찾는다고 할 때 ‘좋은 일자리’란 상대적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자리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쁜 일자리도 상대적이에요. 상대적으로 나쁜 일자리는 경쟁이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자리 10개와 사람 10명이 있다고 할 때, 좋은 일자리에는 7명이 몰리니까 일자리가 부족하지만, 나쁜 일자리의 경우 일자리는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어요.

이런 이유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청년층이든 중년층이든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또 사람을 못 구해서 비어 있는 일자리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의 현실에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자리가 없는 거예요. 일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변화가 많은 시대, 지금을 살아가는 방법

기본적으로는 모든 시대에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특별히 심해지는 시기가 있어요. 바로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할 때입니다. 첫째, 기존의 일자리에 적합한 기술과 지식을 익힌 사람은 남아도는데 기존의 일자리가 줄어서 일자리가 부족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둘째,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데, 그 새로운 일자리에 맞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일자리는 있는데 사람이 부족한 경우도 발생합니다. 일의 성격 때문에 사람은 많지만 일자리가 부족한 경우가 있고, 반대로 일자리는 많은데 사람이 부족한 경우도 있어요. 이런 현상은 어느 시대에나 찾아볼 수 있어요. 다만 변화의 시대에는 일자리와 일자리를 찾는 사람 사이에 불균형이 더욱 심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변화의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지금만 변화의 시기인 것은 아니에요. 지금부터 50년 전에도 역시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변화의 시기에는 늘 있던 직업이 많이 없어집니다. 모든 직업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있던 직업이 일부 없어지고 나서 조금 지나면 새로운 직업이 또 생겨납니다. 있던 직업이 없어지니까 기존의 노동자를 위한 일자리가 없어지고, 또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지만 그 직업에 준비된 사람이 아직 없기 때문에 일할 사람이 없어요. 사회가 급격하게 바뀌면 바뀔수록 그 간극이 심해질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혼란을 더 크게 겪을 수밖에 없어요. 다만 그 고통을 줄이려면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합니다. 즉 복지 정책을 펼쳐서 변화의 시기에 수반되는 일시적인 혼란을 최소화해야 해요.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서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도 겸해져야 합니다.

미래에는 당연히 인구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 감소 현상을 보고 너무 불안해 하거나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고 여길 필요는 없어요. 이런 불안감은 과거의 직업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자동화가 심화될수록 기존의 직업은 빠른 속도로 없어집니다.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긴 하지만, 아이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보다 직업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한 시기를 거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좀 더 시차를 두고 뒤따라서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겨납니다. 일정한 혼란기가 지나면 사람들이 훈련과 교육을 받아서 새로운 일자리에 정착하게 돼요. 다만 그 ‘새로운 일자리’라는 게 어떤 일자리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안정된 직장에서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지만 정규직이 못 되거나, 조기 퇴직하거나, 쫓겨나는 것이 사회적인 이슈입니다. 즉, 일하고 싶은데 고용주 측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죠. 그러나 앞으로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정반대 상황이 전개될 겁니다. 회사에서 나가겠다는 사람을 잡는 것이 더 큰 사회적 이슈가 될 수도 있어요. 왜 그럴까요?

60세가 넘어서 은퇴하면 뭘 해보려고 해도 너무 늙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5년 정도라도 일찍 회사를 나와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조기 은퇴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질 거예요. 앞으로는 이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면 나중에는 회사에 취직한 지 10년도 안 돼서 퇴직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자금만 벌면 자기 나름대로 평생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니까 사람들의 평균 근무 기간이 짧아지는 거예요. 또 앞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한 개의 직업만 갖는 게 아니라 재택근무와 온라인 기술 덕분에 두 개 내지 세 개의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면서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지금은 정규직 일자리가 없다고들 하지만, 10년만 지나면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그 정규직을 맡아 일할 사람이 오히려 부족해질 거예요.

지금은 회사와 노조가 타협을 해서 동일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에게 저임금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문제가 되고 있잖아요. 이런 비정규직은 물론 없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규직으로 모두 전환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에요. 앞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정규직은 소수가 되고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이 다수가 될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직업에만 종사하는 게 아니라 서너 가지 일을 해서 소위 ‘투 잡’, ‘쓰리 잡’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확률이 높아요.

그런데 이런 사회 변화가 꼭 불안정한 사회일까요? 과거와 비교하면 불안정하다고 할 수 있지만, 막상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이 일상적인 사회가 되면 하나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인식을 하기 때문이에요. 태어났는데 세상이 모두 이런 식이라면 누구나 그 세상에 적응하게 마련입니다. 변화가 심하게 일어날 때 기존의 것과 비교해서 ‘이게 좋다’, ‘저게 나쁘다’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지, 비교할 바가 없어지면 ‘좋다’, ‘나쁘다’ 하고 말할 근거가 없어져요. 좋고 나쁜 건 본래 없기 때문입니다.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다들 기후 위기를 말하지만, 과거의 기후에 비해서 나빠졌다고 말할 뿐이지 기후 자체만 보면 그냥 그대로 기후입니다. 다만 기존의 기후에 적응해 살던 인간 종이 기후가 변하면 굉장한 위기에 처하게 되는 건 맞아요. 반면에 변화된 기후에 맞게 진화한 새로운 종의 입장에서는 기후 변화일 뿐이지 기후 위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기후가 바뀌면 생태계를 주도하는 종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그것처럼 인간 사회도 급격한 변화에 따라 세상을 주도하는 그룹이 바뀌는 겁니다. 그러니 변화에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어느 시대와 비교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작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형편이 못 해졌다고 평가할 수 있어요. 그러나 10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사회가 많이 좋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는 괜찮은 사회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사회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다 함께 이 사회를 개선해 나가자.’

이런 관점을 가져야 안정된 심리를 바탕으로 변화와 개선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불안한 심리를 갖고 있으면 혼란스러운 사회가 됩니다. 수행자라면 이런 관점에서 일자리 문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어서 줌으로 입장한 방청객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여러 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과거보다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풍요로워졌는데 왜 삶은 더 힘들어졌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과거보다 부유해졌는데 왜 과거보다 힘들게 사는 걸까요?

“어렸을 때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그때는 어른들이 해가 뜨면 나가서 농사를 짓고, 해가 지면 들어와서 쉬었습니다. 한 해 농사가 끝난 겨울에는 사랑방에서 노래도 하고 춤도 추는 등 놀면서 한가로이 지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 모습을 보면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출근을 해야 하고,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옵니다. 겨울처럼 긴 시간을 쉴 수 있는 시기도 없이 1년 사계절 내내 이런 생활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과학 기술도 많이 발전하고 산업화도 되었는데, 왜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보다 힘들게 사는 걸까요?”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옛날 사람들처럼 최소한으로 필요한 옷을 입고, 최소한으로 필요한 음식을 먹고, 최소한으로 필요한 집을 가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노동을 덜 해도 되고 여유도 생길 거예요. 옛날에는 하루에 여덟 시간 일을 해야 밥을 먹고살 수 있었다면, 요즘은 두 시간만 일해도 밥을 먹고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소비를 계속 늘리니까 옛날보다 더 바빠진 거죠. (웃음)

소비를 줄이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어요. 여유를 누리고 싶다면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머리카락도 매일 다듬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저처럼 머리를 깎아버리면 훨씬 관리가 수월해요. 옷을 종류별로 많이 사면 돈도 많이 들고, 갈아입거나 빨래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저처럼 같은 옷을 계속 입고 다니면 옷에 돈과 시간이 별로 들지 않아요. 간소하게 먹고 입고 잔다면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하루에 한두 시간만 일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를 계속 늘리기 때문에 현재 수입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과학 기술이 발전해서 더 많은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소비가 늘어나니까 늘 시간이 부족하고 늘 바쁘게 된 겁니다.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 1인당 GDP가 100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인당 GDP가 3만 달러가 되었는데도 더 바빠졌어요. 앞으로 30만 달러가 되어도 여러분은 더 바빠질 겁니다. 새롭게 소비해야 할 것들이 더 많이 생기기 때문에 또 바빠지는 거죠. 하루에 손톱을 몇 번 손질해야 한다든지, 머리를 몇 번 만져야 한다든지, 패물을 더 많이 달아야 한다든지, 화상에 들어가서 몇 시간은 영상을 더 봐야 한다든지, 집을 어떻게 꾸며야 한다든지, 수입이 늘어난 만큼 소비가 더욱더 늘어날 겁니다.

월세방 하나 못 구하던 사람이 열심히 돈을 벌어 월세방을 구하면 이제는 전세방을 구하기 위해 돈을 모읍니다. 당시에는 결혼할 때 가장 많이 해주는 선물이 쌀통이었어요. 쌀통이 나오기 전에는 쌀을 그냥 쌀자루에 넣어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버튼을 누르면 한 컵 분량의 쌀이 나오는 쌀통이 나오자 큰 인기를 끌었어요. 옆집이 사니까 나도 따라서 샀던 거죠. 신혼살림에는 이 쌀통이 꼭 있어야 하는 것으로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이렇게 새로운 물건이 나올 때마다 집에 갖춰야 하는 물건들이 계속 늘어납니다. ‘선풍기는 있어야 한다’, ‘냉장고는 있어야 한다’, ‘세탁기는 있어야 한다’, ‘전세에 머무를 게 아니라 내 집 마련을 해야 한다’,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옮겨야 한다’ 이렇게 사람의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이제는 내 집 마련을 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잖아요. ‘어느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 ‘교통이 좋아야 한다’, ‘학군이 좋아야 한다’, ‘어떤 시설을 갖춰야 한다’ 이렇게 끝이 없습니다. 옷도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명품을 입어야 해요. 그렇게 따지다 보면 1만 원짜리 옷을 입다가 10만 원짜리 옷을 입게 되고, 나중에는 100만 원짜리 옷을 찾게 됩니다. 그러니 아무리 일을 하고 아무리 돈을 벌어도 늘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한마디로 소비가 늘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연 나에게 정말 필요한 소비인가?’

소비하기 전에 이 질문을 먼저 던져봐야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배고프면 밥만 먹으면 됐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밥 먹고 나서 반드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해야 하잖아요. 3천 원짜리 라면을 사 먹더라도 커피는 6천 원을 주고 마십니다. 그러니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되겠어요?

돈을 좀 더 많이 벌게 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돈이 좀 더 생기면 소비 수준도 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수입이 늘면 차도 더 나은 차로 바꾸고, 집도 더 넓은 곳으로 옮기잖아요. 그러니 늘 바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여유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선에서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 역시 상대적이라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경험한 걸 가지고 평가를 할 따름이에요. 지금 우리가 조선시대 역사를 공부해 보면 ‘이야, 조상님들은 극심한 여성 차별 속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양반과 상놈을 그렇게 차별하는 가운데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지금 보면 굉장한 문제이지만, 그 시대에 태어나서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별로 문제의식이 없었을 겁니다. 태어나 보니 세상이 본래 그랬기 때문입니다.

왕조 시대에는 왕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게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도 아버지가 재벌이라면 아들이 재벌 2세가 되는 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잖아요. 그러나 민주사회에서는 왕의 아들이라고 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앞으로는 아버지가 재벌이라고 해서 아들이 재벌이 되는 것이 허용되지 않게 될 겁니다. 변화된 사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도 일상으로 받아들이면 다 합당한 일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북한을 비판하지만, 북한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에게는 그 체제가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항상 자기의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셈이에요.

오늘날 돈 문제가 우리 사회에 여러 영향을 끼치는 것은 자본이 대물림되는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입니다. 왜 자본이 대물림되어야 합니까. 내가 생산해서 번 돈은 내가 쓰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남은 돈은 사회로 돌려주고, 자식들은 또 새롭게 시작해야죠.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어요. 내가 어떻게 보고 듣고 배웠고 믿는지에 따라 세상을 보는 것이 달라져요. 그것만이 사실이에요.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정의도 상대적인 정의예요. ‘이것보다는 그래도 저것이 낫다’라고 하는 정도의 수준일 뿐입니다. 크게 보면 정말로 그게 나은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이 제시하신 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모순으로부터 근원적으로 벗어나는 해탈의 길이 있습니다. 둘째, 이 세상을 인정하되 그중에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길이 있어요. 다시 말해 꿈에서 아예 깨는 길과 악몽보다는 좋은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하는 길이 있는 거예요. 꿈에서 깨는 것은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좋은 꿈을 꾸는 것은 크게 보면 꿈을 꾸고 있다는 점에서는 악몽과 같지만 그래도 꿈을 깨기 전까지는 조금 낫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사회적인 개선은 근본적으로 보면 조금 더 좋은 꿈을 꾸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꿈을 꿀 수밖에 없다면 악몽보다는 좋은 꿈을 꾸는 게 더 낫겠죠.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꿈에서 깨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말한 문제도 꿈속에서는 영원히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꿈만 깨면 단박에 해결할 수 있어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좀 더 좋은 술을 마시고 싶고, 좀 더 좋은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할 때는 그 ‘좋음’에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술을 안 먹고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아무 일도 아니에요. 한마디로 아무 문제도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처럼 지금 우리는 소비에 중독된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소비에 중독된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있기 때문에, 중독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질문하신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몇 명의 질문을 더 받고 스님이 마무리 인사를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듣기에는 제 이야기가 가슴에 좀 다가가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다음 주에는 ‘가족관계’를 주제로 대화를 나눠볼 예정이라는 공지가 나간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법회가 끝나자마자 손님이 찾아와서 대화를 나눈 후 서울 정토회관을 나왔습니다. 밤 10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복잡한 도심 속을 빠져나왔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3시간 30분 동안 달려 새벽 1시가 넘어서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3월 개강하는 정토불교대학 준비팀과 화상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설연휴 휴간 공지>

휴간 기간 1월 31일(월)~2월 4일(금)

코로나19 바이러스 오미크론 변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데 가운데, 정토회에서는 설 연휴 기간 동안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온라인 명상수련을 진행합니다. 설연휴 기간에도 스님의 하루는 계속 되지만, 스님의 하루 제작팀이 온라인 명상수련에 참여하는 관계로 스님의 하루는 잠시 휴간을 하고자 합니다. 스님도 4박 5일 동안 명상을 하며 연휴를 보낼 예정입니다.

온라인 명상수련을 마치고 2월 5일 아침에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전체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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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감사합니다 스님, 일자리에 대한 내용이 참 좋았습니다. 소비를 줄여서 여유롭게 살아야겠네요 감사합니다

2022-02-04 14:27:24

변지현

소비를 좀줄여야겠다는생각이듭니다.
평화가보장된 사회를 기원합니다
좀더나은세상을 바래봅니다

2022-02-03 16:06:26

굴뚝연기

[… 다시 말해 꿈에서 아예 깨는 길과 악몽보다는 좋은 꿈을 꾸기 위해 노력하는 길이 있는 거예요. 꿈에서 깨는 것은 해탈로 가는 길입니다.] 햐~스님!참으로 감탄을 금치못할 법문!^^*
[…반면에 변화된 기후에 맞게 진화한 새로운 종의 입장에서는 기후 변화일 뿐이지 기후 위기가 아닙니다. 이렇게 기후가 바뀌면 생태계를 주도하는 종이 바뀌게 되는 거예요.]

2022-02-03 0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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