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향음법사님 첫번째 이야기 - 술법사가 되다

“낮에는 돈 벌고 저녁에만 활동하는 반쪽짜리 법사입니다!” 인터뷰 시작 전 자기소개 요청에 한 첫 인사였습니다. 의사도 각 부분 전문의가 있듯이, 술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향음 법사님을 찾아가 보라고 할 정도로 술 문제에 능통한 법사님입니다. 겸손하게 반쪽이라 하지만, 온 쪽보다 센 반쪽의 힘을 지닌 향음법사님. 술법사가 된 이야기, 지금부터 들어봅니다.

술이 보약이라니? 알코올 중독 남편

남편은 부드럽고 자상한 성격입니다. 직장생활이 많이 힘들었나 봅니다. 힘든 일상의 어려움을 술로 푸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이었고 직장 상사 험담을 하면 험담하는 남편을 탓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남편은 혼자 술 먹는 날이 많아졌고 말수도 적어지고 급기야 공황장애까지 왔습니다.

세 번째 인도성지순례. 월광법사님과 함께(오른쪽 향음법사님)
▲ 세 번째 인도성지순례. 월광법사님과 함께(오른쪽 향음법사님)

저 또한 그런 남편이 걱정되고 불안하여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도 마음이 늘 조마조마 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알코'까지 치고 멈추기도 여러 번. 남편에게 알코올 중독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 같아 겁나고 두려웠던 하루하루. 겁나고 피하고 싶은 마음에 어떡하지 고민만 하다가 어영부영 2년을 보냈습니다. 남편은 점점 사람 만나는 것을 힘겨워했고, 마치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술을 마구 마셨습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천일결사 입재식에서 보물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알코올 전문병원에서 법륜스님 법문 중 술과 관련된 비디오테이프를 입원 환자들에게 틀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해결의 열쇠를 찾은 마음으로 그 다음날, 수행담을 발표한 도반을 만나 뭐라도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모임에 참가해 스님 법문 테이프를 비디오에 넣고 빼는 일을 하며 술 문제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모임에 참가했을 때, 명심문으로 외우던 글귀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양쪽 어깨가 가벼워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습니다. “ 신이시여 어쩔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로움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화로움'이라는 글귀가 절망하려는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남편의 음주를 조절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남편의 술 문제를 통해 제 부족함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편도 살고 저도 사는 길을 모색하면서 조금씩 힘이 생겼습니다. '오늘 하루만 살자'라는 구호는 과거의 고통으로 힘들일 필요없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현재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게 해 주었습니다.

잔다르크 모임, 우리가 남편을 그렇게 만들었다

알코올가족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라는 권유로 직장을 마치면 서초동에서 수유리로 3년을 다녔습니다. 가족 상담실에서 7명 정도가 꾸준히 상담받으며 서로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한번은 우리는 어쩌다 이런 남편을 만나 사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통점이 몇 가지 나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다들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상황이 좋으면 이야기하고, 상황이 좋지 않으면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는 성격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잔다르크 같은 기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함께 나누어서 일하기보다는 혼자 해버리고 마는 성격들이라 뭐든지 자기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남편이 해놓은 설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또 하고, 남편이 뭐라도 하려고 하면 ‘그냥 있어!’ 하며 저희가 다 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서로의 공통점에 무릎을 치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늘 드세고 경직된 우리를 대하려면 술이 필요했을 우리의 남편들. 마침내 이른 결론은 ‘우리가 남편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20년 결혼 생활 동안 20번을 넘게 남편을 입원시킨 가정도 있었습니다. 술 중독으로 삶이 망가졌음에도 대부분은 이혼하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인만을 의지하는 남편이 불쌍해서 잔소리와 병원 입원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연극 같은 기막힌 이야기에 모두 눈물을 흘리고 웃었습니다. 우리가 남편들의 의존심을 키웠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동병상련하는 마음으로 3년을 함께 보내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문경수련원 불교대학수련 바라지(윗줄 왼쪽 두 번째)
▲ 문경수련원 불교대학수련 바라지(윗줄 왼쪽 두 번째)

‘이거 별거 아니네.’ 하는 마음의 근력도 생겼습니다. 온실과 같은 정토회를 떠나보니 세상은 전쟁터였습니다. 그나마 술이라도 위안삼아 버텨나가는 사람들이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술이 보약이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행복 할 수 있다. 행복도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임을 몸으로 느끼고, 알게 되어, 차라리 기뻤습니다.

지옥에 빠지래야 빠질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석에 머리를 조아릴 때의 편안함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진 할 수 있고, 법문을 들을 수 있고, 봉사 할 수 있어서, 오롯하게 저에게 집중할 수 있는 때였습니다. 수행 정진을 한 덕분인지, 남편을 그저 환자라고 생각해 그런지, 저는 남편에 대한 미움은 없었습니다. 함께 가족 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 남편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식에게까지 전이 되었는지, 자녀들이 심리적, 정신적 문제로 클리닉에 다니는 이중고를 보았습니다.

저는 정토회를 중심으로 일상을 꾸렸습니다. 아침 기도는 안 빼고 하고, 직장을 옮기더라도 법문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일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초 법당에서 저녁 봉사를 만들어서 했습니다. 다행히 월급도 조금씩 오르고, 주말에는 쉴 수 있는 직장으로 옮겼습니다. 한의원에서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없다 보니 약간 차별이 있어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직장을 마치고 꼬박 1년을 학원에 다녔습니다. 실습 400시간도 채워야 해서 쉬는 주말마다 했습니다. 몸이 힘들어 몸살이 나고 걸을 때 다리가 어긋났습니다.

종로 대각사, 민족의통일을 기원하는 행사에서 발원문 낭독하는 모습
▲ 종로 대각사, 민족의통일을 기원하는 행사에서 발원문 낭독하는 모습

주말에는 쉬니 법사교육을 받았습니다. 물론 직장에 다니는 저를 위해 시간을 전적으로 맞춰준 도반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이 일도 불가능했습니다. 정토회 봉사가 힘들다고 하지만 사회생활은 더했기에, 이런 사회생활 와중에 법사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제 인생 성공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토회 덕분에 생긴 사회 관계망으로 남편 문제에 사로잡히지 않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힘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눈만 옆으로 돌리면 ‘나누기해라, 수행해라, 법사님 상담해라, 명상 수련 가라, 나누기 수련 가라’ 했습니다. 그 촘촘한 그물망들을 보며 ‘나는 지옥에 빠지래야 빠질 수 없구나!’ 하는 든든한 부처님 뒷배를 느꼈습니다.

적어도 그 가족의 아픔이라도

남편의 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연구했습니다. 정토회에서 남편들 술 문제로 속상해하던 도반들을 찾았습니다. 이 집 저 집에서 하루하루 자면서 ‘대체 어떤 생각으로 남편하고 그렇게 오래 살았나?’ 물어보았습니다. 한 도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살아! 젊은 시절에는 술 취한 남편을 내가 질질 끌고 오고, 지금은 아이들이 데리고 오고, 어떨 때는 알아서 들어오고 그래. 나는 회의 시간 되면 콩나물국 끓여 놓고 그냥 나간다. 그렇게 살면 되지, 뭘 어떻게 하겠어.” 그렇게 그들은 술 중독인 남편을 평생 껴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상담 모임 활동과 만행을 통해 깨달은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것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병원을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할 텐데, 한 달에 200만 원이 드는 병원비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냥 받아들이고 살아보는 것도 괜찮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법사가 된다면 '술 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술 마시는 사람을 술을 못 마시게는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가족의 고생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 경험을 이야기로 나누니 남편이나 자녀의 술 문제로 힘들어했던 도반의 고민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남편을 놓으니 남편이 왔다

남편이 몰래 마신 막걸릿병이 수북이 쌓인 것을 볼 때마다, 속에서 욕이 나왔습니다. 제가 술 먹는 걸 싫어하는 줄을 아는 남편은 동네 입구 편의점 같은 곳에서 먹고 집에 들어와 조용히 잠을 잤습니다. 본인도 정신이 딱 끊기면 못 돌아올 것이 걱정되었는지 멀리 가서 마시지는 못했습니다,

수행을 꾸준히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술병이 오롯이 술병으로 보였습니다. ‘안주할 게 없을 텐데 도대체 뭘 놓고 먹었을까?’ 염려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술병을 보는 제 마음이 편안해지니 술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두부김치, 오징어 볶음 등 술안주다 싶은 건 모두 다 만들어서 술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마시지 말고 집에서 마시라고 했더니 남편은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 순간 마음에서 이 사람을 탁 놔 버렸습니다. ‘건강 안 좋아져서 일찍 죽어도 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질러 걱정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결혼 전 ‘남편이 공부 잘해서 그 덕에 숟가락 하나 얹고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계산으로 남편을 선택했는데 그건 욕심이고 거지 근성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나는 가장이다’라고 스스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으로 봉사자교육을 받고 서초법당 활동가들과 함께(오른쪽 두 번째 향음법사님)
▲ 처음으로 봉사자교육을 받고 서초법당 활동가들과 함께(오른쪽 두 번째 향음법사님)

가난, 나를 단련시킨 죽비

재건축을 앞둔 오래된 집에 살았습니다. 정말 추웠습니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한겨울에도 보일러를 거의 틀지 않았습니다. 저와 딸은 침낭에서 자고, 남편은 환자이니 1인용 온수 매트를 사서 깔아 주었습니다. 빨간 보온 물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넣고 침낭 안에 넣어 ‘몇 시간 따뜻함이 유지되나?’ 또 ‘어느 신체 부위에 끼고 자면 온기가 오래 가나?’ 나름 실험하면서 재미나게 살았습니다. 한겨울에도 가스비가 4만 원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집에 오니 남편이 온수 매트를 가로로 해놓고 ‘추운데 여기 와서 자라’고 했습니다. 반쪽씩 깔고 등허리만 따뜻하게 하고 잤습니다.

알코올 모임 사람 중에 돈이 있는 사람들은 남편이 퇴원하면 건강을 우려해 홍삼 등 몸에 좋은 것을 먹였습니다. 그러면 다시 힘이 좋아져서 술을 맘껏 마시고, 또 병원 신세를 지는 사람을 더러 봤습니다. 저는 정토회에서 배운 대로 가난한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삽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저는 저대로 서로 마음이 독립되었습니다. 그 사람도 좋고, 저도 좋게, 생활합니다. 가난한 삶이 저를 단련시킨 죽비가 되었습니다.

25년간 꼬박꼬박 남편이 갖다준 돈만 갖고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의 일상이 바뀌어버리니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 혼란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그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작은딸에게 어미의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무척 애썼습니다. 삶의 문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린 시기였습니다. 엉켜버린 생활의 실타래를 풀어내는데, 중심 잃고 허우적거리지 않은 것은 정토회에서 환경운동을 실천하면서 기른 힘 덕분이었습니다. 제로가 된 통장잔고를 보면서 '적게 먹고 적게 쓰기를 본격적으로 실천해 볼 때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난이 재미있는 실험이 되었습니다.

법사 수계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남편과 소주와 계란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남편이 “내가 당신에게 괴로움을 알려주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는가?”라고 말해 한참 웃었습니다. 남편 앞에서 한 번 목놓아 울고 싶은 것이 목구멍에 하나 걸려 있었는데 그 걸렸던 것이 내려가는 경험이었습니다. ‘남편이 힘들었구나....’ 남편에게 묻고 싶었던 그 많은 말들이 다 전생으로 넘어갔는지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새날처럼 살다 보니, 남편은 어느새 스스로 술도 끊고 그 빡빡했던 사람이 농담도 하고 가끔은 설거지도 하면서 저의 법사 활동에 후원을 잘해줍니다.

특집기사 인터뷰. 행자의하루팀과 향음법사님(두 번째줄 가운데)
▲ 특집기사 인터뷰. 행자의하루팀과 향음법사님(두 번째줄 가운데)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인터뷰 진행_김난희
인터뷰 지원(영상, 녹화)_김혜경
글, 편집_장준분, 박문구, 강현아
도움주신이_이정선, 백금록, 박우경, 김승희, 박정임, 전은정, 장은미, 김세영, 서지영, 권영숙

전체댓글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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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순

가슴 먹먹한 수행담 1,2편 모두 잘 들었습니다
법사님 힘들때 저도 제 인생 최대 위기였었는데
그때 이 좋은 법을 알았다면 지금 이렇게 후회하고 살지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때는 너무 힘이 들어서 "뭔가 있겠지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라고~
지금 생각하니
저도 제 3의 길을 무단히도 찾고 헤메었는데~

2022-05-20 11:46:16

김숙자

향음 법사님
반갑습니다
송파지회 김숙자입니다.
법사님 글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동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저는 일 한다는 이유로 10년전 불대도 건성으로 다니고,
법문도 제대로 듣지못하고. 있다가 올해 4월에 불대를 재 입학하여서 스님 법문에 집중하며 나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법사님 시간 되실 때 상담도 하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2-05-18 09:09:27

신지연

유쾌 상쾌 통쾌하신 향음법사님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2022-05-18 07:4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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