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특집] 대중법사님 이야기
향실법사님 첫 번째 이야기
새까매지는 마음

저를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일반회원들과 만날 즈음에는 홍제동 정토포교원이 있었을 때였고 1999년 서초회관이 건립되고 100일 법문이 진행될 때까지 총무 소임을 맡았습니다. 이후 법당이 활발하게 생기고 있을 무렵, 저는 중앙사무국(전 재산관리부)에서 소임을 맡았고 평화재단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재단 회계를 맡고 있어서 대중과 만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1991년 4월 23일은 제가 다시 태어난 날입니다. 그 전 시기를 저는 전생이라고 칭합니다. 지나간 전생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다시 태어나기까지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새까만 탄광촌, 새까매지는 마음

남편과 결혼하기 전 시댁 방문을 위해 기차를 탔습니다. 시댁에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기차뿐이었습니다. 밤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내린 도착역은 사방이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마을을 둘러 싼 산이 온통 새까맸습니다. 시댁은 석탄을 캐는 탄광촌이었습니다.

결혼 직후, 남편은 회사에서 준 사택에서 살고 제게는 시집에서 살라 했습니다.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을 상상했던 저는 영문도 모른 채 남편이 시키는 대로 홀로 시댁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의 제 생활을 예감하신 걸까요? 결혼식을 치루고 저를 시집에 데려다 주고 떠나는 친정 어머니는 집에 갈 때까지 엄청 울었다고 합니다. 제가 커온 동네와는 너무나 다른 새까만 작은 동네에 저를 혼자 두고 가기에 마음이 많이 아팠나 봅니다.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보이는 것은 온통 새까만 산과 흐르는 물까지 새까만 탄광촌. 유일한 화장실이라고는 동네 주민 모두가 같이 쓰는 공동 화장실 하나뿐인 이곳에서 남편 없는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제 마음속에 불안이 싹트고 있던 것 같습니다.

신혼이라고 하지만 혼자 시집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임신 중일 때는 새벽 동이 트면 시어머니가 부엌문을 드르륵! 여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기를 여러 번이었습니다. 시간이 됐으니 밥을 안치라는 소리였습니다. 어떤 날은 아이 젖먹이다가 깜빡 잠들어버렸는데 시어머니가 크게 화를 냈습니다. 시어머니가 외출하고 들어왔는데 며느리가 자고 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결국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야 무마되었습니다.

석탄가루가 쉴 새 없이 날리는 곳이라 아기 기저귀는 밖에 널지 못하고 항상 방 안에서 말렸습니다. 하루에도 몇 십 장씩 나오는 기저귀에 미처 다 마르지 않은 빨래한 기저귀를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런 사소함들이 쌓여 제 마음에 먹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볼모와 같은 생활을 지내는 중에 신혼방을 차릴 돈이 없어서 신부인 저를 홀로 시댁에 들어가 살라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돈이 없던 시댁은 빚을 내어 남편을 결혼시키고 그 빚을 남편보고 갚으라 했다 합니다. 그 당시 월급이 적어 제게 생활비도 제대로 부쳐주지 못한 남편이 시댁 빚 역시 매달 갚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식구는 늘었는데 들어오는 돈이 없어 쪼들리며 살다 보니 시어머니도 나름 힘들었을 것입니다.

홍제동법당 1994년 송년법회
▲ 홍제동법당 1994년 송년법회

고운 투피스를 입고 만난 불법

특정한 종교 없이 관광지에 가면 절에 들르는 정도였던 저는 1991년 4월 정토회와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가 자기가 다니는 절에 참 좋은 강의가 있다며 같이 들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강의보다 친구와의 만남에 들뜬 저는 예쁜 투피스를 입고 약속장소인 서초동 우면산 예술의전당 뒤편 대성사 언덕길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길목에서 ‘최석호 법사 반야심경 강좌’라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반야심경의 뜻도 모른 채 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가슴에 큰 응어리가 툭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본래 이것이다 할 만한 것이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으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할 뿐이다.’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을 설명하셨는데 ‘내가 헛것을 붙들고 있었구나!’ 그동안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의 사로잡힘으로 상을 붙들고 살아왔다는 것이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기둥이라 하고 귀를 만지고 부채라 한다. 누구나 눈만 뜨면 전체가 훤히 보이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법문이 끝난 후 스님의 발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바로 이거구나. 아! 나는 지금 죽어도 괜찮아.’라고 할 만큼 법문을 듣고 난 후 모든 분별이 끊어져 새털처럼 가벼웠습니다. 그때의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그러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두부 장사가 흔드는 종소리도 풍경소리로 들리고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는 염불소리로 들렸습니다. 다음 일주일 후에 있을 법문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법문을 빨리 듣고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를 시간으로 쪼개서 재었습니다. ‘48시간 남았구나, 이제 15시간 남았구나!’ 하면서 법문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 당시 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오는 신도들이 너무 많아 우면산 대성사 법당 마당에 멍석을 깔고 법문을 들었습니다. 친구와 아침 일찍 도착해 멍석을 깔아두고, 법문이 끝나면 멍석을 전부 개어서 넣어두고 오곤 했습니다. 이런 봉사로 법문에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홍제동 법당시절 성지순례(아래 오른쪽 두 번째)
▲ 홍제동 법당시절 성지순례(아래 오른쪽 두 번째)

그렇게 살고 있는데요

첫날 법문을 듣고 돌아와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전하고 싶어, 그날 받은 반야심경 자료집 뒷장에 있는 주소로 스님께 감사의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다음 법회에 참석하였더니 스님이 제 이름을 불러 기도문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기도문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저는 주문처럼 외우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남편에게는 푹 숙이고 살겠습니다.
엎드려 살겠습니다.
지시하지도 않겠습니다.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108배 기도

지금까지 지갑에 간직하고 있는 스님의 메모
▲ 지금까지 지갑에 간직하고 있는 스님의 메모

메모지를 받아든 저는 “그렇게 살고 있는데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저를 바라보는 스님의 눈빛이 싸늘해져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이 때 받은 첫 기도문은 아직까지도 제 지갑에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그냥 해보자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는 중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호흡이 힘들 정도로 흐느껴 울었습니다. 스님 앞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했지만 겉으로만 그랬을 뿐, 속으로 남편을 다 이겨먹고 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제 깊은 곳에는 작은 부인의 자식인 남편을 무시하는 마음이 가득이었습니다.

결혼할 당시 남편은 저에게 호적정리가 잘못되었을 뿐 자기 어머니가 본부인이라 했습니다. 6.25전 후라 행정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버지 호적에 자식들만 올라가 있다는 겁니다. 남편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있던 저는 시어머니의 먼 친척으로부터 다른 사실을 들었습니다. 시어머니는 본 부인이 아니라 호적에 올라갈 수 없는 인연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미 유부남이었던 아버지를 만나 사형제를 낳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이 말해준 것과 다름을 물었더니 오히려 남편은 그래서 무얼 어쩌라는 거냐며 쏘아 붙였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속으로 무시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겉으로는 ‘예, 예.’하고 들어도 흘려듣고 행동으로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향실법사 님과의 인터뷰(셋째줄 오른쪽 두 번째)
▲ 향실법사 님과의 인터뷰(셋째줄 오른쪽 두 번째)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 대중법사님 특집기사 발행일정표

다음 주 금요일에 향실법사 님의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 위 이미지를 누르면 텔레그램 '정토행자의 하루' 채널로 이동합니다.

인터뷰 진행_권영숙
인터뷰 지원(영상, 녹화)_김혜경
속기 및 녹취_강현아, 박문구, 백금록, 서지영, 이정선, 임명자, 장은미
편집_김난희
도움주신이_전은정

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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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웅

2015년 즉문즉설을 처음 접했을 때 생각나 눈시울이 졌네요
머물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1-23 07:16:59

이명진

감사히 잘읽어습니다~^^향실법사님 두번째 이야기가 무척궁금하고 기다려지네요 ㅎㅎ

2022-01-20 19:15:00

강현화

겉으로만 그랬을뿐 속으로 남편을 다 이겨먹고 살았음을 알았습니다 라는 문구에 돌이켜 봅니다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지 못하고 살았음을 깨닫습니다 늘 놓치지만 횟수가 조금씩 줄며 지난날 내 꼬라지를 보아와 준 주변분들 특히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01-18 11: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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