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경산법당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늘 “네~ 그렇지예?”라며 공감해주시는 이윤선님은 마음속에 사랑의 화수분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이윤선님, 그 사랑의 화수분 ‘정토행자의 하루’에 내어주세요~”라고 하니 기꺼이 “그러지예~” 합니다. 경산법당에서 모둠장과 행복학교 지원담당을 맡고 계시는 이윤선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아요.

꽃보다 더 환한 이윤선님
▲ 꽃보다 더 환한 이윤선님

모험같은 첫 선택- 남편과의 인연

저는 부산에서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식구들이 나서서 해결해 주는, 자립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겉모습, 조건 등이 삶의 기준인 욕심 많은 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학원에 가라고 하면 학원에 가고, 과외를 시키면 과외를 받았습니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저는 학원에 가서는 놀고, 과외를 받을때도 성실하지는 않아도 어머니가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수동적으로 자라면서 저는 일상에서 점점 ‘안 해, 못해’라는 말이 익숙해졌습니다.

중매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의 과하지 않은 행동과 외모, 말투에서 진솔함이 느껴졌고 막연한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자그마한 체구는 친정 식구들과 비슷해서 익숙하고 편안했습니다. 세 번 만나고 3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선을 많이 봤지만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처음 들었습니다. 모험적인 저의 첫 선택이었습니다. 남편에게 덕 보려는 마음은 1도 없었고 저의 감정에 충실했습니다. 홀어머니에 외아들이라며 식구 중 몇 명은 반대를 했지만 저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혼해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부산을 떠나 인천에서 살았는데 낯선 곳이라서 시어머니가 계셔서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불편한 것이 많았습니다. 어른이 계셔서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주말에는 더 일어나기 싫었습니다. 밖에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인사하는 것도 처음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고를 해야 하는 것처럼 갑갑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를 야단치고 싶을때도 어머니께서 오냐오냐하시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객관적으로 보면 참 인자하고 괜찮은 시어머니입니다. 그런데 같이 생활하는 며느리 입장에서는 한 집에 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습니다. 말하기 어려운 소소한 부분들이 늘어나면서 불편함은 점점 쌓여갔습니다.

남편과 함께 추억의 흑백사진
▲ 남편과 함께 추억의 흑백사진

남편은 일주일에 세 번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왔고,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스트레스였습니다. 친정 어머니도 아버지가 술 마시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아버지가 늦으면 자식들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는데, 어머니를 통해서 술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남편의 성격이 어떤 지도 모른 채 막연한 신뢰감으로 결혼을 결심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용감했던 것 같습니다. 신뢰감을 주었던 남편의 말은 점점 저의 허물을 지적하는 듣기 싫은 잔소리가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남편과는 대면 대면했으며 시어머니에게는 마음의 벽을 만들어 놓고 그 이상도 이하도 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나의 첫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커서 친정 식구에게는 남편과 시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물건 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딸과 아들 교육에 전념하며 살았습니다.

정토회의 만남과 첫 공부- 수행, 보시, 봉사 중에서 봉사

저는 온 힘을 다해서 딸과 아들의 교육에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들은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진로 변화에 불안한 마음으로 절에 다니며 빌었습니다. 친정 어머니께서는 글을 모르셨지만 테이프를 들으며 천수경, 반야심경을 외우고 일상에서 늘 복을 비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저는 아들의 달라진 상황에, 불안한 마음으로 이 절 저 절 다니면서 아들이 잘 되게 해 달라고 복을 구했습니다.

그러다 2012년 1월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게 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여러 절을 다녔지만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불교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법륜스님의 강연은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고, 속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을 듣고 정토회에 신뢰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이절 저절 다니며 복 빌기를 그만하고 그해 3월, 용인정토회 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수행, 보시, 봉사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 절을 다니면서 절을 하고, 보시는 했지만 봉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남들 앞에서 근사해 보이는 것은 하겠는데 힘이 드는 일은 하기 싫었습니다. 2012년 법륜스님 300강 강연 때 용인정토회가 강원도 일대를 다니면서 전단지, 현수막, 포스트 붙이기 봉사를 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우리가 내는 보시금으로 임금을 주고 일을 시키면 될 텐데 왜 우리한테 일을 하라고 하지’라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다음날 법당에 모였습니다.

봉사를 하라고 하는 데는 분명이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덜거리면서 했던 봉사지만 조금씩 저의 업식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안 해, 못해’라는 수동적인 공주병은 봉사를 하면서 바뀌어갔습니다. 다음 해 경전반 공부를 하면서 저녁불교대학 담당을 했습니다. 봉사는 나의 업식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 때부터 봉사 소임이 오면 ‘네~’라며 그냥 했습니다. 정토회가 저에게 준 첫 번째 공부는 수행, 보시, 봉사 중에서 봉사였습니다.

2019년 가을 경전반 담당(왼쪽 첫 번째)
▲ 2019년 가을 경전반 담당(왼쪽 첫 번째)

두 번째 실천 과제-아들과 딸의 독립

저의 두 번째 실천과제는 스무 살이 넘은 딸과 아들의 독립이었습니다. 불교대학 공부를 하면서 스님의 법문 중에 스무 살이 넘으면 자식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서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학교를 들락날락했습니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이제 스무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독립 시킨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날벼락 같은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스님은 스무 살이 넘으면 독립을 시켜야한다고 하지?’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독립을 하란 말이지?’ 1년 가까이 마음에 담아두고 관련된 법문을 찾아보고 생각해 보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13년 2월에 용인정토회에 오신 스님께 ‘저는 이렇게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독립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 왜 아이를 이렇게 키웠냐고 꾸중을 하시면 꾸중도 듣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독립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라며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스님의 구체적인 대답을 듣기도 전에 질문을 한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했고 막연했던 아이들의 독립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도 가족여행중
▲ 제주도 가족여행중

그날 집에 와서 남편에게 스님께 했던 질문과 대답 그리고 저의 의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은 저의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했습니다. 가족회의를 통해서 아이들의 독립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아들은 재수 시작, 딸은 휴학하고 약학대학을 준비 할 때였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하는 친구가 있기는 해도 아버지가 직장 생활하는 평범한 우리 집에서 왜 우리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냐며 억울해했습니다. 딸은 엄마가 이상한 종교집단에 빠져서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고도 했습니다.

남편과 제가 마음을 맞추고 독립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가족회의를 통해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시작하지 않고 준비할 수 있는 1년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재수를 하던 아들이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6개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군 입대를 하고 제대 후에도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야속하고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서히 독립을 준비해 가는 아들을 보며 기특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딸은 스님 강연장에 와서 봉사를 하며 하루 종일 정토회를 살폈습니다. 법당으로 돌아와서 마음나누기를 하는데 그날 본 엄마는 집에서 보지 못한 엄마의 모습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루 종일 봉사를 하면서 살펴본 정토회는 이상한 종교집단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집착을 하고 강요를 했던 엄마는 아이들이 독립해 가는 만큼 점점 독립된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법당 정리하는 이윤선님
▲ 법당 정리하는 이윤선님

한 단계 한 단계 나를 공부시킨 법당 소임

2014년 2월에 대구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해 3월, 집 근처에 있는 달성법당에서 부총무 소임을 건의 받았습니다. 걱정이 되면서도 ‘네~그러지예’ 했습니다. 집과 법당 일이 겹치면 1순위를 법당으로 하면서, 마음 불편해 하는 남편에게는 숙이는 공부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네~ 죄송합니다’ 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죄송합니다’라고 하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네~ 죄송합니다’하면서 법당 소임을 했습니다.

부총무라는 소임은 열두 번도 더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집과 법당 일이 겹쳐서 집을 비울 때는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변해가는 저의 모습을 인정받으며 공부에 탄력이 생겼습니다. 불편해 하던 남편은 처음으로 요리를 하고 지인 모임에서는 정토회 이야기를 하며, 제가 정토행자이며 맡고 있는 봉사 소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친정식구들 모임에서 어머니, 언니, 오빠들이 제가 정토회에 빠져서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같이 살고 있는 제가 괜찮고 문제없는데 무슨 문제 있나요?’라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습니다.

늘 마음에 벽을 두고 선을 넘지 않았던 시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 계실 때였습니다. 법당에서 마음나누기를 하거나 법사님과 함께 하는 시간에 아이들 이야기, 남편이야기는 하면서 시어머니 이야기는 내어놓기가 힘들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성품이 유별나면 쉬웠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분이라 모든 것이 저의 허물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정일사1 에서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저를 보았고 어머니께 참회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병원에는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남편이 옆에 있는 상황이라 주춤했지만, 그때 하지 않으면 영영 못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 이만저만 해서 제가 그랬습니다. 마음을 더 내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주절주절.......” 눈을 감고 계시던 어머니 눈에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한 달 쯤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편안하게 어머니를 보냈습니다.

법륜스님 즉문즉설 홍보(왼쪽 이윤선님)
▲ 법륜스님 즉문즉설 홍보(왼쪽 이윤선님)

주체적인 나를 보다

저는 ‘못해 병, 안 해 병’ 공주였습니다. 봉사도 싫어하고 절하는 것도 힘들어했습니다. 인도 성지순례도 힘들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었습니다. 8차년 부총무 3년을 회향하고 17년 1월에 인도성지순례를 갔습니다. 5일째 되는 새벽에 발을 삐었습니다. 발이 붓고 아파서 수지침 놓는 도반에게 도움을 받고 진통제로 견디며 버스에 앉아있었습니다. 하루는 숙소에서 하루 종일 있었는데 ‘다쳐서 내가 못 가는 게 아니고, 다쳐서 내가 안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마음을 주체적으로 먹으니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10일 동안 웃으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인도 성지 순례는 몸은 다쳐서 불편했지만 마음은 오롯이 주체적으로 중심을 잡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정토행자로서 살아가는 지금 마음 ‘감사합니다.’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하니 제가 변하고 남편이 변하고 딸, 아들이 변했습니다. 딸은 “엄마, 아빠 사이가 언제부터 좋았지? 원래 이런 사이 아니었잖아요?”라고 하며 집에 오면 긍정 에너지를 받아서 돌아간다고 합니다. 딸은 7년 전에 춘천에서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이번 2020년 온라인 가을 경전을 마쳤습니다. 경전반을 입학한 동기가 엄마처럼 단단하고 중심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엄마가 공부해서 변하는 건 알겠는데 아빠는 공부를 안 했는데 변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이 모든 건 부처님 공부, 정토회에서 한 공부 덕분임을 알기에 고개 숙여 감사드리고 오늘도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합니다.

경전반 졸업축하파티(가운데줄 왼쪽 첫 번째)
▲ 경전반 졸업축하파티(가운데줄 왼쪽 첫 번째)

이윤선 님과 마지막 인터뷰를 하는데 남편분과 이동 중이었습니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고 마지막으로 “일상에서 남편이 본 나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남편에게 직접 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남편분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아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변하고 행복합니다.”라고도 하셨습니다. 이윤선 님은 “내 마음이 이렇게 편안하고 행복한데 어떻게 전법을 안 하겠어요?”라고 합니다. 오늘도 적극적으로 전법을 하는 이윤선 님입니다.

글_이윤선(수성정토회 경산법당)
정리_김정림(수성정토회 경산법당 희망리포터)
편집_이정선(진주정토회 진주법당)


  1. 정일사정토회를 일구는 사람들의 준말로 정토회 활동가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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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ㅁㅁ

감동입니다

2021-05-27 07:22:42

이의수

감동적인 수행담 잘읽었습니다

2021-03-23 23:48:11

박신영

남편에게 숙이는 전법이 최고의 전법인것 같아요 도반님의 큰용기를 본받고 싶습니딘 감사합니다~~

2021-03-22 05: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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