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창원법당
<통일상 수상>
내 바람은 봉림사지 중창 불사와 평화통일

매주 일요일 새벽, 창원의 봉림사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얼굴. 반짝반짝 의욕에 찬 눈빛, 까무잡잡한 피부에 웃음 띤 얼굴이 아이처럼 귀여운 권미라 님. 겉모습은 작고 여려 보이지만, 다부진 체구로 새벽부터 봉림사지를 내 집 앞마당처럼 이곳저곳 살피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분. 2015년 8.15부터 매주 빠짐없이 기도와 울력으로 일요일 새벽을 열었습니다. 봉림사지 중창 불사가 개인적인 원이라는 사람에게 통일상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유쾌한 권미라 님을 만나러 갑니다!

2012년 문경에서 통일 정진 후(오른쪽에서 두번 째)
▲ 2012년 문경에서 통일 정진 후(오른쪽에서 두번 째)

편안한 어린 시절

저는 경북 영양 산골에서 방앗간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1남 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움 없이 귀하게 자랐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자연 속에서 행복하고 편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학교에서도 늘 반장을 도맡아 할 정도 리더쉽도 있고 명예욕도 많았습니다.

조카 소개로 문화재청 공무원인 남편과 결혼했는데 그렇게 술을 먹는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365일 중 366번 술을 마셨고, 평소 일상의 언어가 욕이었습니다. 기분이 나쁘거나 술을 마시면 더 심했습니다. 우리 집안에는 욕하는 사람이 없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술로 인해 위궤양, 위출혈로 몇 번이나 병원을 들락날락했는데 돈 버리고 몸 버리는 술을 계속 마시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선한 의지를 가진 친정엄마가 잘 키워주신 덕에 늘 긍정인 편이라, 부정인 업식이 없어 괴롭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항상 무언가 부족하고 답답했습니다.

여기저기 다 다녀 봐도 정토회

정토회를 만나기 전까지 서예, 미싱, 마라톤 풀코스 완주, 수영 등 온갖 취미와 운동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1년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서포터즈를 구한다는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강연 참가자가 아닌 서포터로 정토회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첫 출발을 참가자가 아닌 봉사자를 자처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예전부터 자원봉사 활동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 전까지 했던 수영 10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고 제일 안되는 것이 꾸준함이었습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렇게 매번 종류를 바꿔가며 전전했던 취미는 아마 의미를 못 느껴서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연스럽게 불교대학과 경전반에서 공부했고, 논리적이고 이치에 맞는 부처님 말씀이 너무 좋아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법당 게시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재정 상태가 공개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시민단체와 관련된 사람들이 돈 문제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았던 터라 이렇게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을 보니 정토회는 건강한 조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정회원 보고를 받고 더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함께한 도반들과도 마음이 잘 맞아 활동에 적극적일 수 있었습니다.

2019년 경남지부 세미나(제일 오른쪽)
▲ 2019년 경남지부 세미나(제일 오른쪽)

그 후로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함께 했습니다. 100강은 무대 팀 팀원으로, 200강은 영상 팀 팀원으로, 300강은 무대 팀 팀장을 맡았습니다 오전, 오후 두 차례 진행되는 날은 새벽 4시 나와 12시에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경남지역 불사 담당을 하면서 거창 통영 의창 장유 거제, 하동, 창원법당 재불사를 위해 발품을 팔며 뛰어다니던 일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뿌듯하고 보람되고 무엇보다 재미있었습니다.

2015년 8차부터 사활 팀장을 맡으며 봉림사지 중창 불사 및 평화통일 기도를 시작했고, 2016년부터 측량, 펜스 설치 등 도반들과 매주 울력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애광원 나들이 봉사, 문경에서의 통일정진 등 봉사를 했습니다. 꾸준히 봉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편안해지고, 제 가정에 도움이 되고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인도성지순례
▲ 2014년 인도성지순례

봉사를 통한 알아차림

술 먹는 남편에게 늘 분별심이 일어났는데 100강 봉사를 하면서 남편에게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일사에서 "저 완전히 남편에게 숙였어요"라고 했는데 제 이야기를 듣던 법사님께서 "보살은 겉으로만 숙이고 있네"라고 했습니다. 제가 활동하고 싶어서 숙이긴 했지만 밑 마음에서 ‘당신은 술 마시고 아파서 병원 가지만, 나는 화장도 안 해, 돈도 안 써, 이렇게 좋은 활동하는 나한테 나무랄 데가 뭐가 있나? 너나 잘해라.'라고 남아 있는 마음이 보였나 봅니다. 이런 마음이 아들에게도 비쳤을까요. 아들이 중3때 술 먹고 들어오는 아빠에게 대들었습니다. 그 아들을 붙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부모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춘다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300강 즉문즉설 봉사를 하면서 두 번의 알아차림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질문자가 자기는 잔소리를 안 하는 편인데 남편이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혹시 나도 질문자처럼 잔소리를 하는데 안한다고 착각하나?'라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남편이 술 마신다고 불평한 질문자와 스님의 답변을 들으며 객관적으로 남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수행을 안 했으면 남편을 죽였겠다 싶은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남편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한 지는 2-3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재작년 정일사 다녀온 후 남편에게 “당신은 부처님입니다”라며 3배를 했습니다.

2020년 창원 봉림사지 울력
▲ 2020년 창원 봉림사지 울력

사라진 시비심

남편은 7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고 싫은 소리도 못 합니다. 또 드러내놓고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술을 먹지 않으면 말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이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구나. 저 사람이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죽었겠구나. 저 사람에게 술은 보약이다.' 수행하다보니 남편은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출근하는 사람으로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남편에 대한 시비심이 전혀 없고 온전히 이해하게 되자, 말하지 않아도 제가 변한 걸 남편은 빛처럼 알아차렸습니다. 남편의 특징은 술자리에 가면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최후의 1인인데, 요즘은 2차 가고 싶은 걸 꾹 참고 왔다며 일찍 들어옵니다. 초기 위암으로 수술하고 5년 차인데 술을 계속 마시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퇴직하고 집에서 3년째 쉬면서 스트레스가 없어서인가 봅니다.

2014년 인도성지순례
▲ 2014년 인도성지순례

통일에 대한 관심

제가 통일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은 2007년 남편이 문화재 발굴 업무와 관련해서 1년 정도 개성에 머문 덕분입니다. 그때 개성공단을 눈으로 직접 보고 이 경제협력사업이 남북한의 관계개선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꼭 필요한 일인지를 말해주었습니다. 자유시장경제와 우리 문화가 자연스럽게 북한에 스며들어 통일 후 생길 수 있는 여러 차이를 없애주는 사업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불교대학 공부를 하면서 통일에 대한 더 확고한 신념이 생겼습니다. 통일이 되면 우리 영토가 확장될 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육로로 갈 수 있는 길이 생깁니다. 이렇게 반도에 갇혀 있다가 좀 더 편하고 자유롭게 대륙을 오갈 수 있다면 젊은이들은 물론 우리 국민들도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 것입니다. 상상만으로도 벅차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이 안되면 왕래라도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활동하던 중에 8차에 이어 9차까지 경남지부 사회활동팀장 소임을 맡았습니다. 통일, 복지, 환경 세 분야 중 자연스럽게 통일분야를 담당했습니다. 2015년 8.15 평화통일 발원 기도를 시작으로 경남지부 17개 법당 도반들과 함께 법당별로 돌아가며 한주도 쉬지 않고 매주 통일기도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20년도부터는 한주도 빠지지 않고 봉림사지에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2020년 창원 봉림사지 기도(맨 왼쪽)
▲ 2020년 창원 봉림사지 기도(맨 왼쪽)

통일상보다 남편

통일상 받은 걸 보고 함께 활동했던 도반들이 전국에서, 말레이시아에서도 자기가 상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축하 문자를 주었습니다. 신나게 재미나게 봉사했던 시간과 도반들을 추억할 수 있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특히 봉림사지 봉사는 저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11년 도문스님과 봉림사지 발굴 현장을 담당했다던 남편의 말. 대학 졸업한 아들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봉림사지가 있는 봉림동사무소로 발령을 받은 일. 봉림사지 봉사로 정토행자 상을 받은 것. 봉림사지와 우리 가족이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통일상을 받은 것보다 남편을 이해하게 된 것이 더 좋습니다. 상은 덤일 뿐입니다. 지금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겉으로는 투덜대지만 정토회 활동을 이해해 주는 남편이 고맙습니다. 한때 힘들었지만, 지금은 엄마인 저보다 남편과 아들 사이가 더 좋습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봉림사지 울력을 함께해 주는 도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권미라 님. 3년 전 8.15 봉림사지 통일 기도에서 만났을 때보다 피부가 더 맑아진 느낌입니다. 그 비결은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일'에 앞장서는 봉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남편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 마음 덕분으로도 보입니다. 언제나 즐겁고 신나게 봉사하는 권미라 님을 응원합니다.

글_손해경 희망리포터(창원정토회/창원법당)
편집_조미경(김해정토회/김해법당)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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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끝없이 봉사힐 수 있는 힘을 가지신 권미라님을 응원합니다 통일이 되면 이 모든 사람들의 힘인줄 알겠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봉사를 할 수 있는 힘을 가지리라 소원해 봅니다 나누어주신 말씀 감사한마음입니다~

2021-02-03 06:04:51

굴뚝연기

에공 정말로 보살이시네요^^사진확대해서 봤어요~과연 속없는ㅎㅎ 보살같으신 모습~~누구하고라도 잘 융화되실거 같아요^^모든 활동들을 기쁘고 잼있게 하셨다니,제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ㅜㅜ또 도문스님과 봉림사지 발굴현장을 함께하셨다는 남편분과,아드님소식에 전율이 쫙~~보살님같이 좋은분이계셔 스님도 힘을받으시고,정토회가 돌아가나봐요^^*좋은분 뵙게되어 기쁘네요^^*

2021-02-03 02:43:19

나부터

말씀 감사합니다.

2021-02-02 21: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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