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원주법당
눈을 뜨게 해주세요

호탕한 웃음과 씩씩한 목소리. 언제부터인가 머릿속에 각인된 이지선 님의 모습. 저는 불교대학 학생, 이지선 님은 부담당으로 4년 전에 처음 만났습니다. 수행담을 부탁하니 크게 웃으며 선뜻 응해주어, 조심스럽던 저를 깃털처럼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이지선 님에게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낸 건강하고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엄마 같은 남편의 외도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다

어릴 때는 삶이 동화처럼 완벽하기를 바랐으나, 세상은 그렇지 않아아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모든 것에 자신만의 규칙을 정해놓고 지키지 않으면 화를 냈습니다. 교육열이 높아서 항상 공부를 강조했습니다. 엄마는 그런 아빠로부터 오빠와 저를 지켜주고, 짜증을 받아주며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습니다.

행복학교[^각주35] 스테프들과(윗 줄 제일 왼쪽)
▲ 행복학교[^각주35] 스테프들과(윗 줄 제일 왼쪽)

스물세 살 때 스물여섯 살인 남편을 미팅으로 만나 5년을 사귀고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온갖 투정 다 받아주고 원하는 대로 해주는, 엄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춘천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원주에 있는 남편에게 데리러 오라고 해도 화내지 않고 데리러 왔습니다. 제가 행복하면 자기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지만 저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열 개를 잘 해줘도 하나가 미흡하면 화가 났습니다. 남편이 회식은 물론이고 야근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다른 여자를 잠깐 쳐다보는 것도 싫고, 심지어 여동생과 친한 것도 싫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사랑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엄마는 물론이고 친구들조차 제가 나쁘다고 했습니다. 괴로운 마음을 이해받지 못하니 더 괴로웠고, 불만은 점점 쌓였습니다. 아무리 화풀이를 해도 화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따라 중국에서 일년 반 정도 살 무렵, 남편이 중국 여자와 바람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칼 같이 돌아선 후

바로 가장 빠른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어 여섯 살 아들과 귀국하였습니다. 바로 다니던 직장에 복직 신청을 했습니다. 이젠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원하는 대로 되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던 어리석은 삶, 남들에게 온통 휘둘리던 삶. 그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해준 신의 한 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습니다. 그러 던 중 법륜스님 즉문즉설이 춘천에서 있어 엄마와 함께 갔습니다. 그 강연에서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스스로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라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법륜스님의 《기도》책을 사서 읽고 무작정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기도문은 ‘눈을 뜨게 해주세요.’였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습니다. 백일쯤 지나자 정말 신기하게도 제 꼬락서니가 보였습니다. 눈을 뜨니 그제야 잘못이 보였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모두가 잠든 새벽에 홀로 깨어 기도했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향긋한 차를 옆에 두고 수행일지를 썼습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잔잔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경전반 졸업식(셋째 줄 중앙)
▲ 경전반 졸업식(셋째 줄 중앙)

불법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 불교대학에 입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찾아보니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원주법당이었습니다. 수업이 금요일이라 다행이었습니다. 초등 일학년 아이만 두고 갈 수는 없어 한 시간 거리인 원주를 매주 아들과 다녔습니다. 끝나고 집에 오면 열 한시가 넘었습니다. 잠든 아들을 깨워 집에 올라가려니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불평 없이 따라다녔고, 제가 가기 싫어하는 날이면 공부하러 가자면서 오히려 저를 이끌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 중 살인자 앙굴리말라를 교화하는 부분을 배울 때였습니다. 부처님이 마치 앙굴리말라에게 하는 말이 마치 제게 “그렇게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니.”라고 하는 것 같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다 제가 나쁘다고 하는데 부처님만 온전히 이해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를 알아가니 상대를 볼 수 있었다

수련을 하며 가장 화 난 때를 떠올리니 너무 아파하는 남편이 보였습니다. 제 화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남편의 슬픈 눈. 남편도 힘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제 뜻대로 움직여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의 장1>에서 이 세상 무엇도 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편도 자신의 삶이 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니 미안했지만 가벼웠습니다.

인도성지순례 중(앞줄 중앙)
▲ 인도성지순례 중(앞줄 중앙)

힘든 일은 피하는 업식, 의존하고 껄떡대는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인도성지순례를 갔습니다. 사람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방법과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간은 정말 친한 친구 몇 명과 엄마처럼 편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형식적인 관계만 맺어왔습니다. 가까워지면 실체가 드러나니, 싫고 귀찮았습니다. 둥게스와리 마을에서, 다 무너져가는 집에 살림살이 하나 없지만, 해맑게 웃으며 가족끼리 서로 챙기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순간, 넘치는 물건들과 저만 생각한 이기심에 미안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습니다. 제가 가진 게 정말 많다는 걸 알고 나누는 법도 배웠습니다.

<명상수련>에서는 제 틀을 본 게 최고 성과입니다. 명상하는 내내 사람들의 행동이 거슬렸습니다. 규칙을 지켜야 하는데 지키지 않아 싫었습니다.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손님이 오면 자신의 침대에 맞게 자르거나 늘려서 죽였던 그리스 신화 속 잔인한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저 만의 수많은 기준으로 거기에 맞지 않으면 칼날을 들이밀었습니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모든 것이 제 문제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칼날로 다른 사람뿐 아니라 저 자신도 난도질하고 있었습니다.

JTS 거리모금 중(왼쪽에서 두 번째)
▲ JTS 거리모금 중(왼쪽에서 두 번째)

3년 기도하니 마음이 기적처럼 변하다

처음 한국에 올 때는 바로 이혼할 생각이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무섭고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전 이혼보다는 사별이 깔끔하므로 남편이 죽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년 동안 꾸준히 기도하고 불교 공부를 하니 기적처럼 변했습니다. 남편에게 미안하고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랐습니다. 저와 사는 게 행복하다면 같이 살 수도 있고, 다른 여자와 사는 게 행복하다면 편안히 보내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했더니 남편은 저랑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침 한국지사에 자리가 나서 남편은 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3년이 흘렀고, 이제야 진짜 사랑을 하면서 삽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인 걸 알아보지 못하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습니다. 이제 남편은 든든한 후원자이고, 아들은 자기 일은 알아서 척척 하는 믿음직한 중학생입니다.

저는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원주정토회 회계, 경전반 스텝, 행복학교 진행하며 상담 공부도 합니다. 정토회에서 봉사하며 불편한 순간들, 도망가고 싶은 순간들 속에 꼭꼭 숨어있는 제 업식을 알아차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어디에 걸려 넘어지는지 확연히 알면 다음에는 덜 걸리는 걸 확신하기에, 이제는 도망가지 않고 당당히 맞서 넘어서고자 합니다. 힘든 순간마다 손을 잡아 끌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도반이 있어 두렵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저를 일깨워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부처님, 스승님, 도반들께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합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이 행복 널리 전하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행복학교 졸업생과(왼쪽)
▲ 행복학교 졸업생과(왼쪽)


코로나 때문에 예전처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법당을 오가며 보는 이지선 님은 늘 밝은 얼굴입니다. 수행을 함께해나가는 도반으로서 좋은 자극이 됩니다. 항상 건승하길 기원합니다.

글_진창욱(원주정토회 원주법당)
편집_도경화(달서정토회 구미법당)


  1. 깨달음의 장 4박 5일 기간의 정토회 수련 프로그램. 평생에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음.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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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

도반님의 진솔한 나누기글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2021-01-11 16:57:00

수린이

부모님의 양육방식이 비슷한것,
제 업식도 이지선님과 같은 것에 놀랐고
어려움을 헤쳐나가셨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직 괴로움이 견딜만 해서 인지, 게을러서 인지 실천이 안되고 있지만 수행을 해야하는 이유를 또 한번 알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2021-01-05 07:06:27

자재행최솔미

이지선님의 수행담을 읽으며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시는 모습이 느껴져서 감동이었습니다
그런 치열한 여정을 잘 극복해 오신 모습 또한 참 멋지십니다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에요

2021-01-03 0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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