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일산법당
쉬운 거부터 살살 움직여보자!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희망리포터와 만남에도 당황하지 않고, 밝고 활기찬 에너지로 가볍게 응해주신 윤난영 님. 인터뷰 할 내용을 생각하며 살아온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오히려 공부가 되어 참 좋았다며 감사해 합니다. 걸림 없이 가볍게 해내는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지금부터 윤난영 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성실하고 착한 어린이가 되자

저는 인천 강화에서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막내이다 보니 다른 형제들에 비해 부모님의 사랑을 좀더 받고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해서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었습니다.

윤난영 님
▲ 윤난영 님

어머니는 특히 자식들 교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5학년 때부터 서울의 8학군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오빠, 친척 할머니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곳에는 얼굴이 뽀얗고, 집도 부자인데다 공부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한 반에 10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 속에서 주눅이 들고, 오로지 혼자서 그 큰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금방 적응했습니다. 아니,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착한 어린이,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여기서 인정받고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겠구나!’ 하고 제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경쟁은 치열했지만 개근에, 벌점 1점도 받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저를 교무실로 불렀습니다. “너 잘못한 거 있지?” 영문도 모르고 겁에 질려 있는 저에게 “ㅇㅇ 선생님께 편지 보낸 적 있지?” 라며 쓴 사람이 저라고 확신하고 큰 소리로 다그쳤습니다. 글씨체가 저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구나’하는 안도감과 억울함에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껏 내가 얼마나 성실하고 착하게 학교생활을 했는데,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시는 거지? 우리 부모님이 좀 더 부자였더라도 내게 이렇게 할까?’ 억울한 마음에 그날 밤 담임선생님께 장문의 손편지를 썼습니다. 그 일 이후, 담임 선생님은 저를 위로하려 했지만 이미 선생님에 대한 신뢰는 깨졌습니다. 저에게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음 속 앙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마야부인 역할(왼쪽 두번째)
▲ 부처님 오신 날 마야부인 역할(왼쪽 두번째)

내 삶에 대한 허망한 마음이 찾아오다

그 후 대학에 진학하여 또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80년대 대학생활은 학생운동이 많았던 시기였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지만 시대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했습니다. 그 즈음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을 하던 남자친구를 만났습니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이었고 동갑이지만 존경스러웠습니다. 32살에 그와 결혼했습니다. 사회운동을 정리하고 직장 다니는 이 사람의 변하지 않는 마음 하나만 보고 선택했습니다 .

제가 살아온 삶은 생각한대로, 계획한대로 하면 성과가 나타나는 삶이었습니다. 교사도 되었고, 원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제 계획대로 잘 자랐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가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남편은 본인이 하고 싶던 일을 하기에 많이 바빴습니다.

‘나는 가난한 집에 시집 와 이렇게 최선을 다하며, 이제는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잊어버리고 사는데 저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는구나. 나는 뭐하는 거지?’ 제가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때부터 변함없이 사랑해주며 누가 옆에서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을 그런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었던 사람이 결혼 후 가정생활을 등한시했습니다. '이 사람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제가 아끼던 보석이나 가꾸던 화원이 망가져버린 느낌이었습니다. 혼자서 견디기 어려워 심리센터를 다니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 이후 남편은 요리도 도맡아 하고, 저에게 신경 써주며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제 삶에 대한 허망한 마음과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으로 순간순간 화가 올라왔습니다. 저 사람이 언제 또 변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정회원보고회(앞줄 왼쪽 두번째)
▲ 정회원보고회(앞줄 왼쪽 두번째)

믿지 못할 마음에 끌려다니며 살아왔구나!

친정어머니의 영향으로 늘 불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날에는 108배를 할 정도로 제게는 친근했습니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어 허전했던 그 시기에 108배를 하고 싶었습니다. 집에서는 집중이 되지 않아, 무작정 집 근처 법당을 검색해 정토회 일산법당을 찾았습니다. 그 후 법당에 나가 새벽예불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불하는 분들과 모닝커피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정토회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2013년 가을 불교대학에 발을 들였습니다.

지금의 편안함이 언제 또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벗어던지고 싶어, 간절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불교대학을 다녔습니다. <깨달음의 장>에서 제가 얼마나 남편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다녀온 <나눔의 장>에서 새로운 것을 깨닫았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나 또한 그 믿지 못할 마음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니고 있었구나! 내 마음도 어쩌지 못하면서 남편의 마음이 절대 변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구나!’

마음에 끌려 다녔던 어리석은 세월이 허망하게 느껴져 많이 울었습니다.

진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다시 태어나다

경전반 입학을 앞두고 총무님이 불교대학 담당을 제안했습니다. ‘난 아직 경전반 학생인데, 불교대학 담당을?’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며 사양했습니다. 그 즈음 정토회의 명심문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였습니다. 전 정말이지 이 명심문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총무님이 물었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으세요?"
“네. 제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도 휘둘리고 싶지가 않아요.”
“그럼,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맡으세요.”
“그럼 진짜 제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나요?”
“네. 될 수 있습니다.”

정토회 도반과 함께(왼쪽)
▲ 정토회 도반과 함께(왼쪽)

그렇게 불교대학 담당 소임을 맡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삶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찾아 늘 달리기만 했던 삶이 아니라, 진짜 내 인생의 주인이고 싶었습니다. 너무나도 간절히 바랬습니다. 소임의 모든 것들이 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한 일'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하는 봉사자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정성을 쏟았습니다. 하루하루가 기쁘고 감동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늦더라도 참석만 해주면 감사했고, 못 온다고 연락만 줘도 고마웠습니다. 활동을 권유하기 위해 제가 먼저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경전반을 졸업하며 불교대학 담당이 익숙해질 때쯤, 총무님이 이번에는 '저녁부 책임자를 맡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 못하겠다'고 했지만, 총무님은 '다 가르쳐 줄 테니 걱정말라'고 했습니다. 막막했지만 일단은 교실에서 진행하는 모든 수업에 참석해 봤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이른 아침, 늦은 밤 할 것 없이 총무님과 소통하며 함께 나아갔습니다. 선배 도반들은 오랜 기간 공석이었던 저녁부 책임자를 기꺼이 받아준 저에게 고맙다며, 절대적으로 지원해 줬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막막할 때 함께하는 도반과, 변함없이 중심을 잡아주는 선배들이 있었기에 든든했습니다.

봉사는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이 맞았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인정하는 연습을 하며 저를 숙이고 ’예, 알겠습니다.’라고 하니, 신기하게도 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법사님이 제게 ‘당신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겠습니다.’라는 명심문을 줬습니다. 그 땐 저처럼 헌신적인 사람한테 이런 명심문을 준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전 헌신적인 사람이 아니라 제 틀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주변 사람들이 편안할 수 없었다는 것을요. '틀리면 안된다, 벗어나면 안된다, 남편은 이래야지, 가장은 이래야지, 자식은 이래야지, 교사는, 학생은… 아~ 내 기준이 이리도 많고 내가 만든 틀이 이리도 강하구나!, 자유로운 남편이 얼마나 숨막혔을까?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경전반 졸업사진(앞줄 오른쪽 첫번째)
▲ 경전반 졸업사진(앞줄 오른쪽 첫번째)

밖으로만 향하던 마음이 안으로 옮겨지면서 그동안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살아온 제 자신이 안쓰러워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습니다. ‘이대로도 나는 온전하고 멋진 사람이었구나’ 마음으로 느끼며 스스로를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저를 먼저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다른 이들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쉬운 거부터 살살 움직여보자!

직장생활과 정토회, 이 두 가지의 균형 맞추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적절히 조화를 맞춰가기 위해서는 고민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합니다. 못 해낼 거 같지만, 사실 밑 마음의 ‘욕심 때문에, 잘하고 싶어서’라는 저를 그대로 받아줍니다. ‘살살 움직이자, 쉬운 거부터 살살 움직여보자!’ 하면 하나씩 하나씩 다 해 낼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저에겐 앞으로 계획이 없습니다. 실수해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고, 벗어나도 괜찮습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틀리면 고치면 되는 것을 알기에 인생이 가벼워졌습니다. '이렇게 인생이 가볍고 즐거우니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깁니다. 제 안에 이렇게 밝고, 활발한 에너지가 감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 감사한 나날들입니다.

지금은 제게 이렇게 외칩니다. "음~ 난영아 할 수 있잖아. 일단 숨쉬기부터 하나씩 하나씩 해 보는 거야!" 그러면 가시 돋힌 고슴도치처럼 움추려있던 제 마음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하냐구요? 네에! 가능합니다. 제가 해봤으니까요!


호탕한 웃음으로 가볍게 인터뷰 해주신 윤난영 님. 이야기 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서로가 하나됨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진심이 담긴 수행담에 더 없이 감사드리며, 밝고 활기찬 에너지로 든든하게 그 자리에 있어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글_김세영 희망리포터(일산정토회 일산법당)
편집_허란희(용인정토회 용인법당)

전체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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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월

씩씩하고 거침없이
그리고 한없이 다정하게
모든 도반에게 정성을 다하시던
윤난영보살님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았고
많이 많이 고맙습니다!

2020-12-28 07:21:01

자재왕

난영님, 진솔하고 감동적인 수행담 잘 읽었습니다. 저와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아자!'~~~

2020-12-28 06:50:13

황승옥

화이팅입니다~^^

2020-12-24 10: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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