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5.7 천일결사 기도,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 부처님오신날 점등식
“부처님오신날, 등불을 밝히는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처님오신날 하루 전이고 점등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두북 수련원에서 일정을 가진 후 문경 수련원으로 이동해 점등식에 참석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천일결사 기도를 생방송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종성, 예불,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독송을 한 후 천일결사 기도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오늘 읽은 경전에 대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수행자가 가져야 할 기본자세

"여러분이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현재 먹는 것에 만족하고, 현재 입는 것에 만족하고, 지금 자는 집에 만족하고, 내 생활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더 좋은 것을 갖지 못해서 부족함을 느끼고 껄떡거린다면 그건 애초에 수행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자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굳이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을 떠나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지 않더라도, 마음 관리를 잘하면 수행자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해왔잖아요. 이 말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살생이나 폭력은 행사하지 않고,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욕설을 하거나 사기 치지 않고, 아무리 욕심이 나더라도 공금을 유용하거나 불투명하게 사용하지 않고, 아무리 욕망이 일어나더라도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하지 않고, 아무리 술을 먹고 싶어도 취할 정도로 많이 먹어서 행패를 부리거나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전제입니다. 그렇지 않고 화가 난다고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욕심이 난다고 다른 이에게 금전적 피해를 주거나, 자기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서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거나, 취할 정도로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면 어떻게 수행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수행자라면 법문을 듣고 이 자리에서 '아, 수행자로서 그런 행동은 안 해야겠다' 이렇게 결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게 아니라 '스님, 이건 어렵습니다', '이건 잘 안 됩니다' 이런 말부터 하는 건 변명하고 하소연하려는 자세이지 수행자가 되겠다는 뚜렷한 생각이 없는 경우입니다. 본인이 하기 싫어하면 부처님이 오신다 한들 고치기가 어려워요.

그 동안은 수행자의 자세가 무엇인지 몰라서 실천하지 못했다면 알게 된 순간부터는 그 자리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멈추어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어긴 경우에는 변명이 아니라 참회를 해야 합니다. '제가 놓쳤습니다. 저도 모르게 과거 버릇이 나와서 잠깐 놓쳤습니다' 이렇게 바로 돌아오는 맛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걸 움켜쥐고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변명하는 자세를 버리지 못하면 마음공부에 끝이 없고 시간만 계속 흘러갑니다.

부처님은 자비로운 분이셔서 우리가 못 알아듣고 또 못 알아듣고, 어긋나고 또 어긋나더라도 끝없이 감싸 안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수행자 개개인들은 수행적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모든 걸 무 자르듯 자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수행자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자세에 대한 입장은 분명해야 합니다. 이 최소한의 기본 입장도 분명히 하지 않고, 껄떡거리면서 살아간다면 자유와 행복의 길로 나아가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담을 경전을 통해 읽으면서 그런 관점을 분명히 하면 좋겠습니다.”

법문을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간단히 참을 먹고 6시 35분에 밭으로 갔습니다. 오늘도 홍콩 불교신문 기자 크레이그 씨가 함께 했습니다.

“크레이그 씨, 삽을 들고 나와 같이 갑시다.”

밭으로 가는 길이 움푹 파여 차가 다니기 어려워졌습니다. 스님과 크레이그 씨는 먼저 땅을 메워서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늘 스님이 할 일은 산아랫밭 사면 예초작업입니다. 크레이그 씨는 밭에 물 주는 일감을 배정받았지만, 스님과 함께 예초기를 돌려보겠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무거운 엔진날 예초기를 지고, 처음 예초기를 돌려보는 크레이그 씨에게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가스줄 예초기를 주었습니다.

“제가 앞서가면서 센 풀이나 잡목을 먼저 베어나갈게요. 그리고 날 예초기는 세서 울타리 가까이를 베면 울타리가 상할 수 있어요. 크레이그 씨는 제가 벤 후에 울타리 주변이나 작은 풀들을 마저 베어주세요.”

해야 할 작업의 내용과 예초기 사용법까지 안내한 후 예초기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파른 사면에서 무거운 예초기를 돌리는 것은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왱하고 울리는 예초기 소리는 사면 끝으로 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예초기가 지나가면 향존법사님과 거사님 한 분이 뒤따라 낫을 들고 정리를 했습니다.




1시간 30분여 만에 사면 예초 작업이 끝났습니다.


작업모와 앞치마를 벗으니 땀이 흥건했습니다.

밑밭으로 내려와 울력 뒷정리를 함께 하고 8시 40분에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크레이크 씨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How was the work today? Wasn't it hard?” (오늘 울력은 어땠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크레이그 씨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Very nice. Sunim did most of it and I did it very little. I think I can do it all day.” (아주 좋았어요. 대부분 스님이 하시고, 저는 아주 조금 해서요.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9시부터 두북 공동체 대중과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친 후 오전 10시부터는 평화재단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시작했습니다.

평화재단 통일의병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스님으로부터 통일의병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임명장을 받은 통일의병들은 ‘통일의병의 다짐’을 낭독한 후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통일의병의 역할과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통일의병 학교를 마치고 통일의병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웃음)

어떤 문제든 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그것에 적응하게 됩니다. 좋게 말하면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하나의 민족국가로 지속되어 왔습니다. 물론 지난 천 년은 그전에 비해 비록 활동영역이 한반도로 축소되긴 했지만요. 단지 약 100년 전에 나라를 빼앗기고 되찾는 과정에서 분단을 겪게 되었습니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고, 그렇게 되찾아서 새로 건설하는 나라는 임금이 아닌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선조들이 투쟁했습니다.

전쟁상태 72년은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일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이뤄냈다면 분단이라는 불행을 겪지 않았을 텐데, 우리의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 강대국들의 패권다툼 속에 일본이 패배함에 따라 이뤄진 독립이었기 때문에,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좋은 점과 미소 양대국의 패권경쟁에 휘말려서 분단을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동시에 도래했습니다. 이처럼 독립의 기쁨과 분단의 아픔이라는 상반된 상황 속에서 남북은 지난 77년 동안 각각 자기 체제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체제경쟁을 해왔고, 그 결과 갈등과 냉전이 반복되었습니다.

유럽 역사 속에서 ‘30년 전쟁’, ‘100년 전쟁’이라는 말들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런 사건들을 접하면 ‘어떻게 100년 동안이나 전쟁을 하나?’ 싶은데,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72년이 지났습니다. 아직 정전상태에 있는데, 이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28년만 더 지나면 우리도 100년 전쟁을 한 격이 됩니다. 이런 전쟁은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보통 전쟁을 하더라도 2년 내지 3년 전쟁을 하고, 휴전을 맺은 다음, 평화협정을 통해 정상 국가화합니다. 이 과정이 길어도 20년 내지 30년을 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72년 동안 전쟁상태를 유지한다는 건 정말 역사적으로 매우 드문 일에 속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중 72세 이하는 이런 정전상태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즉, 인구의 90%는 태어날 때부터 나라가 정전상태 속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정전상태가 마치 정상으로 느껴집니다. 분단과 정전상태 속에서 태어나고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모든 것이 원래부터 지금과 같았던 것처럼 느껴지고, 오히려 통일이 더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보니 ‘굳이 통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지금 통일을 하면 오히려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통일된 나라가 원래의 모습인데, 지금은 오랫동안 분단된 두 나라로 살고 있는 다소 기형적인 역사적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지난 6천 년 역사를 돌아보며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에 대해 생각해보면, 우선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평화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이 사실상의 통일, 경제적인 통일로 나아가야 지금보다 발전적인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통일의 꿈을 간직한 사람들

여러분들이 이런 꿈을 잊지 않고 있다는 건 장한 일입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청년이 아니라, 이런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청년입니다. 통일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통일의병 여러분들이 아직 통일의 꿈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는 건 귀한 일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분들이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통일이 막막해 보이지만 또 시절 인연이 닿으면 통일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그 시기가 와서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금은 막막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너무나 당연한 일들을 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는 보다 더 강압적 통치를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독립의 꿈을 잃어버리는 듯했지만 30년도 지나지 않아 약 26년 만에 독립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돌아보면, 만약 당시 3.1운동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지금과 같은 자부심은 없었을 거예요. 우리의 힘으로 자주를 꿈꾸지도 못하고 그저 외세에 의해 주어진 독립을 맞이했다면, 우리 헌법 전문에 ‘미소 양군이 일본에 승리함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맞이하고’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이렇게 시작합니다.

3.1운동이 당시의 시선으로 보면 실패한 것 같지만, 지나 놓고 보면 3.1 독립정신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국(民國)을 꿈꾸는 희망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나라를 되찾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국(民國)을 꿈꾸는 건 허황된 꿈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30년이 지나지 않은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꿈은 1894년 동학혁명 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벌써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반외세, 반봉건’을 주장했을 뿐 정신적으로 완전히 정비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봉건’이 곧 민(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뜻하고, ‘반외세’가 자주독립 국가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뿌린 씨앗

이런 꿈들이 역사에 묻힌 것 같지만 결국 그렇게 노력한 힘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통일을 꿈꾸는 것이 지금은 비록 보잘것없이 보여도 새로운 통일 대한민국이 들어서서 되돌아본다면, 우리가 뿌린 씨앗이 싹트고 자라서 결국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할 날이 올 겁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스님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즉문즉설을 마치고 통일의병들의 활동을 다시 한번 격려한 후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점등식에 참석하기 위해 12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문경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문경 수련원에 도착하자 점등식을 앞두고 곳곳에 형형색색의 연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대웅전 앞마당에 도착하자 연등이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이 달려 있었습니다.


스님과 동행하고 있는 크레이그 씨에게 스님이 문경 수련원에 대해 소개를 했습니다.

“경치가 좋죠? 30년 전에 제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는 텐트를 쳐놓고 살았어요.” (웃음)

“스님께서 처음 이곳에 절을 지으셨나요?”

“네. 저 밑에 감나무가 보이죠? 저의 스승님이 저 감나무 아래에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해가 지자 연등은 더욱 밝게 빛났습니다.

저녁 7시에 대웅전에서 점등식 리허설을 잠깐 한 후 7시 30분에 점등식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점등식 행사는 온라인으로 전 세계의 정토회 회원들에게 생방송되었습니다. 대중들은 화상회의 방과 유튜브를 통해 점등식에 참가했습니다.

스님은 점등식에 앞서 부처님오신날에 연등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오늘은 전야제로 연등을 밝히는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원인이 바깥 요인이나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욕망에 기인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어리석음과 지나친 욕망을 자각하고 내려놓는다면 저 다람쥐나 토끼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훨씬 더 자립적으로,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각을 통해 스스로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거기로부터 벗어남으로 해서 하루를 살아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보람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다

이런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그때의 그 마음이 어땠는지 당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심과 같고, 덮인 것을 벗겨내어 보여주심과 같고,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주심과 같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춰주심과 같다’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네 가지 비유로 고백을 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적절한 비유는 마지막에 있는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춰주심과 같다’ 하는 표현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어둠에 비유한다면 그 어리석음에서 깨어났을 때는 마치 불을 탁 밝혀 놓은 것과 같습니다. 어두워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는 한 시간을 더듬어도 물건을 찾지 못하는데, 불을 밝히는 순간 바로 어디에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깜깜해서 뭐가 뭔지 모르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몰라서 불안에 떨었는데, 불을 밝히는 순간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불안함이 사라집니다.

무지의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의 기쁨, 괴로움에 허덕이다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났을 때의 기쁨, 불안, 초조, 두려움에 떨다가 편안해졌을 때의 기쁨을 어두운 밤에 등불을 켠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지혜의 등불’, ‘어둠을 밝히는 광명의 등불’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연등불을 밝힐 때도 ‘광명의 등’, ‘지혜의 등’이라고 표현합니다.

자녀가 죽자 정신을 잃고 헤매다가 부처님을 만나서 집착을 내려놓게 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다고 차별받고 살다가 본래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귀하고 천함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여자라고 해서 천한 것도 아니고, 천민이라고 해서 천한 것도 아닙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걸 깨우쳤을 때 바로 세상이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가 등불을 켜는 이유는 이 등불이 바로 ‘자각’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쳐서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어둠 속에 등불을 켜서 밝히는 것에 비유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괴로워하다가 괴로움이 없어지고, 남에게 의지하다가 오히려 남을 돕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종살이를 하다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고, 중생살이를 하다가 불보살로 전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법의 가피입니다.

세상의 부정의를 바르게 세우다

이런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사회적 불합리에 대한 생각도 달라집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사람이 태어나도 신분이 낮으면 천민이라는 신분의 굴레를 쓰고, 여자라는 성차별의 굴레를 쓰고 한평생 종살이를 했습니다. 천민은 높은 계급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평생 종살이를 했고, 여성으로 태어나면 남자를 주인으로 섬기면서 평생 종살이를 했습니다. 주인이 없으면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팔려 다니거나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삶을 살다가, 부처님 법을 만나 나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임금이 내 주인이 아니고, 양반도 내 주인이 아니고, 브라만도 내 주인이 아니고, 아버지도 내 주인이 아니고, 남편도 내 주인이 아니고, 아들도 내 주인이 아니고, 바로 내가 내 주인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이 깨달음이 2,600년 전에 이미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그걸 깨달았을 때의 당당함이 어땠을까요? 그때의 감동이 어두운 밤에 등불을 밝히는 것에 비유가 될까요? 그나마 비유를 할 수 있는 것이 ‘어두운 밤의 등불’이기 때문에 이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밝힌다는 것은 사회적인 부조리, 불합리, 부정의를 개선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불합리를 2,600년 전에 이미 지적하셨고, 비록 세상에서는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법 안에서는 성차별도 없고, 계급 차별도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불법(佛法)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사회정의’라는 등불을 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처님오신날 전야제를 맞이하여 등불을 밝히는 점등식을 합니다. 밤에 어둠을 밝히는 등불은 ‘개개인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세상의 부정의함을 바르게 세운다’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야제에서 등불을 밝히는 이유입니다.

부처님오신날, 등불을 밝히는 이유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은 밝은 등불처럼 있는 그대로를 세세하게 비춥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손안에 어떤 숨겨진 비밀은 없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든,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또, 어떤 이념과 사상을 가지고 있든, 그것도 개인의 자유입니다. 다만 내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이루려고 하는 욕망이 번뇌와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성질대로 하려는 마음이 번뇌와 괴로움의 원인이고, 내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 번뇌와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걸 알아서 나의 무지, 나의 어리석음, 나의 욕망을 깨우치고 내려놓을 때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의무감까지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때, 내 삶과 존재에 보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정토행자가 되었다면 지금 세상에서 괴로워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행복으로 가는 희망의 등불이 되고, 혼란한 사회가 평화롭고 정의롭게 만드는 데에 희망의 등불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뜻으로 오늘 우리가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등불을 켜서 행복하고 편안하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서 불을 켜보겠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오색 연등을 세 바퀴 돌았습니다. 여법한 행사 진행을 위해 점등식은 대웅전 실내에서 진행했습니다.

석가모니불 정근이 끝나자 다 함께 찬불가 ‘부처님께 바칩니다’를 불렀습니다.

이어서 집에서 온라인으로 점등식에 참여하고 있는 정토행자들이 각자 화면 속에서 연등을 밝혔습니다.

다음은 각 지부별 으뜸절에서 점등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전국에서 연등불이 차례대로 켜진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있는 문경 수련원 대웅전에서 불을 밝혔습니다.

“가난한 여인의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우리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을 밝히겠습니다.”

행자님 한 분이 등불을 들고 걸어 나와 대연등 앞에 멈춰 서서 등불을 켰습니다.

대연등에 불이 켜지자 다른 연등에도 동시에 함께 불이 켜졌습니다. 화면 속 대중들은 환호하고 기뻐했습니다.

연등이 환하게 밝아진 가운데 스님이 부처님의 수기를 낭독했습니다.

"이 작은 등불은 워낙 보잘것이 없어 있는 둥 마는 둥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등불들이 하나씩 꺼져갔다. 시간이 지나서 다른 등불이 다 꺼졌는데도 여인이 밝혀 놓은 그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이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 존자는 불을 끄려 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손으로 끄려 해도 꺼지지 않았고, 가사 자락으로 부채로 끄려 했으나 그래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어서 대중이 함께 낭독했습니다.

"아난다여,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것이기에 비록 작은 등불이지만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그 등불을 켠 공덕으로 미래세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수미등광여래'라고 할 것이니라."

마지막으로 스님이 대연등 앞에서 발원 기도를 했습니다. 대중들도 합장을 하며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을 마음 깊숙이 염원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점등식 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오늘 정토행자들이 한 발원은 문경 수련원과 전국 으뜸절에 켜진 다양한 색깔의 연등 속에 담겨서 밤새도록 밝게 빛났습니다.


내일은 불기 2566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문경 수련원에서 생방송 현장 중계로 봉축 법요식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2

0/200

보디사트바

감사합니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_()_

2022-06-29 08:51:21

김애자

감사합니다

2022-05-18 09:37:57

등불의 의미 자각

스님 법문 감사합니다.

2022-05-17 07: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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