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9.29 문경 정토수련원
“온라인으로 차례를 지내도 괜찮을까요?”

안녕하세요. 단식 4일째입니다. 오늘 스님은 아침 8시 무렵 문경 정토연수원에 잠시 들렀습니다. 오랜만에 연수원 활동가들과 함께 선유동 산책을 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계곡 옆 밤나무 군락이 나타났습니다. 밤나무 아래 밤송이가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이미 빈 밤송이였습니다.

먼저 살펴보던 스님은 개울에 떨어져 있는 밤을 발견하였습니다. 밤송이가 개울에 떨어지고 물 흐름에 따라 흘러가기도 하면서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에 떨어진 밤은 주울 생각을 안 하니까 이렇게 물속에 가득 있네요.”

물이 맑아 별로 깊어 보이지 않은 곳도 막상 들어가 보니 무릎을 넘어가는 곳도 있었습니다. 작대기로 건지기도 하면서 주워 모은 밤이 배낭 하나 가득이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물속에서 밤을 수확한 뒤 선유동 계곡 산책을 잘 마쳤습니다.

스님은 오랜만에 들른 연수원 곳곳을 둘러본 뒤 문경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도 문경 수련원에서 온라인 명상수련 준비 상황을 점검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부터는 4박 5일 동안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6일에 녹화한 추석 특집 수행법회의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3명의 질문자가 영상으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할머니 한 분은 온라인으로 차례를 지내도 되냐는 손자의 전화를 받고 아직 대답을 제대로 못해주고 있다며,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온라인으로 차례를 지내도 괜찮나요?

“큰 집에서 이번에 재개발한다고 집을 팔았어요. 그런데 시숙님이 하는 말이 이사를 하고 난 뒤부터 제사를 안 지내기로 했다 합니다. 그 집도 부모의 유산이지 시숙님이 돈을 벌어서 산 집이 아니거든요. 시숙님이 처신하는 게 너무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 들어 서운합니다.

어제는 서울에 있는 손자에게 전화가 와서 할머니가 다리를 다쳐서 서울로 못 간다고 하니까 ‘할머니, 차례를 온라인으로 하면 안 돼요?’ 이렇게 묻더라고요. 확실한 대답을 아직 제가 못 했습니다. 스님, 온라인으로 차례를 지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네.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온라인으로 차례를 지내도 됩니다.” (웃음)

스님은 활짝 웃으며 할머니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모든 행사를 비대면으로 하고 있잖아요. 원래는 즉문즉설도 직접 만나서 질문하고 대답하는 것인데, 이것도 어쩔 수 없으니까 비대면 방식인 온라인으로 이렇게 진행하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차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토회에서는 매년 추석 때 집에서 차례를 못 지내는 분들을 위해 법당에서 합동으로 차례를 지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법당에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합동 차례를 전부 온라인으로 지내기로 했어요. 서초동 정토법당에서 차례 상을 준비해 차례를 지내고, 그 영상을 생중계해서 신청한 분들에게 보내 드립니다. 그러면 각자 집에서 그 생중계를 보면서 차례에 참여합니다. 절을 할 때는 자기 집에 차 한 잔 놓을 수 있도록 준비해서 잔을 따르는 거예요. 영상에서 잔을 따를 때 자기도 잔을 따르고, 영상에서 절을 할 때 자기도 절하고, 이렇게 하는 거죠.

코로나 이후에 정토회가 온라인 법회를 진행하듯이 화상회의 기술을 활용해서 가족들을 전부 화상으로 연결하여 온라인으로 차례를 지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어느 한 집에서 음식들을 마련해서 차례를 지내면, 나머지 가족들은 온라인으로 연결해서 참여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고향을 방문하지 않아도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요.

그러니 손자의 제안은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서울 아들네 집에서 차례를 지내면 할머니가 그 영상을 보면 되고, 할머니가 차례를 지내면 손자가 그 영상을 보면 됩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조상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게 차례인데, 조상님들이 다 내 마음속에 있으니 어디서든 차례를 지내도 됩니다. 또 마음밖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조상이 한 마디로 귀신 아닙니까. 귀신이란 요즘 식으로 말하면 모양도 없이 전파로 왔다 갔다 하는 분들 아니겠어요?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귀신의 세계이니까요. 엄격하게 말하면 온라인도 귀신의 세계와 같은 겁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는 귀신이 있다면 귀신한테는 온라인으로 하는 게 오히려 더 맞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시숙님이 제사를 안 지내서 서운하다고 하셨는데, 그것도 서운할 필요가 없어요. 큰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우리에게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문화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큰 집에서 제사를 지낼 형편이 못 된다면, 다음 집인 차자 집에서 제사를 지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코로나 때문이든, 집이 팔렸든, 홍수가 났든, 어떤 이유로 차례를 못 지낼 때는 간소하게 호텔 방에서 지내도 되고, 오피스텔에서 간소하게 지내도 됩니다. 꼭 격식을 갖춰서 지내야만 하는 게 아니라 이런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약식으로 지내도 됩니다. 그것도 안 하겠다면 섭섭해하지 마시고 내가 제사를 지내면 됩니다.

옛날에는 반드시 제사를 지낼 때 남자가 제주가 되어야 했는데, 이제는 법적으로 남녀평등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누가 제사를 지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과거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는 남자가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호주제도 있었잖아요. 그때는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제주는 남자가 되어야 했고, 남자 중에도 장자가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평등해졌어요. 장자와 차자도 평등해졌고, 남녀도 평등해졌어요. 그래서 누구든지 차례 상을 준비하고 지내면 됩니다. 질문자가 차례 상을 간소하게 준비해 놓고 지내도 되고, 질문자의 자녀들이 차례를 지내도록 한 후 거기에 질문자가 참여해도 됩니다.

그러니 시숙에 대해서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형편이 안 돼서 제사를 못 지내는 것이니까 ‘그러면 내가 제사를 지내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셔서 본인이 제사를 지내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공지>
내일부터 4박 5일 동안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이 진행됩니다. 스님은 이 기간 동안 단식을 하며 오직 명상에만 집중할 계획입니다. 스님의 하루 제작팀도 명상을 함께 하며 묵언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명상 수련 기간 동안에는 그동안 소개하지 못한 즉문즉설 한 편 씩을 매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편안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 스님의하루 제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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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스님

2020-10-07 10:21:42

김춘배이현미

스님~^^ 건강발원합니다
'온라인으로 차례를 지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어느 한 집에서 음식들을 마련해서 차례를 지내면, 나머지 가족들은 온라인으로 연결해서 참여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고향을 방문하지 않아도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게 하라는 말씀
잘알겠습니다 ~^^ 스님 _()_

2020-10-04 19:25:03

고경희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평등^^

2020-10-03 19: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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